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공식까지 무시된 4사5입 개헌

광복 70주년 역사 키워드 70(14)

 

수학공식까지 무시된 4사5입 개헌

 

 

이승만의 권력욕이 서서히 발동하기 시작했다. 휴전 1년여 후인 1954년 9월 7일 자유당은 선거공약을 실천한다는 명분으로 이기붕 의원 외 135명의 서명을 받아 개헌안을 국회에 제안했다. 제2차 개헌파동이 시작된 것이다.

 

개헌안의 내용은,

 

① 국민투표제의 채택 - 주권의 제약 또는 영토의 변경을 가져올 국가안위에 관한 중대 사항에 대한 국민투표제를 채택하는 것.

② 국무총리제 및 국무위원 연대책임제를 폐지하고 민의원에 국무위원에 대한 개별적 불신 임권을 부여하는 것.

③ 참의원의원은 2부제로 개선하는 것.

④ 참의원에 대법관 기타 고급 공무원의 임명에 대한 인준권을 부여하는 것.

⑤ 경제체제의 중점을 국유ㆍ국영의 원칙으로부터 사유ㆍ사영원칙으로 옮기는 것.

⑥ 현대통령에 한하여 중임제한을 폐지하는 것.

⑦ 기타 8개 항의 개정사항을 포함한 광범위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개헌안 중에는 민주주의적인 내용이 담겨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빚좋은 개살구격이고 핵심은 대통령의 중임을 1차에 한해 인정한 것을, 이 헌법 개정 당시의 대통령에 한해 중임제한의 규정을 적용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이승만에게 종신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길을 트자는 속셈이었다.

 

불과 2년 전 부산에게 정치파동을 일으키면서 발췌개헌으로 제2대 대통령에 당선된 이승만은 종신 대통령을 꿈꾸면서 1954년 5월에 실시된 제3대 민의원선거에서 대규모 부정선거를 저질러 자유당이 원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자유당의 개헌안은 공고기간을 거쳐 11월 18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었다. 국회상정에 앞서 이승만 정권은 ‘뉴델리 밀담설’을 조작, 극우 반공의 본산인 민주국민당(민국당)을 용공으로 몰아가는 등 개헌안 통과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이승만 정권이 개헌 반대운동을 제압하고 개헌 비판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조작한 뉴델리 사건은, 같은 해 10월 27일 전 민국당 선전부장 함상훈이, 신익희 민국당 위원장이 1953년 6월 2일 당시 국회의장 자격으로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대관식에 참석한 후 귀국길에 인도의 뉴델리 공항에서 6ㆍ25 때 납북된 조소앙과 밀담하고, 비공산ㆍ비자본주의 제3세력을 규합, 남북협상을 추진하여 한국의 중립화를 도모하기를 획책한 사실이 있다는 것이다.

 

이승만 정권은 이 같은 어마어마한 사실을 날조하여 정적을 용공으로 몰아가면서 종신집권의 개헌을 감행하려고 했다.

 

개헌안은 11월 27일 국회에서 표결에 부친 결과 재적 203명 중 가 135표, 부 60표, 기권 7표로 개헌정족수인 136표에 1표가 미달, 부결이 선포되었다. 이날 사회를 맡은 최순주 국회부의장은 개헌안이 1표 차로 부결되었다고 선포했다.

 

개헌안이 부결된 다음날인 11월 28일은 일요일인데도 자유당은 긴급의원총회를 소집하고, 정부는 공보처장 갈홍기의 이름으로 203명의 3분의 2는 135이라도 무방하다는 특별성명을 내는 등 개헌안 부결 번복을 위해 총력전에 나섰다.

 

27일 저녁 자유당 수뇌부는 서울대학 수학 교수 최윤식 등의 아이디어를 동원해서 203의 3분의 2가 135라는 희한한 방식을 착안하고, 이 내용을 이승만에게 보고하여 개헌안이 통과된 것으로 처리하기로 결정하였다.

 

일설에는 개헌안이 부결된 후 자유당 간부들이 이 대통령에게 보고하러 경무대(현 청와대)로 갔더니, 이 대통령이 135표이면 4사5입하여 통과된 것이라고, 이미 어용교수의 진언을 빌어 통과를 기정사실화 시키고 있었다고 한다.

 

자유당 의총은 성명을 통해 “어제 최 부의장이 본회의에서 개헌안 투표가 부결임을 선포한 것은 의사과장의 잘못된 산출방법의 보고에 의하여 착오로 선포된 것”이라고 변명하고 “재적의원 203명의 3분의 2는 정확하게 135.333…인데 자연인을 정수가 아닌 소수점 이하까지 나눌 수 없으므로 4사5입의 수학적 원리에 의해 가장 근사치의 정수인 135명임이 의심할 바 없으므로 개헌안은 가결된 것”이라고 발표했다.

 

다음날 29일 최 부의장은 개회 벽두에 전차회의에서 개헌안이 부결이라고 선포한 것은 계산착오이므로 취소하고, 가결되었다고 번복하자, 야당의원들이 단상으로 뛰어올라가 최 부의장을 끌어내리는 등 난장판이 벌어졌지만 무술경위들을 동원한 폭력 앞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일반적인 수학공식까지 무시한 채 강행한 개헌으로 이승만의 종신 대통령의 길이 열리게 되었다.

 

 


<사사오입 발췌 개헌에 항의하는 이철승, 곽상훈 등 야당의원들, Wikimedia Commons>

 

우리 헌정사에서 여러 차례 권력 연장을 위한 개헌이 있었지만, 수학의 일반 원칙까지 무시한 채 자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헌법학자 유진오는 “각국의 전례는 이런 경우 찬성표수는 적어도 반대한 3분의 1을 기준으로 하여 그 배수, 즉 68의 배수인 136이라고 주장하며, 부결을 선포한만큼 사실의 착오가 아닌 이상, 개헌안은 부결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고, 대법원장 김병로는 “4사5입이란 본래 남은 4를 버리는 것이지 모자라는 데 쓰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혀 개헌안 번복의 부당성을 지적하였다.

 

이승만 정권의 4사5입 개헌은 절차상으로도 정족수에 미달한 위헌적인 개헌이었을 뿐만 아니라, 특정인의 종신집권을 보장한 개헌이었다는 점에서 우리 헌정사상 치욕적인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자유당 소장파 의원들의 무더기 탈당이 뒤따랐고, 민국당은 무소속 의원들을 규합, 호헌동지휘를 구성함으로써 민주당 창당의 계기가 되었다.

 

국가의 기본법인 헌법이 이승만의 권력연장을 위한 장식물이 되고, 이 같은 악습은 박정희에게 그대로 전승되었다.

김삼웅/전 독립기념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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