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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얘기마을

파스

by 한종호 2020. 12. 14.

한희철의 얘기마을(173)


파스




남편이 제약회사에 다니는 아내의 친구가 파스를 한 뭉치 보내 왔다. 어떻게 쓸까 생각하다가 혼자 사는 할머니들에게 나눠 드리기로 했다.


어둠이 다 내린 저녁 작실로 올라갔다. 늦게야 끝나는 일. 할머니들을 만나려면 그 시간이 맞다.


다리 건너 첫 번째 집인 김천복 할머니네 들렀을 때, 형광등 불빛을 등지고 두 분 할머니가 마루 끝에 걸터앉아 있었다. 엄마 기다리는 아이들처럼 두 분은 그렇게 마루 끝에 앉아 있었다. 한 지붕 아래에서 한 지아비와 함께 살았던 두 분이 이젠 두 분만 남아 서로를 위로하며 함께 산다. 


두 분 할머니는 일을 마치고 막 돌아온 길이었다. 손이며 얼굴에 묻은 흙이 그대로였다. 얼른 씻고 저녁 상 차려야 함에도, 그러고 있으면 누가 상이나 차려올 것처럼 그냥 앉아 있었다.


윤연섭 할머니도 허석분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쥐코밥상 마주하고 마루 끝에 걸터앉아 한술 저녁을 막 뜨는 참이었다. 파스를 전해드리며 파스를 전하는 내력과 파스 붙이는 방법을 설명해 드린다.


고단한 일상. 파스의 효능도 효능이겠지만 그보단 파스 속에 담긴 멀리서 온 따스한 정성으로 홀로 사는 곤함과 허전함과 통증을 찬찬히 이기셨으면, 어둔 길 내려오며 빌고 또 빈다.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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