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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얘기마을

은하수와 이밥

by 한종호 2020. 8. 17.

한희철의 얘기마을(57)


은하수와 이밥


서너 뼘 하늘이 높아졌습니다. 밤엔 별들도 덩달아 높게 뜨고, 이슬 받아 세수한 것인지 높아진 별들이 맑기만 합니다. 초저녁 잠시뿐 초승달 일찍 기우는 요즘, 하늘엔 온통 별들의 아우성입니다. 은빛 물결 이루며 강물 흐르듯 밤하늘 한 복판으로 은하수가 흐릅니다. 제각각 떨어져 있는 별들이 다른 별에게로 갈 땐 그 길을 걸어가지 싶습니다.



옛 어른들은 은하수를 보며 그랬답니다. 가만히 누워 은하수가 입에 닿아야 이밥(쌀밥) 먹을 수 있는 거라고. 교우들을 통해 들은 옛 어른들의 이야기를 은하수를 보며 다시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시간의 흐름, 즉 햅쌀을 먹을 ‘때’에 대한 가르침일 수도 있고, 은하수 흐드러질 만큼 맑은 날씨, 그래야 한낮엔 뜨거운 볕에 벼가 익어갈 수 있다는 농사 이치에 대한 가르침일수도 있었을 겁니다.




또 하나, 속 깊은 뜻이 담겨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얀 이밥(그것은 배고픈 시절엔 얼마나 먹고 싶은, 얼마나 그리운 축복이었을까요)은 하늘의 은총으로 온다는 그 단순한 깨우침을 위해서 아니었을까요? 


모든 것이 이 땅 사람들 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사람이 할 일을 다 하곤 조용히 하늘 은총 기다려야 함을 옛 어른들은 은하수를 빗대 이야기했던 게 아닐까요?


요즘처럼 하늘 바라보는 일 드문 시절, 옛 어른들의 은하수 이야기는 새삼 절실히 다가옵니다. 


-<얘기마을>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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