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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종호의 '너른마당'

공멸의 사회를 만들려 하는가

by 한종호 2015. 6. 9.

한종호의 너른마당(24)

 

공멸의 사회를 만들려 하는가

 

 

한국사회가 난마처럼 얽히고 있다. 메르스는 그야말로 블랙홀이다. 수습책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한국사회를 이끌고 있는 정치권이나 지식인 사회, 특히 종교계조차도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공동체에서 더 이상 희망을 발견할 수 없다는 확신이 퍼져 나갈 때, 그것이야말로 위기 가운데 위기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위기 수습에 딱 부러지는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총체적인 역량 파산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일어난 사태들은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지럽다. 이 나라가 얼마나 비리와 부정으로 가득 찬 지를 드러낸 성완종 사태도 그렇고, 갈등이 첨예한 정치적 현안과 관련해서 사회적 조정력이 얼마나 부실한지는 세월호 참사, 끝없이 공권력으로 밀어붙이는 제주 강정마을, 밀양 송전탑, 원전 부지 선정 등으로 드러났다. 이제 또다시 한국사회를 소용돌이치게 할 메르스 문제도 우리 사회의 수습 능력을 고도로 시험하고 있다. 메르스와 거의 동시에 평택에 출현한 탄저균 사태는 또 어떤가. 이런 상황에 이 나라의 수장은 ‘나몰랑’이라는 유행어를 남기고 있으니 답답함을 넘어 참람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여기에 더해 진보와 보수의 대결 상태는 중간지대가 허용되지 않는 극단의 갈등으로 치닫고 있다. 그 어디에도 서로 간에 진지한 대화와 해결책 모색을 위한 공론의 의지나 노력이 없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의 정신적 낙후성에 다름 아니다.

 

 

 

우리 사회의 정신적 낙후성

 

 

그렇다면 도대체 이러한 문제 해결의 낙후성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자고 나면 무수한 문제들이 한국사회를 기다리고 있고, 터지는 소리는 나지만 제대로 수습되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한 채 그냥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잊혀지고 또다시 반복된다. 그렇게 갈등과 대립이 격화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은 실로 사회 구성원들을 매우 피로하게 만들며, 공동체 전체의 합의를 이끌어 내는 과정을 비합리적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사태가 이렇게 되면 합리적 논의의 공간은 소멸하고, 힘이 있는 쪽에서 밀어붙이면 된다는 식의 생각이 사회적 상식이 되어 간다. 그러면서 문제의 본질은 어디론가 실종되고 방법론상의 소모적인 논쟁과 대결이 주가 된다. 정작 해결해야 할 사태의 핵심은 이렇게 해서 가려지고, 방법의 잘못된 선택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더욱 늘어나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부담이 점점 더 무거워지는 것이다.

 

그런 현상이 심화되어 가면, 사람들의 신경은 더더욱 날카로워진다. 그것은 문제 해결의 성숙도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게다가 사태의 본질을 꿰뚫어보지 못하는 상황으로 몰리다 보면 문제의 본래 시작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는지조차 파악할 수 없는 ‘미로’(迷路)에 빠져든다. 그리고 모두가 그 미로에서 헤매면서 누군가를 질타하고 비난하며 책임 전가하는 상황이 증폭된다. 모두가 모두에게 이리떼와 같은 대립과 충돌이 점차 일상화해 가는 것이다. 권위 있는 심판관도 없으며, 누구나 따를 수 있는 원로도 보이지 않게 된다. 그런 사회에 환멸을 안 느낄 사람은 없다.

 

극도의 이기주의와 문제 해결의 극단주의

 

이러한 현상의 일차적인 책임은 누가 뭐래도 무능하기 짝이 없는 정권과 정치권이 지지 않을 수 없다.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헌신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고, 그로써 사회적 존경을 획득하는 가운데 발휘되는 설득력은 힘을 갖는다. 그러나 정쟁에 휩싸이고 소모적인 권력투쟁과 말싸움, 말꼬리 잡기에 몰두하고 있는 정치권은 이미 문제 해결의 권위를 갖지 못하고 있다. 정치인들을 뽑은 것은 사회의 각종 난제를 지혜롭게 풀어주기를 기대해서인데 이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니 이해 당사자가 직접 나서서 격돌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리고 정치권은 자기들 기득권에 매달려 싸우는 일에 몰두한다. 그들만의 투쟁과 그들만의 잔치에 모든 것을 거는 것이다. ‘맛을 잃은 소금’이 된다.

 

그 격돌의 와중에서 공동체의 공동 이해는 손상 받고 치열한 갈등의 과정에서 형성된 적대감은 문제 해결을 더욱 가로막는다. 일단 적대감이 형성되면, 편가름이 시작되고 그로써 합리적 논의와 대화의 통로는 막힌다. 결국 상호 적대감이 날로 깊어지면서 한국사회는 내부적 합의가 기반을 잃어버리고 사회 통합의 능력이 마치 공중 분해되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이미 내부적으로 심각한 해체의 과정을 격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극도의 이기주의와 문제 해결의 극단주의, 그리고 폭력적 해결 과정으로 점철된 사회로 옮아가는 상황이 되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 제기한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서 재차 강조하건대,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는 가장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우리 사회는 문제가 일어나면 그것을 서로 차분히 짚어 가면서 대화하고 숙의하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작금의 메르스 사태에 직면해서 이를 해결하는 과정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종편에 나와 상식 이하의 이야기를 하는 인사들을 보면 혀를 찰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당장에는 흥분하고 삿대질하면서 “와~” 하고 덤벼들지만, 사태의 배후와 전후좌우 그리고 이후의 전망과 해결책, 그로 인한 사회적 영향에 대해서는 진지한 논의가 없는 것이다. 의견이 다른 상대의 주장에도 깊이 귀를 기울이고, 반박할 것에 대해선 명확한 논리와 근거를 가지고 반박하며, 너무도 갈등이 첨예할 때에는 휴지기도 가지면서, 끝내 문제 해결에 접근해 가려는 사회적 양식이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일단 해결된 듯이 보이거나 시간이 지나서 관심이 시들해지면 그냥 망각해 버린다. 그 당시 어떤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으며, 왜 그러한 갈등이 생겼고 사후 처리 과정에서 재점검해 봐야 할 일은 없는지에 대한 집단적 논의와 공동체적 대화의 통로나 체제가 없다.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새로 논의를 시작해야 하고 지루하고 신경 돋우는 과정을 무수히 반복하면서 열을 올리니 이런 사회에서 어떻게 합리적인 설득력과 상대의 자리에 서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사고 능력이 자라날 수 있겠는가.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들을 보면 반복적으로 겪고 있는 일들이 무수하다. 작은 안전사고에서부터 집단적 갈등에 이르기까지 그 유형이 유사한 경우가 적지 않으며 원인 또한 동일한 것이 하나 둘이 아니다. 그러니 이 사회 구성원들이 얼마나 지치고 힘들겠는가. 잊을 만하면 또 그 문제에 직면하고, 해결되었나 싶으면 어느새 다시 고개를 디밀고 나오는 문제들 앞에서 한국사회는 피로하다. 절망한다. 그리고 마침내 분노한다. 그러나 분노만이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꼬이게 만들고 과외의 부담을 우리 사회에 지우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도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무엇보다 먼저 차분히 대화하고 토론하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말하는 능력보다 ‘듣는 힘’이다. 우리 사회는 좀체 남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결국 진정한 대화의 맥은 끊기고 서로 자기 할 말만 줄기차게 하다가 돌아서니 상대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대화가 범람하는 사회에서 해결책의 싹은 발견되지 못한다. 일방적 주장만 난무할 뿐이다. 그러니 힘이 있는 자의 주장이 대세를 쥐는 것은 당연하다. 권력과 재력이 결합할 때 힘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침묵당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침묵은 오래가지 않으면 분노의 소리로 표출되어 나오며, 그때 권력자들은 당황하고 그제서야 수습하려 하지만, 때가 늦은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다. 왜 ‘삼성병원’이 평택보다 더 큰 메르스 바이러스의 진원지가 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는 좀더 차분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해결된 듯해도 자괴감만 깊어지는 결과를 낳는 일과, 당장에는 문제 해결이 안 된 듯해도 서로에 대한 신뢰가 생기고 마음이 열리는 결과를 맛보는 일이 있다. 이 후자가 그 사회의 문제 해결 능력을 고도로 성숙시키는 결정적인 힘이다. 이를 알아보지 못하고 격돌의 구조에서만 맴돌면, 한국사회는 희생자들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현실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이제 이러한 상황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한종호/<꽃자리>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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