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빛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09)

 

 눈빛
 

거리 풍경이 바뀌었다. 폭풍이 몰려온다는 소문을 듣고 서둘러 새들이 떠난, 동화 ‘소리새’ 속 새터 같다. 차량도 인적도 평소와는 확연히 다르고,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 속에도 생기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느낌을 말하자면 도시 전체가 잿빛 표정이 된 듯하다.


밖에 나가보면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울 정도다. 이게 무슨 변괴인가 싶어 나라도 마스크를 쓰지 말아야지 싶어 길을 나서지만, 오가는 사람들은 그런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지나간다. 교우라도 만나게 되면 펄쩍 뛰며 어찌 마스크를 쓰지 않았냐고, 마스크가 없냐고 걱정스레 묻는다.

 

 


예배에 참석하는 교우들도 마찬가지여서 거의 대부분의 교우가 마스크를 쓰고 오고, 지난 주일에는 마스크를 쓴 채로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너희가 아무리 변장을 해도 나는 누가 누군지 다 안다는 마음속 한 음성을 주님의 농처럼 들으며 말이다.

 

이런 와중에 한 가지 새로운 것이 있다. 사람들의 눈매가 눈에 띈다. 마스크 위로 드러난 부위는 두 눈뿐, 마스크를 쓰니 오직 눈만을 마주하게 된다. 서로의 눈을, 눈빛이나 눈매를 이렇게 유심히 바라본 적이 있었을까 싶다. 눈만을 보다보니 눈에도, 눈매에도 제각각 표정이 있다. 사람은 얼굴만 다른 것이 아니었다. 눈빛도, 눈매도 자기만의 고유한 표정이 있었다.

 

눈이, 눈빛이, 눈매가 선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또 하나의 표정을 갖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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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함과 따뜻한 시선만이

신동숙의 글밭(93)

진실함과 따뜻한 시선만이

 

집 안에서만 생활한지 벌써 4일째가 되어갑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제가 사는 집 근처의 강변을 산책하기도 했다는 문자 동선 서비스에, 바로 대문 앞에도 안나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사실 저는 평소에도 누가 만나자고 부르지 않으면 잘 나가지 않는 편이라 불편함을 크게는 못 느끼고 있습니다. 학원과 도서관도 다들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듣고는, 때때로 집 밖으로 나가고 싶다며 떼를 쓰던 아이들도 갑갑해하긴 하지만, 이제는 모두들 똑같이 겪는 상황이라며 체념한 듯 이해를 하는 눈치입니다. 어떻게든 집 안에 함께 있는 식구들 사이에 평화를 유지하는 일만 하루 하루 제게 주어진 숙제입니다. 이 와중에도 바깥에서 생업과 사명감으로 애쓰시는 분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제 자신이 겸손해집니다. 그렇기에 상대적으로 제 내면에서는 새로운 일들을 하느라 잠자리에서 조차도 쉼이 없습니다. 이럴 때 첼로의 낮고 느리고 호흡이 긴 음율에 기대어 누리는 고요한 시간이 평화로운 쉼이 됩니다.

 

자녀들 밥을 챙겨 주는 틈틈이 코로나19 관련 뉴스에는 계속해서 귀를 열어놓고 있답니다. 사실 매체와 정보가 너무나 많아서 다 볼 수도 없습니다. 되도록이면 정보를 전달하는 보도자와 그가 속한 조직이 사심을 배제하고 사실에 입각해서 쓴 내용의 기사문들로 선별하려고 합니다. (자본경제사회구조 안에선 사리사욕이 섞이지 않은 기사문과 정보란 참으로 드물고 귀합니다.) 그럼에도 다음날 기사에, 사실인 줄 알았던 전날의 뉴스가 오보였다며 정정한다는 뉴스가 올라오기도 하는 실정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비교적 나라의 피가 건강하게 잘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과거에는 거짓을 또 다른 거짓으로 덮으려고 검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던, 어둡고 눈 먼 시절들도 있었으니까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진실과 거짓을 선별하기란 성경의 비유처럼 알곡과 쭉정이를 가려내는 일과 같을 테고요. 이 많은 낱알 같은 정보들을 언제 다 가려내나 싶지만, 탈곡하는 좋은 방법들은 얼마든지 나와 있으니까요. 저는 가장 먼저 제 마음의 체망부터 스스로 돌아보려고 합니다. 개인과 조직의 사리사욕이라는 체망의 성김은 손바닥처럼 두껍기도 하고 손가락처럼 가늘기도 하고 아예 투명하기까지도 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변함없는 것은 진실과 거짓을 분별함에 있어서 조직과 대중, 권위 등 외부의 손에 의지해서 선택하게 될 때는 언제나 오류의 가능성이 더 커진다는 점입니다. 외부의 조직과 대중과 권위에 의존하려는 그 마음이 우상을 만들고, 사이비 교주를 만드는 게 아닌가 하고요. 진리 안에서 이미 내 안에 계신 하나님과 예수와 성령을 만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제 삶은 헛되이 사는 삶은 아닐 테니까요.

 

나부터가 개인의 사리사욕을 내려놓기 전에는, 그 흔한 진실 하나도 참모습을 오롯이 드러내는 일은 어려울 것입니다. 제 눈을 가리는 손바닥 구름은 언제나 제 헛된 욕심이었습니다. 세상의 많고 많은 진실과 거짓도 결국은 나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됨을 봅니다. 내 마음에 사리사욕이 없는 맑고 투명한 시선일 때, 진실은 비로소 맑은 하늘처럼 본모습을 드러내 보인다는 사실을, 역사의 거울들이 그리고 제 자신의 작은 경험들이 모여서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한 마음먹기가 얼마나 커다란 사회적 파장을 불러올 수 있는지를 두고, 신천지 교주와 한기총 회장을 통해서 여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옛선현들이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키려고 아니, 자신의 목숨보다 더 귀하게 여겼던 게 진실과 사랑과 이 나라가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들을 요즘 들어서 더 많이 하게 됩니다. 암흑과 혼돈의 시절에 진실과 진리와 사랑을 가슴에 품고서 살다 가신 겨울나무들. 그렇지만 암흑과 혼돈은 과거에만 있었던 현상만은 아닌 듯합니다. 낮과 밤의 교차처럼 지금 현재에도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거듭 찾아 오고 가는 모습이 자연스런 현상일 테고요. 그래서 선현들은 그토록 매 순간을 깨어 있으라고, 기도하라고 했었던 게 아닌가 하고요.

 

 

 

정보의 홍수 속에 진실된 정보를 발견하기 위해, 여유 속에서 긴장의 줄을 놓치 않고 깨어 있으려는 일은, 삶 가운데 진리와 사이비를 분별하는 일하고도 다르지 않습니다. 왜 그토록 젊은 기독교 청년들이 신천지에 빠질 수밖에 없는지. 제가 아는 어느 목회자의 장녀도 얼마전에 수련회를 간다면서 집을 나간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목회자는 입버릇처럼 스스로가 정통 고신 예수교 대한 장로회라며 그가 속한 조직을 자랑스레 얘기하곤 했습니다. 그 무소부재의 권력을 쥔 그 목회자는 진실을 말하는 성도들의 등에 '암적 존재, 이단과 신천지'라는 주홍글씨를 입으로 쓰던 목회자였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3대, 모태신앙인 그 목회자의 장녀가 바라본 교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무엇이 목회자의 장녀로 하여금 신천지 수련회에 간다는 사실을 비밀에 부치고서 참석을 하게 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오래 전부터 언론에서 이미 밝혀온 신천지 교주가 그렇게 윤리적으로 모순이 있고, 기독교에서 충분히 경계를 해오던 그 집단을요.

 

매일 세수를 해야하듯, 밥을 먹고 돌아서면 배가 고프듯, 진실과 거짓 또한 시시때때로 일어났다 사라지는,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습니다. 끊임없이 진화하는 바이러스처럼요. 코로나19에 전염되어도 병세가 드러나지 않는 강한 면역력을 갖춘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코로나19 같은 신종 플루를 대하는 기본도 면역력이 됩니다. 신천지와 그릇된 믿음처럼 의식의 바이러스를 대응하는 기본도 개인이 지닌 의식의 면역력이 기본이 됩니다. 저는 그 건강한 면연력의 기준으로 맑은 피, 즉 깨어 있는 맑은 의식과 맑은 시선을 말하고 싶습니다. 진리와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서 깨어 있으려는 한 마음이면 충분합니다. 모든 전염병과 질병과 성인병은 피가 오염되고 탁해진 상태니까요. 살아있는 생명은 흐르는 물처럼 구름처럼 단 한 순간도 제자리에 멈춘 적 없이 흐릅니다. 그 자연의 흐름이 생명력이라면, 매 순간을 깨어서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책임감 있게 살아가는 일이 삶에는 진실이고, 순간을 영원으로 사는 일이고, 지상에서도 천국을 누리는 삶이 아닌가 하고요. 그 흐름의 순간마다 깃드는 것은 영혼까지도 충만한 행복감일 테고요.

 

이번 코로나19 현상처럼 뉴스 매체에 귀를 바짝 기울인 적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 만큼 생명과 직결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일상 생활을 유지하면서도, 거품 같은 만남과 유희들을 조금씩 줄이고, 생존 뉴스에 귀를 기울이듯 이 만큼만 자연과 내면에 귀를 기울이는 고요한 기도의 시간을 틈틈이 갖는다면 세상은 얼마나 평화로워질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도 50대 여성 확진자가 나왔습니다. 대구의 첫번째 코로나 확진자가 신천지 교인이었듯, 그리고 이어서 나오는 확진자들이 대부분 신천지 교인이거나, 관련 장소를 다녀온 사람들인 것처럼, 저희 동네에 확진자도 신천지 교회에 다녀온 사실까지 알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이참에 신천지에 대한 공부도 겸하게 되었습니다. 20~30대의 젊은 청년층의 비율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젊은 집단인 사실에 놀랐습니다. 한국 개신교 교회들이 점점 고령화 되어 가는 것과 상반된 모습입니다. 그들의 복장도 블랙 앤 화이트의 일명 모나미룩이라는 점에서 결기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제가 평소에 즐겨 입는 옷차림이기도 합니다. 제 이유는 교복처럼 고민하지 않고 입을 수 있는 옷차림이고 불필요한 낭비와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시간에 저는 책을 읽거나 차라리 단잠을 자거나 음악을 듣거나 사색을 하는 편이니까요. 신천지 그들에게선 자본경제사회의 달콤함과 안락을 취하려는 교회의 탐욕보다는 물질에 대한 무욕의 모습으로 저는 읽었습니다. 비록 교주는 탐욕적이만요. 그 젊은 청년들을 세뇌 시킨 논리가 인격체인 그들의 의식을 지배해서, 로봇처럼 입력된 말만 되풀이 하듯 따르는 모습 앞에서 무력감을 느낄 정도입니다. 그들을 조종하는 게 예수의 사랑이 아니라, 구원에 대한 욕심과 두려움이라면 진리와는 거리가 멀어집니다. 그런 신천지와 너무나 복잡하고 다양한 체망으로 각계 각층이 얽혀 있음이 드러난 현상이 오늘날의 진실들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그 체망은 탐욕으로 보인다는 점입니다. 진실을 덮어버리려고 하는 그 구름은 투박한 탐욕의 손바닥입니다. 숨어서 움직이는 그들의 모든 활동 가운데 맑은 하늘을 느끼려 칮아보지만, 잘 느껴지지 않는 이유입니다.

 

고구마 순처럼 잡아당길 수록 줄줄이 뽑히며 얽히고 섥혀서 세상으로 드러나는 그들과 관련된 실상들을 바라보면서 이 '진실의 보물들'을 어떻게 다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를 두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진실과 쭉정이를 가려내는 숙제가 또한 제 자신에게 있음을 먼저 자각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숨겨졌던 진실이 드러나는 현상들을 바라보면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더욱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드러난 '진실의 보물들'을 감당할 수 있는 책임감 있는 권리와 의무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이번 코로나19 현상으로 드러난 소중한 진실들이 단지 이슈로만 흘려 보낼 것이 아니라, 그동안 숨겨졌다가 세상에 나온 소중한 '진실의 보물들'을 함께 보고 있는 저에게도, 감당 할만한 책임감 있는 마음과 행동으로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앞으로 다가올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행사 해야 하는 권리와 의무가 때마다 수시로 우리에게 주어지니까요. 스스로가 맑게 깨어 있지 않으면, 겨우 세상으로 드러난 진실들이 또 뭍히고 말테니까요. 어려움 속에서 힘겹게 진실을 캐내고 있는 숨은 노력들이 헛되이 돌아가지 않기를 빕니다. 그러려면, 저 개인 한 사람부터 시작입니다. 사리사욕으로 구름처럼 덮힌 시선을 조금은 맑고 투명하게 씻기려는 한 마음이 소중하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윤동주가 본 맑은 하늘이 늘 그립습니다.

 

코로나가 한국에서 발견되었을 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육체의 질병과 죽음보다 더 우려했던 점이 있었습니다. 중국 우한의 코로나 대응 현상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우였음을 이제는 더 여실히 느낍니다. 저는 얼마전까지 6.25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은 젬마라는 할머니의 자서전 원고를 교정하는 중이었습니다. 함경남도 출신의 18세, 고2 여학생이 1.4 후퇴로 부산까지 피난을 내려오면서 60세를 넘기며 세상을 떠나시기까지의 이야기입니다. 할머니에게 피난민 시절의 부산은 내 그리운 정든 고향이었습니다. 동시대의 소설인 권정생 선생님의 <몽실언니>에도 나오는 우리네 누이들은 참 선하고 착했습니다. 그리고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포노사피엔스족과 함께 살아가는 지금 이때에도 저는 그 선하고 어진 마음을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이 참 감사하고 제게는 이 땅이 소중합니다. 하얀 반투명의 플라스틱 통에 담긴 흰우유를 마시면서도, 보탬이 되기보다는  지구를 오염 시키고 있는 제 생활 방식(소비적인 도시인의 삶)으로인해 늘 이 땅의 생명들에게 미안한 마음입니다.

 

코로나19가 한국에 첫발을 디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을 수차례 먹고 또 먹었습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타인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말자는 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 한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아직 코로나가 끝난 것은 아니니까요. 나와 내 가족이 소중한 만큼 이웃집의 자녀와 이웃도 그 만큼 소중하다는 처음 시선이, 제겐 이 복잡하고 어려운 세상을 이해하는 기본 공식이 됩니다. 그 기본 공식으로 저는 참 좋은 분들을 많이도 알아보고 만나게 되었습니다. 만일 내 눈이 어두워 바로 내 눈 앞에 있는 진실 또는 예수를 못 알아보는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이 제겐 가장 끔찍한 일이 될 것입니다. 그 따뜻한 시선이 아름다운 삶으로 이어짐을 봅니다.

 

집에 있은지 4일째가 되어 가지만, 사실적으로 집이 사회로부터 폐쇄가 된 건 아닙니다. 마음만 먹으면 마스크를 끼고 차를 몰고 나가서 동네 마트도 갈 수 있고, 가고자 하는 곳을 얼마든지 타지역을 다녀올 수도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제 이동의 자유를 침해하는 공권력의 힘을 가하고 있지 않으니까요. 단지 제 자신과 가족과 나라 전체의 안전을 위해서 스스로가 선택한 최선의 안전한 방법이기에 집에만 있는 것이지요.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골목과 마을은 조용하기만 합니다. 아무도 싸우거나 언성을 높이거나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단지 아이들에게 잔소리가 강물처럼 흐르다가 수시로 제 목소리가 원치 않게 조금씩 높아지는 것 외에는요.

 

코로나 확진자는 계속해서 늘어가고 있지만, 대부분이 신천지 교인들의 동선과 일치가 되고 있습니다. 또는 모르고서 같은 장소를 방문한 분들 외에는요. 신천지가 정부의 정책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들을 투명하게 개방하기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촉구하는 바입니다. 한산한 거리를 보면, 대부분의 국민들 개개인이 우리집처럼 스스로를 단도리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코로나19 예방과 안전 수칙을 잘 지키고 계신 듯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코로나는 진행 중입니다. 그리고 최선의 노력은 코로나19에 되도록 일찍 전염되지 않아서 확진자 수가 짧은 시간 동안 늘어나지 않도록 최대한 시간을 버는 일 같습니다. 그래서 국가 위기 극복을 위해서 밤낮 없이 애쓰시는 질병 관리 본부와 솔선 수범하고 계신 의료진들과 소방 당국과 정부와 각 시도별 정책자들이 최선의 대응과 대안들을 내놓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벌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저희는 집 안에서 평화롭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서로 다투지 않으며, 장소 이동과 인권의 자유를 누리는 속에서 스스로만 조심하면 된다는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사한 일입니다. 오늘도 대문 앞으로 평소처럼 택배 차량과 기사님들이 종종 다녀가십니다. 건강하시라는 인사를 잊지 않습니다. 그리고 힘겹게 세상으로 고개를 내밀며 밝혀진 진실들이 손바닥 구름의 욕심으로 가려지지 않도록, 매 순간 맑게 깨어서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일상 속에서 때때로 멈추어, 고요한 시간 속의 시간 속에서 구름 같은 탐욕을 씻긴 맑은 눈으로 문득 드러나는 맑은 하늘을 보기를 원합니다. 그 진리 안에서만 영혼이 비로소 맑은 숨을 쉴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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