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즈마리와 길상사




한겨울을 지나오며 언뜻언뜻 감돌던 봄기운이 이제는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온 요즘입니다. 길을 걸으며 발아래 땅을 살펴보노라면 아직은 시들고 마른 풀들이 많지만 그 사이에서도 유독 푸릇한 잎 중에 하나가 로즈마리입니다. 

언뜻 보아 잎 모양새가 소나무를 닮은 로즈마리는 개구쟁이 까치집 머리칼을 쓰다듬듯이 손으로 스치듯 살살살 흔들어서 그 향을 맡으면 솔향에 레몬향이 섞인듯 환하게 피어나는 상큼한 향에 금새 기분이 좋아지곤 합니다. 

로즈마리를 생각하면 스무살 중반에 신사동 가로수길과 돈암동 두 곳의 요가 학원에서 작은 강사로 수련하던 때가 떠오릅니다.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 있던 고시원 방이 삭막해서 퇴근길에 숙소로 데리고 온 벗이 바로 작은 로즈마리 묘목입니다.

언제나 로즈마리와의 인사법은 반갑게 악수를 나누듯 손으로 잎을 살살살 쓰다듬으며 향을 맡는 일입니다. 작은 화분에 담긴 로즈마리에게 물도 주고 그렇게 인사를 나누는 날이 더해 갈 수록 로즈마리는 언뜻 보아 위로 키가 자라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왠지 키에 비해서 잎은 살이 찌지 않고 오히려 풀이 죽은 듯 보였습니다. 어떻게 살릴까 몇 날 며칠 궁리를 하였습니다.

 



낮에는 요가를 가르치고, 길벗처럼 원성스님의 그림책에서 본 해맑은 동자승의 얼굴을 마음에 담기도 하고, 법정 스님의 삶과 월든 숲 소로우의 삶을 생각하면 혼자 길을 걸으면서도 외롭지 않던 맑은 나날입니다. 

요가를 공부할 수록 명상과 생명과 생태에도 관심이 가게 된 것은 요가의 대체의학인 아유르베다와 한의학에 깃든 자연의 진실하고 선한 아름다움 때문입니다. 자연히 섭생은 자연식에 가까워졌고 몸도 따라서 저절로 기울어 순응하듯 물처럼 도시에서 자연으로 흘렀습니다. 

당근과 감자와 오이와 사과만 먹고도 몸이 만족해 했습니다. 물통이 있고 찻잎이 있으면 어디든 평안한 자리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언제나 물통과 찻잎을 지니고 다니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때는 요가 수련을 마치고 나오면 원장님이 다려주시던 따끈한 보이차가 몸을 보호해 주던 따뜻한 기억이 있습니다.

작은 방에서 로즈마리와 단둘이 마주하고 있자니, 작은 화분에 담긴 로즈마리의 처지와 나와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로즈마리가 이 작은 화분이 아닌, 산속이나 산자락 어디쯤에다 뿌리를 내렸다면 훨씬 더 생기를 뿜었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고보면 빽빽한 도심 속에서만 살아온 나의 처지도 작은 화분에 담긴 로즈마리의 생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그런 한 생각이 들고부터는 마음이 더욱 자연과 산을 그리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휴일날, 로즈마리라도 먼저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이른바 로즈마리 출가를 시키자는 결심을 낸 것입니다. 생각 끝에 지하철을 타고 마을 버스를 갈아 타고서 도착한 곳은 법정 스님의 성북동 길상사입니다. 길상사의 시민선방으로 오르는 길 우측 화단 나무 아래에 작은 로즈마리 묘목 하나를 허락도 없이 모셔둔 것입니다. 

그때의 일로부터 2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그 작은 로즈마리가 여전히 뿌리를 잘 내리고 있는지, 아니면 누군가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벌써 뽑아버렸는지, 아니면 저절로 그 자리에서 생을 마무리했는지는 여전히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길상사를 떠올릴 때면 저와 잠시나마 벗이 되었던 로즈마리의 향기가 지금도 생생히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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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끝까지 고향을 지킨다

  • 오늘 방문하신 분이 단강마을이 고향인분이 계셨습니다.

    우포지기 2021.02.27 16:50



단강에서 귀래로 나가다 보면 지둔이라는 마을이 있다. 용암을 지나 세포 가기 전. 산봉우리 하나가 눈에 띄게 뾰족하게 서 있는 마을이다.


전에 못 보던 돌탑 하나가 지둔리 신작로 초입에 세워졌다. 마을마다 동네 이름을 돌에 새겨 세워놓는 것이 얼마 전부터 시작됐는데, 다른 마을과는 달리 지둔에는 지둔리라 새긴 돌 위에 커다란 돌을 하나 더 얹어 커다란 글씨를 새겨 놓았다.

 


“나는 끝까지 고향을 지킨다.”


까맣게 새겨진 글씨는 오가며 볼 때마다 함성처럼 전해져 온다. 글씨가 돌에서 떨어져 나와 환청처럼 함성으로 들려져 온다.


그러나 그건 희망의 함성이 아니라 절망스런 절규, 눈물과 절망이 모여 검은 글씨로 새겨졌을 뿐이다. 
작은 돌 위에 새겨놓은 절박한 절규,


“나는 끝까지 고향을 지킨다.”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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