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수난곡 No. 1 여정의 시작

조진호와 함께 하는 바흐의 마태 수난곡 순례(1)

 

BWV 244 Matthäus-Passion / 마태 수난곡

No. 1 여정의 시작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독일로 날아가 종교개혁의 현장을 천천히 순례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기왕이면 독일인들이 그토록 사랑하는 5월이면 좋겠습니다. 제게 있어 종교개혁의 성지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와 연관된 곳들입니다. 왜냐하면 요한 세바츠찬 바흐의 음악은 종교개혁이 진리와 진실의 힘에 이끌린 성공적인 것이었음을 보여 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며 종교개혁이 열매 맺은 가장 아름다운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불가능한 꿈속에 조금 더 머물자면, 라이프치히 시내의 집을 빌려서 잠시나마 바흐의 이웃이 되어 살고 싶습니다. 그가 산책했던 길, 이웃들과 인사를 나누며 머물렀던 곳들, 커피칸타타가 초연되었던 침머만 커피하우스 근처의 커피집에서 진한 커피 한잔을 마시고도 싶고 무엇보다 그가 30년 가까이 몸담았던 토마스 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드려보고 싶습니다.

한참 동안 구글어스를 통해 라이프치히 거리를 누비며 바흐 씨의 이웃이 되는 꿈에 머물다가 다시 자판에 손을 얹습니다. 그래도 마냥 행복합니다. 시내를 이리저리 걷는 동안 흥얼거렸던 바흐의 ‘Schafe können sicher weiden/양들은 평안히 풀을 뜯으며-BWV 208 사냥칸타타 中 ’가 여전히 귓전을 맴돌고 있습니다. ( https://youtu.be/B1nyzGR3tUE )

 

지난 해 바티칸 시스틴 예배당에서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보았습니다. 사진으로 수 없이 보았지만 하늘 층층이 자리한 살아 있는 그 모습은 실로 직접 보아야만 알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여느 관광코스처럼 빨리 흘러가버렸고 저는 넋을 빼앗긴 채 시간을 잊고 예배당에 머물러버렸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나오자 성 베드로 성당 앞에서 나를 기다리는 일행들의 엄청나게 따가운 눈총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 그림 하나를 보기 위해서라도 바티칸, 아니 이탈리아에 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기에 연신 죄송함을 표현하면서도 속으로는 미소 지으며 뿌듯해 했습니다.

 

미켈란젤로, 그리고 천지창조… 서양 음악의 영역에서 이와 비견할 수 있는 것은 바흐와 마태 수난곡일 것입니다. 깊은 신앙심, 종교성, 예술가적 고집, 천재가 장인이 되었을 때의 시너지, 작품에서의 입체감, 후세의 평가 등 그러고 보니 미켈란젤로와 바흐는 많이 닮았습니다.

 

예술작품을 직접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분들이 많습니다. 천지창조를 보기 위해서는 시간을 내고 비용을 들여 이탈리아 로마로 가야합니다. 사진기나 화면기술이 아무리 발달한들 그 실재의 느낌은 제대로 알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시스틴 예배당에서 그 그림을 보는 그 거룩한 공간적 느낌도 사진이나 화면으로는 절대 느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음악은 그런 면에서 축복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통해 지금 이 자리에서 얼마든지 들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 접근 방법이 너무나도 쉬워서 우리가 그 귀함을 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음대에 다닐 때 2주에 한 번 저만의 성사가 있었습니다. 압구정동 어느 교회건물에 있던 S레코드 음반가게에 들르는 것이었습니다. 늘 새로운 음반이 들어와 있었고 직접 들어 볼 수도 있었습니다. 특히 상업적이지 않은 마이너 레이블 음반들이 많아서 좋았습니다. 약간 어둡고 오래된 유럽호텔의 서재와 같은 분위기가 참 좋았습니다. 매 번 음반 한두 개를 작은 비닐봉지에 들고 나올 때면 얼마나 설레고 좋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느 새 인터넷이 발달하고 스마트폰이 늘 손 언저리에 머물게 되자 저의 성사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기숙사로 들어와 음반을 플레이어에 걸고 첫 소리를 기다릴 때의 그 설렘이 어느새 사라져 버린 것이었습니다.

 

CD 이전의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고교시절 첫 오페라를 보러 간 때가 생각납니다. 가족끼리 잘 알고 지내던 목사님 사모님이 딸과 함께 보라고 표를 마련해 주셨었습니다. 첫 오페라 공연을 보기 위해 이것저것 옷을 입어보던 저의 모습이 기억납니다. 20년이 지났어도 그날 입은 옷이 기억납니다. 우리는 그렇게 한 곡의 음악을 듣기 위해서 정성으로 준비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아무튼 음악을 듣기 편한 세상이 오게 되자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음악에 대한 고마움과 예의를 잃어버린 듯합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바흐의 마태 수난곡 순례를 시작하겠습니다. 음악회를 앞두고 옷을 고르는 정성으로, 평소 가고 싶었던 먼 곳으로 여행을 가는 떨림으로,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비견되는 서양음악사 최고의 명작과 조우하는 설렘으로 함께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주목 받고 있는 종편 뉴스의 앵커가 마감멘트에서 자주 쓰는 말인데, 이런 식상한 표현이 이토록 무게감 있고 멋있게 느껴질 줄은 몰랐습니다. 상식과 기본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이 뒤틀린 시대가 주는 작은 축복인가 봅니다. 저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조진호/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를 졸업하고 독일에서 음악공부와 선교활동을 하였다. 바흐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솔리스트로 활동하였고 이후 국립합창단 단원을 역임하였다. 감신대 신학대학원 공부를 마치고 의정부 낮은자리 믿음교회 담임으로 목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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