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도 더듬거릴 때가 있다

“내가 아브라함을 선택한 것은, 그가 자식들과 자손을 잘 가르쳐서, 나에게 순종하게 하고, 옳고 바른 일을 하도록 가르치라는 뜻에서 한 것이다. 그의 자손이 아브라함에게 배운 대로 하면, 나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대로 다 이루어 주겠다.”(창 18:19)

주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시길 빕니다.

큰비가 내리더니 대기가 며칠 청명합니다. 영동 지역에는 폭설이 내려 사람들의 발이 묶였더군요. 피해는 없으셨는지요? 폭설로 불편을 겪은 분들에게는 죄송한 말이지만 눈 덮인 산과 들, 그리고 마을은 왠지 포근한 느낌이 듭니다. 마치 동화 속의 나라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16세기 네덜란드 화가 피테르 브뤼헬(1525-1569)의 ‘눈 속의 사냥꾼’이라는 그림이 떠오릅니다. 화가는 사냥꾼들이 사냥개들과 함께 마을로 돌아오는 풍경을 화폭에 담아냈습니다. 사냥의 수확물이라고는 여우 한 마리뿐입니다. 지쳤는지 그들의 허리는 구부정합니다. 개들도 지쳐 보입니다. 눈을 핥아먹는 녀석도 있습니다. 곧게 솟은 나무 위에 까마귀가 앉아 있습니다. 사냥꾼들 옆에 있는 선술집에서는 사람들이 짚불을 피우고 있습니다. 유일하게 따뜻하게 보이는 광경입니다. 저 멀리 깎아지른 듯한 봉우리가 인상적인 높은 산이 보입니다. 하지만 사냥꾼들이 가고 있는 곳은 가족들과 따끈한 차가 기다리는 각자의 집일 것입니다. 마을 앞에 형성된 얼음판 위에서 사람들이 신나게 놀고 있습니다. 팽이를 치는 아이도 있고, 썰매를 타는 이들도 보입니다. 기차놀이 하듯 열을 지어 미끄럼을 타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키 채 비슷한 것도 보입니다. 놀이는 현실의 곤고함을 잊게 만듭니다. 놀이는 지나치게 경직되기 쉬운 우리 정신을 환기시키는 창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눈을 보러 나갈 짬을 내지 못하니 이런 식으로라도 겨울 풍경을 즐기는 것입니다.

 


학생이 아니라 해도 각급 학교가 새로운 학년을 시작하는 3월 2일은 왠지 모를 설렘을 안겨줍니다. 보호자의 손을 잡고 학교로 향하는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도 그렇고, 처음 입는 교복이 어색한지 조금은 자기 모습을 의식하는 것처럼 보이는 중학교 입학생, 의젓한 모습을 보이려 하지만 누가 봐도 신입생인 대학생들의 모습까지, 그 풋풋한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봄기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상황, 낯선 이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설렘과 동시에 두려움을 불러일으킵니다.

지난주 토요일에는 교회학교를 담당하는 선생님들과 줌 미팅을 했습니다. 교육의 근본 목표는 ‘유능한 인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과 평화롭게 공존할 줄 아는 사람이 되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존재의 신비에 대해 눈을 뜰 수 있도록 도와야 하고, 자기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 자각하도록 해야 합니다. 어린 학생들에게 죄의식을 주입하거나,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면서 상과 벌을 내리시는 하나님 이미지를 심어주지 말아야 합니다. 섣부른 죄의식은 우리에게서 경탄의 능력을 앗아갈 뿐만 아니라, 주위에 있는 이들 속에 있는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인간의 죄성과 참상에 대한 이야기는 미리 하지 않더라도 삶의 과정을 통해 경험하게 마련입니다. “내일 걱정은 내일이 맡아서 할 것이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겪는 것으로 족하다.”(마 6:34)

그날 시간이 없어서 미처 하지 못했던 말들이 있습니다. 교사들이 일상 속에서 꼭 명심해야 할 내용입니다. 저는 그것을 아동과 청소년 교육 전문가인 얀-우베 로게(Jan-Uwe Rogge)에게서 배웠습니다. 그는 그것을 네 가지로 요약하여 들려줍니다(안젤름 그륀/얀-우베 로게, <아이들이 신에 대해 묻다>, p. 9-11 참조).

첫째, 교육에 관여하는 이들은 아이들이 자기감정에 충실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아무리 어려도 아이들은 나름대로의 행복과 기쁨, 슬픔과 분노의 감정을 느낍니다. ‘어린 게 뭘 안다고…’라며 윽박지르거나, 그 감정을 하찮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감정이 존중받고 있다고 느낄 때 아이들은 다른 이들을 신뢰하게 됩니다.

둘째, 아이들이 성장하는 속도를 참을성 있게 지켜보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아이들을 몰아대지 말고 천천히 그와 동행해야 합니다. 야곱 이야기를 떠올려 보십시오. 20년 만에 귀향한 야곱은 형 에서와 화해했습니다. 두 형제가 부둥켜안고 우는 모습은 성경에서 가장 감동적인 이야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원한감정이 풀어진 에서가 ‘갈 길을 서두르자’고 말하자 야곱은 아이들이 아직 어리고, 돌보아야 할 양 떼와 소 떼가 많다며, 하루라도 지나치게 빨리 몰고 가면 다 죽을 것이라고 말합니다(창33:13). 사람마다 속도가 다 다릅니다. 사랑은 그 속도를 알아차리고 거기에 발을 맞추는 것이 아닐까요?

셋째, 아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불완전해질 수 있는 용기를 내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아이에게 답을 주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으며 배워야 합니다.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이들과 지내다 보면, 실패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하는 무능력자가 됩니다. 실패를 해도 자신이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을 알 때 아이들은 자신감을 가지고 도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공보다 실패가 우리를 더 성장시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넷째, 경계를 정해 주어야 합니다. 세상만사가 자신의 의도나 계획 혹은 바람대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욕망의 성취가 지체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이들이 참 많습니다. 욕망이 발생하는 순간 즉각 해소되지 않으면 불행하다고 느끼거나, 부모나 어른들의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이들이 있습니다. 

제게도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손녀가 둘 있습니다. ‘잘 적응하겠지’ 하고 생각하다가도, 그 여린 감정을 다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여간 걱정이 되는 게 아닙니다. 소극적이어서 자기감정이나 생각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아이의 경우가 더 그렇습니다. ‘손녀 바보’ 소리 들어도 할 수 없습니다. 그냥 있는 것만으로도 어른들의 마음을 정화하는 것을 보면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사랑을 가르치는 스승으로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우리 아이가 더 크지 않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기도 하더군요. 나중에 교회학교 어린이들이 교회에 올 수 있게 되면 어느 교우가 제게 보내준 그림 동화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를 읽어주고 싶습니다. 조금 느리고 빠를 수는 있지만, 모든 삶은 저마다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을 더듬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감수성이 예민한 소년은 매일 아침 낱말들의 소리를 들으며 깨어나지만 그 소리를 발음하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학교에 가서도 맨 뒤에 앉았습니다. 온종일 말을 할 일이 없기만 바랐습니다. 어쩌다 선생님의 지목을 받아 이야기를 하려면 입술이 뒤틀리고 일그러졌습니다. 그럴 때마다 친구들은 키득거리며 웃었습니다. 아이의 마음에 그늘이 드리웠겠지요? 어느 날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온 아빠가 소년을 강으로 데려갔습니다. 아이는 아빠와 함께 알록달록한 바위와 물벌레를 살펴보면서 강을 따라 걷는 그 시간을 참 좋아했습니다. 편안했습니다. 그때 아빠가 말했습니다. “강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이지? 너도 저 강물처럼 말한단다.” 아이는 물끄러미 강을 바라보았습니다. 물거품이 일고, 소용돌이치고, 굽이치다가, 부딪치는 강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강은 지체할 때도 있지만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나는 강물처럼 말해.’ 소년은 나중에 울고 싶을 때마다 아빠의 말을 떠올렸습니다. 그러면 울음도 삼킬 수 있고 말할 수도 있었습니다. 강물도 더듬거릴 때가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위로가 되었던지요. 나중에 소년은 친구들 앞에 서서 강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조던 스콧 글, 시드니 스미스 그림,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김지은 옮김, 책읽는 곰).

우리는 어쩌면 너 나 할 것 없이 ‘강물처럼 말하는 사람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영원의 바다를 향해 나아가면 그뿐입니다. 앞섰다고 우쭐거릴 것도 없고, 뒤쳐졌다고 주눅들 것도 없습니다. 지향이 바르면 언젠가 우리는 그 바다에 당도하게 될 것입니다. 가끔 그 물살 위에 몸을 맡긴 채 둥둥 떠내려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지 않나요? 뭔가를 붙잡으려던 마음도 내려놓고, 다른 이들과 차이를 만들려는 조바심도 내려놓고, 우리가 전체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일 때 편안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지난 주일(28일) 미얀마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에게 군대와 경찰이 발포를 해서 많은 사상자가 생겼습니다. 우리 또한 역사의 격동기를 거쳐왔기에 미얀마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차마 외면할 수 없습니다. 미얀마에서 더 이상 폭력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평화롭게 살고 싶은 대중들의 소박한 꿈이 짓밟히지 않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들과 연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십시오.

벌써 사순절 세 번째 주일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조금은 의식적으로 사순절기에 맞갖은 생활을 해야 합니다. 사순절 달력에 제시된 실천 사항들을 잘 지켜보십시오. 잘 될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있을 겁니다. 중요한 것은 깨어 있음입니다. 성공담이든 실패담이든 우리 영혼을 밝히는 좋은 재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길든 짧든 그런 경험을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우리 삶이 더 따뜻하고 밝고 견실해지기를 빕니다. 모든 이에게 주님이 주시는 평강이 넘치기를 빕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21년 3월 4일
담임목사 김기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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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강



새벽 강가에 물안개가 뽀얗게 피어올랐습니다.
어둠 속을 밤새 흐른 강물이 몸이 더운지 허연 김으로 솟아오릅니다. 

 


우윳빛 물안개가 또 하나의 강이 되어 강물 따라 흐를 때, 
또 하나의 흘러가는 것, 물새 가족입니다. 

때를 예감한 새들이 나란히 줄을 맞춰 날아갑니다. 


이내 물안개 속에 파묻혀 더는 보이지 않는 새들, 
물안개 피어나는 새벽 강에선 새들도 강물처럼 흘러갑니다.

-<얘기마을>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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