서로 다른 손길


훔쳐간 건 쌀 두 가마뿐이 아니었다. 이제껏 그런 일이 없었는데 반장님 댁 쌀이 없어졌다. 아침에 일하러 나간 사이, 그 잠깐 사이에 마루에 있던 쌀이 없어진 것이다.


일거리 쌓여있는 마당에는 봉고차 자국이 있었다고 한다. 낮이나 밤이나 문 열어 놓고 살던, 서로가 서로를 믿으며 열린 마음으로 살던 마을에 전혀 뜻하지 않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쌀 두 가마의 값보다는 일어나선 안 될 일이 일어난 데서 더욱 당황해 하던 마을 사람들.
한두 사람의 나쁜 욕심이 던진 어두운 파장은 마을 사람들의 얼굴로 쉽게 번졌다.


어쩜 내일부턴 대문이 닫히는 건 아닐까. 닫힌 문마다엔 굵은 자물쇠가 걸리는 건 아닐까. 나즈막이 어깨를 나란히 했던 이웃집들 사이엔 담이 높아지고 높아진 담 따라 마음도 갇혀 각자 타인이 되는 건 아닐까. 쉬운 마음으로 쌀을 실었던 이들은 자기네가 한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했을까.               

 

일용할 양식, 결코 여유 있던 쌀이 아니었으면서도 애써 웃으시며 “우리보다 못한 사람이 가져갔겠죠, 뭐” 하시던 집사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단강에 들렀다가 그 소식을 들으시고 선뜻 지갑을 여셨던 감리사님. 돈의 올바른 용도. 나쁜 욕심이 가져온 큰 여파와 그래도 그걸 사랑으로 감싸는 손길을 아울러 보았다.

-<얘기마을> 19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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