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와 제사가 가지는 종교적 의미

이길용의 종교로 읽는 한국 사회(3)

 

효와 제사가 가지는 종교적 의미

 

 

유교만큼 영생을 생활 세계에서 구체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종교도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 종교는 영생의 문제를 영적으로 풀어내려 한다. 그래서 영생을 이야기하면서도 개별적 실체로서 개인이 생물학적으로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식의 과감한 발언은 가급적 삼간다. 물론 개중에 삐딱선을 타고 그것, 즉 생물학적으로 죽지 않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유교가 다르다. 유교가 택한 방법은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하기 때문이다. 가문의 핏줄이 계속 이어지도록 하는 것, 바로 그것이 유교의 구원이요 영생이기 때문이다. 유교 사회는 또 이를 위해 이러저러한 안전장치를 잔뜩 만들어 놓았다. 족보가, 항렬이, 그리고 씨족 집단이 그렇다. 이렇게 사회적 에토스 구석구석을 유교적 영생을 위한 기재로 잔뜩 꾸며놓은 것이 바로 조선이라는 ‘종교 국가’였다. 때론 그것은 ‘주자가례’란 이름으로 정부 주도하에 온 국민들의 일상사를 조정하기에 이른다. 이처럼 임금 역시 제사 지내는 것이 중요한 공무 중 하나였던 조선이라는 나라를 어찌 종교 국가라 지칭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유교 사회에서는 ‘효’와 ‘충’이 가장 큰 덕목이 된다. 개인이 속한 가정을 중심으로 하면 효이고, 그것을 국가로 확대하면 충이된다. 그런데 유교의 효란 단순히 부모를 잘 섬기고 봉양한다는 의미만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 더하여 제사로 선조를 잘 모시는 것, 그리고 자신의 몸을 잘 관리하며 마침내 자손을 잘 이어가는 것이 유교의 효이다. 이런 점에서 효란 유교의 구원에 이르는 길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유교적 영생을 완성하는 수행의 길이 바로 효이기 때문이다.

 

앞서 이미 말했듯이 유교의 영생은 가문의 영속적 승계라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문헌적 전거가 바로 족보이다. 이렇게 가족주의에 기초해서 영생을 이야기하기에, 효가 이뤄지고, 효과 진행되는 한 그들은 ‘영원한 가족 생활’(가족적 영생)을 하고 있는 셈이다. 즉 매년 정해진 시기에 가족들이 모여 선조에게 제사하고, 부모를 섬기고, 자식을 돌보고 있다면 그들의 종교적 구원은 실현되고 있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유교에서 말하는 효란 생명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사회적 행위라 해석될 수 있다.

 

그러니 유교의 제사가 지니는 종교적 의미는 중차대하다. 이는 그들 집안의 구원을 입증하고 선포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사가 끊긴 집안은 종교적 구원이 사라진 것이다. 그러니 다들 목숨을 걸고 제사를 지내려 한다. 제사가 멈춰서면 그것은 곧 종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상주 노릇을 할 사내아이가 무엇보다 필요해진다. 아들을 낳고 대를 이어야 그들 가문의 구원이 완성된다고 믿기 때문이다(이런 신앙 아래 씨받이, 씨내리라는 파행적인 사회적 관습도 용인될 수 있었을 것이다). 제사는 이 모든 것을 확증해주는 행사가 된다. 그러니 유교 사회에서 제사는 없어서는 안 될 것이 되고 만다.

 

 (출처: Republic of Korea (http://www.flickr.com/photos/koreanet)

 

 

이 강력한 제사 행위는 다른 종교가 들어온다고 해도 큰 타격을 받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유입된 종교들이 이 제사를 넘어서지 못하고 ‘요상한’ 의식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개신교의 추도식이다. 그나마 근자들어 용어가 (추도) ‘예배’에서 ‘의식’으로 명칭은 바뀌었지만, 한국 교회의 추도식은 다른 곳에서는 보기 드문 의식이다. 물론 서구 교회에서도 추도 의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우리처럼 망자의 기일에 음식과 영정을 차려놓고 하는 경우는 없다. 따라서 한국 개신교의 추도식은 객관적인 관찰자의 눈으로 보자면, 그냥 제사라고 해야 옳다.

 

사실 이 추도식 때문에 적지 않은 목회자들이 괴롭고 힘든 경험을 한다. 교회에 열심이지도 않았던 사람이었는데 자손들이 직분이 있어서 굳이 목회자를 모시고 추도식을 하자고 하는 상황이 드물지 않게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지, 설교는 어찌해야 할지 매우 난감하고 곤란하게 된다. 그런데도 그것을 마다하기 어려운 것이 원채 강하게 기일을 엄수하고자 하는 한국 사회의 유교적 정서 때문이다.

 

로마 가톨릭의 경우 이 제사 때문에 수백 년간의 논쟁과 다툼을 진행해야만 했다. 1640년부터 시작된 중국의 전례 논쟁은 제사를 두고 벌어진 중국 선교를 선점했던 예수회와 후발 주자였던 도미니꼬회의 알력에 기초한다. 거기에 청 황실과 바티칸의 교황청까지 편승하여 백여 년에 이르는 기나긴 논쟁이 이어지게 된다. 당시 중국에 터를 잡고 있던 예수회는 문화적응주의적 입장에서 제사를 유교 사회에서 행해지는 일종의 존경과 공경의 의식으로, 그리고 효의 표현으로 본 반면, 도미니꼬회에서는 이를 이방신에게 행하는 우상숭배의 하나로 해석하였다.

 

당시 프로테스탄트의 등장으로 신학적으로 보수화되고 있었던 교황청은 도미니꼬회의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교황청의 결정에 청 황실이 즉각 반박하면서 전례 논쟁이 촉발되었고, 결국 이 갈등 때문에 중국에서 그리스도교의 영향력은 심각하게 쇠락하였다. 이 전례 논쟁이 마침표를 찍게 된 것은 1939년에 이르러서였다. 당시 교황이었던 비오 12세(재위: 1939~1958)가 같은 해 12월 8일 <조상에 대한 효성을 화복의 대권을 잡으신 지존하신 하나님께 직접 용서와 복을 비는 교회 소정의 방법>이라 규정하며 공식적으로 제사를 로마 가톨릭의 전례 중 하나로 받아들이면서 이 기나긴 논쟁이 끝이 난 것이다.

 

그런데 한국 개신교의 경우는 여전히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추도식에 대한 제대로 된 신학적 논의나 작업도 행하지 않고 애매한 상태에서 모든 제사를 예배 형식으로 대체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명절이나 기일에도 어김없이 찬송가는 울리고, 설교는 행해지지만, 그것이 가지는 신학적 의미는 어떤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해석과 길잡이는 공식화되고 있지 않다. 몇 년 전 한국 문화신학회에서 이 문제를 공론화하며 신학화하려는 시도(한국문화신학회는 2008년 5월 1일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개신교와 조상숭배’라는 주제로 춘계학술대회를 개최했고, 여기서 발표된 글들은 후에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가 있었지만, 여전히 현장 교회에서 제사와 추도식의 문제는 스리슬쩍 물에 술탄 듯, 술에 물탄 듯 넘어가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는 비단 지금의 문제만은 아니다. 백여 년 전 한반도 선교 초기에도 적지 않은 선교사들이 이 제사의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는 보고가 한두 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기대치보다 훨씬 빠르고 광범위하게 신자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고 감동받은 선교사들도 이들이 특정일에 행하는 (그들 눈에는 우상숭배처럼 보이는) 제사행위만큼은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제사는 유교적 마인드를 지닌 이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종교적 의례가 된다.

 

이런 점에서 바로 지금이 제사에 대한 한국 개신교회의 제대로 된 신학적 입장을 정리해야 할 적기가 아닐까 싶다.

 

 

이길용/종교학,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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