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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의 ‘하늘, 땅, 사람 이야기

아름다운 것을 함께 본다는 것

by 한종호 2021. 10. 22.

“내가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을 네게 들려주고 싶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행동해야 할 때이다. 에너지가 차올랐다. 그러니 쟁기를 손에 잡아라. 우리는 강해짐으로 강해질 수 있고, 믿음으로 믿음을 배울 수 있고, 사랑함으로 사랑을 배울 수 있다.”(빈센트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글 중에서, Carol Berry, <Vincent van Gogh>, His Spiritual Vision in Life and Art, Orbis, p.68)


주님의 은총과 평화를 빕니다.

10월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계절은 벌써 상강(霜降)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어느 분이 교회에 작은 국화 화분 12개를 보내주셔서 현관 앞에 두었습니다. 국화가 외로울까봐 가끔 밖으로 나가 눈인사를 나누곤 합니다. 슬그머니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를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여”.

 

지나치게 화려하여 눈길을 끌지도 않고, 수수한 듯하면서도 기품이 있는 국화꽃이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크고 좋은 국화 화분을 장만하여 교우들 맞을 생각입니다. 화단에 있는 양달개비는 때를 잊었는지 새로운 꽃을 피웠다 지기를 반복하고 있고, 꽃댕강나무도 여전히 꽃을 피워 향기를 내뿜고 있습니다. 지난 6월경부터 예쁘게 피기 시작한 일일초는 조금 기운이 약하여지긴 했지만 며칠마다 새로운 꽃을 피워내며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꽃 시절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기에 안간힘을 다하여 꽃을 피워올리는 나무들을 응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난 월요일, 교우 아버님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대전에 다녀왔습니다. 창밖으로 산을 내다보며 가는 길이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단풍의 시간은 다가오지 않았는지 산은 아직 형형색색으로 물들지 않았더군요. 추수를 이미 끝낸 논도 보였고, 가지런하게 서 있는 벼포기가 바람에 일렁이는 논도 보였습니다. 길가에 선 은사시나뭇잎이 오가는 차량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빈소는 대개 슬픔의 공간이지만 늘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고인이 아름다운 인생을 사셨고, 가족들의 우애가 깊을수록 빈소는 따뜻한 공감과 사랑이 깃드는 장소가 되기도 합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왠지 가을산을 느껴보고 싶은 마음에 인근에 있는 계족산을 찾아 한 시간 정도 황톳길을 걸었습니다. 검은 양복에 구두를 신고 있었지만 마음은 사뭇 유쾌했습니다. 흙을 느껴보고 싶어 맨발로 황톳길을 조금 걸었습니다. 발은 아리도록 시렸지만 흙이 주는 탄력을 느낄 수 있어 좋았습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월요일이면 가까운 산에 오르곤 했습니다. 월요일에는 아예 다른 일정을 잡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산을 향하는 발걸음이 뜸해졌습니다. 주중에는 시간을 토막을 내 사용해야 하기에, 옹근 시간을 들여서 해야 할 일은 늘 월요일로 미루곤 했던 것입니다. 일단 그런 일이 습관이 되자 더러 일정이 비어 있는 날에도 배낭을 메고 밖으로 나갈 생각을 품지 않게 되었습니다. 교우들 가운데 산에 가서 찍은 사진과 영상을 SNS에 올리는 분들이 계십니다. 얼마나 부러운지 모릅니다. 얼마 전 설악산 공룡능선을 걸으며 찍은 교우의 영상을 보며 ‘와우, 와우’ 감탄사만 터뜨렸습니다. 절경 앞에 서면 사람은 말을 잊게 마련입니다. 아름다움 앞에 설 때 사람은 오염된 말을 버리고 침묵 속에 젖어듭니다. 정화의 시간입니다. 땀 흘림이 없다면 그런 체험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 영상을 보다가 문득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가 방문했던 지리학자의 별이 떠올라 쓰디쓴 웃음을 지었습니다. 그 별은 어린왕자가 지구에 오기 바로 직전에 들렀던 곳입니다. 어린왕자가 그 별에 도착하자 책상 위에 커다란 책을 펼쳐놓고 있던 늙은 신사가 그를 맞아줍니다. 그는 어린왕자에게 “어디서 오는 거냐?”고 묻고는 자기를 지리학자라고 소개합니다. 지리학자는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묻자, 바다와 강과 도시와 산 그리고 사막이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어린왕자가 그 별에도 강이나 산 그리고 사막이 있냐고 묻자 지리학자는 ‘모른다’고 대답합니다. 자기는 탐험가가 아니기 때문에 그걸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탐험가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기억이 진실하다는 판단이 들 때면 기록하는 것이 자기 사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현실과 학자적 거리를 두고 사는 판단 강박증 환자입니다. 


학자다운 호기심을 품고 그는 어린왕자의 별에 대해 묻습니다. 어린왕자가 자기 별은 아주 작다면서 그 별에는 불이 있는 화산이 둘이 있고 불이 꺼진 화산이 하나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갑자기 생각난 것처럼 꽃 한 송이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들은 지리학자는 자기는 꽃에 대해서는 기록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아니, 왜 그 예쁜 것을 기록하지 않냐고 묻자 그는 꽃이 ‘덧없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합니다. 자기는 영원한 것, 변치 않는 것만 기록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린왕자가 덧없다는 게 뭐냐고 묻자 지리학자는 “그것은 ‘머지않아 사라져버릴  위험이 있다'는 뜻”(앙투안 마리 로제 드생텍쥐페리, <어린왕자>, 김화영 옮김, 문학동네, p.80)이라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들은 어린왕자는 갑자기 우울해집니다. 세상에 맞서서 자기를 보호할 수단이라곤 가시 네 개밖에 없는 꽃을 홀로 두고 왔다는 자책감이 밀려왔기 때문입니다. 생텍쥐페리는 슬그머니 덧없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새별오름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만 소중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삶의 견고한 토대가 되어줍니다. 하지만 작고 여려 언제라도 소멸할 수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둘 때 우리는 비로소 숨겨진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날이 차갑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 산이나 강가에 있는 나무에 서린 상고대를 보신 적이 있으시지요? 그 앞에 서면 아무리 목석같은 사람이라 해도 신비감에 사로잡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상고대를 사시사철 볼 수 있다면 그 감성이 살아날 리 없습니다. 쉬 스러지는 것이기에 더욱 애틋한 눈길을 받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노래로 알려진 아가(雅歌)에 나오는 사랑의 노래가 떠오릅니다.


“나는 임의 것, 임이 그리워하는 사람은 나. 임이여, 가요, 우리 함께 들로 나가요. 나무 숲 속에서 함께 밤을 보내요. 이른 아침에 포도원으로 함께 가요. 포도 움이 돋았는지, 꽃이 피었는지, 석류꽃이 피었는지, 함께 보러 가요. 거기에서 나의 사랑을 임에게 드리겠어요.”(아 7:10-13)


작고 여린 것, 그래서 아름다운 것을 함께 본다는 것, 바로 그것이 사랑의 본질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것을 바라본다는 것은 자기에게 골몰하던 삶에서 벗어나 세상을 향해 자기를 개방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것에 눈길을 주는 순간 나와 타자를 가르는 담장들이 무너지고 잠시나마 하나 됨의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쓸모와 유용성이 지배하는 세상은 늘 우리의 몸과 마음을 긴장시키지만, 아름다움에 사로잡힐 때 우리는 긴장에서 벗어나 홀가분함을 느낍니다.


벌써 몇 해가 흘렀군요. 이맘때면 우리는 가을 기차 여행을 하거나, 한적한 곳으로 소풍을 떠나곤 했습니다. 설렘으로 가득 찼던 교우들의 표정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함께’라는 사실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습니다. 마을 고샅길을 천천히 걸으며 꽃들에 눈길을 주기도 했고, 산길을 걸으며 식물들의 이름을 익히기도 했습니다. 소나무 사이로 비쳐드는 햇살이 밝았고, 새들의 노랫소리가 간간이 끼어드는 예배는 또 얼마나 아름다웠습니까? 어느 동시에서 본 구절입니다만 우리는 ‘나무의 웃음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그리운 시절입니다. 이제 다시 그럴 때가 곧 오겠지요? 올해는 모두 함께 그런 시간을 누릴 수는 없지만, 일부러라도 시간을 마련하여 한적한 곳을 찾아가시면 좋겠습니다. 멋진 숲길을 걸을 때 저를 초대해주셔도 좋겠습니다.


교회의 영상장비와 조명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위드 코로나 시대가 열린다 해도 예배 영상을 송출하는 일은 중단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또 늘 질 좋은 영상을 접하는 이들은 영상의 품질이 떨어지면 매우 힘들어한다고들 하시더군요. 저는 새로운 물건을 구입하거나 교체하는 일에 매우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곤 하지만 이번만큼은 모른 체하며 젊은 세대의 말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강대상을 향해 달린 여러 대의 조명 장비가 조금은 낯설 수도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해지리라 생각합니다. 영상에 얼마나 큰 변화가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방송실에서 봉사하는 이들의 수고를 기억하며 사랑으로 격려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분들의 헌신 덕분에 우리는 편안하게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11월 첫째 주는 우리 교회가 해마다 추수감사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마침 그 주간은 위드 코로나로 전환하며 맞이하는 첫 번째 주일입니다. 얼마나 많은 교우들이 예배에 동참하실지는 모르겠지만, 교우들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찬송을 바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힘겨운 일상이 지속되고 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자꾸만 헤아려 보십시오. 나무가 가을볕을 머금어 아름다운 색을 만들듯, 우리도 주님의 빛과 사랑을 받아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의 평강이 모든 가정에 머무시기를 빕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21년 10월 21일

담임목사 김기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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