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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두런두런'

세월의 강

by 한종호 2015. 4. 6.

한희철의 두런두런(7)

 

세월의 강

 

 

겨울비 내리는 강가는 유난히 추웠다. 그만큼의 추위라면 눈이 맞았을 텐데도 내리는 건 비였다. 내리는 찬비야 우산으로 가렸지만 강물 거슬러 불어대는 칼날 바람은 사정없이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가장자리 얼어가는 강물이 톱날 같은 물살을 일으키며 거꾸로 밀리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리며 강 건너 묶여 있는 배를 기다렸지만 사공은 나타나지 않았다.

 

지난해 가을, 10여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치화 씨의 지난 시간을 알기 위해 교회의 젊은 집사님과 마을 이장과 함께 길을 나섰다. 이쪽 부론은 강원도, 겨울비 속 풍경화처럼 자리를 잡은 강 건너편은 충청북도, 치화 씨의 먼 친척이 살고 있다는 곳이다.

 

기구한 사연 속 열세 살 땐가 아버지의 죽음을 이유로 가족들이 흩어지게 되었을 때, 치화 씨는 먼 친척의 소개로 이천에 있는 한 농가로 떠나게 되었다. 과수원 일, 돼지 치는 일, 나무 하는 일, 시키는 대로 일을 하다 보니 어느덧 뼈가 굵어 지난 세월 셈하니 10여년이었다.

 

 

 

 

강 건너에서 불어온 바람결엔지 오랫동안 소식이 끊겼던 아들 소식을 듣게 된 어머니는 그 길로 달려가 앞뒤 사정 가릴 것 없이 아들 손 눈물로 붙잡곤 단강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아무도 그 어머니를 막을 수가 없었다. 그게 지난 가을이었다.

 

몇 번은 일이 고되어서, 몇 번은 매 설움에, 어쩌면 조금씩 눈을 뜨는 자의식에 몇 번을 도망쳤지만 치화 씨가 알고 있는 곳은 오직 한 곳, 오늘 찾아가는 먼 친척이 살고 있는 그 곳뿐이었는데, 빠르면 그 날 저녁 아니면 다음 날 아침 어김없이 찾아온 주인에 의해 싫은 걸음 다시 이천으로 향하곤 했던 세월이 어느새 10년이었던 것이다. 낚시 바늘의 미늘처럼 꼬부라진, 어쩌면 지금 치화 씨의 마음속에 거친 마음이 자라 있는 것은 그런 세월이 키운 상처였는지도 모른다.

 

어렵게 만난 아들을 또 다시 잃게 되는 건 아닌가 싶어 극구 말리는 어머니를 설득하여 길을 나선 것은 지난 10년 세월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어떤 조건으로 일을 하러 떠났는지, 그 약속은 지켜졌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전기조차 끊긴, 오랫동안 비어있던 허름한 집에서 늙으신 어머니와 살아가는 치화 씨의 삶은 더없이 막연하다. 지난 일이라고 지금의 막막한 생활을 두고서 그냥 묻어둘 수만은 없는 일 아니겠는가.

 

바람에 물결에 뒤뚱거리는 쪽배를 타고 강을 건넜다. 지난 기억을 더듬는 치화 씨를 따라 친척집을 찾아갔다. 지난 일들을 기억하는 몇 몇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나눴다.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다. 치화 씨 이야기를 들으며 미루어 짐작했던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중요한 것은 치화 씨를 데리고 있던 이천에 사는 이를 만나는 일이었다. 다시 날을 잡아 이천을 찾기로 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작실마을의 새로운 이장이 된 병철 씨는 오늘의 동행을 자기 일처럼 고마워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건 병철 씨의 일도 아니다. 다만 우리의 일일 뿐이다.

 

그새 얼어붙은 길은 넘어질 듯 미끄러웠고 하늘은 여전히 흐렸지만, 떠날 때 굳어있던 치화 씨 표정은 눈에 띄게 밝아 있었다. 부론으로 돌아와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음식점에 들렀다. 난롯가에 둘러앉아 장날 인심만큼 푸짐한 자장면 곱빼기로 추위와 허기를 달랬다.

 

어쩌면 나는 오늘 바람 찬 겨울 강이 아니라 얼어 있던 세월의 강을 건넌 것인지도 모른다. 무심하게 흘러간 아픔의 시간을 걸은 것이다. 그 길을 걸어 만나게 될 사람, 그는 누구일지, 길은 열릴지….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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