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벗

사진/김승범

햇살에도 찌푸릴 줄 모르는 얼굴
곱디 고운 나의 오랜 얼벗

한적한 길을 걷다가
작디 작은 얼굴이 보이면

모른 체 쪼그리고 앉아
벗님과 같은 숨으로 나를 지운다

같은 데를 바라보면
빈탕한 하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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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도 벼과지


거제도로 떠나기 위해 가방을 꾸리며 시집 한 권을 챙겨 넣었다. 황동규의 <몰운대행>이었다. 떠날 때마다 짐을 줄이자고, 가능하다면 불필요한 짐을 넣지 말아 가볍게 떠나자 하며 웬만한 짐은 빼 버릇하면서도, 거꾸로 챙겨 넣는 것이 시집 한 권쯤이 되었다. 


잠시 짬이 날 때 끊어 읽기가 좋았고, 툭툭 끊긴 듯 이어지는 시의 이미지가 여행 분위기와 걸맞을 때가 많았다. 얼핏 서점에서 훑어본 내용이 마음에 와 닿아(사실 황동규의 시는 거의 빼놓지 않고 읽는 셈이지만) 사서 책상에 꽂아 뒀던 책이었다. ‘몰운대행’, 떠남에 대한 내용이었기에 더욱 쉽게 빼들었다. 

 


차를 타고 오가며 이따금씩, 혹 날 밝아오는 새벽녘 거제의 장승포 포구를 내려다보며 베란다에 앉아 읽기도 했다. 그중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이 ‘대나무도 벼과(科)지’라는 시였다. 도깨비바늘이 국화과 식물, 대나무가 벼과(科) 식물, 뜻밖의 사실을 확인하며 시인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었다. 

'생김새 고향 달라도 
우리는 얼마나 같은가! 
얼마나 다르지 않은가! 
마음속에 감춘 냄새까지도' 

낯선 풍경, 낯선 사람들, 낯선 삶의 모습을 만날 때마다 황동규의 시 한 구절은 무슨 도돌이표처럼 마음속으로 되살아왔다. 


‘생김새 고향 달라도
우리는 얼마나 같은가!
얼마나 다르지 않은가!
마음속에 감춘 냄새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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