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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영의 '구약성경 속 여성 돋보기'

금식의 날은 축제의 날이 되어, 에스더(2)

by 한종호 2017. 1. 20.

구약성경 속 여성돋보기(20)

 

 금식의 날은 축제의 날이 되어, 에스더(2)

 

하나님의 부재는 현존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했던가. 때로는 보응의 원리와 도덕적 확신마저도 깨뜨리시며 철저히 자유로우신 하나님. 세상의 모든 일들, 그것이 좋든 나쁘든 유일한 원인자 아니신가.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시고,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시는 분(이사야 45:7; 욥기 5:18),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시며, 가난하게도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높이기도 하시는 분이다(사무엘상 2:6-7). 그 하나님이 페르시아 제국의 통치아래 억압받는 소수민족 유대인의 남은 삶을 어떻게 이끄실 것인가.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기 위해 교수대를 만든 그날 밤, 아하수에로 왕은 잠이 오지 않아 궁중실록을 읽게 했다. 이때 왕은 자신을 향했던 암살 음모와 그 일을 고발한 모르드개의 기록을 듣게 된다(6:1-2). 왕이 측근 신하들로부터 모르드개를 위한 어떤 보상도 없었다는 보고를 받았을 즈음, 때마침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기 위한 허락을 받으려고 궁 바깥뜰에 와있었다(3-5절). 왕은 하만에게 특별 대우할 사람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묻자 하만은 그 수혜자가 자기 자신일 것이라는 착각에 빠진다(6절). 그러나 운명을 가르는 반전의 상황이 일어났다.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초월적인 힘은 그렇게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결정되는 것일까.

 

착각에 취한 하만은 의견을 내놓았다. 왕이 높이고자 하는 사람에게 왕복과 왕관을 씌우고 말에 태워 거리를 누비며 왕의 존귀를 입은 사람은 이런 처우를 받게 됨을 알리라는 것이다(8-9절). 왕은 즉시 하만에게 명령을 내린다. 하만이 모르드개에게 왕의 옷과 관을 씌우고 말에 태워 거리로 나가 모르드개가 존귀한 자임을 외치라는 것이다(10-11절). 하만에게는 악몽 같은 시간이었으리라. 그는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수 없는 긴박한 상황에 놓였다.

 

하만은 왕과 함께 예정되었던 에스더의 잔치에도 참여해야 했다(7:1). 왕은 술 마시며, 왕후 에스더에게 이전처럼 소원을 묻는다(2절). 에스더는 가장 적합한 때를 기다린 만큼 기회를 지혜롭게 적극 활용했다. 그녀는 정중했다.

 

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다면… 내 생명을 내게 주시고…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3절).

 

에스더는 진실을 말할 때를 놓치지 않았다. 탄원에 가까운 청원이었지만 처음부터 하만의 이름을 거명하지 않았다. 먼저 왕의 이름으로 공포한 칙령을 인용하여 “죽임과 도륙함과 진멸함”(4절; 3:13)을 당하게 된 자신과 민족의 현실을 호소했다.

 

나와 내 민족이 팔려서 죽임과 도륙함과 진멸함을 당하게 되었나이다. 만일 우리가 노비로 팔렸다면 잠잠하였으리이다…(4절).

 

 

 

에스더는 차라리 노예로 팔렸다면 침묵했겠지만, 왕에게 큰 손실이 될 것처럼 정치적인 협상 테이블에 앉은 사람인양 노련했다. 그리고서 에스더는 상황의 심각성을 알릴 가장 적절한 때를 기다린다. 그런 일을 꾸민 자가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밝히라는 왕에게 비로소 에스더는 대답했다. “대적과 원수는 악한 하만입니다.”(6절) 왕은 노하여 잔치 자리를 떠났고, 하만은 왕후의 자비를 구해야하는 상황이었다. 이때였다. 왕의 내시들 중 한 사람이 왕의 암살음모를 고발한 모르드개를 매달기 위해 하만이 준비한 교수대가 있음을 보고한다. 보고를 들은 왕은 즉시 명령을 내렸고, 하만은 자기가 만든 장대에 매달려 죽게 되었다(7-10절). 자신이 판 웅덩이에 자신이 빠지고 말았다.

 

 

왕은 하만의 재산을 몰수하여 왕후에게 주고, 왕은 하만에게 주었던 인장 반지를 모르드개에게 맡겼다(8:1-2). 그러나 하만에 의해 이미 작성된 유대 민족 학살 칙령은 해결 과제로 남았다. 에스더는 왕의 발 앞에 엎드려 하만의 악한 음모가 실행되지 않도록 탄원한다(3절). 그녀는 왕에게 “나의 겨레가 화를 당하고, 나의 친족이 망하는 것을 어찌 눈뜨고 볼 수 있겠습니까”(6절)라며 용감하게 말했다. 에스더 왕후의 말을 듣고 왕은 행정 권력을 모르드개에게 이양하여 새로운 법령을 위한 조서를 작성하게 했다(8절). 이것은 곧바로 왕의 서기관들에 의해 기록되어 인도에서 이디오피아에 이르는 127지방에 흩어진 유다 사람들과 대신들, 총독들, 귀족들에게 신속하게 보내졌다(9-10절). 유대 민족의 죽음을 알리는 칙령은 생명을 구하는 조서로 바뀌었다.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었고, 죽음의 날은 생명의 날이 되는 순간이었다. 인간의 권력구조는 언제든 변경될 수 있고, 확실해 보였던 어떤 힘도 영구적일 수 없다.

 

이 사건은 유대 민족에게 합법적인 원수 갚는 날을 준비하는 칙령이 되었다(13절). 왕명을 시행하는 12월 13일, 이날은 본래 하만에 의해 유대인들이 죽게 되었던 날이었지만, 모든 상황은 역전되었다. 고대 이스라엘 지혜자의 말처럼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었다(잠언 16:33). 유대 민족이 페르시아 제국의 영향력 아래서 벗어날 수는 없었지만,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신앙적인 용기, 지혜, 올곧음은 민족의 안전과 운명을 바꾸는 도구였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돌봄이 사람의 협력과 만나는 지점이었다. 온당치 못한 힘의 사용은 꺾였고, 사익추구가 아니라 민족의 위기를 위해 지혜롭게 사용된 힘은 선한 일들을 창조해냈다.

 

이렇게 학살 위기를 넘긴 유대 민족은 12월 14일을 공휴일로 제정하고 구원을 경험한 축제의 날로 삼았다(9:17-18). 공포의 13일은 뒤바뀐 운명 속에서 안전하게 지나갔다. 하만의 악한 음모는 도리어 유대인들의 연대의식과 공동체성을 강화시켰다. 하만이 유대인을 진멸하려고 “푸르”(제비, 또는 주사위; 개역개정, “부르”)를 뽑던 날, 에스더 왕후는 왕 앞에 용감하게 나섰고, 하만의 악한 음모를 폭로하고 뒤엎어 그를 나무에 매달은 사건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모든 가족과 모든 세대는 해마다 이 날을 지키기로 했다(20-27절). 왕후 에스더와 모르드개는 전권을 가지고 “푸림”(“푸르”의 복수형)에 관련된 글을 써서 아하수에로가 다스리는 제국의 127지방에 거주하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보냈다. 그들의 언어는 평화와 진실한 언어였다. 이 사건은 법적으로 인증되고 문서화되었다(28-31절). 이렇게 왕후 에스더의 요구에 따른 유대 민족이 금식과 탄식의 시간은(4:16) 삶을 경축하고, 선물을 주고받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날이 되었다.

 

“푸림”축제를 하나님이 제정하신 것은 아니지만, 모세 또는 기름부음 받은 거룩한 대리자를 통해 수립된 것도 아니지만, 에스더의 명령에 따라 법규로 정해진 이 기록은 절망과 애통의 날이 축제가 된 일을 기억하게 하는 증언이 되었다(9:20, 26. 29, 32). 에스더는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삶을 사는 수동적인 소녀에서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급격한 변화와 성장을 경험했다. 가부장적인 남성중심의 문화에서 그녀는 남성이 지배하는 체제를 노련하게 이용하여 목적을 성취했다. 에스더서는 에스더의 지혜롭고 능숙한 행위들을 언급할지언정 하나님의 뜻을 직접적으로 진술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진전시키는 일을 수행한 셈이었다. 하여 에스더는 억압 받는 소수를 위한 디아스포라의 삶을 사는 유대인의 영웅으로 기꺼이 채택된 것이다. 물론 현대의 시각에서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거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폭력의 사용은 비난받을 일이지만, 에스더가 살았던 시대적 환경에서 직면해야 했던 일이었다.

 

모든 지리적 경계를 넘어 신앙의 후속 세대들은 에스더의 이야기를 통해 이전 세대가 경험한 구원을 기억할 것이다. 이스라엘 조상들의 출애굽처럼 가시적인 하나님의 기적과 혁혁함이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백성이 고통과 곤란함 중에 있을 때 거기 함께 계셨다는 것을. 하여 하나님은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게, 사람들을 통해 조용히 완벽하게 일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끝내 악한 대적자의 식탁은 엎어졌다는 것을. 그리고 사람을 통해 일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고통의 현장이 축제의 자리로 바뀌는 날이 되도록 누군가는 지혜와 신앙적인 용기를 삶의 덕목으로 삼고 실천할 것이다. 아니 우리 모두 그러하기를.

 

김순영/백석대 신학대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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