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의 밑바닥에 무릎을 꿇은 자 만이

  • 감사합니다. 목사님 추석 오늘 잘 보내세요!

    이진구 2019.09.13 06:19
  • 좋은 명절 되었기를 빕니다.

    한희철 2019.09.14 08:22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87)

 

겸손의 밑바닥에 무릎을 꿇은 자 만이

 

샤를르 드 푸코는 예수님을 만나 회심을 하고는 오직 예수님을 위해서만 살겠다고 다짐을 한다.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따르기 위해 성지 나자렛으로 떠났던 그는 사하라의 오지 투아렉 부족들 사이에서 살다가 그들에 의해 피살되고 만다.

 

 

 

 

 


하지만 그의 삶은 하나의 씨앗이 되었다. 프랑스의 몇몇 젊은이들이 알제리의 사하라 사막에서 그의 삶을 따라 예수의 작은 형제회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무엇입니까?”


질문을 받은 샤를르 드 푸코는 이렇게 대답을 한다.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어찌 그 대답이 쉬울 수 있을까. 사막을 지난 자 만이, 겸손의 밑바닥에 무릎을 꿇은 자 만이 할 수 있는 대답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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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들을 귀, 볼 눈을 주셔서 ...무엇을 봐야할지 들어야 할지 인도하여 주심에 새벽예배를 찾고, 목사님의 글을 찾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추석 오늘 잘 보내세요

    이진구 2019.09.13 06:27

김기석의 새로봄(187)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그 말씀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주신, 외아들의 영광이었다. 그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요한복음 1:14)

 

바다 저 멀리 환하게 밝혀진 불빛이 어떤 그리움을 상기시킬 때가 있다. 그러나 그 불빛이 실은 오징어잡이 배에 밝혀진 집어등集魚燈임을 알면 생각이 달라진다. 집어등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오징어들의 운명은 죽음이다. 도시의 휘황한 불빛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잊게 만들곤 한다. 현대인들은 ‘돈’과 ‘출세’라는 집어등 앞에 몰려들어 복닥인다. 돈이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 돈이 주인 노릇하는 세상은 위험한 세상이다. 돈을 매개로 하는 관계가 얼마나 허약한지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이해관계로 맺어진 관계는 이해관계가 해소되는 순간 끝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참 빛이다. 요한은 예수님이야말로 ‘참 빛’이라고 말한다. 그 빛은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밝게 비추고 또 포근하게 감쌌다. 하지만 어둠이 장악하고 있던 세상은 그를 맞아들이지 않았다. 휘황한 전깃불을 끄지 않으면 달빛과 별빛을 즐길 수 없는 것처럼, 거짓 빛에 사로잡힌 이들은 참 빛과 만나기 어렵다. 바울 사도는 그것을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서, 그리스도의 빛을 보지 못하게 했다(고린도후서 4:4)는 말로 요약한다.

 

 

 

 

 

 

요한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신 분의 영광을 보았다고 말한다. 영광은 한 존재의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나오는 빛이다. 그것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성경은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고 내려왔을 때 그의 몸에서 광채가 났다고 말한다. 물고기 잡이 이적을 체험한 베드로가 주님 앞에 엎드려 “주님, 나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누가복음 5:8) 고백했던 것도 어떤 압도적인 기운 혹은 범접할 수 없는 빛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소란한 도시 한복판에서도 마치 숲속의 빈 터처럼 고요하여 주위 사람들조차 고요함으로 물들이는 사람이 있다. 그와 잠시만 함께 있어도 들끓어 오르던 욕정과 미움과 시새움의 파도가 잔잔해지는 사람, 자아를 온전히 여의고 자기를 전폭적으로 내주는 사람 말이다. 사람들은 그런 이를 통해 하나님을 본다. 요한은 바로 그런 경험을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는 말로 요약한 것이 아닐까? 요한은 예수님이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고 말한다. 충만함이란 넘침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속에 가득 찬 것을 밖으로 내놓게 마련이다. 불쑥 불쑥 화를 내는 사람은 자기 속에 화가 가득 차 있기 때문이고, 랄랄라 노래가 나오는 것은 속에 기쁨이 차 있기 때문이다. 사사건건 어깃장 놓는 사람은 속에 불만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예수라는 존재를 가득 채우고도 흘러넘친 것은 은혜와 진리였다.

 

 

*기도

 

 

하나님, 별이 총총한 밤하늘은 우리를 시원의 세계로 인도합니다. 맑고 푸른 하늘은 우리가 잊고 사는 청정한 세계를 그리워하게 합니다. 마음이 깨끗하고 얼굴빛이 환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 얼굴과 만나 순수하고 아름다운 삶을 꿈꾸고 싶습니다. 예수님과 만난 사람들은 그 얼굴에 깃든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 영광의 빛을 받은 이들은 더 이상 속절없이 세상의 인력에 끌려가지 않았습니다. 우리 눈을 여시어 주님의 영광을 보게 해주시고, 주님과의 깊은 일치를 갈망하는 마음을 우리 속에 심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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