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숙의 글밭/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텅 빈 카페

by 한종호 2020. 3. 12.

신동숙의 글밭(107)

 

텅 빈 카페

 

몸이 늘어지도록 늦잠을 자던 중학생 딸아이가 방에서 나오며 대뜸, "엄마, 우리 카페 가자."고 합니다. 그러면서 뭔가 얘기를 해옵니다. "엄마~ 코로나에 걸리면 치사율이 몇 프로인지 알아?" (계속 반말을 합니다. 이쯤 되면 존댓말을 해야 되지 않느냐고 엄마로써 한마디 해줘야 하는데, 얘기가 재미나서 그냥 끝까지 들어주었답니다.) 그러면서 딸아이는 자문자답을 합니다. 3%라며, 수능 시험 1등급 받을 확률이라면서, 친구들하고 카톡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우리는 걱정 안해도 된다."고 했다며, 환하게 웃으면서 카페를 가자고 합니다.

 

아직은 외출이 조심스럽긴 하지만, 그러자고 했습니다. 마당에 하얀 목련꽃이 어제보다 조금 더 피어서 오후의 햇살을 듬뿍 받아 딸아이의 미소처럼 환합니다. 습관적으로 겨울 모직 코트를 입으려다가 마땅치 않아서, 딸아이에게 옷 부탁을 했습니다. 가슴팍에 반토막 난 흰색 부메랑 마크가 크게 그려진 검정색 얇은 외투를 입으라며 줍니다. 지퍼를 목 아래 끝까지 올렸더니, 그렇게 입으면 촌스럽다며 살짝 내려서 안쪽 티셔츠가 살짝 보이도록 엄마의 옷매무새를 잡아줍니다. 그런 딸아이의 손길이 싫지가 않습니다. 그 귀여운 손으로 가끔 설겆이도 해주니까요.

 

 

 

걸어서 갈만한 동네 카페 중에서, 집 근처 큰 도로변에 있는 작은 카페로 정했습니다. 골목길에도 봄햇살이 따스합니다. 입은 옷이 얇은데도 피부에 닿는 선선한 봄바람이 싫지가 않습니다. 골목길 구석 자리 하수구 철창 바로 옆 틈새에서 노란 민들레꽃 한송이가 피었습니다. 용케 피운 꽃이 반갑고 고마워서 민들레꽃과 2020년 올해의 첫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테이블이 5개가 있는 작은 카페입니다. 외국인 여성이 혼자 앉아 있을 뿐 카페는 텅 비어 있습니다. 오랜만에 카푸치노와 자몽에이드를 주문했습니다. 통유리창으로 내다보이는 도로가 한산합니다. 달리는 차량들과 버스 정류장에 잠시 멈추었다 출발하는 버스가 보일 뿐, 인도에는 평소보다 확연히 줄어든 행인이 드문드문 보일 뿐입니다.

 

대신 우리가 걸어온 골목길 반대편 강변에는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자전거 길로 봄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자전거가 신났습니다. 산책길을 따라서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활기차 보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특이하게도 대구시에서만 집중적으로 늘고 있는 와중에, 우리가 사는 마을의 사람들은 그렇게 강변으로 자연에 더 가까이 모여있습니다.

 

다들 얼굴에는 마스크를 끼고 있지만, 목련꽃처럼 봄햇살을 듬뿍 쬐면서 강을 따라서 신나게 걷고 있습니다. 강변 둑에는 봄쑥을 캐느라 드문드문 사람들이 보입니다. 해를 등지고서 쪼그리고 앉아 있는 아주머니들의 색색깔 외투가 활짝 피운 꽃 같습니다. 덕분에 카페에는 우리둘 뿐입니다. 두세 분이 잠시 들러 주문한 음료를 테이크아웃으로 가지고 나가긴 해도, 계속해서 카페 주인과 우리 둘 뿐, 텅 빈 카페입니다. 그 넉넉함을 우리만의 행복으로 채우기엔 미안한 마음입니다. 가방 속에 넣어 간 오렌지 하나를 꺼내서 주문 받는 곳에다, 웃으며 말없이 놓아주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