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지피는, 마음의 온기

신동숙의 글밭(90)

 

코로나가 지피는, 마음의 온기

 

대문 밖 돌담 밑으로 어제 내놓은 폐지가 그대로 있다. 십 년이 넘도록 이 마을에 살아오면서 이런 적은 거의 없다. 언제나 내놓기가 바쁘게 사라지곤 하던, 마을의 어르신들에겐 인기 만점의 폐지였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외출을 자제하고 있는 도심의 분위기에선 이상할 것도 없지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었다. 언제나 낡고 녹이 슬은 자전거 뒷자리에, 노랗고 커다란 플라스틱 빈 바케스를 벗처럼 태우고서, 휘적휘적 마을 구석구석을 다니시던 키가 크고 삐쩍 마르신 할아버지는 괜찮으실까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강 건너에 살고 계시는 친정 엄마께는 주일날 교회에 가시지 않도록 단단히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잖아도 토요일날 오후 늦게 같은 목장의 목녀님으로부터 먼저 전화가 걸려왔었다고 한다. "자녀분들이 걱정하셔서 교회를 못 가게 하시죠. 기도할 테니 집에서 예배드리셔도 됩니다." 낮엔 강변 산책을 막 나서려던 참에, 마침 내가 전화를 드렸던지. 하루도 빠짐없던 산책도 망설임 없이 포기하셨다. 부지런히 다니시는 노인이 온종일 집 안에 갇혀서 얼마나 갑갑하실까 싶어서 오랜만에 말벗이라도 되어 드리려고 나서려는 참이다. 나도 그동안 괜히 바쁘다는 핑계로 친정 엄마를 교회와 어르신들 학교에만 맡겨두고는 거의 신경을 거두고 살았었다.

 

저녁 무렵이 되니 강변으로 마스크를 낀 사람들이, 평소보다는 드물지만 산책을 나온 모습들이 더러 보인다. 차로 이동을 하려다가 잠시 걸어서 친정 엄마댁에 가보려고 나서던 참에, 골목 저 멀리서 할아버지의 자전거가 보인다. 뒷좌석엔 플라스틱 바케스가 실려 있고 폐지도 반 이상 차 있다. 얼른 도로 집으로 들어가서 폐지를 더 가지고 나왔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마스크를 끼지 않고 계신다. 상대적으로 정보에 취약한 노인분들이 아닌가 싶다. 다시 들어가서 일회용 마스크 몇 개를 담은 비닐과 작은 홍삼 박스 하나를 챙겨 나왔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자전거 앞쪽 바구니에 작은 선물을 담아 드리니, 약간 놀라신 눈으로 보신다. 처음 뵙는 얼굴이시다. 평소에 우리 마을을 다니시던 할아버지는 아니시지만, 마스크를 꼭 끼셔야 한다면서 그 자리에서 하나를 건네 드리니까. 고맙다고 하시면서 바로 마스크를 착용하신다. 그리고 홍삼은 우리 가족들이 먹는 거라서, 같이 드셔도 된다고 했더니, 들릴락말락하는 목소리로 고맙다고 하신다. 그러면서도 연신 허리를 굽히셨다가 일으키시며 폐지를 차곡히 자전거 뒤 바케스에 세워 담으신다. 나도 "고맙습니다"는 인사를 드리고 친정 엄마댁으로 걸음을 향했다.

 

어르신들은 뉴스를 보셔도, 대응력이 느리시고 꼼꼼하지 못하신 점이 마음에 걸린다. 다리를 건너면서, 엄마의 당뇨약이 얼마나 남았을까? 병원 방문도 최대한 자제를 해야 하는 분위기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뭔지, 새로운 숙제들이 징검돌처럼 하나씩 주어지는 것 같다. 강물엔 오리 가족들이 얼마 남지 않은 햇살을 쬐는지, 저녁밥거리를 찾는지 모여 앉아 있다. 시장을 가실 때 버스를 타고 가시는 점도 마음에 걸린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고민해 본 적 없는 신종 숙제들. 아이들의 입학이 일주일 연기가 되었다는 안내 문자가 온다. 학원이 문제다. 모든 학교의 방과후 수업이 휴강에 들어간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학원에선 여태껏 아무런 소식이 없다. 딸아이는 친구들과 시내 나들이 약속도 취소하고 하루 종일 집 안에 있으면서도 틈틈이 친구들과 문자 대화를 나누는 모양이다.

 

학생들도 당장 내일 학원을 가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서로 나누는 눈치다. 저들 사이에서도 서로의 눈치를 보면서, 딸아이는 누군가 간다면 저도 가고, 안간다면 덩달아 안가겠다는 말을 해온다. 사설 학원은 법적 통제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자영업종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럴 땐 대신 엄마가 결정을 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당분간 모든 학원은 가지 않는 것으로. 아들은 괜히 신났다. 내일은 아침 6시에 일어나겠다며 엄마 앞에서 선언까지 하면서 잠자리에 든다.

 

현재로선 한 개인이 최대한 외출로 인한 접촉을 줄이는 것이, 사회 전체에 도움을 주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명의 확진자 수가 이틀만에 600명을 넘어서는 현상을 보면서, 확진자 수가 늘어나는 속도를 나부터가 최대한 늦추는 것이 최선일 듯하다. 그렇게 시간을 버는 동안에 질병 관리 본부와 코로나 대책 본부와 의료 기관 등이 적절한 대응과 대책을 세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건강한 사람의 몸에선 코로나 숙주가 아무런 증상으로 나타나지 않기도 한단다. 그 자신도 모르기 때문에 이동에 상대적으로 제약을 두지 않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하지만 그 숙주가 취약한 사람과 접촉시에는 증상으로 나타나게 된다고 한다. 아무리 머리를 사방으로 굴리고 마음을 모아도, 현재로선 친정 엄마께 최대한 외출을 하지 마시고, 운동과 산책은 집 안에서, 거실과 이 방 저 방을 왔다갔다 하는 것으로 대신하자는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당뇨약과 천식약은 병원 방문 없이 약국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겠노라고. 그래서 약들을 사진 찍어 두었다. 간단한 장보기는 마스크를 끼고서 가까운 슈퍼마켓을 이용하고, 외부 운동 기구나 의자에도 앉지 마시고, 문 손잡이 등의 외부 물건에는 최대한 신체 접촉을 피하시는 걸로, 그리고 집에 오시자마자 바로 손씻기를 하시는 동선을 거듭 말씀 드렸다.

 

평소 아들은, 밥을 두 그릇 이상 먹고 나자마자, 앉은 자리에서 귤 한 소쿠리를 다 까먹을 정도로 식욕이 왕성하다. 아침에는 아들에게 이제는 장보기가 쉽지 않으니까, 조금씩 나눠서 아껴 먹어야 한다고 했더니, 한라봉 두 개를 다 깠다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하나는 락앤락통에 담아서 냉장고에 넣어둔다. 스스로 음식을 조절하려는 눈치를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대견스럽기도 하고 귀엽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이렇게 일상 생활 깊숙히 소소하게 많은 변화가 생겼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가족들 간의 대화와 정이 더욱 돈독해지는 느낌이다. 한적한 거리를 지나다가 폐지를 주우시는 고마우신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나게 되면, 마스크를 꼈는지부터 확인을 해야겠다. 혹시 마스크를 끼지 않고 계신다면 일회용 마스크를 몇 개라도 챙겨 드려야겠다. 폐지를 주으시는 분들에겐 마스크값과 목장갑값이 부담이 될 때가 있다. 간혹 폐지로 번 푼돈으로 생활을 하시는지도 모르기에, 선뜻 밖에 나오시면 안된다는 말씀을 차마 못 드린 것이 내내 마음에 걸린다.

 

새롭게 올라오는 코로나 바이러스 소식으로 마음은 무겁지만, 한 편으로는 마음에 온기를 더 지피는 것 같다. 저녁답 강변길에 친정 엄마가, 저기 좀 보라고 하신다. 엄마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나직한 덩굴 나무 가지숲 아래로 누군가 고양이 사료와 물을 갖다 두었다. 스티로폼 박스를 옆으로 뉘어서 작은 사료집이 되었다. 뚜껑으로 처마를 만들어 혹시나 올지도 모를 봄비를 대비한 모습이다. 위에는 가벼운 스티로폼 사료집이 날아가지 않도록 무거운 넙적돌 세 개를 얹어 놓았다. 두 개의 넙적한 플라스틱 통엔 아직 사료가 수북하다. 투병한 플라스틱 그릇에 담긴 물이 참 맑다. 얼굴을 본 적도 없는, 내게 해준 것도 아닌, 길고양이를 위한 어느 모르는 사람의 숨은 손길에 덩달아 마음이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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