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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만절필동(萬折必東)

by 한종호 2019. 1. 4.

하루 한 생각(4)

 

만절필동(萬折必東)


새로 부임한 정릉교회의 홈페이지가 페이스 북과 연동이 된다는 말에 페이스 북을 시작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반응을 모르고 지나가는 것은 결례일 수 있겠다 싶었다.


안 하던 것을 시작하고 나니 당황스러운 일들이 있다. 그 중 당황스러운 것은 설교 영상이 공개되는 것이다. 아무리 그동안의 관례라지만 설교를 하고나면 금방 페이스 북에 올라간다. 그것도 1부, 2부, 오후예배가 즉시.


지금까지 목회를 하며 설교를 교회 홈페이지에 올리자는 의견들을 고집 부려 피해왔다. 그러다가 큰 양보를 하여 받아들인 것이 음성만 올리는 것이었다. 영상이든 음성이든 설교를 올리는 것은 말씀의 확장이라기보다는 말씀을 가볍게 하는 일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언제 어디서나 마음만 먹으면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결국 말씀을 가볍게 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그런데 이제는 설교를 하자마자 페이스 북에 올라간다. 아찔한 생각이 들어 1,2부 중 하나만 올리라고 했지만, 어서 다른 변화를 찾아보려고 한다.

 

 

이왕 페이스 북을 시작한다면 하루에 글 하나쯤을 올리자고 마음을 정했는데, 글을 올리고 나면 사람들의 반응이 이어진다. ‘좋아요’를 누르는 것부터, 댓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반응을 보게 된다. 그것이 어떤 형태든 누군가의 반응을 그냥 지나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싶어 짧은 댓글을 단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참 묘하여 사람들의 반응에 마음이 간다. 내가 올린 내용에 얼마나 반응을 보이는지, 누가 어떤 댓글을 다는지가 궁금해진다. 많은 반응을 보이면 기분이 좋아지고, 신뢰하는 이가 댓글을 달면 흐뭇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나도 모르게 다른 이들의 반응을 통해 내 삶의 무게나 내 존재의 영향력을 가늠하려고 한다. 이런! 마음과 감정이 타인 의존적이 되어가다니.

 

강은 연연히 흐른다. 누가 박수를 친다고 더 빨리 가거나, 바라보는 이 없다고 주눅이 들지 않는다. 골짝과 골짝 사이를 제 걸음으로 간다. 모두가 잠든 어둠 속에서도 달빛이나 별빛을 품고는 여전히 자기 걸음이다.


만절필동(萬折必東)이라는 말이 있다. 강은 만 번을 꺾여도 바다에 이른다는 뜻이다. 내 걸음으로 가야 한다. 주변의 반응에 민감해지는 것은 결국 길을 잃는 것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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