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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들키고 싶은 작은 돌처럼

by 한종호 2020. 6. 2.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501)


들키고 싶은 작은 돌처럼


방치되고 있던 예배당 앞 공터를 화단으로 만들며 가운데에 작은 길 하나를 만들었다. 꽃을 눈으로만 보지 말고 가까이 다가오시라는, 초청의 의미를 담은 짧은 길이었다. 


화단을 만들던 날, 한 교우가 마무리 작업으로 담장 공사를 하고 있는 안식관에서 벽돌 두 장을 얻어왔다. 새로 만드는 길의 바닥을 벽돌로 깔면 어떻겠냐는 뜻이었다. 교회가 화단을 꾸미며 벽돌을 얻어다 쓰는 것도 어색하거니와 공터를 화단으로 만드는 자리, 벽돌로 길을 만드는 것은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터를 정리하며 나온 잔돌들이 한쪽에 쌓여 있었다. 공터이다 보니 잔돌들이 많았다. 잠깐 호미질만 해도 제법 많은 돌들이 나왔다. 생각하다가 잔돌들을 그냥 쓰기로 했다. 작은 돌들을 양쪽으로 펼치니 그럴듯한 길이 되었다. 


길이 된 잔돌들은 지들끼리 재잘거리는 것 같다. 키득키득 거리며 웃는 것도 같다. 꽃들은 꽃들대로 심겨진 곳에서 옹기종기 피어나고, 돌들은 돌들대로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지 싶다.


잔돌을 보며 문득 떠오른 시 한 구절이 있다. ‘들키고 싶은 작은 돌처럼’이라는 구절이다. 오유원의 ‘깡통’이라는 제목의 연작시 마지막 부분, 반복해서 깡통을 두드리는 깡, 깡, 깡, 깡 소리가 잦아든다 싶은 곳에 이제쯤이면 들킬 일도 없다는 듯이 자리를 잡고 있는, 그럴수록 눈에 띈 구절이었다.  


깊지 않은 흙속에 자리 잡고 있다가 마침내 들킨 잔돌들이 꽃으로 가는 길이 되어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는 작은 화단, 화단으로 변해가는 공터에도 부디 그런 소소한 이야기들이 모여 꽃처럼 옹기종기 피어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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