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익은 소나무

  • 권사님 대단하십니다.

    감사합니다.

    이진구 2020.02.18 12:21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01)

 

잘 익은 소나무
 

 

소나무에 대해 물었던 것은 최소한의 지식을 얻기 위해서였다. 조경 일을 하는 홍 권사님께 한 두 마디만 들어도 소나무를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하는데 도움이 되겠다 싶었던 것이다.


인우재 앞에는 소나무가 몇 그루 서 있는데, 산에서 씨가 떨어져 자란 작은 것을 캐다 심은 것이 시간이 지나며 제법 자란 오른 터였다. 나무가 잘 자란 것은 좋은데, 문제는 앞산을 가리는 것이었다. 인우재에선 마루에 앉아 앞산을 바라보는 즐거움이 쏠쏠한데, 산을 가로막고 있으니 답답했다. 나무를 다듬을 줄은 모르고 이참에 밑동을 잘라내야 하나 싶어 권사님의 의견을 물었던 것이었다. 이야기를 들은 권사님은 나무를 봐야지 대답을 하지 않겠느냐며 기꺼이 시간을 냈다. 권사님과 함께 인우재를 찾은 것은 그런 연유였다.

 

도착 후 잠시 숨 돌릴 새도 없이 권사님은 소나무를 다듬기 시작했다. 아직 소나무가 얼어 있다면서 마당에 있는 반송부터 다듬기 시작했다. 아, 나무를 아는 사람들은 나무가 얼어 있는 것도 대번 아는구나, 새로웠다. 심어만 놓고 한 번도 손을 안 대기는 반송도 마찬가지였다. 몇 년째 면도를 하지 않은 노총각 면도하듯 나무를 다듬기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는 아주 다른 나무로 바뀌었다. 얼떨결에 노총각을 면하여 예식장에 선 신랑 같았다.


 

 


트럭 뒤에 장비를 싣고 온 권사님은 본격적으로 나무를 다듬어 나가기 시작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자를 건 자르고, 다듬을 것은 다듬었다. 큰 가지와 줄기도 잘라야 할 것은 미련 없이 잘랐는데, 나 같으면 한참을 망설여야 할 것 같은 순간에도 권사님은 전혀 망설이는 기색이 없었다. 그저 마음 가는 대로 몸이 따라 움직였는데, 모든 동작들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권사님이 일하는 모습을 눈여겨보니 나무에 올라 전지를 하기 전에 먼저 하는 일이 있었다. 손에 들고 있는 톱으로 가지를 두드렸다. 그렇게 살아 있는 가지인지, 죽은 가지인지부터 확인부터 했다. 죽은 가지를 잘못 밟으면 부러져 다칠 수도 있는 것이었고, 나무를 다듬으며 죽은 가지를 남겨둘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권사님은 가지에서 나는 소리를 통해 가지의 생사를 확인하지 싶었다. 일정하게 이어지는 동작이 의미 있게 다가왔다.

 

그날 내가 한 일은 권사님을 돕는 일이었다. 위에서 자른 나무를 한쪽에 치우는 것 밖에는 없었다. 대신 권사님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가지를 자르느라 나무를 오르락내리락 했고, 종일 톱질과 가위질을 했다. 권사님에 비해서는 훨씬 가벼운 일을 했음에도 저녁때가 되었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어기적거리며 걸었다. 그런데 권사님은 아무런 티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다음날 아침 일찍 들러 내 몸이 괜찮은지 묻기까지 했다. 권사님이 몸살 안 났는지를 묻자 저는 몸에 배서 괜찮아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을 했다.

 

올해 권사님의 나이가 일흔 넷, 나이에 비해 일이 과하다 싶은데 권사님 일하는 모습 속엔 원숙함이 담겨 있었다. 하는 일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그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아는 전문성, 그리고 그것을 무리 없이 해내는 몸에 밴 근육과 움직임, 잘 익은 사람이란 저런 사람이구나 싶었다. 내게는 권사님이야말로 잘 익은 한 그루 소나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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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에서 1박 2일

신동숙의 글밭(82)

 

수도원에서 1박 2일

 

성 베네딕토 왜관 수도원 분원에서 1박 2일을 보내게 되었다. 토머스 머튼의 영성과정은 이미 신청이 마감되었다고 한다. 선배님들 얘기론 간혹 사정이 생겨 빈 자리가 나기도 한대서 혹시나 싶어 전화를 드렸더니, 빈 방이 있지만 좀 추울 텐데 그래도 괜찮으시겠냐고 물으신다. 하룻밤 추운 방에서 지내는 경험도 익숙함에 묵은 정신을 깨우기엔 좋은 환경이다 싶어 흔쾌히 승낙과 함께 감사 인사를 드렸다.

 

여러 번 강론을 들으러 오면서, 낮에 방문들이 활짝 열려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좁다란 방에 나무 책상 하나, 철재 의자 하나, 일인 침대가 양쪽 벽으로 나란히 놓인 모습을 맑고 신선하게 들여다 보곤 했다. 방문에서 정면으로 나무 책상이 먼저 보인다. 오래된 나무 창틀이 어릴 적 옛집에서 본 그대로다. 유리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복도 바닥까지 굵은 빛그림자를 그려 놓았다. 심심한 수도자의 방이 환하게 순한 웃음으로 반기는 얼굴 같다.

 

도착해서 배정 받은 열쇠를 손에 쥐고 3층 복도를 지나며, 방 번호를 확인하면서 햇살 가득한 방만 찾았다. 복도 끝까지 걸어가서 아무리 찾아봐도 번호가 맞지 않아 혹시나 싶어 반대편을 보니, 그늘진 방이 거기 있는 줄은 처음 보게 된 것이다. 순간 가슴께를 스치는 선들한 바람에 환하던 마음에 그늘이 지는 듯했다.

 

 

 

 

방안에 들어서니 맞은 편 방에 계시던 아주머니가 열린 방문으로 먼저 인사를 건네 오신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말씀이 "해가 없어서 어떻해요?", 나는 인사를 드리며 괜찮다며 말하자마자, 아주머니는 괜히 엉거주춤 "방문을 닫을께요." 하시며 닫으신다. 드디어 나 혼자 있는 방이다. 처음 거하는 소박하고 단순한 수도자의 방이 5성급 호텔 스위트룸보다 마음에 평온한 자유함을 준다. 고층 건물보다는 생명을 해치지 않으면서 평등하게 지은 기도의 방일 테니까.

 

평소에도 햇살을 좋아하다 보니, 요즘 들어 아침이면 마루에서 거실창을 등 지고 앉아 고요한 시간을 자주 갖는다. 오래 머물수록 마음은 더 가라앉으면서 점점 따뜻해져 오는 시간 너머의 시간이다. 일상 속에서 사람들과 얽힌 일들로 복잡하고 어수선 마음을 애써 털어내기보다는 그대로 가슴에 안고서 그냥 앉아 있는 것이다. 그렇게 마주하는 어둡고 시린 가슴은 겨울 같기도 하고 추운 밤이 되기도 한다. 처음엔 그 쓸쓸한 느낌이지만, 그래도 일어나지 않고 조금 더 오래 고요히 머물러 앉아 있기로 한다. 가슴 한 가운데 예수를 떠올리면서. 그러면 가슴이 점점 따뜻해져 오고 뜨거운 샘물 같은 게 차오르는 것이다.

 

그런 줄 알기에, 바깥에 햇살이 아무리 좋다지만, 내면에서 해처럼 때론 별빛처럼 떠올라 시린 가슴을 따뜻하게 물들이는 그 내면의 햇살이 더 좋은 줄 아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머무는 방이 비록 그늘진 방이지만, 마음에는 그늘이 지지 않는다. 고요히 머물러 매 순간 숨이 거칠어지지 않도록, 예수를 가슴에 품고서 그렇게 오래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는 날이니까. 더 바랄 것이 없다는 마음이 따뜻한 한 줄기 바람처럼 가슴께를 스친다. 그러면서 돌아서면 금방 배가 고프듯 마음은 춥고 어둡다며 또 엄살을 부리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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