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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봉의 '성서 묵상, 영성의 길'

몸을 입혀라

by 한종호 2015. 6. 3.

 

 

 

김영봉의 성서 묵상, 영성의 길(6)

 

몸을 입혀라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행함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 날 먹을 것조차 없는데,  여러분 가운데서 누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하게 하고, 배부르게 먹으십시오" 하면서, 말만 하고 몸에 필요한 것들을 주지 않는다고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믿음에 행함이 따르지 않으면, 그 자체만으로는 죽은 것입니다(야고보서 2:14-17)

 

1.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이라는 말은 진실이지만, 믿음이 살아 있음에도 행함으로 열매가 맺혀지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씨앗 하나가 땅에 심겨져서 싹을 내고 줄기로 자라 가지를 뻗고 잎을 내고 꽃을 피운 다음 열매를 맺듯이, 믿음의 씨앗도 그런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마음과 영혼에서 시작된 믿음이 내면을 변화시키고 손과 발까지 움직이려면 어느 정도 성숙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믿음의 씨앗이 심겨지고 충분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행함의 열매가 없는 경우입니다. '마음의 고백' '입술의 시인'으로 충분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믿음 때문에 감수해야 손해 혹은 불편을 회피하려는 본성의 힘이 강하기 때문에 행함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살아있으나 행위의 열매를 맺을 정도로 성장하지 못한 까닭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무엇이 옳은지도 알고 그것을 행할 능력도 있는데 실천을 회피하는 것을 문제 삼고 있습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에 대해 마음 아파하면서 믿음의 성장을 위해 노력한다면, 그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하지만 열매가 없는 것에 대해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면, 믿음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그런 믿음은 죽은 것이다"라고 경고합니다. 실제로 죽었다는 뜻이 아니라, 죽은 것이나 다름 없으니, 정신을 차리라는 뜻입니다.

 

16절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먹을 것조차 없는데, 여러분 가운데서 누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하게 하고, 배부르게 하십시오"하면서, 말만  하고 몸에 필요한 것들을 주지 않는다고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말씀을 기도에 적용하면 이렇게 고칠 있습니다.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먹을 것조차 없는데, 여러분 가운데서 누가 그들을 위해 "주님, 그들에게 평안을 주시고, 몸을 따뜻하게 하고 배부르게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면서 몸에 필요한 것들을 주지 않는다고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2.

 

맥락에서 제게 떠오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교회 모임에서 풍성한 음식을 차려놓고 감사 기도를 드릴 , " 귀한 음식을 대하는 저희로 하여금 헐벗고 굶주린 이웃을 기억하게 하옵소서"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귀한 기도입니다. 하지만 기도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불편한 양심을 위로하는 것으로 그친다면 하나님께 가증스러운 것이 것입니다.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에 대한 진실한 마음이 있다면, 음식 차림에 절제가 있어야 하고, 실제로 자신의 지갑을 열어 가난한 사람을 돕는 행동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기도는 위선입니다.

 

물론, 기도는 그것 자체로 충분히 가치가 있습니다. 그것 자체로서 능력이 있습니다. 때로, 기도 외에는 일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마음을 다해 간절히 기도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하지만 마음 담긴 기도를 드리고 나면 기도한 일에 대해 내가 해야 일이 생각나게 되고 또한 일을 하려는 열심이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기도 중에 성령께서 구체적으로 일을 알게 주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데이빗 팀즈(David Timms)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위선으로 오인될만한 요소가 항상 있게 마련이다"라고 지적한 있습니다. 우리 시대 최고의 문장가로 꼽히는 고종석 작가가 "글쓰기의 위선" 대해 고백하는 말도 읽었습니다. '옳은 ' 대해 글을 쓰다 보니, 자신의 글과 사이에 괴리가 생겨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를 따라 살아가려는 그리스도인에게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있게 마련입니다. 

 

진실한 믿음의 사람들은 항상 현재 상태보다 높은 경지로 나아가기를 힘씁니다. 지금 실천하고 있지는 못해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잊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바라는 이상과 그가 살고 있는 현실 사이에 괴리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만일 자신의 현재 상태에 만족하고 있다면 그의 믿음은 죽어 있다 있습니다. 괴리를 겸허하게 인정하고 벌어진 간격을 좁히기 위해 힘쓰는 것이 영성 생활의 핵심입니다.

 

누구이든지 악의를 가지고 헐뜯고자 마음만 먹으면 진지한 믿음의 사람을 '위선자' 매도할 있습니다.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테레사 수녀에게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것은 진리를 추구하는 삶의 이면을 알지 못하기에 생겨난 악의적인 모함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위선은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를 부정하거나 은폐하고 자신이 마치 그렇게 사는 것처럼 가장하는 것입니다.

 

3.

 

영성 생활은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높은 이상을 향하여 나가기를 힘쓰며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는 과정입니다. 높은 부름을 알기 위해 말씀을 궁구하고, 깨닫는 대로 순종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높은 부름을 따르기 위해 기도하고, 기도한 대로 실천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렇게 보면, 기도는 "하나님, 이렇게 주십시오"라는 요청인 동시에 "하나님, 제가 이렇게 하겠습니다"라는 고백과 결단이기도 합니다.

 

중보기도의 대가로 알려진 리즈 하월즈(Rees Howells)에게 누군가가 물었습니다. "기도 중에 가장 중요한 시간은 언제입니까?" 그러자 하월즈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기도가 끝난 15 지난 다음입니다." 마음을 다해 기도드린 다음에 어떻게 행동하는지가 제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말은 예배에도 적용될 있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예배는 축도 후에 시작된다" 말합니다.

 

우리의 영성에 육을 입혀야 합니다. 사실, 점에서 '영성'이라는 단어가 오해의 여지를 제공합니다. 영성이 '영혼의 문제' 혹은 '마음의 문제' 국한한다고 오해합니다. 이것은 성경 안에 일관되이 흐르고 있는 히브리적인 인간 이해에 반하는 생각입니다. 인간은 영과 혼과 육이 분리할 없이 융합된 존재입니다. 영성과 육성이 별개일 없습니다. 육은 영이 필요하고, 영은 육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의 영성에 손과 발이 필요합니다. 영에서 일어난 변화가 손과 발을 통해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영성은 영지주의의 오류에 빠져 버릴 것입니다.

 

 (묵상)

 

눈을 감고 당신의 영성에 연결되어 있는 손과 발을 더듬어 만져 보십시오. 당신의 마음에서 일어난 변화들이 손과 발에 얼마나 신속하게 그리고 충실하게 전달되고 있습니까? 당신의 삶에 '의도하지 않은 위선' 어떤 상태에 있습니까? 혹시 '의도한 위선' 없습니까? 부르심의 높은 이상과 현실의 사이의 괴리가 좁아질 있도록 더욱 기도하고 실천하십시오.  

 

 

김영봉/와싱톤 한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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