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45)


걷기를 마치며


갑자기 배가 고팠다. 그동안은 일부러라도 허기와 친해지고, 거친 밥과 친해지고, 불편한 잠자리에 친해졌던 시간들, 그런데 일정을 모두 마치고 나자 잊고 있었던 것이 떠오르듯 허기가 밀려왔다.


인근에 있는 식당을 검색해서 찾아갔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것을 먹으라 했다고, 당신이 사는 것이라며 아내는 장모님의 뜻을 전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것’이라는 말 한 마디면 족했다. 무얼 먹어도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 그런 마음으로 식사를 했다.


식당으로 가는 길, 뭔가 이상했다. 규민이가 차를 운전하는데 자동차의 속도가 낯설게 다가왔다. 두 발로 걷던 것과는 너무도 달랐다. 너무나 쉽게 너무나 많은 것들이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제대로 보기도 전에 너무 사라지고 있었다.


더없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이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포 사격 훈련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땅의 아픔과 상처는 그런 것이었다.


삶에도 속도가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너무도 빨리 달리고 있었다. 달리지 않으면 뒤쳐진다는 생각에 허겁지겁 살고 있는 것이었다. 빨리 달리는 것이 성실이지 미덕이라고, 남을 앞서는 것이 성공이라고, 세상이 가르쳐 준 것을 별 생각 없이 받아들인 채 죽어라 앞으로만 달리며 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많은 것들을 그냥 지나쳐 간다. 길가에 핀 키 작은 꽃이나, 수풀 사이의 메뚜기, 땅 위를 기어가는 개미나 그들을 노리며 깔때기 모양의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는 개미귀신, 마른 가지에 앉아 날개를 접은 잠자리에 눈길을 주지 못한다. 한 아이의 해맑은 눈동자나 지친 노인의 눈물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밤하늘의 별자리와 별자리에 얽힌 이야기는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 별똥별이 날아간 곳과 무지개가 뿌리를 내린 자리에 꿈을 새기던 설렘도 더는 남아 있지를 않다.


삶의 속도를 다시 생각해 보라고, 어쩌면 열하루 동안의 걷기가 준 선물 중에는 삶의 속도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시선도 있었다.


길을 걷는 동안 고마운 사람들이 참 많았다.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열하루 동안의 로드맵을 짜고 내내 마음으로 걱정하며 동행을 한 함광복 장로님께 먼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누구보다 분단의 땅(DMZ)을 가장 많이 밟은 사람, 우리 가까이 있는 ‘거룩한 땅’(聖地)이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는 것을 누구보다 마음 아파하는 분이시다.


먼 길을 기꺼이 달려와 격려와 위로, 힘과 용기를 전해주신 분들께도 감사를 드린다. 화인(火印)처럼 마음에 남아 있을 만남, 인생이라는 길에서 만난 멋진 동행으로 기억될 것이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를 함께 걸었던 분들께야 뭐라 고마운 마음을 전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열하루 동안의 숙박비에 해당하는, 생각지 않았던 봉투를 건네준 태건상사 김만석 사장님의 따뜻한 마음도 마음에 간직한다.


길을 걸으며 만났던 모든 이들께도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소소한 만남이라도 모두가 소중한 만남이었고, 밤하늘을 밝히는 별들처럼 열하루 길을 의미 있게 해 준 고마운 이웃들이었다.


마음으로 동행하며 응원을 보내준 벗들에게도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그들이 있어 나는 혼자 걸으면서도 혼자가 아닐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걷는 동안 찍었던 사진을 보며 일정을 되돌아보던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중간 중간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이 전부였는데, 사진 중에는 마지막 날 장파리에서 찍은 사진도 있었다.


가족들을 만났을 때 규민이에게 사진을 한 장 찍어달라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워낙 사진 찍는 걸 싫어해서 사진을 찍는다고 하면 도망을 치곤했었다. 그런 내가 나를 찍는 것은 더욱 어색한 일, 생각해 보니 걷는 동안 나를 찍은 사진이 따로 없었다. 그래도 한 장쯤은 남겨두면 어떨까 싶어 부탁을 한 것이었다.


일부러 뒤로 돌아섰고, 규민이는 내 뒷모습을 찍었다. 얼굴 대신 신발 두 개가 배낭에 매달려 있는 모습이 찍혔다. 그런데 그 사진에는 사진을 찍을 때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한 모습이 담겨 있었다. 사진 속 하늘의 한 부분이 범상치 않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찍을 때는 몰랐던, 나중에야 빛의 형상을 보며 깜짝 놀랐던 사진. 

그동안 수고했다며 손을 흔드시는, 내게는 영락없는 주님의 모습이었다.


뒤로 돌아선 내 머리 바로 위에, 잔뜩 흐린 하늘 한복판에 빛의 공간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검은 하늘 사이로 남아 있는 빛의 형상을 확대해서 보니 떠오르고 있는 아침 해와 그 해와 접해서 생긴 공간이었다.


그 빛은 선명한 이미지로 다가왔다. 빛이 만들어내고 있는 형상은 누군가가 서서 손을 흔드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영락없는 주님의 모습이었다. 빛나는 옷을 입으신 그 분이 나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수고했다고, 기도의 시간을 가져 고마웠다고, 나는 늘 너를 따라다니며 너를 지켜보았다고, 빙긋 웃으며 손을 흔드시는 빛의 형상, 내게는 부인할 수가 없는 주님의 형상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눈물이 핑 돌았다. 열하루 동안 내내 나와 동행하셨던 분은 주님이었다. 내가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할 때에도 내 등 뒤에서 묵묵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분, 내가 보낸 모든 시간 속으로 그분의 사랑이 짙게 스며들었다.


열하루 동안 홀로 걸었던 걸음 걸음을 기도로 받아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해진 이 땅을 주님이 손수 기워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좋은 길을 안내해주어 고마웠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을 때, 함광복 장로님은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내셨다.


<아! 해내셨습니다. 오늘은 아무 생각도 마시고 푹 주무십시오. 하나님이 한 순간도 안 놓치시고 목사님 돌보셨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이 무탈(無頉)의 장정이 가능했을까요.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동안 감동의 장정을 하신 목사님 감사합니다.>


장로님의 마음은 내 마음과 다를 것이 없었다. 감사했다. 정말이다, 모든 것이 감사했다. 철조망과 지뢰가 허리를 두르고 있는 아픔의 땅 DMZ를 따라 홀로 걸었던 열하루 동안의 걸음걸음을 부디 기도로 받아주시기를 빈다. 갈라진 이 땅을, 너덜너덜 어처구니없이 해진 이 땅을 주님께서 손수 주님의 손으로 기워주시기를 빈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01. 걷는 기도를 시작하며 http://fzari.tistory.com/956

02. 떠날 준비 http://fzari.com/958

03. 더는 힘들지 않으려고 http://fzari.com/959

04. 배낭 챙기기 http://fzari.com/960

05. 챙기지 않은 것 http://fzari.com/961

06. 길을 떠나니 길 떠난 자를 만나고 http://fzari.com/964

07. 따뜻한 기억과 든든한 연대 http://fzari.com/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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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사람은 가도 남는 것 http://fzari.com/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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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자기 자리를 지킨다는 것 http://fzari.tistory.com/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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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43)


마지막 걸음


〈세익스피어 맥베드에 “숲이 움직이면 전쟁을 준비해야 된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지금 걸어 내려오시는 그 벌판 가득 중공군이 풀을 꽂고 남하할 때 임진강 건너 영국 크러스터 대대는 그 대목을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 벌판에서 한 많은 임진강 전투를 생각하시면 덜 피곤하실 겁니다. 신장남교는 새로 놓은 것이고, 옛날 다릿발 하나를 우기고 우겨서 남겨놓았습니다.(2월까지 있었는데, 아직 있겠지요.) 그 다리 밑 두지나루에 황포돛배가 있었는데 돈벌이가 안 되니까 없앤 모양입니다. 요샌 북한이 황강댐을 열었다 닫았다 물장난을 하는 바람에 임진강 황복은 고사하고 참게까지 최악의 세월이랍니다. 혹시 宗漁라는 물고기를 아세요? 다음에 뵐 때 얘기해 드릴게요.>


임진강을 가로지르는 新장남교를 두고 로드맵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지만, 내게는 몹시 위험한 다리였다. 다리는 꽤나 길고 높이도 꽤 높았는데, 이상하리만치 난간은 낮았다. 인도가 따로 마련된 것도 아니어서 마주 오는 커다란 트럭을 피하다 보면 난간 아래로 떨어질 것만 같아 아찔해지곤 했다. 사람이 걸어서 건너는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다리 같았다.


강원도 고성 명파초등학교에 시작하여 열하루 동안 걸은 380km의 길. 

아픔과 상처의 땅을 내 발로 걸었다는 것이 소중하게 남았다.


그래도 적성까지 왔으니 하루의 일정치고는 많이 온 셈이었다. 허름한 식당을 찾아 혼자서 저녁을 먹고 있을 때였다. 몇 숟갈을 뜨고 있을 때 전화가 왔다. 이재필 장로님이었다. 걷기의 마지막 날, 퇴근길에 먼 길을 달려온 장로님은 저녁을 같이 먹는 대신 숙소를 수소문했다. 마지막 날이라도 편히 쉬라는 배려였다.


조금은 외진 곳에 있는 펜션은 은퇴를 한 부부가 운영을 하는 곳으로 더없이 조용했다. 비수기에 평일이라 그랬는지 다른 손님들은 없는 것 같았다. 방에 짐을 내려놓은 뒤 마당에 있는 벤치에 앉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벌써 몇 번째인가, 열하루 길을 걷는 동안 장로님은 여러 번 먼 길을 달려왔다. 폭우에 젖은 발을 위해 신발을 사가지고, 행여 쓰러질까 고기를 사주시려, 물집이 잡힌 발을 감싼 인민군식 발싸개를 보고는 안쓰러워, 그리고 마지막 날 저녁 숙소까지…, 그냥 고맙고 좋은 시간이었다. 아름다운 노을이 어느새 서쪽으로 번지고 있었다.


이 장로님을 배웅하고 방으로 들어갔을 때 함광복 장로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길을 소개하시고는 그 길을 제대로 걸을지 노심초사하고 있는 장로님의 마음이 물씬 느껴졌다.


<아, 미수를 넘기신 어머님께서 그 땡볕을! 거기서 숭의전으로 가는 길은 약간 우회하는 방법입니다. 그래도 숭의전은 꼭 들러 가십시오. 목사님은 궁예가 갔던 길을 걷고 계시며, 철원서 개성(임진각)까지는 고려의 건국과 패망의 역사가 새겨진 왕건의 길입니다. 조금 더 가 고랑포는 경순왕이 귀부한 나루, 죽어서 경주로 못가고 묻힌 통한의 땅, 그 전에는 장수왕이 한성백제를 치기위해 도강한 여울, 임진왜란 때는 왜군이 임진나루를 버리고 저벅저벅 걸어 건너간 도섭지역, 6.25때는 인민군 탱크가 도강한 지점, 그리고 김신조가 겨울 강바닥을 엎드려 통과한 한국사의 Hot Point Place입니다. 그러나 예정된 길에서 왕복 약8km를 보태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혹시 차량이 가능하면 경순왕릉 폐허의 고랑포(춘천중앙교회 역사를 연 이덕수 전도사의 고향땅) 그리고 호로고로성을 다녀오시면 좋은데~. 어제 거리를 좀 벌기도 하셨을까. 점심 드시며 옆 사람들에게 구원 요청을 해보세요. 이를 강추하는 이유는 임진강은 이토록 역사의 강일뿐더러 이 역사를 머금고 있는 고호(임진강 유역의 옛 이름) 8경의 풍광은 늘 울먹이며 펼쳐져 있어서 어느 가을날 저도 그 강 길을 혼자 통곡을 하며 걸었던 그 기억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로드맵 필요 없습니다. 해를 따라 서쪽으로 가시기만 하면 되니까. 벌써 내일인가요? 정말 역사를 쓰고 계십니다.>


울먹이며 펼쳐져 있는 풍광은 어떤 모습일까, 이번 일정에는 그 모습을 볼 수가 없어 아쉽지만 언젠가 혼자 통곡하며 걸었다는 그 길을 장로님과 함께 걷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았다.


동쪽 끝에서 시작하여 서쪽 끝까지, 얼마든지 마음 먹기에 따라 도보순례는 가능한 것이었다.


마지막 날 아침, 일찍 눈을 뜬 것은 일정을 마치는 날이기도 했거니와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와 아들 규민이가 찾아오기로 했다. 마지막 날 길을 함께 걷고 싶다고 했다. 장파리에서 가족들을 만났다. 규민이가 차를 운전해서 찾아왔다. 열하루 만에 만나는데다가 내내 DMZ를 걷다 가족들을 만나니 마치 내가 군에 입대했다가 휴가를 나온 것 같은 묘한 느낌이었다. 이른 시간이기도 했고 길에서 만난 지라 김밥이며 과일 등 준비해온 음식을 자동차 안에서 먹으며 밀린 이야기를 나누었다.


임진각까지 가는 길을 절반쯤으로 나눠 반은 아내와 걷고, 나머지를 규민이와 걷기로 했다. 길을 걷는 동안 자동차는 규민이와 아내가 반씩 운전을 했다. 오래 전 이순원이 쓴 <아들과 함께 걷는 길>을 읽은 적이 있거니와, 나란히 길을 걸으며 나누는 이야기들은 남달랐다. 우리가 인생의 길도 함께 걷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예외 없이 쏟아지는 뜨거운 햇볕 때문이었을까, 마지막 길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느슨해진 탓일까, 나도 모르게 체력이 고갈된 것일까, 가벼울 줄 알았던 걸음이 갈수록 무겁게 느껴졌고 더뎌졌다. 동행하는 가족이 없었다면 여러 번 주저앉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일정을 모두 마쳤을 때, 무엇보다도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는 것이 고마웠다.


마침내, 저 멀리, 임진각이 보였다. 열하루 일정의 종착지가 시야에 들어왔다. 괜히 가슴이 뛰었다. 마침내 모든 일정을 마치게 된 것이다. 마음도 마음이지만 몸이 버텨줄까, 괜히 중간에 포기를 하여 나를 기억하는 이들은 물론 나 자신에게 실망을 주는 건 아닐까, 길을 걸을 때마다 나를 떠나지 않고 뒤따라오거나 앞질러 갔던 그림자처럼 마음 한 구석에 붙어 있던 생각이었다. 이젠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조금 더 나 자신을 신뢰해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차를 운전해서 먼저 와 기다리고 있던 아내를 만났더니 임진각에 온 김에 전망대에 올라갔다 오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그런데 이상했다. 마치 자석에 붙들린 쇠붙이처럼 걸음이 한 걸음도 떼어지질 않았다. 그것이 마음 때문인지 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로 한 걸음을 옮기기가 어려웠다. 전망대는 아내와 규민이만 다녀왔다.


강원도 고성에서 임진각까지 약 380km에 해당하는 열하루의 길, 폭우에 땡볕에 어쩌면 나는 정말로 몸과 마음을 소진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 길을 걷는 동안 내게서 빠져나간 모든 것들로 인해 지금의 내가 이전의 나하고는 다르기를, 세상과 사람이 다르게 다가오기를, 같은 길을 걸어도 다른 걸음이기를, 많은 이들이 오고가는 임진각 마당에 하나의 사물처럼 서서 그렇게 빌었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01. 걷는 기도를 시작하며 http://fzari.tistory.com/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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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도움 받으시다 http://fzari.com/985 

21. 숨겨두고 싶은 길 http://fzari.com/986 

22. 지팡이와 막대기 http://fzari.com/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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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43)


자기 자리를 지킨다는 것


숭의전을 찾아가는 길 곳곳에서는 많은 군인들이 훈련을 받고 있었다. 시커먼 칠로 얼굴을 위장한 채 완전군장을 하고 행군을 하고 있었다. 개미떼처럼 긴 행렬도 있었고, 특별한 임무를 띤 있는 것인지 소수의 인원이 움직이는 짧은 줄도 있었다. 모두가 귀한 집 자식들, 나라의 부름을 받은 젊은이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에 충실하고 있는 것이었다.


길을 걷다 보면 군인들의 행렬을 뒤따를 때도 있었다. 군인들에 비해 작은 배낭을 메고 총 대신 스틱을 들었지만 그들을 뒤따르다 보니 나도 예비역인데 하는 생각과 함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이 분단의 땅이라는 것을 더욱 실감할 수가 있었다.



고려 충신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숭의전은 

아는 사람에게만 자신의 모습을 보이기라도 하는 듯, 단아한 모습이었다.


‘숭의전’(崇義殿)은 지금껏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었다. ‘의를 높이는 곳’이라니, 뜻이 범상치를 않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데 싶어 찾아본 자료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었다.


<숭의전지(崇義殿址)는 조선시대에 전조(前朝)인 고려시대의 왕들과 공신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받들게 했던 숭의전이 있던 자리이다. 이곳은 원래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원찰이었던 앙암사(仰巖寺)가 있었던 곳으로 1397년(태조 6년)에는 고려 태조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을 건립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지금 숭의전의 시초이다. 사당 건립 이후 1399년(정종 1년)에는 왕명에 의해 고려 태조를 비롯하여 혜종(惠宗), 성종(成宗), 현종(顯宗), 문종(文宗), 원종(충경왕, 元宗), 충렬왕(忠烈王), 공민왕(恭愍王) 등 고려 8왕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이후 1425년(세종 7년)에 이르러 조선의 종묘에는 5왕(五王)을 제사하는데 고려조의 사당에 8왕을 제사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하여 태조, 현종, 문종, 원종 등의 4왕만을 봉향토록 하였다.


1451년(문종 1년)에는 전대의 왕조를 예우하여 숭의전이라 이름 짓고 고려 4왕과 더불어 고려조의 충신 16명(복지겸, 홍유, 신숭겸, 유금필, 배현경, 서희, 강감찬, 윤관, 김부식, 김취려, 조충, 김방경, 안우, 이방실, 김득배, 정몽주) 등을 배향토록 하였다. 1452년(문종 2년)에는 고려 현종의 먼 후손을 공주에서 찾아서 순례(循禮)라는 이름을 내린 후 부사(副使)를 삼아 그 제사를 받들게 하고 토지와 노비를 내렸다.>


새 왕조를 연 뒤 이전 왕조의 왕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세운 곳이 숭의전이었던 것이다. 자신들의 뿌리를 잊거나 부정하지 않고 보존을 하여 기억을 하는 모습도 그랬고, 그곳에 숭의전(崇義殿)이라는 명예로운 이름을 부여한 것도 그렇고, 고려의 충신을 기리는 전(殿)을 고려의 후손을 찾아내 관리를 맡겼다는 점도 의미 있게 다가왔다.


숭의전 초입의 ‘어수정’(御水井)에는 마침 하지(夏至)를 맞아 하지 감자를 씻으러 온 할머니가 있었다. 하지와 감자와 할머니, 시간의 흐름을 기억하고 따르는 순연한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고 그윽하게 여겨졌다.


어수정의 물은 달고도 시원했다. 좋은 샘 곁에서 산다는 것은 큰 복이다 싶었다.


무더위 속 먼 길을 걸어서 그랬겠지만 어수정의 물은 유난히 달고 시원했다. 그처럼 맑은 물이 끊임없이 솟아나는 곳에서 살아가니 그 물을 마시며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싶어 할머니께 여쭈니 “그럼요, 큰 복이지요.” 하시며 십분 공감을 하신다. 맞다, 오염되지 않은 맑은 샘을 가까이 둔 이들은 큰 복을 누리는 것이다.


그동안 걸으면서 흘린 땀에 해당할 만큼의 물을 마신 뒤, ‘하마비’(下馬碑)를 지나 큰 나무의 그늘이 드리워진 호젓한 언덕길을 오르니 숭의전이 나타났다. 고려의 충신들을 모시는 숭의전은 마치 아는 사람에게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단아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뜨거운 날씨 탓인지, 나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숭의전을 모르기 때문인지, 숭의전을 찾은 사람은 몇 사람 없었다. 연세가 지긋하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막 숭의전을 둘러보고 밖으로 빠져나오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숭의전을 찬찬히 둘러본 뒤 밖으로 나왔을 때, 저만치 언덕길을 올라오는 한 여자 분이 보였다. 손에는 어수정에서 길었지 싶은 물통을 들고 있었고 목에는 명찰, 아마도 안내원이 아닐까 싶었다.


이미 숭의전을 둘러보았으니 그냥 떠날까 하다가 안내원에게 다가가 인사를 나눴다. 다시 찾아오기 쉽지 않은 시간, 그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배낭에 매달린 여벌의 신발을 보았기 때문이었을까, 나의 여정을 물어 들은 안내원은 얼른 두 손을 내밀어 덥석 내 손을 잡았다. 기를 전해 받고 싶다는 것이었다. “저는 기운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아요.” 했지만, 세상에 이런 기를 어디서 받겠느냐며 마치 확실한 기를 전해 받은 사람처럼 이야기를 했다.


숭의전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를 해 준 안내원은 “이리 한 번 와 보실래요?” 하면서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다고 했다. 따라가니 숭의전 앞에 서 있는 큰 나무 위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무성한 나뭇잎 뿐 달리 눈에 띄는 것이 없어 “무엇을 보라는 것이지요?” 묻자 “부엉이가 저기 있잖아요.” 한다. 설명을 듣고 자세히 보니 부엉이가 가지 위에 앉아 있었다. 안내원은 다시 한 나무를 살피더니 “저 곳에도 한 마리가 더 있네요.” 한다.


숭의전을 떠나지 않는다는 부엉이는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했다.


언젠가부터 부엉이가 찾아와 그곳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한 마리였는데, 언제부턴가 한 마리가 더 찾아왔다는 것이다. 안내원은 말했다. “아마도 고려 충신들의 혼을 지키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의 삶속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신비한 일이 존재하기도 하는 법, 아시시 프란체스코 수도원 이야기를 안내원에게 들려주었다. 그곳에서는 흰색 비둘기가 프란체스코 동상 곁을 떠나지 않는다고.


안내원과 인사를 나누고 다시 길을 떠나 ‘임진적벽길’을 걷기 시작했다. 유유히 흐르는 임진강을 따라서 난 숲길은 빼어난 절경이었다. 몇 번인가 걸음을 멈추고 서서 흐르는 강을 바라보았다. 궁예와 왕건도 나처럼 서서 저 강을 바라보지 않았을까 싶었다. 숲을 다 빠져나가도록 아무도 만난 사람이 없었으니, 드문 길을 걸은 셈이었다.


숲을 걸을 때 문득 떠오른 어릴 적 기억이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쯤이었을 것이다. 비가 몹시 내리던 수요일이었다. 그 시절 수요일 오후에는 어린이 예배가 따로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야기에 목마른 우리들이 즐겨 찾던 시간이었다. 선생님이 들려주시는 성경동화는 그 무엇보다도 재미가 있었다.


그 날은 뭔가 이상했다. 시간이 지났다 싶은데도 종소리가 들리지를 않았다. 빗소리에 지워진 것인지 정말로 종을 치지 않은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망설이다가 예배당으로 달려갔다. 그 시절엔 어찌 그리 우산이 귀했는지 비를 쫄딱 맞은 채였다.


어두컴컴한 예배당 현관에 들어서니 신발장에 신발이 하나도 보이질 않았다. 기도라도 드리고 가야지 싶어 예배당 문을 열었는데, 예배당엔 아무도 없는 것이 아니었다. 선생님 한 분이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었다. 아마도 선생님은 예배당 앞쪽에 있는 문으로 들어오신 듯 했다.


그 선생님은 지금까지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비가 몹시 내리던 수요일 오후, 아무도 오지 않는 예배당을 기도로 지키던 모습이 남아있다. 마음속에 남아있는 선생님은 내게 이렇게 말하신다. ‘얘야, 대단한 일을 하려고 하지 말고 네 자리를 지키렴.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 그것이 중요한 일이란다.’

마음속에 묻혀 있던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게 했던 것은 숭의전 앞 나무에서 보았던 부엉이였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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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42)


아직도 아프니?


옥계리 마을회관에서 하룻밤 묵은 다음 날, 아침을 부녀회장님 집에서 먹었다. 새로 만든 두부와 순두부로 아침상을 차렸는데, 밑반찬으로 오른 반찬들이 더없이 정겨워 보였다. 시골에서 만날 수 있는 찬이었다.


정겨운 것은 상 위에 오른 반찬만이 아니었다. 부녀회장님 내외는 물론 함께 사시는 어머니, 이웃에 사는 시동생 내외 등 가족들이 둘러앉으니 대가족이었다. 시끌벅적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는 아침상에 활기가 넘쳤다.


식사를 마친 뒤 냉장고에서 꺼내주는 시원한 물 한 병을 받아들고 길을 나섰다. 여느 농촌과 다를 것이 없는 평화로운 길이 이어졌다. 곳곳에 밤꽃이 피어있고, 드문드문 집이 나타나고, 도로 옆으로는 논이 이어지고 있었다. 눈앞에 펼쳐지는 모습만 보고서는 내가 지금 지나고 있는 곳이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전방지역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내가 걷고 있는 곳이 최전방일까 싶을 만큼 평화로운  풍경이 이어졌다.


그렇게 길을 가고 있을 때였다. 저 앞에 제법 큰 논이 나타났는데, 논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모가 땅내를 맡아 모 사이의 빈틈은 보이지를 않았다. 검푸른 빛깔이 논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세 분의 할머니가 피사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피사리라는 말은 떠올리는 것도 오랜만이었고, 실제로 논에서 피사리를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더욱 오랜만의 일이었다.


‘피사리’란 모판이나 모내기를 한 논에서 피라는 잡초를 제거하는 일을 말한다. 잡초를 제거하지 않고 벼와 함께 자라게 두면 벼에게 돌아갈 양분을 피에게 빼앗기고 만다. 대개의 잡초가 그렇듯이 피는 벼보다도 왕성하게 자라 벼의 수확을 떨어뜨리게 만든다. 뿐만이 아니다. 귀찮다고 내버려 두었다가는 어느새 논을 뒤덮을 정도로 피는 대단한 성장력과 번식력을 가지고 있어 그냥 놔뒀다가는 논은 이내 피 논이 되고 만다.


논에서 피사리를 하는 할머니들이 있었다. 

내가 고되어도 곡식을 정성스레 키워내는 손길이 반갑고 고마웠다.


지금은 이래저래 피사리가 옛일이 되고 말았다. 피사리가 워낙 손이 많이 가는 고된 일인데다가, 농촌에서는 갈수록 일할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 피는 생김새가 꼭 벼와 같아서 이삭이 패기 전에는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데, 벼와 피를 구분할 수 있는 사람도 이제는 많지 않을 것이다.


어느새 피사리는 농약이 대신한다. 효능이 좋은 제초제를 쓰면 굳이 피사리를 하느라 고생할 이유가 없다. 화학비료가 땅의 힘을 대신하고, 제초제로 풀을 잡으면 그만이다. 그러느라 독성물질이 땅과 곡식 속에 스며들고, 그걸 고스란히 우리가 먹는데도 그런 것을 헤아리고 고민할 겨를이 없다.


그런 중에 할머니들이 피사리를 하는 모습을 보았으니 반가울 수밖에. 고마운 마음까지 들었다. 걸음을 멈추고 인사를 드린 뒤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를 여쭸더니 우리 같은 늙은이를 찍어 뭐 하겠냐 하시면서도 예쁘게 찍어 달라고 농을 하신다.


피사리를 하는 모습을 오랜만에 봐서 사진을 찍고 싶었다고 하자, 할머니들은 내 행색을 살피시더니 어디서 오는 길인지를 물었다. 강원도 고성에서 걷기 시작을 했다고 하자 깜짝 놀라시며 어려운 수고를 한다며 격려를 하신다.


길을 걷는 내게 어디 아픈지를 물었던 할머니의 질문은 주님의 음성처럼 다가왔다. 

아직도 아픈지를 묻는.


잠깐의 이야기를 마치고 다시 길을 나서야지 할 때, 할머니 한 분이 내게 뭐라 질문을 한 것 같았는데 알아듣지를 못했다. 막 지나가는 버스 소리에 섞였기 때문이었다. 잠깐 기다렸다가 할머니께 여쭸다.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그러자 할머니가 큰소리로 물으신다.


“어디 아파요?”


할머니 생각에는 그러셨던 모양이다. 이 뙤약볕 아래를 여러 날 혼자서 걷다니, 필시 죽을병이든 중병이든 병에 걸린 사람이 마지막 결심을 하고서 길을 걷고 있는 것이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누가 멀쩡한 정신으로 불볕더위 속을 혼자서 여러 날을 걷는단 말인가,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는데 피사리를 하던 할머니의 마지막 질문이 마음속으로 메아리쳐 왔다. 괜히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는데 왜 그랬을까, 할머니의 질문은 마치 주님의 질문처럼 다가왔다. 내 마음 모르실 리 없는 주님께서 이렇게 물으시는 것 같았다.


“아직도 아프니?”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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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41)


 낯선 곳, 어색한 잠자리와 꿀잠


구름에 달 가듯이 그렇게 가면 얼마나 좋을까만, 시간이 지날수록 길은 멀게 느껴졌고 걸음은 무겁고 더뎌졌다. 긴장으로 응축되었던 몸과 마음이 점점 풀어지는 듯 시간이 지날수록 헐거워지고 느슨해진다 싶었다.


먼 길을 격려차 찾아온 어머니와 형과 함께 점심을 먹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어머니는 군대 간 아들 면회를 오신 듯 바리바리 간식이며 과일 등을 챙겨 오셨다.


철도 중단역인 백마고지역으로 달리는 경원선 열차,

 언제나 길이 열려 북쪽 끝까지 숨가쁘게 달릴 수 있는 날이 찾아올지.


오후에는 하루를 묵기로 한 대광리역까지 가야 했다. 길은 거반 개울을 따라 이어졌다. 개울을 따라 걷는 것은 아스팔트를 걷는 것에 비하면 거의 천국과 같았다. 무엇보다 한적해서 좋았고, 내달리는 자동차를 신경 쓸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훅훅 얼굴로 올라오는 아스팔트의 열기도 없었다. 경치도 좋았고 거기에다 바람도 불었다.


하지만 다 좋은 것은 아니었다.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땡볕이었다. 제방 둑을 따라 심은 것은 대개가 꽃, 꽃은 사람에게 향기를 주지만 그늘은 주지 못한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그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다 줄 수가 없는 것처럼. 중간 중간에 나무를 심은 곳도 있었지만, 아직 키가 작아 나무 또한 그늘을 만들지는 못했다. 이름만으로는 제 역할을 다 할 수가 없다는 듯이.


걷고 또 걷다가 너무 지쳤다 싶을 때면 잠깐씩 쉬었다. 한 번은 다리 밑 그늘 속으로 들어가서, 두 번은 수로의 수문을 관리하는 콘크리트 구조물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서 그야말로 고꾸라지듯 쓰러져 누웠다. 벗은 배낭을 베고는 그냥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럴 줄 알았으면 깔개라도 챙길 걸. 잠시라도 눈을 붙이면 한결 낫겠다 싶은데, 천하의 잠보에게도 잠은 쉬이 오지를 않았다. 혹 지나가는 누군가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내 모습을 봤다면 거지 아니면 간첩으로 오인을 했을 것이다.


아무도 반기는 이 없는 마을에 들 수는 없지 않겠냐는 듯, 이가 드러나도록 웃으며 반겨주는 장승.


점심을 먹던 식당에서 주인에게 우연히 들은 말에 의하면 군남면 옥계리 마을의 마을회관에서 하룻밤을 묵을 수가 있다고 했다. 값도 저렴할 것이라 했다. 값도 값이지만 대광리역 앞에서 숙소를 찾는 것보다는 마을회관에서 하루를 묵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식당 주인에게서 받은 연락처로 전화를 하여 마을 부녀회장님과 통화를 했더니, 가능하다고 했다. 생각지 않았던 일이지만 그날 밤을 기꺼이 옥계리에서 묵기로 했다. 여건이 어떨지 모르는 대광리역에서 숙소를 구할 필요가 없어지니, 마음도 훨씬 홀가분해졌다.


한적한 시골마을 옥계리에 도착을 했을 때는 긴 여름해가 기울며 조금씩 땅거미가 깔리고 있었다. 그 시간에 저녁을 먹기는 어려울 터, 마을 초입에 있는 가게에서 빵을 샀다. 아침은 부녀회장님 집에서 먹을 수가 있다고 했으니 저녁만 해결하면 될 일이었다.


하룻밤을 묵은 옥계리 마을회관. 길을 걷는 자에게는 어색하거나 불편한 잠자리는 따로 없었다.


겨울철이야 마을 사람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겠지만 한창 일철, 마을회관의 문은 닫혀 있었다. 일에 바쁜 부녀회장님 대신 동네의 한 아주머니가 찾아와 문을 열어주었다. 평화누리길 게스트하우스 3호이기도 한 옥계리 마을회관은 생각보다도 컸다. 숙소는 2층에 있었다. 덩그마니 커다란 방, 숙소라 하기엔 뭔가 어색했지만 그래도 씻을 곳이 있었고, 뜻밖에도 샤워실엔 세탁기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얼른 씻고 빨래를 마친 뒤 벽에 기댄 채 빵으로 저녁을 먹었다. 그러는 동안 조금 높은 곳에 자리를 잡은 맞은 편 창밖으로는 이내 어둠이 내렸다. 낯선 동네 마을회관에서 묵는 하룻밤, 제법 큰 방에 혼자 누운 것도 그랬거니와 오랫동안 비어있던 집에 들어온 듯 어색한 마음이 들었다.


걷는 일정이 아니었다면 그런 분위기가 낯설고 어색하여 잠을 뒤척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한없이 조용한 숙소일 뿐, 잠을 방해할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잠에 빠져들기까지의 시간이 결코 길지 않았을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며 우리가 길을 걷는 사람이란 걸 안다면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 불편하고 어색하고 낯선 상황을 만나도 얼마든지 그러려니 할 수 있지 않을까. 낯선 곳, 어색한 잠자리를 두고도 얼마든지 꿀잠을 잔 옥계리 마을회관은 그런 의미로 남아 있다.


한희철/동화자각,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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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길을 잘 일러주는 사람 http://fzari.com/969

10. 사람은 가도 남는 것 http://fzari.com/971

11.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 http://fzari.com/973

12. 소똥령 마을 http://fzari.com/974

13. 아, 진부령! http://fzari.com/975

14. 행복한 육군 http://fzari.com/977  

15. 몇 가지 다짐 http://fzari.com/978  

16. 할머니 민박 http://fzari.com/979 

17. 오래 걸으니 http://fzari.com/980 

18. 왜 걸어요 http://fzari.com/981

19. 작은 표지판 http://fzari.com/982 

20. 도움 받으시다 http://fzari.com/985 

21. 숨겨두고 싶은 길 http://fzari.com/986 

22. 지팡이와 막대기 http://fzari.com/987 

23. 이 땅 기우소서! http://fzari.com/988 

24. 함께 짐을 진다는 것은 http://fzari.com/990

25. 해안(亥安) http://fzari.com/991 

26. '화'와 '소' http://fzari.tistory.com/992  

27. 팔랑미 풍미식당 http://fzari.com/994 

28. 인민군 발싸개 http://fzari.com/997 

29. 산양의 웃음 http://fzari.tistory.com/998 

30. 인간의 어리석음을 하늘의 자비하심으로 http://fzari.com/999

31. 몰랐던 길 하나 http://fzari.com/1000 

32. 물 없이 먼 길을 간다는 것 http://fzari.tistory.com/1007 

33.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http://fzari.com/1008

34.,거미의 유머 http://fzari.com/1010 

35. 혼자 드린 에배 http://fzari.tistory.com/1011 

36.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들 http://fzari.tistory.com/1013 

37. 오르막과 내리막 http://fzari.com/1015 

38. 선입견 하나를 송구함으로 버리다http://fzari.tistory.com/1016 

39. 그날 주일 종은 울리지 않았다 http://fzari.com/1018

40. 어머니의 마중 http://fzari.tistory.com/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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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40)


어머니의 마중


아흐레째 일정은 철원 고석정에서 시작했다. 게르마늄 온천수가 솟는 호텔이 있다고 로드맵에는 적혀 있었지만, 호텔 인근에 있는 숙소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빨래 말리는 건조대까지 구비가 된 좋은 숙소였다. 입구에 걸려있는 달력을 보고 주인에게 반갑게 인사를 나눴던 것은 성지교회 청년들이 수련회를 다녀오기도 한 구수감리교회 달력이 벽에 걸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펜션 주인은 구수교회 권사님이었다.


아침 일찍 길을 나서는 내게 권사님은 작은 플라스틱 병에 담긴 꿀을 전해주었다. “정말로 좋은 꿀이에요. 걸으면서 드세요.” 따뜻하고 진심어린 응원이었다. 권사님이 주신 꿀을 배낭에 넣고 물을 마실 때마다 섞어서 마셨다.


걸음을 서둘렀다. 전날 희준 형(兄)이 전화를 해서는 한 번 찾아오겠다고 한 터였다. 길을 걷는 동생을 위해 점심을 사겠다는 형의 제안을 고맙게 받아들였다. 백마고지역에서 점심때쯤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철원으로 들어가는 다리. 옛 다리와 새로 놓은 다리가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철원은 곳곳에 아름다움이 숨어 있는 땅이었다. 한탄강을 따라 길을 걷다 보니 숨은 비경들이 한참 이어졌다. 시간만 된다면 천천히 걸으며 곳곳의 경치를 여유 있게 즐기고 싶었다. 가야할 길이 있고 점심 약속도 있는지라, 주마간산(走馬看山)처럼 지나가야 하는 것이 무척 아쉬웠다.


도피안사를 거쳐 철원제일교회 앞을 지날 때쯤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디쯤 오고 있는지를 물었다. 생각보다 형은 일찍 도착을 했던 것이었다. 열하루 일정의 후반부, 그렇지만 걸음을 재촉했다.


철원이면 그래도 익숙한 지명, DMZ과는 무관하지 않을까 싶은데도 긴 철조망이 도로 양쪽으로 내달리고 있었고, 철조망에는 지뢰가 묻힌 곳임을 알리는 경고판이 일정한 간격으로 매달려 있었다. 이 땅의 아픔은 그렇게도 길고 질긴 것이었다.


철원은 곳곳에 아름다움이 숨어 있는 곳이었다. 

주마간산처럼 지나가는 것이 무척 아쉽게 여겨졌다.


바삐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길 저쪽 끝에서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었다. 가만 보니 형이었다. 백마고지역에서 기다리는 대신 내가 걷는 길을 짐작하여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보니 형은 혼자가 아니었다. 또 한 사람이 있었다. 아직 거리가 멀어 누군지를 알 수가 없었다. 형수님이 동행을 했나, 아내가 같이 왔나 짐작이 안 됐다.


거리가 더 가까워지며 보니 어머니였다. 멀리서도 흰 머리가 보였다. 어머니가 형과 동행을 하여 찾아오신 것이었다. 저 앞에 걸어오는 분이 어머니라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왈칵 눈물이 솟았다. 뜨거운 눈물이 나도 모르게 솟았다. 내일 모레가 아흔인 어머니가 이 뙤약볕 아래를 걸어 마중을 나오실 줄이야.


군에 입대했을 때가 떠올랐다.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고 막 자대에 배치를 받은 어느 토요일, 갑자기 내부반장이 내 이름을 불렀다. 면회를 온 사람이 있으니 속히 옷을 갈아입고 위병소로 나가보라는 것이었다. 자대에 배치 받은 것을 아직 누구에게도 알릴 새가 없었는데 누가 면회를 온 곳일까, 떨리는 마음으로 위병소로 갔을 때 저만치 눈에 들어온 사람도 어머니였다. 어머니가 큰 형 가족과 함께 면회를 온 것이었다.


그 때도 왈칵 눈물이 솟았었다. 입대하던 날도 보이지 않았던 눈물이 나도 모르게 터져나왔다. 전라남도 광주, 광주에서 떨어진 송정리, 그곳에서도 한참 떨어진 평동, 어찌 그 외진 곳에 배치 받은 것을 알고 찾아오신 것일까. 더없이 고마우면서도 돌아서는 어머니께 다시는 면회를 오지 마시라 신신당부를 드렸다. 면회를 다녀가기에는 너무도 거리가 먼 곳이기 때문이었다.


1946년 북한정권하에서 지역주민들의 강제 모금과 노력동원으로 지어진 건물.

전쟁 중 내부는 파괴되었지만 그래도 벽체는 남아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길을 걷는 내가 어머니께 눈물을 보이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싶었다. 목사의 어머니로서 가뜩이나 아들과 아들의 목회를 걱정하고 계신 어머니께 눈물을 보이는 것은 괜한 걱정만 끼치는 일이다 싶었다. 그래도 거리가 저만큼 떨어져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얼른 눈물을 삼키고 감정을 추슬렀다.


“애도 아닌데 무슨 마중을 나오세요?” 밝은 웃음으로 어머니와 형을 만나 인사를 나눈 뒤 함께 길을 걸었다. 마중이 길었던 만큼 함께 걷는 길도 길었다.


백마고지역까지 걸어가며 젊은 시절 어머니가 남쪽으로 넘어오실 때의 일을 다시 한 번 여쭤 들었다. 새댁 시절, 일 년 전 서울로 먼저 떠난 남편을 만나기 위해 홀로 남쪽으로 내려오셨던 어머니, 내려오면서 겪었던 무용담 같은 일들, 어떻게 그런 결단을 내렸을까, 어떻게 그런 담력과 용기를 가지셨을까, 처음 듣는 이야기가 아니면서도 다시 한 번 어머니의 용기와 결단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런 경험을 어머니는 손자 손녀들에게 들려주시고는 한다. 군에 가는 손자에게, 외국으로 공부하러 가는 손자 손녀들에게 당신의 젊을 적 이야기를 들려주며 얼마든지 용기를 내라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어떤 일도 할 수 있다고 격려를 하시고는 한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를 걸어온 어머니의 마중과, 생각지 않았던 곳에서 만나 어머니와 함께 걷는 길, 어디 그런 시간 그런 길이 흔할까, 그 하나만으로도 그날의 일정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정이었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01. 걷는 기도를 시작하며 http://fzari.tistory.com/956

02. 떠날 준비 http://fzari.com/958

03. 더는 힘들지 않으려고 http://fzari.com/959

04. 배낭 챙기기 http://fzari.com/960

05. 챙기지 않은 것 http://fzari.com/961

06. 길을 떠나니 길 떠난 자를 만나고 http://fzari.com/964

07. 따뜻한 기억과 든든한 연대 http://fzari.com/966

08. 가장 좋은 지도 http://fzari.com/967

09. 길을 잘 일러주는 사람 http://fzari.com/969

10. 사람은 가도 남는 것 http://fzari.com/971

11.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 http://fzari.com/973

12. 소똥령 마을 http://fzari.com/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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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숨겨두고 싶은 길 http://fzari.com/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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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팔랑미 풍미식당 http://fzari.com/994 

28. 인민군 발싸개 http://fzari.com/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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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인간의 어리석음을 하늘의 자비하심으로 http://fzari.com/999

31. 몰랐던 길 하나 http://fzari.com/1000 

32. 물 없이 먼 길을 간다는 것 http://fzari.tistory.com/1007 

33.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http://fzari.com/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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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혼자 드린 에배 http://fzari.tistory.com/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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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오르막과 내리막 http://fzari.com/1015 

38. 선입견 하나를 송구함으로 버리다http://fzari.tistory.com/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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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39)


그날 주일 종은 울리지 않았다


“목사님 어디쯤이신가요? 순교하신 한사연 목사님의 손자 한영순 권사님 댁이 김화 사거립니다. 이 폭염에 혹여 잊어버리실까 봐~”


김화를 지나면서는 함광복 장로님이 꼭 찾아가기를 권했던 한 권사님을 뵙고 가기로 했다. 김화에 도착을 했을 때는 점심 무렵, 식사부터 하기로 했다. 함 장로님이 권한 찌개 잘한다는 식당이었을까, 눈에 띄는 식당을 찾아 들어갔더니 사람들로 가득했다. 원래 그런지 손님이 많아 그런지 혼자 온 손님은 받지를 않는다고 했다.


할 수 없이 밖으로 나와 ‘혼자 가도 받아주는 식당’을 찾았고, 마침 보신탕과 삼계탕을 하는 식당을 찾았다. 삼계탕을 먹으며 맞은편에 앉은 분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분은 식사를 마치고 먼저 일어서며 내 밥값까지 계산을 했다. 당신과 나이차가 많지 않은 사람이 열하루 길을 걷는 모습을 보며 얻게 된 용기에 대한 답례였지 싶다.


찌개 잘하는 곳이지 싶은 식당에 손님이 많아 들어갈 수가 없었다고, 점심을 먹은 뒤 한 권사님 댁을 찾아보려 한다고 함 장로님께 문자를 드렸더니 이내 답장이 왔다.


“그 집이 소문이 났나 봐요. 저희가 갈 때도 늘 붐볐습니다. 점심 드시고 한 권사님 만나보세요. 봄에 지나갈 때 행정서사 간판은 내려지고 한영순 문패는 있었으니까 생존해 계신다는 뜻일 텐데~. 그새 혹시?”


식당 주인은 물론 거리에서 만난 몇 몇 사람들에게 물었지만 한 권사님을 아는 이는 없었다. 내 기억으로는 화가 박수근 씨의 결혼 주례를 맡아주시기도 했던, 순교자 한사연 목사님의 손자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난감했다. 마침 연세가 지긋한 분이 오래되었지 싶은 가게를 지키고 있어 여쭸더니 다행히도 집의 방향과 위치를 가르쳐 주었다.


어렵게 찾아간 한영순 권사님 댁. 우편함에는 두 분의 이름이 여전히 적혀 있지만 한권사님은 몇 년 전에 돌아가신 뒤였다.


맞았다. 집 앞 벽에 걸린 우편함에 한영순·이종녀 두 분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조심스레 벨을 눌렀다. 벨소리는 들리는데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다시 눌렀지만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손으로 문을 두드렸다. 그래도 마찬가지, 안에서는 어떤 인기척도 없었다.


그냥 돌아서기에는 영 아쉬운 걸음, 바로 돌아설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출타했다 돌아오시는 건 아닐까 싶어 현관문 위에 흙으로 지은 제비집도 쳐다보고 길가도 바라보며 잠시 시간을 보냈다.


그러기를 참 잘했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집에서 조용히 문이 열렸다. 백발의 할머니가 밖을 내다보시면서 어떻게 왔느냐고 물으신다. 이종녀 할머니 되시느냐 여쭸더니 그렇다고 하신다. 찾아온 이유를 말씀 드렸다.


꼭 찾아뵙기를 원했던 함 장로님의 당부는 물론 오래 전에 있었던 일도 말씀을 드렸다. 단강에서 목회하던 시절, 원주지역 젊은 목회자들과 함께 국내 성지순례 길을 나서 철원, 김화 지역을 방문하여 순교하신 분들의 발자취를 돌아본 적이 있었다. 그 일을 제안한 사람도 안내를 맡은 사람도 모두 함 장로님이었다. 그 때 한영순 권사님을 뵙고 권사님을 통해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던 일이 있노라고 말씀을 드렸다.


이야기를 들으시던 이종녀 권사님은 밖에 서서 이야기를 하지 말고 안으로 들어오라고 권하셨다. 땀과 먼지에 젖은 허름한 행색, 조심스러웠지만 거듭되는 권유에 신을 벗고 거실로 들어갔다. 잠깐 기도를 드리는 사이, 권사님은 냉장고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가져다 주셨다.


먼저 한영순 권사님의 근황부터 여쭸더니 이미 돌아가셨다고 했다. 2013년 8월, 83세를 일기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괜한 걸 여쭤서 죄송해요.” 말씀드리자 “아니에요, 괜찮아요.” 하시는데 목소리가 더없이 낮고 조용하셨다. 이종녀 권사님은 혼자 살고 계셨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약봉지들, 권사님도 건강이 좋아 보이시지가 않았다.


한영순 권사님의 부인 이종녀 권사님. 말씀을 아끼시는 모습이 오히려 많을 것을 생각하게 했다. 낮고 조용한 목소리에는 이미 많은 사연들이 담겨 있다 싶었다.


권사님께 한사연 목사님과 한영순 권사님에 대해서 기억나는 이야기를 들려 달라 했지만, 권사님은 별 말씀을 안 하셨다. 왜 그랬을까, 모두가 지난 일이라는, 더 이상 순교의 의미도 찾지 않고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세상을 향해 그 소중한 이야기를 그냥 마음에만 담아두시겠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이종녀 권사님은 말씀을 아끼시고, 오래 전 한영순 권사님께 들은 이야기는 희미하고, 책에서 읽은 내용도 가물가물하다. 함광복 장로님이 쓴 《할아버지, 연어를 따라오면 한국입니다》라는 책에는 한사연 목사님과 한영순 권사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날 주일 종은 울리지 않았다’라는 제목의 글로, 12명의 순교자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함 장로님의 글을 찾아 읽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순교자들은 무덤을 남기지 않았다. 그들은 교회도 남기지 않았다. 추가령 열곡대의 바이블루트에서는 12명의 기독교 목회자가 순교했지만 그들은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이 때문에 DMZ 순교사는 '꾸며낸 얘기'란 비아냥이 늘 뒤따르고 있다.


1950년 6월 24일, 전쟁이 일어나기 하루 전 북한엔 기독교 목사들에 대한 마지막 일대 검거령이 내려졌다. 그러나 기독교 지도자들은 대부분 교회를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아주 위험한 집단이었다. 우선 우익 엘리트들이 다 월남했는데도 그들은 가지 않았다. 그들은 공산정치를 방해하면서도 주민들의 정신적 지도자 노릇을 하는 자가 많았다. 유사시 그들은 반공전선에 뛰어들 가능성이 있었다. 북한은 이 '잠재적 적'을 전쟁을 전개하기 전 대청소할 필요를 느꼈던 것 같았다. 연천 철원 김화 금성 일대에서 목사, 전도사 장로들이 줄줄이 묶여갔다. 그리고 대부분 돌아오지 않았다.


이 사건은 38선 이북에서 일어났고, 전쟁은 공교롭게 그 사건 현장에서 끝났다. 그 자리를 밟고 지금 DMZ가 지나가고 있다. 그때 사건 현장에 있었던 증인들은 돌아오지 않고 있으며, 후세 사람들은 그 사건의 전말을 알 수 없다. 순교 사건은 이렇게 DMZ 속에 묻혀버렸다.


DMZ의 그 사건이 들먹여질 때마다 나는 큰 눈에 우람한 몸집의 노인 한영순씨(韓英珣..철원군 김화읍 학사리)를 생각했다. 노인은 학사 4거리에서 그의 고향 금성 가는 길 쪽으로‘한영순 행정서사’ 간판을 내고 20년 째 '반 대서소, 반 농사 일'을 하고 있다. DMZ 넘어 금성까지는 50리. 그곳은 그의 할아버지 한사연(韓士淵)목사의 금성교회와 노목사의 순교사가 묻혀있는 곳이다.


한 목사는 8.15 해방을 71세에 맞았다. 김화 창도 금성 3교회의 감리사를 맡고 있을 때다. 그가 목회인생을 바쳐 온 장단, 평강, 김화, 삭녕, 김화, 금성, 창도, 회양은 공산당의 수중에 들어갔다. 일제 때 그는 신사참배를 거부했다.


그는 ‘짚신을 신고 성경과 찬송가를 등에 진 해괴한 차림을 하고 다니는 사람’이라는 인상착의를 달고 요시찰 인물로 지목됐었다. 공산당의 세상이 되자 목사는 다시‘모두 나눠먹기 패’(공산주의)를 거부했다. 이번엔 ‘이중생활을 하는 자들의 지도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목사는 월남하기를 종용하는 사람들에게 “나만 살겠다고 교인을 버릴 순 없다”고 거부했다. 일제 수난기를 살아 온 목사의 교육관은 특이했다. 어느 시대이든 농사꾼과 의사는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뜻대로 맏아들 문옥, 둘째 명옥 씨는 농사꾼이 됐다. 그리고 셋째 상옥, 막내 병옥 씨는 세브란스를 나와 각각 창도와 통구에서 내과의로 개업해 있었다. 그들도 부친의 뜻에 따라 월남하지 않았다.


1950년 6월 24일 늦은 밤, 38선을 향해 탱크와 대포를 싣고 부산히 내려가던 금강산 전철의 수송작전은 이미 끝났다. 전쟁 전야의 금성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누군가 금성교회 목사관을 두드렸다. 그는 “회의가 있다”며 잠자리에 든 한 목사를 깨워 어디론가 데려갔다. 일요일인 이튿날 금성교회의 주일 종은 울리지 않았다.


영순 씨는 한목사의 둘째아들인 명옥 씨의 아들. 김화고급중학교에 다니던 영순 씨는 그해 7월말쯤 전선에 동원되기 위해 김화인민병원에서 신체검사를 받으라는 통지를 받아놓고 있었다. 우연히 김화정치보위부 울타리를 지나가다가 할아버지 한 목사를 만났다. 우람한 체격의 백발노인은 스무 명 남짓 되는 사람들과 함께 동아줄에 묶여 끌려가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손자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영순아, 네가 증인이다. 증인이 돼야한다!”


한 권사님 댁 마당에 핀 밤꽃. 순교의 향기를 밤꽃에 비길까만 점점 우리는 그 향기를 잊어가고 있지 싶다.


한 목사의 가계는 철저히 유린됐다. 맏아들은 김화 생창굴 속에서 폭사 당했으며, 의사인 셋째 상옥은 원산으로 끌려갔다. 역시 의사인 막내는 김화 쑥고개 칠성정에서 총살당했다. 해주교회 사모로 시집간 외동딸 만옥은 행방불명됐다. 둘째아들 명옥만 월남했다.


전쟁이 끝난 후 금성이 고향인 사람들의 연말모임에서 영순 씨는 할아버지의 소식을 들었다. 신시옥(작고)이라는 사람이 나타나 “한 목사는 원산 앞바다에서 4명씩 철사줄에 묶여 수장됐다”고 일러줬다. 신 씨는 그 때 구사일생으로 탈출한 사람이며 그는 그날을 10월 3일로 기억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지난 94년 여름 북한의 오성산이 내려다보고 있는 구김화읍 읍내리 민통선 북방의 한 벌판에서 들었다. 영순 씨는 “여기가 보위부자리, 저기가 내가 막내 작은아버지 시신을 묻어 놓고 표식으로 구두 두 짝을 올려놓았던 그 밭…” 하며 기억을 더듬었다. 그때 그는 “‘네가 증인이 되라’고 한 할아버지의 유언이 가슴에 박힌 커다란 가시 같다”고 말했다. “기막힌 이 사연을 글로 옮길 재주도 없고, 이 사연을 귀담아 들어주는 이도 없다”며 그때 노인은 소년처럼 울었다.


6년이 지난 최근 한영순 씨를 다시 만났다. 그는 더 늙어 70세 노인이 돼 있었다. 2년 전 병을 얻어 민통선 출입영농도 일부는 포기하고 있었다. 그는 “할아버지는 내게 증인이 되라고 하셨는데, 나는 한 순교자의 유일한 증인이면서도 그 사실을 증거하지 못하고 있다”는 그 말을 그 때처럼 다시 했다.


그의 가슴엔 아직도 그 가시가 박혀 있었다. 변한 건 어눌해진 말투뿐이었다.


12 순교자 가운데 유일하게 서기훈 목사만 순교비가 철원군 동송읍 장흥리 장흥교회 뒤뜰에 세워져 그의 순교사가 전해지고 있다. 장흥교회는 1920년 장방산 아래 설립된 이래 80년 째 그 자리에서 서있다. 그리고 이웃 한탄강 언덕의 대한수도원은 장흥교회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낱낱이 지켜봤던 산 증인이다. 그나마 서목사의 순교사가 정리될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한사연 목사처럼 나머지 11사람은 지금 어느 후손 또는 어느 성도의 가슴에 묻혀 파낼 수 없는 가시가 된 채 DMZ 벌판을 떠돌고 있을 것이다.


바이블루트의 사건에 대한 유일한 기록은 《감리교회 서부연회 수난사》(윤춘병 저)에 담겨 있다. 그러나 이 기록은 빈칸이 너무 많다. 방승학 목사는 그가 시무했던 교회를 밝히지 못했으며 월정교회에 지석교회에 시무하다 피랍된 김유해 목사와 월정교회 이운성 전도사는 납치일을, 석왕사교회에서 순교한 김축수 목사는 순교일을 적지 못했다. 유득신 장종식 목사는 시무교회도 납치 또는 순교일을 적지 못했다. 이 기록의 내역 란은 더욱 불충분하다. “그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하다 순교했느냐?”는 질문에 충분한 답변을 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이 기록을 꽤 오래 전에 입수했다. 그리고 원로학자가 못 다 채운 빈칸이 어떻게 채워지는지 유심히 관찰했다. 누군가 순교자들의 자취를 찾아 DMZ 벌판을 구도자처럼 걷고 있는 사람들이 반드시 나타날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그들이 한 발짝, 한 발짝씩 DMZ에 다가서며 십자가를 세우던 젊은 목회자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일에 관심이 없거나 무지했다. 어떤 이는 “내가 맡은 사명이 아니라”고 끝까지 얘기를 듣지 않았으며, 어떤 이는 “함부로 순교라는 말을 쓰지 말라”고 충고했다.


노인들에겐 시간이 더 빨리 흘러가는 것 같았다. “기억을 더듬어 한 번 자세히 얘기해 주겠다”고 하던 노 장로가 문득 생각나 그를 찾아갔을 때 이미 그는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또 다른 이는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바이블루트의 그 사건은 이제 더 먼 옛날 얘기가 돼 있었고, 보나마나 "꾸며낸 얘기"라고 비아냥거릴 사람들의 비웃음은 더 커질 것이다.


그런데도 그 '빈칸'을 채울 그를 아직 나는 만나지 못했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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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38)


선입견 하나를 송구함으로 버리다


벅차게 수피령을 오를 때에 비하면 내리막길은 편하고 쉬웠다. 경사가 그랬고, 바람이 그랬다. 걸음을 옮기며 따로 힘을 주지 않아도 걸음은 절로 옮겨졌다. 땀 흘린 뒤에 맞는 바람은 여느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시원했고 고마웠다.


몸도 마음도 가볍게 걸어가고 있을 때 저만치 한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수현공원>이었다. 인적도 없는 이 한적한 곳에 웬 공원, 생뚱맞고 어색하게 여겨졌다.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은 같은 이름을 가진 한 탤런트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워낙 드라마와는 담을 쌓고 살지만 그래도 같은 이름을 가진 한 탤런트의 얼굴이 생각났다.


지자체마다 수익이 되는 사업을 경쟁적으로 벌이다보니 빚어진 일이 아닐까 싶었다. 혹시 철원군 근남면 육단리가 그 탤런트가 태어난 곳이고, 아무리 그가 유명하다고 해도 이런 외진 곳에 공원까지 세우는 것은 지나친 발상이다 싶었다.


공원 앞을 지나칠 때 잠깐 걸음을 멈추고 공원 쪽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잠시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펼쳐져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탤런트의 얼굴이 아니라 충혼비였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공원으로 걸음을 옮겨 충혼비에 새겨진 글을 읽어보았다. 거기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사연들이 적혀 있었다.


김수현 병장 충혼비. 외진 곳에 <수현공원>이 마련된 이유를 대번 알 수가 있었다.


<수현공원>의 주인공이자 충혼비의 주인공인 김수현 병장은 1964년 11월14일 수피골 일대 대침투작전 때 숨은 적을 추격해 1명을 사살한 후, 또 다른 1명과 전투 중 복부 관통상을 입었으나 사력을 다해 적에게 관통상을 입히고 현장에서 숨졌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남파된 북한 공작원들은 최정예 군인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교전이 얼마나 치열했을까 싶다. <수현공원>에는 추모비를 중심으로 북한군의 침투로, 은거했던 바위, 전투호, 교전 중 발생한 피탄 흔적 등이 보존되어 있었다.


적의 침투로. 글씨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글씨 옆으로 한 병사의 모습이 보였다.


흰색으로 표시된 작은 원들이 그려져 있는 커다란 바위가 김수현 병장과 교전하던 북한 병사가 몸을 숨기던 곳이었다. 바위에 표시된 흰색 원은 교전 중에 생긴 총알 자국이 남아 있는 곳이었다.


잠깐 <수현공원> 일대를 둘러볼 때 마음이 숙연해졌다. 1964년이라면 내 나이 겨우 5살, 내가 알지도 못할 때에 누군가는 나라를 지키다가 한창의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었던 것이었다. 서로 교전을 벌였던 북한 병사도 비슷한 나이 아니었을까? 그 또한 명령을 받고 남쪽으로 넘어와 임무를 수행하던 중 목숨을 잃었다.


서로를 향해 총을 난사했을 당시, 얼마나 두려웠을까. 

내가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살 수 있다는.


생각해 보면 모두가 젊은이들, 남과 북 사는 곳은 달랐지만 모두가 이 땅의 젊은이들이었다. 분단 상황만 아니었다면 얼마든지 같은 나라 같은 젊은이로 이 나라를 이끌어갈 이들이었다. 어쩌면 같은 학교에서 만나 공부를 했을 수도 있고, 혹 잘하는 운동이 있었다면 같은 팀에서 운동선수로 땀을 흘렸을 수도 있었을 것이며, 공부를 마치고는 같은 회사나 공장에 다니는 동료가 되었을지도 모를 이들이었다.


분단의 땅에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프게 전해져 왔다. 공원을 빠져나오며 처음 섰던 충혼비를 찾아가 그 앞에 다시 섰다. 머리를 숙이고 눈을 감자 나도 모르게 당시의 상황이 떠올랐다. 극도의 긴장 속에 서로를 향해 총을 쏘아댈 때, 얼마나 떨리며 두려웠을까?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상대를 죽여야만 내가 살 수 있다는, 그런 생각을 하는 내 마음까지를 떨리게 하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다시는 그런 일 이 땅에 없기를, 이 땅의 젊은이들 사이에 서로를 향해 총을 쏘아대는 일이 없기를 기도하며 추모했다.


다시 걷는 길, <수현공원> 표지판을 보며 가졌던 선입견을 미안한 마음으로 버린다. 돌아보면 우리는 별 것 아닌 것에 별별 선입견을 가진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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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37)


오르막과 내리막


수피령은 정말 만만한 고개가 아니었다. 로드맵에도 수피령을 두고는 ‘직등코스’라 적혀 있었고, 전날 길을 걷던 중 우연히 만나 긴 이야기를 나눈 심마니도 마음을 단단히 먹고 넘어야 한다고 일러준 터였다.


‘수피령’이라니, 무슨 뜻일까 궁금했다. ‘물 수’(水)에 ‘가죽 피’(皮)에 ‘재 령’(嶺), ‘水皮嶺’이라 쓰고 있었다. 어찌 그런 이름을 얻었을까 싶은데 함장로님은 ‘말이 씨가 되었나, 96년 대홍수 때 대성산 수피령은 온통 물을 뒤집어쓰는 대피해가 있었다.’고 수피령에 얽힌 일 한 가지를 소개했다.


이른 아침 숙소 앞에 있는 식당에서 국밥을 먹고 길을 나섰다. 막 퍼지기 시작하는 볕인데도 벌써 더위가 느껴질 정도였다. 단단히 마음을 먹으라 한 고개이니 여느 길보다도 마음을 다잡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도 일종의 오기였을까, 고개를 다 넘기 전까지는 쉬지 않겠노라고 마음을 먹었다. 힘든 길일수록 중간에 쉬면 쉬고 난 다음이 어려웠다. 배낭은 더 무겁게 느껴졌고, 걸음은 나도 모르게 무거워지곤 했다.


수피령은 두 가지 점에서 어려웠다. 하나는 완만한 경사였고, 다른 하나는 급한 경사였다. 완만한 경사가 끝없이 이어졌다. 완만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았다. 완만한 경사는 언제인지도 모르게 내 안에 있는 힘을 다 소진시키게 했다. 차라리 힘이 들어도 급한 경사를 단 번에 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 마음을 알았다는 듯이 어느 순간 급경사가 나타났다. 그야말로 한 걸음을 옮기기가 쉽지 않은 경사였다. 한 번 주저앉거나 자빠지면 데굴데굴 굴러 처음 떠났던 자리로 물러설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느새 입에서 터져 나오는 숨은 증기기관차에서 내뿜는 김처럼 뜨겁고 소리도 거칠어졌다. 심장은 부풀어 오를 대로 부풀어 올라 “뻥!” 하며 터지기 직전의 풍선처럼 한 순간에 파열될 것만 같았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느껴보는 몸의 한계였다.


마침내 나티난 수피령 정상. 고개 하나를 넘기가 이리도 어렵다니,

 인간이 갖고 있는 한계가 자명하게 여겨졌다.


몸의 한계를 느끼는 것을 좋아했었다. 신학을 공부하던 시절이었다. 서울 냉천동에 있는 감신대(監神大)에서는 해마다 가을이 되면 학년 대항 체육대회를 했다. 과(科)라고는 달랑 신과(神科) 하나, 한 학년 학생이라고는 50명, 당시의 감신대는 마치 수도원 같은 분위기였다.


한 학년이 50명인데다가 우리 학년은 유난스레 여학생이 많았다. 내 기억에는 16명이었지 싶다. 남학생들 중에서도 더러 군대를 가고 휴학을 하고 나면 그 수는 더 줄어들었다. 운동을 좋아하기도 했거니와 학생도 부족하다보니 나는 거의 모든 경기를 뛰어야 했다. 당시의 주종목은 배구와 농구였는데, 경기를 모두 마치는 오후가 되면 거반 녹초가 되었다.


체육대회의 마지막 종목은 단축 마라톤이었다. 이미 몸은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지만 마라톤도 뛰었다. 그 때 느낀 것이 몸의 한계였다. 심장이 파열될 것 같은 한계를 마주하며 계속 달리는 것은 고통스러웠지만 뭔지 모를 희열 같은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1학년 때의 경험을 친구에게 이야기하여 2학년 때는 친구와 함께 뛰기도 했다. 수피령을 오르며 그 시절 느꼈던 감정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학!, 학!, 학!”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탄식처럼 비명처럼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 때마다 단내가 확 풍겼다. 그러던 중 마침내 더는 견딜 수 없다 싶은 순간이 왔다. 고개를 넘을 때까지는 쉬지 않기로 한 다짐을 포기해야 할 것 같은 순간이었다.


나는 목사다, 마지막 한계에 왔다 싶을 때 내뱉는 소리와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학!” 소리를 “주여!”로 바꿨다. 자신이 매달릴 무거운 통나무를 자신의 어깨에 메고 쓰러질 듯 쓰러질 듯 비척거리며 골고다 언덕을 오르던, 그러다가 여러 차례 쓰러졌던 예수님을 생각했다.


내가 등에 메고 있는 것은 고작 배낭 하나, 게다가 채찍을 내리치는 로마군병도 없지 않은가, 사람들의 조롱소리가 들리는 것 아니고. 그런 생각을 하며 한 걸음 또 한 걸음을 옮겼다. 몸과 마음의 한계 속으로 누군가가 가만 웃으며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화천과 철원은 수피령을 경계로 나란히 자리잡고 있었다. 고개는 오르기가 힘들었지 내리막길은 저절로 가는 것 같았다. 우리는 견딘 것 만큼을 누리는 것이었다.


마침내 나타난 정상, 고개에 올라서자마자 나는 고꾸라지듯 길가에 주저앉고 말았다. “나는 요새 눕기보다 쓰러지는 법을 배웠다.” 황동규 시의 한 구절일 것이다. 해발 780m 고개를 넘기가 이리도 어렵다니, 인간이라는 존재가 갖는 한계가 자명하게 여겨졌다. 배낭에 기대 누워 생각하니, 고개를 다 넘은 여유 때문이었을까, 옛 시절 보릿고개를 넘는 일은 수피령 고개 넘는 일과는 비교도 안 되었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서 오십시오, 청정지역 철원입니다’


눈앞에서 반기고 있는 표지판 속 ‘철원’이라는 글자가 더없이 반가웠다. 화천과 철원은 그렇게 수피령을 경계로 나란히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고개 정상까지 오르기가 어려웠지 그 다음은 쉬웠다. 로드맵에 적혀 있는 것처럼 ‘30리 내리막길’이 이어졌다. 저절로 가지 싶은 걸음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도움이 되었던 것은 바람이었다. 저 아래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수피령을 오를 때는 없던 바람이었고, 고개를 오르느라 수고했다는 듯이 온 몸 다 젖은 땀을 내내 말려주었다.


살다보면 오르막길을 만나기도 하고 내리막길을 만나기도 한다. 계속 오르기만 하는 오르막길도 없고, 언제까지나 내려가기만 하는 내리막길도 없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은 서로 어울리며 이어진다. 오른 자만이 내려갈 수가 있다. 내리막길을 가볍게 걷는 즐거움은 오르막길을 힘겹게 오른 자만이 누릴 수가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참아낸 만큼을 누리는 것이었다.


내리막길을 걷고 있자니 마치 누군가가 뒤에서 등을 밀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오르막길을 걸을 때에 비하면 저절로 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순간 퍼뜩 드는 생각이 있었다. 정말로 누군가가 내 등을 밀어주었던 때는 힘겹게 오르막길을 오를 때였다는 생각이었다. 누군가가 등을 밀어주었기 때문에 벅찬 오르막길을 끝까지 오를 수가 있었던 것이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의 등을 밀어주는 때는 내리막길을 편하게 내려갈 때가 아니라, 오르막길을 힘겹게 오를 때였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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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36)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들


뜻이 있어 그렇게 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걷는 기도의 일정은 열하루로 정해졌다. 주일 지나 월요일에 길을 떠났고, 길 떠난 다음 주 금요일에 말씀을 나눌 신우회 예배가 있어 목요일까지는 돌아와야 했는데,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열하루의 일정이 정해질 수밖에 없었다.


고성의 명파초등학교에서 파주의 임진각까지의 거리를 열하루의 일정으로 나누니 조금 무리다 싶긴 했지만 그렇다고 아주 불가능한 거리가 아니었던 것도 일정을 정하는데 있어 큰 몫을 했다.


일정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채 길을 떠났는데, 곰곰 그 의미를 생각한 이들이 있었다. 같은 지방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천성환 목사님은 길을 걷고 있는 내게 다음과 같은 글을 보내주었다.


길을 걷다가 만난 벽화. 이불에 지도를 그리고는 옆집으로 소금을 얻으러가던,  

어릴 적 내 모습이 그림 속에 담겨 있었다.


샬롬!

폭염에 목사님 건강을 지켜 주시길 손 모읍니다. 전 요즘 성도들과 함께 민수기 말씀을 큐티하고 있는데…,


모세와 함께 시내산을 출발하여 가데스바네아까지 열 하룻길이었는데, 도중에 메추라기 일로 한 달을,, 미리암이 모세를 대적한 일로 일주간을 광야에서 더 머물러야 했지요. 정탐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었는데,,, 정탐을 고집한 이스라엘 공동체를 보면서…


인간의 명석한 이성(?)이 당대와 다음 세대에게 얼마나 고통을 안겨 주었는지 실감합니다.


목사님의 열 하룻길의 걸음이 제 목양 사역에 돌아가는 길이 아니길 기도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주님과 함께 걷는 목사님의 발걸음!》



가데스바네아는 길을 걸으며 묵상하기에 더없이 좋은 내용이었다. 주일을 맞아 혼자 예배를 드리며 가데스바네아를 생각했던 것도 천 목사님의 글 때문이었다. 자연스럽게 지금의 내 목회와 섬기고 있는 성지교회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걷는 기도를 마치고 돌아와 교역자회의에 참석했을 때였다. 회의를 마치고 마주앉아 식사를 하던 고신복 목사님은 걷는 기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서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성서원어를 공부하는 일에도 열심인 고 목사님은 언제라도 기회가 되면 꼭 걸어보고 싶다며 내가 걸었던 일정표를 구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함 장로님이 만들어 주신 로드맵을 메일로 보냈더니 정성이 담긴 답장을 보내주었다.


들판에 서 있는 솟대. 허름한 솟대지만 그것을 세운 이의 마음은 지극했을 것이다.


샬롬

늘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격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자료를 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로드맵을 읽으면서 처음 출발하셨던 명파초등학교가 제 장인어른이 교장으로 처음 발령 나신 곳이어서 눈길이 갔습니다. 또한 목사님께서 걸으신 명파초등학교에서부터 임직각까지의 로드맵이 출애굽의 로드맵 가운데 라암셋(고센)부터 마라까지의 여정과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서 의미를 부여 해 보았습니다.


1) 여정에서 두 가지의 공통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로 이스라엘이 출애굽 하여 200만 정도의 사람들이 하룻길을 걸은 거리와 목사님이 하룻길을 걸은 거리가 거의 비슷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걸은 로드맵은 말씀을 드린 것과 같이 고센에서 마라까지를 제한한 거립니다. 출애굽한 백성들도 거의 하루에 평균 30km를 걸었는데 목사님도 하루에 평균 30km를 걸으셨네요.


둘째로 이스라엘이 라암셋을 출발하여 마라까지 걸린 일자가 10일인데(제가 조사해 본 지금까지의 자료를 통해서 보면) 그 기간 동안 걸으셨네요. 유대의 날짜는 오후 3시를 관습에 따라서 하루를 시작하는 저녁의 시작이라고 보고 오후 6시를 저녁의 완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목사님께서 점심 식사 후에 명파 초등학교를 출발했다고 보면 유대 날짜의 계산으로 보면 10일이 되네요.


2) 의미적으로 공통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임진각’까지 도착했을 때 많은 교훈을 얻으신 것을 교역자회의를 마치고 듣고 싶었지만 많은 것을 전해 듣지 못해서 아쉬웠습니다. 날씨도 좋지 않은 상태에서 홀로 300km가 넘는 거리를 걸으시면서 많은 싸움을 하셨을 텐데 그 싸움에서 승리한 교훈을 가지신 목사님이 부럽기도 합니다. 목회의 여정 속에서 많은 교훈을 얻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마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받은 십계명에 앞서서 십계명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두 가지의 교훈(법도와 율례)을 받은 곳이어서 마라가 마치 임진각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쓴 물을 달게 해 주신 후에 ‘법도와 율례’(출 15:25)를 주셨는데 그것은 십계명의 기초이기도 합니다. 법도(호크, ‘하카크’ <새기다> : 엄중한 계명으로 십계명 1-4번째 계명에서 표현할 때 사용)는 보통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주로 사용하고(아닐 때도 있지만), 율례(미쉬파트, ‘샤파트’ <재판하다> : 인간 사이에서 재판하는 것으로 5-10번째의 계명에 사용)는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서 주어지는 법을 말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제가 로드맵을 받은 후에 마음이 떨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제가 목회하면서 어떤 액티비티를 통해서 다시 한 번 제 자신을 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려고 했습니다. 목사님께서 11일간의 수고한 여정을 제가 복사하듯이 마음에 품었다가 언젠가 한 번 시도해야겠다는 마음이 더욱 들었습니다. 힘든 과정이겠지만 출애굽을 했던 백성들을 생각하고, 그 가운데서도 고독했을 것 같은 모세를 생각하면서 한 번 도전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임진각에 도착했을 때 목회의 전환점에서 하나님께서 다시 제 마음에 새겨 주실 법도와 율례를 생각하고 시도해 봐야겠습니다.


요즘 목회의 한계라 할까요? 많이 힘들었는데 무엇인가를 다시 해 봐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것 같이 걸으면서 기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 볼까 합니다. 기도해 주세요.


언제 멈춘 것일까, 경운기를 온통 칡순이 덮고 있었다.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말해주는 것이 있다. 되늦게서야 알게 되는 의미도 있다.


생각지 못하고 보낸 일정, 그러나 두 목사님의 글은 내가 걸었던 길의 의미를 새롭게 해주었다. 우연히 정한 일정이었지만 그 안에도 얼마든지 마음에 새길 나도 모르는 의미가 담겨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뒤늦게 깨닫게 되는 의미들이 있다. 돌아보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우리의 삶에는 있다.


“오, 맙소사! 죽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한 번도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다니!”


H. D. 소로우가 했던 말도 어렴풋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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