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썽이며 조심스럽게 지구별을 거니는 사람에게

 

늘 마주하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만으로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삶을 돋우는 디딤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희망의 틈새를 발견하기 쉽지 않은 이 시절, 더더욱 이런 사람 하나가 또 다른 삶을 일으킵니다. 목사님 글을 챙겨 읽으면서 마주한 듯 가까운 마음이 일곤 했습니다. 자주 생각을 돋우고 마음결을 벼렸습니다. 이름이 보이면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리운 벗이 보낸 편지를 읽듯, 목사님의 편지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를 아껴 읽었습니다.

 

생명을 우뚝 우뚝 일으키던 ‘손이 아름다운 사람 예수’를 날마다 그리며, ‘물결처럼 가벼우면서도 산맥처럼 무거운 손’을 잡고 살아오신 지난 시간이 그려지는 듯 했습니다. 일상에 담긴 성스러움, 그늘진 자리, 사람들이 귀 기울이지 않고 마음을 두지 않는 곳에 먼저 눈길이 미치고, 먼저 뿌린 씨앗이 싹이 나지 않아 다시 뿌리는 ‘움씨’ 같은 심정을 읽었습니다.

 

아픔의 자리에 조심스레 다가서서 손을 내밀고 그곳에 자주 일상을 내려놓는 ‘글썽이는 마음’을 읽었습니다. 수백 년 고목도 해마다 여리디 여린 새순, 새잎으로 살아가듯 예민한 마음 촉수를 뻗어 아프고 설운 순간들을 고스란히 품고 ‘하루하루 중심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편지를 펴보면서 제가 만났던 두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오래 전 정읍에 사시는 한 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그분은 여든을 훌쩍 넘겼지만 날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셨습니다. 그분은 멀쩡한 것도 다 내다버리고 허투루 대하는 세태를 늘 안타까워하셨습니다. 물건들을 한 순간에 쓰레기로 만들어 버리는 고약함이 서운하고 마음을 무겁게 했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버림받아 서운한 것들, 쓸모를 찾지 못하고 버려진 것들을 모으기 시작하셨답니다. 버려진 것이 제자리를 찾는 세상을 두 손으로 손수 만들기로 마음먹었던 거지요. 그리하여 그분은 천덕꾸러기로 나뒹굴던 것들의 쓸모를 찾고 구석구석 이야기를 담아 산자락 아래 작은 놀이공원을 손수 만들었습니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쓸모를 찾았습니다. 날마다 줍고 덧대고 잇고 꿰매고 칠해 눕히고 세우면 그 공간에서 그것들은 나름 쓸모를 찾아 소소한 이야기가 담겼습니다. 쟁반과 냄비뚜껑이 악기가 되어 무대에 놓이고, 알록달록 색을 칠한 버려졌던 냉장고를 열면 장난감들이 가득합니다. 온갖 세련된 것들이 쏟아지는 세상에서 온갖 잡동사니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쓸모를 찾아 자리차지를 했습니다. 버려진 동물들도 보듬어 공원 한 쪽에 집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온갖 것들이 다 제 색과 모양을 찾았습니다. 측은하고 딱한 것들이 살터와 일상을 만나는 자리였습니다. 그분에게서 글썽이는 마음을 보았습니다. 이렇듯 약한 것들을 글썽이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버려진 것에 눈길을 주고 손을 내밀었던 세월이었습니다.

 

 

 

모든 존재 하나하나가 서로를 품고 아우르며 사는 세상

 

다른 한 분은 4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중국 내몽고 사막에서 나무를 심고 있는 인위쩐이라는 분입니다. 한 행사에 초대를 받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거칠고 모진 모래바람이 부는 사막을 초록의 땅으로 바꾸려는 사람, 그분은 생명의 흔적도 없는 황량한 죽음의 땅에서 오직 살아남기 위해 나무를 심기 시작했답니다. 쉼 없이 날마다 먼지바람을 무릅쓰고 사막으로 나갔던 거지요. 그리하여 마침내 부지런하고 억척스러운 한 사람이 어떻게 사막을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줬습니다.

 

사막은 어느새 옥수수가 자라고, 수박이 넝쿨을 뻗고, 미루나무 숲에 새들이 날아오고, 동물이 깃드는 생명의 땅이 됐습니다. 날마다 그녀의 손길을 기다리는 나무, 일일이 찾아다니며 물을 줘야 하는 나무만 2만 그루가 넘는다고 합니다. 힘겹게 가녀린 잎을 내민 나무에 그녀는 물동이로 물을 날랐습니다. 한 방울의 물이라도 옆으로 새나가면 아깝고 안타까웠답니다.

 

한국을 방문한 그녀는 눈 닿는 곳마다 초록이 가득한 이 땅이 부러웠고, 동시에 사막의 나무들이 눈물 나도록 측은하다 했습니다. 사막에 나무를 심는다고 자신의 땅이 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다만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은 ‘날마다 지구에 나무를 심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땅에 붙어있으면 내 나라와 내 집 밖에는 안 보이지만, 시선을 넓혀 하늘에서 보면 지구가 바로 자신의 집이고 오로지 지구만 생각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시작해야 두 번째 사람이 있고 세 번째 사람이 있지 않겠냐고 했습니다.

 

그녀에게 나무는 일상이고 평화이고 꿈이었습니다. 막막한 사막에서 외로움과 두려움에 울부짖던 처음부터 지금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고 변화도 있었지만, 단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그 사막에 인위쩐이 아직 초록같이 살아있다는 것, 그리고 한결같이 풀씨를 뿌리며 나무를 심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사막에 나무가 뿌리를 내려 숲의 일상을 찾아 가는 것, 그것이 그녀가 꿈꾸는 세상이었습니다. 그분에게도 글썽이는 마음, 풀 한 포기를 생명 같이 여기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목사님의 편지 속에서 간절하게 절망과 두려움의 안대를 벗고 함께 일어서서 어깨동무하고 함께 걷자고 말을 거는 길동무를 보았습니다. 집착하거나 머무르거나 사로잡히지 않고, 움직이며 만나는 삶을 마주했습니다. 터무니없이 뒤엉킨 세상, 막막하고 끝 모를 아픔으로 채워진 자리,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를 안타깝고 참담한 시간 한 복판에서 ‘작고 사소하고 연약한 것들에 눈길을 두며’ 글썽이며 보듬어 안는 뜨거움을 읽었습니다. 목사님은 척박하고 냉담한 시절, ‘좌절과 무기력’이 지배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걸어서 길을 내고, 두 손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세상을 고치는’ 치열하고 뜨거운 마음에서 희망을 보셨다고 했습니다.

 

확성기를 통한 쩌렁한 소리가 아니라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고 건네는 말, 손으로 마음 담아 꾹꾹 눌러쓴 투박한 편지가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를 일으켜 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작은 상처에도 온 신경과 온 몸이 그곳에 집중되듯, 세상의 중심은 아픔이며 아픔을 품고 있는 사람과 서럽고 속상한 아픔의 자리라는 것도 분명합니다.

 

절망의 동굴에 갇혀 있지 않고 문을 열고 나서서 두 발로 땅을 딛고 서면 세상의 모든 숨 있는 것들이 서로에게 디딤이 되고 생명이 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온갖 칸막이와 담벼락이 우리를 가두거나 주저앉히고 움직이지 못하게 눈과 입을 막아온 시간을 아프게 바라봅니다. 스스로 눈멀어 두려워하며 내 안에서 한 걸음도 밖으로 나서지 못했던 순간들이 가슴을 칩니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때로는 스스로 쌓은 허상 같은 벽을 허무는 힘은 작은 틈을 내는 용기, 벽돌 하나 부수는 절박함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믿습니다. 길을 나서면 온 대지가 내 발을 떠받치고 밀어 올리고 힘을 보태 늠름하게 길을 걷게 한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돌이켜보면 작은 돌멩이 하나, 길 옆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빈 가지에 깃든 새 한 마리, 작은 시내, 모든 존재 하나하나가 서로를 품고 아우르며 살게 했다는 것을 느낍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사는 자리, 삶의 자리, 장소가 되어줍니다. 이렇게 내가 너에게 장소이며 너는 또 다른 누구에게 장소, 사는 자리입니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어 서로에게 흘러 닿습니다. 예전에는 한 아이가 커가는 동안 마을이 있었습니다. 마을 곳곳 모든 것이 아이에게 장소가 되어 아이를 키웠습니다. 아이가 뛰어다니고 뒹굴고 넘어지고 일어서면서 만났던 하나하나가 바로 아이 안에 들어찼습니다. 지금은 조각조각 나뉜 캡슐에 들어가 관계 짓는 법을 잊고 삽니다. 이렇듯 장소의 회복은 삶과 생명의 되살림이며, ‘장소를 떠나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당부를 편지에서 읽었습니다.

 

 

저는 지금 마음을 가로지르는 나직한 노래를 듣습니다. 편지에서 편지로 이어지는 갈피 마다 마음을 기울이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하지만 어느 순간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가슴을 파고드는 노래 말입니다. 바닥까지 내려가 아파하고 견디기 어려운 낯선 상황이 몰아쳐도, 나지막한 가락이 꿈틀거리며 몸을 일으키고 생각을 일으킵니다. 사는 동안 삿된 흔적을 남기지 않고, 순간마다 마음 다해 치열하게 타오를 수 있을까, 자신에게 질문합니다.

 

사는 동안 거창한 이름표나 어떤 기념비를 앞세우는 것은 아무 소용이 되지 않습니다. 허망한 일입니다. 날마다 순간마다 ‘시간과 화해하며 오로지 현재를 살아가는 것’, ‘지금에 오롯이 집중하며 날마다 삶의 기적’을 마주하는 것, 그렇게 ‘정신의 현재’를 놓치지 않는 것만이 우리의 삶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현재는 얼굴에 고스란히 담깁니다. 얼굴은 시간과 소통해온 기록입니다. 누군가 얼굴은 ‘얼이 들고 나는 굴’이라고 새겼는데, 지금껏 어떤 낯빛을 내보이며 살았는지 거울을 보듯 편지를 읽습니다.

 

‘눈물은 머리의 것, 울음은 온몸의 것’

 

요즘 우리가 사는 이 땅의 마을을 보면 참담한 마음이 듭니다. 얼마나 더 절망하고 나서야 칠흑 같은 아픔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시냇물 소리를 듣고 숲에서 달려 나온 바람 소리를 듣고 작은 새들의 노래를 들을 수 있을까요? 어디쯤 이르러 사람 얼굴 하나하나 알아보고 제 이름으로 마주할 수 있을까요? 들풀 하나하나에 깃든 생명의 손을 잡고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의 이름을 불러주게 될까요? 언제쯤 사람의 마을은 사람의 노래를 부르며 밥 짓는 냄새 고소한 하루하루를 한가로이 살아갈 수 있을까요?

 

목사님 말씀대로 ‘욕망의 벌판을 질주하며 모질게 변해버린 심성’이 뾰족하게 날을 세우고 더더욱 욕심껏 시대를 탐하고 있습니다. 참담한 극단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극단은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 제어장치 없는 폭주기관차입니다. 무엇을 향해 무엇을 위해 달리는지 알지 못하는 속도로만 그 얼굴을 드러냅니다. 얼굴 없는 기계장치 같은 속도만 남았습니다. 그것은 욕망의 표현입니다. 앞지르고 지배하려는 욕망의 다른 이름입니다.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아 자신을 확장하려는 욕망과 닿아 있습니다. 저마다 겪어야 하는 과정이 생략되고 당연하게 만나고 기다려야 하는 시간을 무시하고 앞지르기를 합니다. 이렇듯 설익는 과정이 이러한 마땅한 과정을 생략해서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파괴하고 사람다움을 상실하게 합니다.

 

‘영혼을 빼앗긴 멍한 시선’으로 ‘세상의 북소리에 발을 맞추며’ 휘둘리는 현실입니다. ‘적당히 적응하며 살라’는 말에 뭉툭한 생각이 되어 ‘자신을 함부로 하려는 대로 내버려둔’ 시절입니다. 편지를 읽으며 다시 마음을 벼립니다.

 

어떤 시인이 ‘눈물은 머리의 것, 울음은 온몸의 것’이라 했습니다. 바닥에는 몸짓이 있습니다. 온몸으로 있는 그대로 생겨먹은 대로 움직이며 말합니다. 어깨를 들썩이며 부둥켜안고 몸으로 흐느끼는 울음이 있습니다. ‘글썽이는 마음’이 있습니다. 살아있다는 것을 말로 모두 풀어낼 수는 없습니다. 온몸으로 꿈틀거리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허깨비 같은 시간이 아니라 포장되지 않은 알맹이 같은 치열한 일상이 살아 움직이는 삶 말입니다.

 

편지에서 말씀하셨듯이 ‘속된 것 따로, 거룩한 것 따로인 가짜’가 아니라 ‘아프고 연약한 것이 중심인 세상’에서 ‘온 몸으로 흔들리며 걷는’ 모습을 봅니다. 역사는 누가 대신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을 사는 사람들이 아프게 때로 참담하게 역사를 몸으로 채워갑니다. 앞뒤를 바꾸어 버리고 무엇이 소중한지 보는 눈을 잃어버린 시대는 역사의 땅에 발을 딛지 않고 허망한 미래를 말합니다. 숟가락으로 땅을 헤쳐 보고는 ‘물 없음’ 팻말을 세우고 떠난 사람처럼 말입니다. ‘진창 같은 역사’라도 역사의 참담한 현실에서 비켜서지 않고 정의로운 평화의 역사를 발견하고 일으켜 세우는 우리의 치열한 삶이 ‘의미의 저장소’가 될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가 끊임없이 그랬던 것처럼, ‘과거와 대화하며, 현재를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이며 ‘이정표’이기도 합니다.

 

김 목사님, 지금을 살아가려 합니다. 거창할 것도 요란할 것도 없는 일상에 치열하려고 합니다. 작은 것들이 어울려 만들어 가는 힘을 믿으며, 나직하게 오롯하게 늠름하게 오로지 지금을 가로질러 가려고 합니다. 차디찬 바닥을 깨고 반란 같은 봄풀이 돋듯 일어서는 꿈을 꿉니다. 몸으로 대답을 준비하여 길을 나섭니다. ‘길은 거울 같은 것이다. 길을 나선다는 것은 자신을 길에 비추어 보는 것’이라는 말을 새기면서 식물성 속도로 천천히 숨결과 곁을 헤아리며 걷습니다.

 

김기돈/<작은것이 아름답다> 편집장

 

<희망, 그 빛깔 있는 삶의 몸부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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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

 

그동안 잘 계셨는지요? 보내주신 편지 잘 받았습니다. 쓰신 편지들을 읽으면서 저는 그 속에서 제 이름이라도 호명될 것 같은 설레는 마음으로 편지의 수신자가 되어 있었음을 고백하고 싶습니다. 답글 한번 보내드리지 못한 현실이지만 그래도 변함없이 제 입장을 지지해주실 너그러움을 잊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누군가의 처지를 살피는 마음이 유난하신 분이기에 제 처지는 언제나 선배님의 시야 안에 놓여 있음을 많은 편지들 속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더 이상 어떤 소리를 들을 수 없는 들녘

 

「소리가 이루는 장엄한 세계」에서 유년시절에 들었던 소리들을 표현해 주셨네요. 그 대목에서 제 심장이 그 소리들을 따라 요동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많은 소리들을 따라가다가 그만 울컥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보글보글’ ‘자작자작’ ‘탁탁’ ‘사르륵사르륵’ ‘솨아솨아’ ‘똑똑똑’ ‘꿀꿀꿀’ ‘구구구구’ ‘컹컹’, ‘참새, 직박구리, 꾀꼬리, 뻐꾸기, 꿩, 멧비둘기, 뜸부기, 부엉이, 소쩍새 등 각종 새울음소리들’, 다듬이질 소리, 새 쫒는 소리, 알밤 떨어지는 소리, 얼음장 깨지는 소리, 문풍지 떠는 소리 …(69-72쪽).

 

어릴 적 들었던 기억속의 소리들이 거기에 있었고, 그 소리들은 단지 추억이 아닌 한 사람의 존재의 모양을 만들어낸 소리들로 느껴진다는 말씀에 제 마음이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사실 저는 그 소리들이 그리워 시골에 내려와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소리와 함께 그 소리를 내는 어른이나 듣는 아이들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농촌현실에서 절망을 느끼곤 합니다. 그 소리들은 인간의 삶의 원형에 닿아 있고 생성과 소멸 너머에서 들려지는 영원의 편린과도 같은 소리라고 해석해 주실 때는 그 그리움의 의미와 양이 배가되어 울적한 심정으로 한참 동안 마음이 정지해 있었습니다.

 

농촌에 내려와 처음 만났던 이곳의 들녘은 지금은 더 이상 어떤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죽음의 지경에 빠져 있습니다. 들녘에서 허리를 굽혀 일하던 농부들의 모습과 그들이 일을 하면서 서로 부르는 소리와 노래는 더 이상 들판의 메아리가 되지 못합니다. 돌담 너머로 넘나들던 소리들과 동구 밖에서 노인들과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나누던 이야기 소리는 그친지 오래입니다. 농번기에는 사람을 대신하여 농기계소리가 벌판을 휘젓고 있을 뿐이지 사람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25년 전 이 벌판에 처음 발을 들여 놓았을 때 만났던 어른들이 모두 떠난 지금 외로움을 벗 삼아 홀로 벌판을 지키는 심정이 참담합니다. 씨앗의 이야기는 종묘상이 빼앗고 갔고 노동의 이야기는 농기계에 빼앗겼습니다. 수확의 기쁨은 외국산 농산물에 치여 더 이상 이야깃거리가 되지 못합니다. 피폐해진 농촌 모습의 결론은 이야기가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너무 멀리까지 왔습니다. 수백 수천 년 대지를 바탕으로 이어온 농민들의 이야기 소리는 다시는 복원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어릴 적 들었던 그 소리들을 아직도 기억해내고 그리워할 수 있는 것은 그 마음에 고요함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번잡한 도심의 폭력적 소음을 견뎌내는 것만으로도 벅찬 현실에서 그 옛날 고요함의 흔적들을 끌어올려 소란스런 일상을 정화하고 삶의 관점을 전환시키는 모습이 놀랍습니다. 이것은 단지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고요함 속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들에 귀 기울일 수 있는 힘이야말로 사람이 가진 능력 중에 어쩌면 가장 고귀한 능력일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지요? 세미한 소리 가운데 소명을 위임하시는 분 앞에서 귀가 열린 채로 살아갈 수 있기를 다짐해 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추방당한 이들의 작은 소리와 광야로 내몰린 이웃의 소리에 의도적으로 귀를 기울이는 노력이 필요하고, 그 소리를 외면하는 것은 하나님의 낯을 피하는 일이라고 일침해 주셨습니다. 상대의 말 못하는 작은 소리까지 알아들으려면 우리의 내면은 얼마나 고요해야하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또한 신음하는 이들의 작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사람이라면 얼마나 괴로운 사람이겠습니까? 그런 소리를 듣는 사람의 삶의 무게는 얼마나 무거울까요? 정작 고요함 속에 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초월적인 평온함이 아니라 아픔을 겪고 있는 이웃의 절규인 세상이니, 그 괴로움으로 몸과 마음이 성치 않은 상태를 견뎌내야 하는 깨어있는 이들의 사정을 헤아려 보게도 됩니다.

 

세례요한이 자신을 일컬어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라고 했을 때 광야에서 무슨 소리를 들었을 것인지 짐작해 봅니다. 그 소리가 세례요한의 운명이 되었을 것입니다. 굽은 길을 곧게 하면서 주님이 오실 길을 준비하라는 음성을 접한 사람이 어떻게 편안할 수가 있겠습니까? 소명을 받는 자리에 어김없이 들려지는 소리는 결코 달콤하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서의 여러 소명자들을 통해 알게 됩니다. 동포들의 애타는 절규를 결코 그 마음에서 씻어낼 수 없었던 모세에게 결국은 힘겨운 소명이 주어진 것처럼 말입니다. 고요한 광야에서 일체의 번잡한 소음을 차단한 채 하늘의 음성을 들으며 공생애를 시작했던 예수님의 길이 어땠는가를 보는 것과도 같습니다.

 

 

 

성스러운 공간

 

보내주신 「나는 일필휘지를 믿지 않는다」는 편지에서 공간의 의미와 중요성을 다시금 새겨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3초 이내에 대답할 수 있는 절실한 꿈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마침내 거룩한 공간을 소유하고 싶은 것이라고 대답해 주신 이야기가 제가 가는 길을 환히 비춰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난 십 수 년의 노력을 지속해 오면서 공간 하나를 만들고 있는 저로서는 눈이 번쩍 뜨이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요즘은 공간을 구성하는 방식이 우리의 사유와 삶의 방식을 결정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 어떤 공간에 들어서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행동 패턴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종교시설에 들어서는 순간 사람들은 거룩의 현존 앞에 서 있음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77쪽).

 

유럽여행 중에 만난 성스러운 공간에서 마치 영혼의 고향에 당도한 것 같은 감동을 받았다고 하셨지요? 그 공간을 쉽게 떠날 수 없어서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러 있었고, 또한 그곳에서 알 수 없는 서러움이 찾아왔고 부박한 실존이 떠올라 눈시울이 시큰해졌다고요? 그리고 그때 하나의 꿈을 갖게 되었다고 하셨네요. 들어서는 순간 신의 현존 앞에 선 듯 두렵고 떨림으로 자기를 돌아보도록 만드는 공간,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그 공간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치유를 경험하게 되는 공간을 갖고 싶다고 말입니다.

 

저는 그 이야기 속에서 한 영혼의 순례자를 만났습니다. 마음 둘 곳 없는 이 세상에서 휴식처를 갈급히 찾고 있는 사람 말입니다. 문명이 주는 편리함 안에서는 좀처럼 쉼이 허락되지 않는 존재 조건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을 그곳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영혼의 순례자들은 쉼을 얻을 수 있는 장소를 만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거룩함과 고요함으로 충만하여 그 감동이 사람의 영혼에까지 스며드는 장소를 말입니다. 세상의 소요를 잠재울 만한 힘이 있고, 현재를 태초와 이어주며, 가던 길 멈추고 자신을 정비하고 충전할 수 있는 장소를 저 역시 순례자의 한 사람인 양 갈망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거룩함을 짓는 목수로 살고 싶습니다

 

예수님을 사람들이 ‘그 목수’라고 불렀다고 제게 말씀해 주신 기억이 새롭습니다. 풀어주신 그 호칭의 의미를 제가 하는 일에서 다독이며 살고 있습니다. 안식을 위한 공간과 살림에 필요한 가구들을 만드는 일이 창조의 연속작업으로서 구세주가 되실 분이 업으로 삼기에 잘 어울리는 일이었겠다 싶습니다. 이름 있는 뛰어난 목수로서의 경력에 어울리게 예수님은 우리가 있을 거처를 마련하러 가신다고 제자들에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어떤 장소를 마련하여 그 안으로 들어가는 표현으로 구원을 일러주신 사실을 유념해 봅니다. 목수만이 쓸 수 있는 손 때 묻은 표현과 상상력이 돋보입니다. 그리고 우리 손으로 짓고 있는 많은 구체적인 ‘짓기’의 행위들 - 집짓기, 밥짓기, 옷짓기, 농사짓기, 글짓기, 이름짓기, 사이짓기, 등 - 을 통해 우리가 들어갈 구원의 집이 영원과 잇대어 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어떤 분야의 장인이 된 사람이 그 정신과 그 눈으로 세상을 건설해 간다면 무얼 더 바라겠습니까? 누군가에 의해 이룩된 한 공간이 아득한 옛날 자신이 떠나온 고향의 느낌을 회복시키는 일이라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습니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음에도 타락한 채 낙원으로 돌아갈 길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한 장소가 그 낙원의 데자뷰(旣視感)가 되어 그 원 기억을 조금이라도 유추할 수 있게 해준다면 그 얼마나 고마운 일이겠습니까?

 

오랜 노고와 깊은 정성으로 마련된 장소라면 그 곳에서 순례자는 안식을 얻을 것입니다. 우리네 세상은 그런 수고와 기도를 멈추지 않는 영혼의 장인이 필요하고, 당연 그 몫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순례길을 가고 있는 이들에게 안식과 치유를 주고 새출발을 격려하는 성스러운 장소로서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세워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게 됩니다.

 

목사님께서는 농촌에서 목수와 농부로 사는 제가 부럽다고 하셨지요? 그 말씀이 허투루 던진 인사치레가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농사의 중요성과 농사하는 이들에 대한 미안한 심정을 품고 살아간다는 고백 속에서 우리시대의 회한과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분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도시교회 설교자로서 서재에 신영훈 선생의 『한국의 살림집』이라는 두 권의 책이 꽂혀 있는 것이 의아했지만 그것을 한옥 예배당을 지으려는 제게 선뜻 내어준 그 마음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저희가 농사한 유기재배 쌀이 매주일 교인들의 공동밥상에 올려지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설교가와 인문학자로 살아가면서 관념이 아닌 땅의 현실로부터 출발하여 근원적인 추구를 멈추지 않는 모습, 또한 이웃의 작은 소리를 외면하지 않고 그들과 한 가슴이 되는 모습을 통해 사람들의 영혼에 감동을 주는 글과 말이 세상에 선사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편지를 쓰면서 다시금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성스러운 공간을 완성하기를 계속하자고요. 거룩함을 짓는 목수로 살고 싶습니다. 제 손이 닿는 장소에 고요함과 거룩함이 깃들고, 사랑과 치유의 음성이 들려지는 장소가 되도록 하는 벅찬 일에 정성을 다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농촌에 자연스레 존재해야 할 잃어버린 소리들을 복원하는 일에도 힘을 다해 보겠습니다. 동경하는 소리들이 사라져가는 현실에 절망하거나, 쉴 만한 곳을 찾을 수 없는 피곤한 일상에 포로가 되지 않고 계속하여 행진할 수 있는 힘을 주시기를 기도하면서 주어진 소명을 받들고자 합니다.

 

한 시대의 아픔에 동반으로 존재하시는 분이 제가 가는 길에서 한줄기 조명이 되어 준다고 생각하니 한결 발걸음이 가볍게 느껴집니다. 때때로 저의 시름과 기쁨을 공유해 드리겠습니다. 그때마다 시대의 상실을 좀 더 분명히 기억하도록 일깨워주시고 또한 공동의 희망을 밝혀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평안과 건강을 기원 드립니다.

 

정훈영/단비교회 목사

 

<희망, 그 빛깔있는 삶의 몸부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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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목사님꼐(13)


저마다 선 자리에서 등불 하나 밝히라는 것이지요


처음 책을 받아 보고는 훅 빨려 들어갔습니다.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라는 제목 때문이었겠지요. 자고나면 눈 뜨기가 겁나는 세상에, 오늘은 또 무슨 일이 터지나 하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하는 세상에서,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라니요. 그 책은 마치 저 같은 이들 보라고 쓰인듯하여 책을 잡자마자 냉큼 머리말부터 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당신은 초장부터 이렇게 빠져 나가시더군요. 


“어떤 경우에도 내가 답을 제시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고민을 함께 나누고 싶었을 뿐이다”(7쪽).


‘흠, 그러면 그렇지. 목사라고 별 뾰족한 답이 있을라구…’


약간은 심드렁한 기분으로 책을 읽어 나가다가 이 대목에서 눈길이 멈추었습니다.


“… 세월이 갈수록 그 엄정함과 서늘함으로부터 점점 멀어진 채 순치된 동물처럼 세상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제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마음이 아뜩해집니다. 조금 지친 듯한 느낌입니다. 삶이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41쪽).


‘어라? 목사가 이런 말을 해도 되는 거야? 삶이 지루하다고?’


혹세무민의 바벨탑을 쌓고 있는 교회


그러나 사실은 이 이야기가 참 반갑고 위로가 되는 말이었습니다. ‘아!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저 자신, 젊은 시절 스스로에게 다짐하였던 많은 것들이 어느덧 세월 따라 흐물흐물해져 가는 것을 눈앞에 보면서 살아갑니다. 자신을 곧추세워 보려고 노력은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낡아져 가는 자신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됩니다. 분노는 여전하지만 열정은 식어가는 것 같습니다. 승리보다는 패배의 기억이 발걸음을 머뭇거리게 합니다.


우리가 과거에 싸웠던 독한 권력은 이제 상대하기 어려운 복잡한 권력들에 자리를 내어 줬습니다. 정치를 앞장세우고 자신들은 나서지 않으면서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옭죄는 거대자본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움직이는 그들의 은밀한 손을 통해 법이 바뀌고 제도가 바뀌었고, 국민의 피땀으로 세워진 멀쩡한 공기업들이 민영화됩니다. 국민 전체의 행복을 추구해야 할 국가가 소수 재벌들과 그에 결탁한 관료, 정치인들의 전유물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국민은 점점 개·돼지 취급을 받게 되는 것이겠지요. 국가의 기강을 유지해야 할 사법부 종사자들도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포로가 된지 오래일 뿐 아니라 이제는 자신의 공직을 이용한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있기도 합니다.


역사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는 건지, 죽은 귀신이 된지 오래였어야 할 “유신의 망령”이 다시 현실 속을 배회합니다. 5년짜리 계약직 공무원인 대통령이 전지전능, 만기친람萬機親覽의 절대군주 같이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나라와 국민의 생존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드 배치 같은 문제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서 “이게 왜 논란이 될 사안이냐?”고 오히려 국민을 향해 호통을 칩니다. 그런 대통령 아래 있는 고위공직자들이 국민을 개·돼지와 같이 보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일인지도 모릅니다.


예나 지금이나 OECD 평균을 훨씬 웃도는 노동시간을 감내하며 열심히 일해 온 이 땅의 노동자들, 그들의 형편은 여전히 별로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재벌들은 수백조 원을 현금으로 쌓아두고 있지만 그 돈을 만들어 준 많은 국민은 이제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기도 어렵고, 일을 한다고 해도 사는 형편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습니다.


세상이 이러한데도 이 땅의 많은 교회들은 그 세상 속을 뚫고 가나안으로 나아가는 모세의 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수천당, 불신지옥”같은 혹세무민의 바벨탑을 쌓고 있습니다. 돈이 거의 절대 신앙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종교도, 국가기관도 모두 부패와 무능, 무책임에 얽혀 제 역할을 못하는 현실, 그 총체적이고 거대한 부조리 앞에서 자신은 점점 더 왜소해지고, 무능해 보이고, 아무 역할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겉모양으로나마 숨 쉬고 살아가는 이 삶이 참 지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있음 그 자체’로 다른 사람의 이정표가 될 수 있을까?


갑자기 흥분을 한 것 같군요. 그런 자리가 아닌데 분노의 게이지가 급상승합니다. 어디에 마음 줄 곳도 없고, 마땅히 하소연 할 데도 없는 상태에서 목사님께 글을 쓰다 보니 이렇게 폭발하는 것 같습니다.


새삼 목회자로서 갖게 되는 어려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살이의 고민과 힘듦을 목사님께 하소연 하겠지요? 때론 세상이 왜 이렇게 돌아가느냐는 항의도 들을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미쳐 돌아가는데 하느님의 정의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거냐고 대드는 젊은 청춘은 없나 모르겠습니다. 목사님이라고 해서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다 갖고 있는 것도 아닐 텐데 말입니다. 말씀하신대로 그저 고민을 함께 나누는 정도가 대부분이겠지요. 그러자면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되듯 차곡차곡 쌓이게 되는 그 우울함과 피로감은 누구의 몫이 되는 걸까요? 그런 우울을 떨쳐 버리려는 목소리를 이 책 곳곳에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어둠을 모르는 빛은 불완전하고, 절망을 모르는 희망은 공허”(97쪽) 하다든가, “성숙한 사람은 흔들림과 젖음을 물리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이것을 통해 자기의 유한성을 깊이 자각할 뿐 아니라 그것을 자기 삶의 한 부분으로 수용합니다”(97쪽). 도종환 시인의 시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를 인용하면서 한 말입니다. 흔들리는 자신과 우리들을 위해 바울사도의 서신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맙시다. 지쳐서 넘어지지 아니하면 때가 이를 때에 거두게 될 것입니다”(갈라디아서 6:9). “절망의 심정이 깊어지면 그때가 정말 올까 하는 회의감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든든히 붙들어야 합니다. 움씨를 뿌리는 농부는 자기 속에 있는 절망을 애써 다독이며 희망을 뿌리는 것입니다”(98쪽).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입니다. 


“다른 이들이 만들어 놓은 삶의 문법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던 삶에서 벗어나 자기 삶의 문법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131쪽)고 말이지요. 그러면서 결국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마다 선 자리에서 천년의 어둠을 밝히는 작은 등불 하나를 밝히는 마음으로 산다면 이 어둠의 땅에도 결국 새벽이 오지 않겠습니까?”(131쪽)


저는 이 대목에서 뜬금없이 서산대사의 선시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눈 덮인 들판 걸어갈 때에 踏雪野中去

발걸음 함부로 내딛지 마라 不須胡亂行

오늘 걷는 내 발자국은 今日我行跡

뒤에 오는 이의 이정표가 될지니 遂作後人程


자기만의 삶의 문법으로, 선 자리에서 천년의 어둠을 밝히는 작은 등불이 되자! 이 자못 비장하게도 들리는 이야기는 한편으로는 동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이웃을 외면하고 제 앞가림에만 급급해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비판과 궤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많은데 ‘있음 그 자체’로 길을 찾는 이들에게 이정표가 되는 이들은 많지 않”다 (142쪽)라면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차가운 세상에 온기를 나르는 사람들”(143쪽)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목사님의 절친(!)이신 법인 스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대로 인용해 보겠습니다.


지금 우리 시대는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향기를 파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한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이 땅의 지식인과 정치인, 노동운동가 등 이른바 사회지도자들이 평소의 가치와 신념을 저버리고 아무 부끄러움 없이 정반대의 행보를 하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우리 역사는 지조를 버린 이들을 변절자라고 부른다. 간혹 서울 나들이를 갔다가 보게 되는 종합편성채널에는 변절자들의 해괴하고 교묘한 논리가 판을 친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분노를 넘어 서글픈 생각마저 든다. 조용히 생각해 본다. 왜 변했을까. 방법은 바꿀 수 있어도 길은 바꾸면 안 되는 것인데, 왜 자신이 평소 걸어오던 길을 바꾸었을까. 결코 놓을 수 없는 권한 행사, 더 풍족한 경제생활, 아니면 그보다는 잊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가(법인,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 293쪽).


속이 뜨끔했습니다.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향기를 파는 일에 유혹을 느꼈던 적은 없었던가? 잊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는가? 과연 내 자신, ‘있음 그 자체’로 다른 사람의 이정표가 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내가 지금 이 차가운 세상에 온기를 나르고 있는가? 하는 물음 앞에 자신이 없었습니다. 분노는 여전하지만 열정도, 낙관도 사라져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밝히는 등불 이전에 자기 마음속을 밝히는 등불 하나도 제대로 켜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 때문이었습니다.


앞에 인용한 서산대사의 선시는 김구 선생이 인용하여 더 많이 알려지기도 한 시이지요. 선생은 성공 여부가 매우 불투명한 가운데 많은 이들의 반대 속에 남북정치협상을 위해 북행길에 오르면서 이 시를 읊었습니다. 친일파들의 비호 속에 미국보다 더 미국적인 냉전의 기치를 내세우며 정권장악에 매달렸던 이승만과 달리, 그는 조국의 분단을 막기 위해 시계視界 제로의 북행길에 올랐습니다. 눈발만 휘몰아쳐 올 뿐, 사방에 인적이 끊어진 허허벌판을 걷는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가지 않은 길, 앞에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길을 걸으면서도 그는 뒤에 오는 이들의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놓지 않았습니다. ‘어떤 일을 행할 때 가능한가, 가능하지 않은가를 생각하기 이전에 옳은 일인가, 옳지 않은 일인가를 먼저 생각하라’는 그의 고집스러운 행보와도 닮아 있습니다.



순례자의 길


백범 김구 이야기를 하다 보니 또 가슴이 먹먹해져 옵니다. 과연 우리 모두가 다 그런 선지자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요? 선지자의 삶을 존경하고 동경하기는 하지만 우리 모두가 다 그런 길을 걷기는 쉽지 않겠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순례자의 길을 떠나는지 모르겠습니다. 선지자의 흔적을 따라 길을 떠나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자기 속에서 각자 자신의 길을 찾아보려는 이들을 저는 순례자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 길 위에 서 있는 이들은 물론이요, 비록 현실에 몸담고 있지만 끝없이 그 길을 동경하는 이들 모두를 저는 순례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김 목사님 책에서 순례자들에 대한 언급이 많이 눈에 띄더군요. 특히 이런 구절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시간과 이익을 다투는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 허용되지 않지만, 순례자들은 길을 잃을 권리를 가지고 있는 이들입니다”(220-221쪽).


“떠나는 이들은 언제나 주류적 가치에 사로잡히기를 거절하는 이들입니다.”(222쪽) 


그러면서 이런 말을 덧붙이기도 하지요.


“중심부에 속하려는 가련한 노력이 사람을 피폐하게 만듭니다”(222쪽).


아마도 김 목사님이 사람들과 나누고자 했던 이야기의 핵심은 이런 이야기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는 집요하게(?) 반복되고 있거든요.


“내려놓지 못해 누추해진 이들을 우리는 정말 많이 봅니다. … 찬바람에 하나 둘 떨어지는 낙엽을 봅니다. ‘방하착放下着.’ 때가 되면 홀가분하게 떠나 근본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328쪽).


“욕심을 내려놓으면 비루해지지 않을 수 있지만 그것을 내려놓을 수 없어 삶이 남루해집니다”(354쪽).


“맑은 향기를 풍기며 사는 이들은 거의 다 자기 비움의 명수들입니다”(383쪽).


이제 이 편지를 마무리해야겠습니다. 책은 저자의 것이 아니고 독자의 것이라고 한 말을 이 책을 읽는 내내 곱씹어 보았습니다. 제가 김 목사님의 책을 오독한 것이 아니라는 근거 없는 확신은 여기에 있습니다. 이 편지의 마무리 역시 목사님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희망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속에서 숨은 불씨를 찾는 것이라 생각합니다”(108쪽). 


그 숨은 불씨로 저마다 선 자리에서 등불 하나 밝히라는 것이지요? 내내 건강하시길 빕니다.


정범구/전 국회의원,  주 독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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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년(다드림교회 목사)/ 아픔에 부딪히는 능력이 희망을 만드는 길임을 http://fzari.com/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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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목사님께(12)


아픔에 부딪히는 능력이 희망을 만드는 길임을


목사님, 인사도 하기 전에 먼저 ‘사람은 참 이기적이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목사님의 책을 읽으며 절망 속에서도 아픔을 공감하는 목사님의 능력을 보며 무심한 제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화들짝 놀라기도 했습니다만 한 문장, 한권의 책을 인용하시는 그 박학다식함에 시샘하며 지루한 읽기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음 문장을 발견하고 밀려오는 뿌듯함에 책을 다시 보고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간사함에 놀라고, 그 간사한 사람이 저와 같은 목사라는 사실에 경악했습니다. 그냥 제 추측입니다만 제가 언젠가 SNS에 쓴 내용이 목사님의 책에 담긴 내용과 비슷해서 기뻤습니다.


‘사사화된 신앙의 문제’를 넘어


“어느 목사님이 SNS에 쓴 글을 보았습니다. 자기 개인의 아픔에 대해 말하면 은혜스럽다고 하고 세월호 참사나 비정구직 문제 등을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아픔에 대하여 말하면 불편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건 정말 누구나 느끼는 현실입니다. 사사화된 신앙의 문제는 어제와 오늘의 문제가 아닙니다. 기둥이 기울고 서까래가 삭은 오늘의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공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을 회복해야 합니다”는 문장이었습니다. 목사님이 쓰신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거의 뒷부분(367쪽)에 나오는 내용이지요.




사람이 간사하다는 것은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문장을 발견하고 그 기쁨에 목사님의 책 전체를 다시 읽는 것이 아니라 마치 ‘제가 그 책을 쓴 사람처럼’ 호들갑을 떨며 목사님이 쓰신 그 부분만 반복해서 읽는 겁니다. 이 문장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책을 이해하려고 읽었습니다만 이 문장을 발견하곤 기뻐서 읽었습니다. 참 이기적이지요.


‘사사화된 신앙의 문제’를 탓하면서도 정작 저는 목사님의 책을 읽으며 ‘사사화된 신앙’적인 태도로 삶을 일관하는 제 자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공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우리를 보면서 한탄하다가도 정작 제 자신의 ‘사사로움’에 감동하고 마는 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목사님, 제 안에도 있고 우리 모두에게 있는 이 치졸하고 악한 인간성에 대해 목사님은 절망하기보다 희망을 발견하셨습니다. 사람이 갖는 관계에 대한 욕구 자체가 우리에겐 희망의 불씨이지요. 이 욕구를 막아서 개인적인 삶에 머물고 자기만을 바라보는 관점을 제도적으로 틔우려고 해도 사람들이 가진 사회적인 관계의 욕구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관계망’ 형성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제자도의 의미를 현실화시키고, 우리가 사는 공간을 치유적인 생태계로 복원시키기에 모든 이들에게 소망을 줍니다.


저는 아픔을 통하여 관계망이 사람을 살리는 생태계임을 처절하게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전 무엇보다도 교회는 관계망으로 촘촘히 엮인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오히려 성도들이 삶에서 겪는 아픔을 나누고 의식을 공유하면 관제언론처럼 사단마귀가 들었다고 몰아내칩니다. 또 필요를 나누라고 강조하면 게으름을 일상화 시키는 것이라며 ‘인간성’을 탓합니다. 사랑에서 나오는 것임에도 억압하고 억제하는 일에 앞장서서 마치 정권을 유지하려는 자들처럼 관계망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개인적인 질병보다 부당한 공권력으로부터 겪는 고통이 더 지속적이고 파괴적임에도 불구하고 더 큰 악으로부터 오는 아픔에는 외면하도록 눈감게 합니다.


목사님, ‘목사는 늘 위로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에 시달립니다. 이 위로라는 말속에 개인적인 아픔을 고쳐달라는 강한 압박이 담겨있습니다. 목사가 의사도 아니고, 목사가 모든 것을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요구하는 이 위로의 압박은 상당하여 때로는 목회를 더욱 무기력하게 합니다. 정말 치유해야 할 것은 질병이 아니라 어쩌면 생각일 것입니다. 혼자, 고립된 신앙 속에서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이런 신앙 말고 아픔을 삶의 과정으로 수용하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 질병의 치료보다 더 근원적으로 삶의 의미를 회복하고 위로하는 길임을 깨닫습니다.


목사님, 제가 목사님을 대면한 첫 만남은 <복음과 상황> 지령 300호 발간을 축하하는 자리였습니다. 늘 글로만 읽던 목사님의 얼굴을 바라보고 눈을 마주하였지만 정작 목사님과 가장 가깝게 닿은 것은 눈도 아니고 손이었습니다. 혜안이 가득한 눈 속에 지혜로움이 느껴졌고, 악수하며 잡은 손을 통해 마음의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그 악수를 잊지 못합니다. “누군가의 손을 잡아준다는 것, 그의 속도에 맞춰 함께 걷는다는 것이 참 아름다운 일임을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155쪽). 함께 걷는 정도가 아니라 함께 머물며, 같은 시대를 살아가며 연대하는 그 정신이 손에 담겨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걸어가는 삶의 속도에 자신을 맞추는 일은 손을 잡는 것뿐입니다. 맞잡으면 빨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늦어지지요. 누구의 손을 잡든지 간에 손을 잡는 순간 늦고 더디게 걸어가는 사람의 속도에 맞추게 됩니다. 순간적으로 빠른 사람의 힘에 이끌려 딸려갈 수는 있지만 그렇게 무리하면 얼마가지 못해서 넘어지고 맙니다. 손을 잡는 행위는 더딤을 수용하고 함께 걷겠다는 느림을 수용하는 엄청난 행위입니다. 미켈란젤로의 작품 <천지창조>에서 하나님과 아담이 만나는 첫 장면이 바로 손가락의 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찾는 그 손가락은 인간을 찾아오시는 하나님, 인간이 되신 하나님을 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주잡을 손 하나가 바로 희망입니다”


저는 목사님이 인용하신 고종석 선생님의 “어루만짐은 일종의 치유이고 보살핌이고 연대”라는 문장을 아주 좋아합니다. 아픈 아내를 간병한지 12년째인 저는 깜깜한 어둔 밤에 조용히 침대위에 누워 있는 아내의 팔뚝을 쓰다듬습니다. 아이들이 다 잠들어 있고 호흡만 들리는 그 밤에 조용히 아내의 팔뚝을 만지는 제 행위는 아내와 함께하는 성생활과 같습니다. 그건 “당신은 내 아내입니다”하고 속삭이는 언어랍니다. 그러면 아내도 아는지 부부행위를 하는 듯 호흡이 가빠지고 거칠어집니다. 인생이 칠흑같이 어둡고 답답해도 서로를 보살피는 연대의 의미로 이러한 손닿음은 언제나 부부만의 내밀한 언어를 만들어냅니다.


야심한 밤에 아내의 손목을 잡는 행위는 부부로서의 존재만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님의 글속에 “마주잡을 손 하나가 바로 희망입니다”는 문장을 읽으며 전 맞는 말이라고 감탄했습니다. 제 아내처럼 말도 못하고 눈도 뜨지 못하는 중환자를 일상에서 만나는 것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불러옵니다. 물론 제 아내도 엄청 두려워합니다. 사고의 두려움도 있지만 사람들을 보지 못하는 두려움 때문이지요. 제가 휠체어에 아내를 태우고 이동할 때 긴 세월동안 저의 모습을 보아온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주민들조차도 쭈뼛거립니다.


그렇지만 늘 같이 지내온 우리 성도들은 제 아내가 교회에 가면 자신들이 먼저 손을 내밀어 아내의 얼굴을 보듬고, 팔뚝을 쓰다듬으며 재잘거립니다. 그렇게 아내가 머무는 곳에선 웃음꽃이 핍니다. 그렇지만 제 아내는 아무런 말도 못합니다. 그런데 목사님, 그것은 참 희한한 만남입니다. 말 못하는 제 아내를 만나는 사람들이 누리는 기쁨, 평안이 있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한 번은 탈북 청년 두 사람이 가정을 이루도록 식장을 빌리고, 음식을 차려서 성대하게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주일에 교회에 온 제 아내를 그 두 사람에게 소개하며 “제 아내입니다”라고 하자마자 그 두 청년이 저를 보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사모님이 이런 모습으로 누워계신데 저희를 도왔습니까?”라며 울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생사를 걸고 자신들이 살아온 체제와 다른 곳으로 넘어온 청년들은 좀처럼 울지 않습니다. 그 각오의 단단함이 감정마저 얼어붙게 하나 봅니다. 그렇지만 그 탈북 청년들은 그날 그토록 울었습니다.


손길이 닿으면 그 손길이 닿는 제 아내만 치유되는 것이 아니고 손을 내미는 그 사람도 치유의 과정을 겪습니다. 마주 잡는 손 하나가 세상과 접촉하고 생명의 존귀함을 그대로 수용하는 “보살핌이고 연대”입니다. 맞습니다. 손을 맞잡는 것은 제 아내에게는 세상과 접촉이지만 손을 잡는 그 사람은 ‘생명의 존귀’함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를 수용하는 보살핌이 된 것이지요. 손을 잡는 것은 참 아름다운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다만 , 걷는 사람이 상대방의 속도를 인정하고 자신의 삶 속도를 늦출 때만 그렇습니다. 자신의 속도를 부인하는 느림을 선택하고, 휙휙 지나가는 빠름 대신에 ‘천천히’를 선택하여 걸을 때만 손을 잡을 수 있습니다.


자기부인 없이는 결코 손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나를 포기하고 다름을 선택하고 함께 살 결심을 하지 않으면 손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참된 연대는 자기부인에서 나옵니다. 자기부인이 없는 연대는 거짓이고, 자기 의일 뿐입니다. 노동조합이든지, 정부와 노사협상이든지 손잡고 빨리 가자고 말하는 시대인 것 같아서 느림을 선택하고 손을 잡는 자기부인의 시대가 너무도 그립습니다.


목사님, 사람은 참 이상합니다. 같이 있을 때는 서로의 어루만짐을 잘 모르다가 함께 있지 않는 ‘부재’의 순간이 오면 그동안의 삶속에 가득했던 ‘일상의 거룩한 순간’들이 생각나서 그리움에 마구 젖습니다. 지금 제가 그렇습니다. 몇 달 전에 독일로 청빙을 받아서 떠난 후배가 그립습니다. 후배 목사와 함께 한 시간 속에는 나이를 초월하는 우정이 숨어 있습니다. 또한 그동안 동토처럼 얼어붙었던 서로의 허물도 있었지만 그가 부재한 뒤에 겪는 그리움은 그걸 모두 녹여버렸습니다. 누군가의 삶이 “겨울을 맞아도 눈물로 받아주는 이”가 있으면 살아날 수 있다는 목사님의 말씀처럼 제게는 그 후배가 그런 존재였습니다.


사역자로서 저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사역에 대한 무지보다도 겨울 같은 인생의 혹독함 속에서도 계절을 모르고 찾아오는 성적인 충동입니다. 제 속에 있던 불만족으로 가득한 제 욕망은 제 감정을 할퀴고 제 언어에 가시를 심습니다. 저의 건강하고 정당한 욕망이 어둠속을 헤매며 저를 괴롭힐 때 저는 마음 둘 곳이 없습니다. 눈길 줄 곳도 마땅치 않습니다. 그 능글능글 오욕이 불타는 눈길을 받아줄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속사람이 허망하게 무너지기도 했습니다. 자기 속으로 구부러진 인간의 본능에 전 절망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절망을 나누던 이가 제게서 떠나가 버렸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목사님의 편지를 엮은 이 책이 바로 그 후배와 같은 ‘물건’입니다. “저는 어둠을 모르는 빛, 절망의 심연을 거치지 않은 희망, 대가를 치르지 않고 주어지는 은혜, 추함을 외면하는 아름다움, 불화의 쓰라림을 알지 못하는 조화, 흔들림조차 없는 확신, 일상을 떠난 영성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흔들림 속에서 든든함을 지향하고, 추한 현실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가장 속된 것에서 거룩한 것을 보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그래서 나의 길은 흔들리며 걷는 길입니다”(303쪽). 이 문장에 제 눈에 확 꽂혔습니다. 저절로 아멘이라고 고백하게 했습니다. 아멘. 아멘. 아멘.


목사님, 고맙습니다. 이기적인 저를 보게 하시고 절망 속에서 신음하는 저에게 “하나님은 더럽고 추하고 사소한 것들 속에서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진정으로 거룩한 분입니다. 속된 것 따로, 거룩한 것 따로인 세상은 가짜일 가능성이 많습니다”(304쪽)는 말로 저를 바른 길로 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나에게 절망하지만 절망하는 그 속에 오시고 거하시는 하나님은 거룩한 분입니다. 밤마다 나의 추함에 통곡하지만 십자가를 볼 때마다 다시 소망으로 충만합니다. 속된 것과 거룩한 것의 분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로 살아가는 저를 보며 그분의 성품에서 소망을 발견합니다.


사랑하는 후배를 떠나보낸 여정은 참 외롭습니다. 그러나 이 삶에 이 책마저 없었다면 더욱 절망의 길을 걸었을 것입니다. 사람이야 이별이 가능하지만 책은 언제나 손안에 넣고 다닐 수 있기 때문에 이 책은 나의 삶 속으로 걸어 들어오신 거룩한 하나님 같아 보입니다. 그분의 임재를 목사님의 책을 통해 경험합니다. 하여 “아픔에 부딪히는 능력이 희망을 만드는 길”임을 알고 아픔의 고통을 다시 품고 살아갈 결심을 합니다. 아픔에 부딪히는 능력이 희망의 길을 만들기에….  


김병년/다드림교회 목사, 《난 당신이 좋아》 저자


* 곽건용/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을까요 http://fzari.com/1027

* 김근수/ 예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http://fzari.com/1028

* 법인/ 이상동몽(異床同夢), 대동소이(大同小異)의 길을 가는 수도자 http://fzari.tistory.com/1029

* 손성현/ 독수리, 깊이 날아 뜻을 품다 http://fzari.com/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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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행/ 하나님의 충직한 손발 엔텔레키아의 신비 http://fzari.com/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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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강유철/ 목사님은 소리의 신학자이자 소리의 철학자이십니다 http://fzari.com/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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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파와 움씨

김기석 목사님께 2017.12.20 09:05

김기석 목사님께(11)


움파와 움씨


김기석 목사님 안녕하세요? 목사님의 편지글을 모은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를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1980년대 이후 이런 형식과 문체의 글은 처음 읽은 것 같습니다. 무겁지 않아서 굳이 노트를 할 필요는 없지만 곱씹어 읽으면서 제 삶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목사님의 글을 읽으면서 저와 아내의 젊은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두 살 아래인 아내와 저는 종로구에 있는 오래된 장로교회 출신입니다. 물론 지금도 경기도 일산에 살면서 집 앞에 있는 교회에 출석하고 있지요. 어릴 때부터 ‘그냥’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마치 버릇처럼 말이죠. 그러다보니 저는 어느덧 안수집사가 되었고 아내는 권사로 피택되어 교육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주기율표, 하나님이 주신 명함


아내는 아침에 일어나면 FM 93.1MHz에 채널이 맞추어져 있는 라디오를 켭니다. 이 채널은 2002년 귀국한 후 아마 한 번도 바뀌지 않고 고정되어 있을 것입니다. 우리 식구가 클래식 음악에 대해 어떤 조예가 있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듣는다라기 보다는 그저 틀어놓고 있는 것이죠. 광고 없이 나오는 클래식 음악은 방해하지 않는 배경음악으로는 딱이거든요. 음악을 배경으로 깔고 설거지 하고 청소하고 책을 읽습니다. 부끄럽지만 제겐 신앙도 그러합니다. 제가 태어났을 때부터 제 배경에 깔려 있던 것이죠. 특별히 뜨거운 경험을 한 적도 없고 모태신앙에 대한 저항을 해본 적도 없습니다. 신앙은 불편하지 않은 배경음악이었으니까요.


고등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교회 고등부 친구들이 우리 집에 와서 밤을 새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원래 2학년이면 대개 임원이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우리들은 각자 자기의 신앙이야기를 했습니다. ‘왜 내가 예수를 믿게 되었는가?’가 주제였지요. 다를 재밌는 사연이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온갖 꾀를 내어서 교회로 끌고 와서 어쩔 수 없이 온 친구도 있고 평소에 찍어놓은 여학생이 다니는 교회라서 나온 친구도 있고 교회 도서관을 공짜로 사용하고 싶은 친구와 교회 다니는 대학생 형들에게 수학문제 푸는 것을 물어보려고 온 친구도 있었습니다. 집안의 전통으로 신앙을 갖게 된 저 같은 친구들은 딱히 할 말이 없었죠.


저희 집이었기 때문에 제가 제일 나중에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른바 홈그라운드 찬스라고나 할까요. 아이들의 말을 들으면서 제 신앙의 근거는 뭘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했습니다. 그러다가 떠오른 것이 바로 ‘주기율표’였습니다. 2학년에 들어오면서 배운 주기율표가 제게는 큰 충격이었거든요.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물질인 원소들이 갖고 있는 규칙성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주기율표가 제게는 하나님이 주신 명함 같은 것이었습니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 볼 때 하늘의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라는 찬송가를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원소, 내 마음 속에 그리어 볼 때, 수소와 헬륨 초신성 폭발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라고 바꿔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 찬송가가 지금은 40번 찬송이지만 그때는 79번 찬송이었어요. 79번 원소가 ‘금’이라서 금과 같은 찬송이라고 기억했거든요. (원소기호 40번은 지르코늄이라는 낯선 원소이지요.)



움파의 의미와 우화

그저 배경이었던 신앙이 인생의 커다란 동력으로 작용하게 된 것은 교회 대학부 생활을 하면서부터입니다. 연동교회 대학부는 운동권 대학생들에게 장악되어 있었죠. 이들은 우리 교회 고등부 출신이 아니라 주로 지방출신의 학생들이었습니다. 자주 경찰서와 감옥에 들락거렸고 교회에서 이런저런 말썽을 많이 피워서 교회 어른들의 큰 골칫거리였습니다. 다행히 고등부의 우리 동기들은 공부를 유난히 잘 해서 좋은 대학에 많이 들어갔습니다. 교회 어르신들은 이제야 우리 교회 대학부에 새로운 바람이 불게 되었다고 큰 기대를 했습니다.


대학부에 들어간 첫 날, 선배들은 우리를 데리고 술집에 갔습니다. 아직 고등학교 졸업식도 하기 전이었는데 말입니다. 이날의 경험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선배가 ‘고갈비’를 사준다고 해서 따라갔는데 그게 알고 보니 ‘고등어 갈비’였던 것입니다. 모임은 유쾌했습니다. 그리고는 너무나 쉽게 평생 ‘죄’라고 여겼던 술 문화에 젖었습니다. 도대체 이걸 왜 20년 가까운 세월동안 ‘죄’라고 단정하고 살았는지 해명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특이한 음식이었을 뿐이죠. 지금도 술을 즐깁니다.


그날 난생 처음 들은 단어는 고갈비 말고 또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움파’입니다. ‘베어 낸 줄기에서 다시 줄기가 나온 파’를 말한다고 들었습니다. 이 움파가 우리교회 대학부의 별명이었습니다. 움파 1기, 움파 2기, 이런 식으로 기수를 표현했습니다. 당시는 학번을 많이 쓸 때였지만 어떤 친구는 곧장 대학에 가고 또 어떤 친구는 재수, 삼수 끝에 대학에 가고 또 대학에 끝내 가지 못하는 친구도 있었기 때문에 우리 교회 대학부는 이런 식으로 기수를 표현한 것입니다. 저는 움파 14기더군요.


저는 많이 아쉬웠습니다. 요즘이야 파를 좋아하지만 그때는 어려서인지 라면에 파 한 조각만 들어가도 먹지 않았을 정도로 아주 싫어하는 식재료였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정체성을 그까짓 파로 표현하다니요. 어이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하필 그때 저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었습니다. 거기에 이런 우화가 나옵니다.


어떤 못된 아줌마가 죽어서 지옥의 불바다에 떨어졌습니다. 이때 아줌마의 수호천사가 나타나서 “살면서 단 한 개라도 선행을 베푼 게 있으면 말해봐라, 그러면 내가 하느님에게 잘 말씀드려 볼게.”라고 말했습니다. 아줌마는 곰곰이 생각한 끝에 거지 여인에게 파 한 뿌리를 뽑아서 준 게 생각이 나서 이것을 자랑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하느님은 파 한 뿌리를 아줌마에게 내려주고서는 그것을 잡고 불바다에서 빠져 나오라고 했습니다. 아줌마는 분노했죠. 파를 잡고서 어떻게 지옥에서 빠져나오겠습니까. 파에다가 분노의 발길질을 했습니다. 파는 ‘똑’하고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아줌마는 영원히 불바다에서 나오지 못했지요.


선배들이 움파의 의미를 이야기를 할 때 저는 이 우화를 떠올렸습니다. 아줌마가 지옥에서라도 못된 성격을 꾹 누르고 파를 잡고서 지옥을 빠져 나오려고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빠져나오지 못했을 겁니다. 평생 동안 겨우 파뿌리 하나 준 것이 뭐 대단한 일이라고 하나님이 이 여인에게 지옥을 빠져나올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파뿌리에 매달렸다고 해도 아마 지옥의 불바다를 벗어나지 못했겠죠.


교회 어른들이 그렇게도 싫어하는 대학부 선배들을 좋아하게 되었을 때가 바로 이때입니다. 선배들이 뭔가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하는데 거기에 도스또엡스끼 운운하면서 초를 치는 쪼그마한 꼬마의 이야기를 정말 진지하게 들어주셨죠. 막걸리도 여러 잔 따라주시면서요. 그러다가 한 여자 선배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움파는 그런 존재야. 겨울 내내 양념으로 쓰기 위해 조금씩 잘라먹는 하찮은 존재지. 하지만 우리는 겨울을 날 거야, 우리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를 움파라고 부르지. 네가 말한 것처럼 파 한 뿌리는 하늘로 올라가기에는 너무나 연약한 끈일지도 몰라. 우리 각각의 한사람은 그렇게 약하지. 하지만 그게 한 뿌리가 아니라 파 한 단이면 어떨까? 더 강할 거야. 약한 파뿌리도 여러 개가 뭉치면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어.”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이런 얘기였죠. 듣고 보니 내가 움파 14기라는 게 은근히 근사해 보였습니다. 움파가 자그마치 14년이나 계속되고 있구나, 앞의 선배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또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다시 씨를 덧뿌리겠습니다


선배들과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성경 공부도 했지만 철학과 경제 그리고 사회에 관한 것들이 더 많이 공부했죠. 루트비히 포이에르바흐의 《기독교의 본질》을 읽으면서 신앙에 대해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이 책의 골자는 “신은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신은 인간의 투사물이다. 자비롭고 공정하고 현명하지 않은 신은 신이 아니다”라는 것이었거든요. 신이 인간의 투사물인지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자비롭고 공정하고 현명한 신의 모습을 세상에 투사해야 한다는 점은 금방 결의가 되었지요.


선배들은 일찌감치 교회를 떠났습니다. 1984년 대학에서 경찰이 철수하고 1987년부터 노동자 대투쟁이 시작되자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 머무는 게 한가롭게 여겨졌기 때문이겠죠. 그러자 교회 어른들은 아주 좋아하셨어요. ‘신앙 없던 그들이 떠난 것’을 아주 후련하게 여기셨죠. 그런데요. 그것은 어른들의 착각이었습니다. 그들은 진정한 신앙인이었습니다. 요즘 프란체스코 교황께서 말하는 신앙인의 삶을 살던 분들이에요. 상당히 많은 선배들이 나중에 목회자의 길을 걸으셨지요. 오히려 자기들이 착한 신앙인으로 잘 키웠다고 생각했던 우리 고등부 출신 청년들 가운데는 신학을 한 사람이 거의 없어요. 그리고 나중엔 우리가 그들의 골칫거리가 되었지요. 원래 움파가 그런 것이잖아요. 조금씩 조금씩 잘라 먹는 겁니다. 그러면서 겨울을 나는 것이지요.


우리는 선배들이 남겨놓고 떠난 야학을 맡아서 운영했습니다. 담임목사님의 적극적인 후원과 저희의 주일학교 교사를 하셨던 고등학교 선생님들의 전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죠. 교회 어르신들은 때로는 도와주시기도 하시고 때로는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훼방을 놓기도 하셨습니다.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우리는 무슨 커다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그저 움파 같은 삶을 사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걱정이었죠. 움파의 수가 점점 줄었거든요. 움파는 여럿이 같이 있어야만 힘이 있더라고요,


결국 우리도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저처럼 외국으로 공부하기 위해 떠난 사람도 있고 아예 교회와 담쌓은 친구도 있지요. 이러나저러나 하루하루 살기가 팍팍했던 것 같습니다. 그 사이에 IMF 사태가 있었잖아요. 생각해 보면 IMF는 우리나라를 완전히 바꿔놓았죠. 주로 나쁜 방향으로 말입니다. 모든 것은 경쟁과 효율 그리고 이윤으로 판단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국전쟁 때를 포함해서 평생 교회를 지키시던 사찰 집사님은 어느 날 용역직원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때나 이때나 같은 사람이 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 이젠 아무 때나 나가라 하면 나가야 하는 사람이 된 거죠. 존경을 받던 소사 집사님은 한낱 피고용자가 되었습니다. 여전도사님은 우리 교회에서 은퇴하는 게 전통이었는데 어느 날 사표를 강요받고 떠나시게 되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하지만 교회를 떠난 우리는 아무런 힘이 없었습니다. 교회 안에는 더 이상 움파가 없었거든요. 교회 청년들은 자신들은 움파가 아니라고, 자신들은 그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교회는 거대한 주식회사가 되었지요.


젊은 시절이 지나가고 신앙은 다시 배경음악이 되었습니다. 누가 물어보면 교회에 다닌다고 대답하기는 하지만 내가 먼저 고백하지는 않습니다. 누구에게 나서서 전도하는 일은 물론 없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교회는 전혀 거룩한 곳이 아닙니다. 구분되지 않으니까요. 그저 또 하나의 친목단체이자 계급사회일 뿐입니다.


목사님의 책에서 「움씨를 뿌리는 마음」이란 제목을 봤습니다. 움씨라는 말에서 움파를 기억해냈습니다. 얼른 사전을 찾아보았지요. ‘뿌린 씨가 잘 나지 않을 때 다시 뿌리는 씨’라는 뜻이더군요. 목사님은 이렇게 쓰셨습니다.


뿌린 씨가 잘 싹트지 않을 때 농부들은 밭에 씨를 덧뿌립니다. 그것을 움씨라고 하는데, 사는 게 이런 것 아닐까 싶습니다. 당장의 내 수고가 허사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 때, 다시 한 번 씨를 뿌리는 용기를 내야 해요. … 움씨를 뿌리는 농부는 자기 속에 있는 정말을 애써 다독이며 희망을 뿌리는 것입니다. 덧거친 세상에서 선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훈련이 필요합니다. 덥석 일에 뛰어들었다가는 상처 받고 물러나기 십상입니다(97-98쪽).


김기석 목사님, 목사님은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를 통해 ‘희망은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 달려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에 아직도 희망이 남아 있는지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씨앗을 뿌리는 일은 거두지 말아야겠지요. 예전에 뿌린 씨가 잘 싹트지 않았지만 다시 씨를 덧뿌리겠습니다. 움씨를 혼자 뿌릴 용기는 없습니다. 농부들을 다시 찾아봐야겠네요. 예전 움파들은 다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고갈비 안주에 막걸리를 나누고 싶은 날입니다. 목사님께 평화로운 날이 이어지기를 기원합니다.


이정모/서울시립과학관장, 《달력과 권력》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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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근수/ 예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http://fzari.com/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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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숙/ 소슬한 가을바람 같은 청량감이 드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http://fzari.com/1031 

* 이명행/ 하나님의 충직한 손발 엔텔레키아의 신비 http://fzari.com/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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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목사님께(10)


다만 노을이 되어 내일 아침의 빛나는 태양을 도울 뿐입니다


목사님의 편지 잘 읽었습니다. 목자의 지팡이와 막대기를 따르고 쳐다보는 양으로서는 참 가슴 뭉클한 편지였습니다. 따를 지팡이나 바라볼 막대기 찾기가 이리도 쉽지 않은 시대에 드문 반가움이요, 감동이었지요. 책을 받아 들고 무릇, 목사의 편지란 뻔한 스토리가 펼쳐질 것이 거의 틀림없다고 생각했기에 이내 지루한 상상을 떠올렸지요. 하지만 문장마다 진정성이요, 소박하면서도 해박한 사유의 깊이와 연민이 일렁이는 글을 대하며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사람을 품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음이요, 시대를 바라보지 않고는 나올 수 없음이요, 하나님을 향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글이었습니다.


이따금 제게 비친 목사님의 마음은 거친 것보다는 부드러운 것, 직설적인 것보다는 은유적인 것, 극단적인 것보다는 유연한 것에 기운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러나 그토록 선한 천성과 함께, 어떤 후천성이 보태진 대목도 찾아졌습니다. 예컨대 양심을 잃고 폭력에 중독된 작금의 행태에 관하여는, 불의를 담지 못하는 성품에서 우러나오는 거룩한 분노 같은 것이었습니다.



몇 년 전, 용산참사 현장에서 세계 각국에서 온 평화 운동가들과 함께 추모와 평화의 결의를 다졌던 시간 기억나시지요? 그곳에 검소하고 간편한 배낭을 등에 지고 점퍼차림으로 걸어오시는 목사님을 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앞으로 나서지도 않았고 생색을 내거나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어떤 것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저 참여하고 마음을 보태는 한 인간으로서의 겸손한 태도가 있었을 뿐입니다. 그 모습이 김기석이라는 목회자 특유의 이미지로 제게는 각인이 되어 있습니다. 참혹한 세상의 현장 앞에서, 사악한 권력이 저지른 만행 앞에서 한 종교인으로, 한 목회자로, 한 인간으로 바람처럼 걸어 들어온 것이지요. 치밀한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요, 거사를 도모할 의사가 있는 것도 아닌, 그저 그분의 길을 따라 그냥 걷고 있는 이 지구의 선한 신앙인으로 걸어 들어온 것입니다.


‘도’와 ‘레’사이의 수많은 음을 무시하는 시대


어제 저녁엔 단원고등학교를 다녀왔습니다. ‘기억교실’을 이전(존치)하는 문제를 놓고 유가족과 경기도교육청 안산교육청 그리고 중재위원회의 서른다섯 번에 걸친 회의 끝에도 채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그 전야제를 했지요. 이 행사의 진행을 맡아달라는 청을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30년 세월 비교적 남다른 경력과 다양한 경험을 가진 저로서도 이 난감한 시간을 지나가기가 퍽 어려웠습니다. 민망하고 무기력하며 분노와 슬픔에 젖은 무대였지요.


개인적 고백을 좀 하자면, 2005년부터 일해 왔던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라는 사단법인의 사태가 꽤 심각하고 추악하게 이르러, 10여년 세월 이 땅에 평화박물관을 지으려는 꿈으로 모금공연을 해왔던 저로서는 여간 견디기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사단법인社團法’이 ‘사단법인私團法人’으로 변해버린 어이없는 사건이지요. 소위 ‘진보’라는 얼굴의 민낯을 보게 되는 참담한 일입니다. 또한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노래동네’에는 공연이라는 것이 사라졌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상업을 목적으로 하는 곳은 다르겠지요. 그러나 적어도 ‘인간’과 ‘역사’를 안고 노래하는 노래 진영에는 웃고 노래하기가 조심스러운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마치 유난스러운 올여름처럼 정지된 시간입니다.


어젠 평생을 한반도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일해오신 고 박형규 목사님의 장례식장에서 조가弔歌를 불렀습니다. 북쪽의 땅 개성이 열렸던 날, 함께 기쁨으로 다녀왔던 정이 아니어도, 이 땅에 기독교의 후배들에게 삶 그 자체로 보여주셨던 청년 같은 푸른 생애 앞에 노래밖에 드릴 것이 없는 것을 송구하게 여기며 다녀왔던 길입니다. 94세의 노스승은 돌아가시기 전 며칠 동안을 스스로 곡기穀氣를 끊으시고 그 고결한 삶을 최후의 시간까지 행하셨다고 합니다. 사악한 독재정권들은 ‘긴급조치9호’, ‘민청학련사건’ 등의 사건을 조작하여 수차례 투옥과 온갖 고문으로 옥죄었지만 결코 흔들리지 않으셨던 자유인이었습니다. 어이없게도 이 사건은 40년이 가까운 시간이 지나서야 법정으로부터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목사님, 저는 이런 이 땅에서 노래한다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의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한 문장이 또 들어옵니다. ‘해 저문 빛이라도 있으니 고맙다’라는 글입니다. 언젠가 노래하는 선배가 집에 놀러와 다짜고짜 ‘미안하다’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선배는 몇 년 전, 저의 25년 기념공연에 격려의 글을 보냈지요. “그는 그 오랫동안 이 세상에 들어가 그늘을 걷어내는 노래를 했다”고 써주었습니다. 노래동지들이나 뜻을 함께하는 분들이 가끔씩 던지는 이런 위로의 말이 사실 제겐 ‘해 저문 빛이라도’ 같은 것입니다. 글쎄요, ‘버티고’ 있다고 말씀 드려도 될는지요?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라는 물음에는 지금 답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노을이 되어 내일아침의 빛나는 태양을 도울 뿐이라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예수의 사역은 ‘빗금철폐(유대인/이방인, 남자/여자, 거룩/속됨, 의인/조인, 부자/빈자. 선/악, 미/추 등)’라는 목사님의 표현은 단호하고 깔끔한 비유입니다. 그러면서 흑과 백을 가르는 세상이라면 차라리 회색빛사회에서 살겠다고 속내를 내비치셨지요? 관습이 만들어놓은 경계선을 가로지르며 사신 예수를 우리는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문득 떠오른 시구詩句가 있습니다. 신동호 시인이 17년 만에 낸 시집에 담긴 글이지요. “농현弄絃은 국악엔 있고 삶엔 없다.” ‘도’와 ‘레’사이의 수많은 음을 무시하는 시대와 관행과 인간들에게 던지는 묵직한 경고입니다. 빗금을 철폐해야 마땅한 종교가 빗금을 재생산하고 또 생산해대는 이 시대를 울어봅니다. 이 눈물이 평화를 데리고 오면 좋겠습니다.

목사님의 귀한 편지를 어느 날 또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그래서 꽉 찬 책꽂이이지만 보이도록 넣어두겠습니다.


오늘 아침 본 영화에서 외국의 한 어린이가 들려준 독백을 쓰며 인사를 드립니다.


“학교로 가는 길은 참 멀어요, 두 시간 정도 걸리지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학교를 갑니다. 중앙로로 가거나 골목길로 가거나 목적지는 같아요. 그러나 그게 크게 다른 점이죠.”


목사님, 설마 그게 희망은 아니겠지요?


홍순관/ 가수, 평화운동가, 《나는 내 숨을 쉰다》 저자


* 곽건용/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을까요 http://fzari.com/1027

* 김근수/ 예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http://fzari.com/1028

* 법인/ 이상동몽(異床同夢), 대동소이(大同小異)의 길을 가는 수도자 http://fzari.tistory.com/1029

* 손성현/ 독수리, 깊이 날아 뜻을 품다 http://fzari.com/1030

박광숙/ 소슬한 가을바람 같은 청량감이 드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http://fzari.com/1031 

* 이명행/ 하나님의 충직한 손발 엔텔레키아의 신비 http://fzari.com/1032

*민영진/ 한 때 당신은 나의 학생이었지만, 지금은 내가 당신의 학생입니다 http://fzari.com/1033

김삼웅/ 먹물과 속물 동거시대의 알곡처럼 http://fzari.tistory.com/1036

* 지강유철/ 목사님은 소리의 신학자이자 소리의 철학자이십니다 http://fzari.com/1037

* 이정모/ 움파와 움씨 http://fzari.tistory.com/1043

* 김병년/ 아픔에 부딪히는 능력이 희망을 만드는 길임을 http://fzari.com/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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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목사님께(9)


목사님은 소리의 신학자이자 소리의 철학자이십니다


1994년 이후 가장 덮다는 이 여름에 건강하신지요? 최근에 출간된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를 읽었습니다. 잠시 조용한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머리말에 해당하는 ‘초대의 글’에서 지금까지 즐겨 읽어 온 편지 형식의 작품들을 소개해주셨더군요. 전설로 남은 12세기 중세 수도사와 수녀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에서 시작하여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본회퍼의《옥중서간》, 그람시의《옥중수고》, 문익환 목사의《꿈이 오는 새벽녘》, 서준식의 《옥중수한》,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고 또 읽는’다고 하셨지요. 재작년에 타계한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 추모 음악회에서 그의 절친 브루노 간츠Bruno Ganz가 ‘빵과 포도주’를 낭송했기 때문에 목사님이 소개하는 프리드리히 휠덜린의 《히페리온》은 더 반가웠습니다.


목사님의 이번 책은 제게 특별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편지’라는 성서 본문의 의미 파악이나 실용적 효과 그 이상을 이야기하셨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은 ‘하나님의 편지’라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혼신의 힘으로 일으켜 세웠던 교회 공동체가 그릇된 가르침으로 인해 흔들릴 때마다 그는 편지를 써서 벗들과 소통하려 했다. 그렇기에 그의 서신은 곡진하고, 열정적이고, 애정에 가득 차 있다. 그의 편지를 회람하면서 초대 교회 공동체는 구부러진 길에서 돌이킬 수 있었다”(6쪽)는 정도의 설명에 만족하지 않으셨습니다. 편지란 우리 “영혼이 발하는 발신음”(5쪽)이어서 “누군가의 가슴에 가 닿게 마련”(6쪽)이고, 따라서 ‘오늘의 나라고 하는 편지는 또 다른 사람에게 기쁜 소식이거나 불쾌한 소식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고 하셨지요. 목사님은 또한 수십 년 전 부친께서 “호롱불 밑에서 한 자 한 자 정성껏 쓰신” 편지가 곧 아버지의 존재이자 “아버지의 품”이었다며 그 편지를 “고향의 냄새”에 비유하기도 하셨습니다(4쪽). 프란츠 카프카를 비롯한 많은 문인과 예술가들이 평생을 아버지로 인해 생긴 트라우마에 시달렸던 사실을 알기에 부친에 대한 목사님의 고백에 놀랐습니다. 부러웠습니다.


아버지의 편지가 한 통도 남아 있지 않다는 목사님의 말씀은 그래서 더 뜻밖이었습니다. 주옥같은 편지를 지금 갖고 있지 못한 이유가 혹시 아버지의 편지가 곧 ‘고향의 냄새’이자 아버지의 존재 자체였다는 의식이 어려서는 흐릿했기 때문이었는지요. 아버지에 대한 현재의 이해는 목사님께서 읽은 성서와 여러 작가들이 쓴 편지가 새롭게 형성한 것인지요.


어떤 책인들 안 그렇겠습니까만,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를 읽으면서 저는 몸 속 깊게 가라앉아 잘 보이지 않았던 욕구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평범함과 진부함이야말로 우리 삶을 지탱해주는 기둥”이고(306쪽), “제거할 수 없는 아픔은 품고 가는 수밖에” 없고(316쪽), ‘순례자는 길을 잃을 권리’가 있고(221쪽), “길이 보이지 않을 때는 잠시나마 고독 속에 머물러야” 하며(373쪽), “흑과 백으로 갈리는 세상보다는 차라리 회색빛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37쪽) 문장을 읽으면서 저는 그동안 제가 상상했던 것보다 신앙과 도덕을 요구하는 무섭고 매정한 당위의 말들에 꽤나 지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복음은 이런 공감과 위로의 말들이라 소리치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목사님은 가족들이 모일 때 서로 어린 시절의 흉을 보느라 여념이 없었다면서 “스스럼없이 그 시절을 회상하는 일이야말로 각자의 자리에서 분주하게 살아가는 우리가 가족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일종의 의례”(201쪽)라고 하셨습니다. 그 문장을 읽으며 제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어른들 중 누구도 ‘흉보기’의 긍정적 측면을 이렇게 포근하게 이야기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족들이 모여 서로의 어린 시절을 흉내 내며 깔깔거린다는 이야기를 듣는 청파교회 교인들이 부러웠습니다.



48가지 소리가 들려주는 우주의 장엄한 교향곡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글은 ‘소리가 이루는 장엄한 세계’였습니다. 이 글은 제가 읽은 목사님의 글 중에 최고였습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입장에서’라는 전제를 서둘러 붙여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목사님께서 앞으로 이보다 더 좋은 글을 과연 쓰실 수 있을까요? 저는 없을 것이라는 데 걸겠습니다. 목사님께 그럴 능력이 없으시다는 뜻이 아니라 소리에 대해 이 정도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할까 싶기 때문입니다.


200자 원고지 20여 매 분량의 길지 않은 편지에서 목사님은 48가지의 소리를 디테일하게 묘사하셨습니다. 시계·자동차·라디오·경적‧옥외 스피커‧층간 소음이나, 정치가의 호언장담‧종교인의 ‘큰 소리’‧쫓겨난 하갈과 이스마엘의 절규 등을 뺀 나머지는 자연과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소리였습니다. 다음은 긴 인용의 충동에 시달릴 만큼 생생한 목사님의 소리입니다.


아궁이에서 솔가리가 탈 때 나는 소리, ‘자작자작’, 밀짚을 태울 때 나는 소리, ‘타닥타닥’, 군불에 묻어두었던 밤 껍질이 터지는 소리, ‘탁탁’, 댓잎을 스쳐온 바람소리, ‘사르륵사르륵’, 솔숲을 거쳐 온 바람소리, ‘솨아솨아’, 비가 그친 후 혹은 볕이 나 지붕 위에 있던 눈이 녹아 내려 섬돌 위에 떨어지는 소리, ‘똑똑똑’ … 닭이 홰치는 소리, 솔개 그림자가 마당귀를 스치면 ‘구구구구’ 소리를 내며 새끼들을 불러 품에 안던 암탉 소리, 푸르스름한 기운이 서린 동녘 하늘을 향해 ‘꼬끼오’ 하고 울어 새벽을 깨우던 수탉의 울음소리, 한낮의 무료함을 깨뜨리려는 듯 혼자 ‘컹컹’ 짖는 누렁이 소리(69-72쪽).


목사님은 그런 연후에 21세기 사람들의 뇌리에서 거의 잊힌 산업화 이전의 아날로그 세계로 독자들을 데려갑니다. “나무 방망이와 다듬잇돌과 피륙이 이루어내는 리드미컬한” 여인들의 다듬이질 소리, “이불 호청이나 큰 빨래를 둘이 마주잡고 ‘쫙쫙’ 펴는 소리, 다림질하기 위해 입에 머금은 물을 ‘푸푸’ 옷에 뿌리는 소리, 밤이면 벽간에서 울려나던 귀뚜라미 소리에 시선을 돌리게 만드셨습니다.


48가지를 섬세하게 묘사해 내신 것도 대단하지만 저를 더 놀라게 한 건 언어도, 말씀도,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시편 19:3) 세상 끝까지 퍼진 하늘의 소리에까지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몇 해 전에 방문했던 베를린 레기나 마르티눔 성당을 회고하실 때는 “자연 조명과 인공조명이 절묘하게 뒤섞인 공간”의 성스러움에 숨이 막힐 것 같은 감동을 느끼셨다고 했지요(79쪽). 성서에서 들려오는 하갈과 이스마엘의 절규를 듣기 위해 몸을 낮추셨을 뿐 아니라 쉽게 떠날 수도 없는 이 복잡한 도시에서 “폭력적으로 추방당한 작은 소리들에 의도적으로 귀를 기울”이겠다는 다짐도 빼놓지 않으셨습니다(75쪽). 세계에 있는 모든 ‘초월자의 암호’(카를 야스퍼스)를 읽어내고 그것을 해독해 낼 능력을 갖추게 될 때 우리네 심성이 회복된다고도 하셨습니다(53쪽). 작은 것들을 보려면 자꾸 멈춰 서야한다고 하셨지요. “멈추어 서는 것이야말로 참된 삶의 시작”이고 “생명 사랑이란 언제나 작은 것들에 대한 세심한 관찰의 결과라고 말입니다(281쪽). 세상의 어느 특정한 소리에 편향되지도, 제멋대로 세상의 장엄한 소리들 사이에 위계를 정하지도 않았다는 점에서 목사님은 소리의 신학자이자 소리의 철학자이십니다. 적어도 제겐 그렇습니다.


이제는 ‘소리가 이루는 장엄한 세계’가 왜 명문인지에 대해 마지막 이유를 말씀드릴 차례입니다. 사실 계절의 변화를 따라 자연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소리나 까마득해진 옛날 사람들의 모습은 시골의 촌로들이 목사님보다 더 잘 알지 모릅니다. 차별받고 소외당한 사람들의 목소리도 비정규직이나 성소수자들을 위해 투쟁하는 시민운동가들이 더 세밀하게 들을 개연성이 높습니다. 미술이나 음악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목사님이 들려주는 48가지 소리에 흥분하는 것은 우주의 장엄한 교향곡이 다름 아닌 목사, 그것도 서울의 중형교회 담임목사를 통해 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예술가나 시민운동가나 생태주의자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천덕꾸러기가 된 목사가 하찮게 여겨지던 소리들을 본래의 자리로 복권시켰기에 탄성을 지르는 것입니다.



목사님을 통해 세상의 다양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보니 20세기 중반 이후 세계 클래식 콘서트홀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생각이 났습니다. 말러는 제자 브루노 발터와 숲속을 거닐다가 멀리서 들려오는 장터 소리, 군악대 소리를 듣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소리 들리나? 저것이 바로 폴리포니(대위법적 음악)이며, 내가 폴리포니를 이해하는 방식일세! … 예술가의 일이란 이러한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고 하나의 조화로운 전체로 통일하는 것일세.


음악 학자들 가운데는 말러의 교향곡 3번을 가리켜 “천지창조 교향곡”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에게 있어서 교향곡이란, 특히 3번 교향곡이란 “모든 기술적인 수단을 강구하여 세계를 이루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때문에 말러는 3번 교향곡을 6악장으로 구성하면서 목장의 꽃들, 숲속의 동물들, 인간들, 천사들, 그리고 사랑이 말러에게 던질 말들을 음악화 했던 것입니다.


말러가 의미하는 자연은 좀 독특하기 때문에 주의를 요구합니다. 그는 사람들이 자연을 말할 때 “오로지 꽃이나 작은 새들이나 수풀의 향기만”을 이야기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왜 자연에 디오니소스나 위대한 목신 판(Pan, 목신)과 연관 짖지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때문에 자신의 교향곡 3번에서 말러는 “끔찍하고 위대하고 한편으로는 사랑스러운 그 모든 속내를 숨기고 있”는 자연, 누구도 간파하지 못한 이 오묘한 자연의 이면을 파고들었습니다. 그것이 ‘언제 어디서든 담아내고자 하는 것은 자연의 소리”이었기 때문입니다.


도스또엡스끼를 멘토 쯤으로 받들던 말러는 “이 땅위에 피조물이 아직 하나라도 고통 받고 있다면 인간이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가?”란 근원적 질문에 답하려 했던 음악가였습니다. 젊었을 때부터 숲 걷기나 등산 같은 강도 높은 운동을 좋아했지만 생의 말년에 심장에 문제가 생기자 의사는 격한 운동을 금지시켰습니다. 평생 “책상에 앉은 채로만 작곡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에 짧고 가벼운 산책만 하라는 의사의 요구에 말러는 낙담했습니다. 운동을 할 수 없어 자신이 원하는 작곡을 할 수 없는 현실을 “인생 최대의 불행”으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목사님과 말러 사이에는 물론 많은 차이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누구도 간파하지 못한 자연의 오묘한 이면에까지 들여다보며 모든 피조물의 고통에 반응하려 했던 말러와 목사님 사이에는 공통점이 작지 않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이제부터는 저도 “해야 할 일 혹은 성취해야 할 목표를 인간관계의 중심에 두는 이들”(55쪽)에게 느낀 극심한 피로감만 불평할 게 아니라 “세상의 미세한 것들 속에 깃들어 있는 하늘에 주목”(53쪽)하겠습니다. 그렇게 자본주의 세계의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보겠습니다. 고요한 침묵 속에 마련된 성소(161쪽)에 더 자주 몸을 맡기겠습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양화진’에서는 매미들의 우렁찬 합창이 계속되었습니다. 매미의 합창 소리는 너무 커서 소음처럼 들릴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양화진의 매미들은 왜 솔로가 아니라 합창을 좋아하는지, 합창을 하되 왜 포르티시모로 울어대는지를 관찰해 보겠습니다. 윌리엄 블레이크처럼 ‘한 알의 모래에서 세상이나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까진 못 본다 하더라도(116쪽), “사소한 것들 속에서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하나님”을 만나거나(304쪽), 그것도 어렵다면 목적 없는 무위의 놀이를 통해 욕망의 포박이 조금이라도 느슨해질 줄 누가 알겠습니까(102쪽).


언제 한 번 양화진으로 놀러 오세요. 함께 듣고 싶은 음악이 많습니다. 목사님의 평안을 빕니다. 


지강유철/양화진문화원 선임연구원, 《장기려 그 사람》 저자


* 곽건용/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을까요 http://fzari.com/1027

* 김근수/ 예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http://fzari.com/1028

* 법인/ 이상동몽(異床同夢), 대동소이(大同小異)의 길을 가는 수도자 http://fzari.tistory.com/1029

* 손성현/ 독수리, 깊이 날아 뜻을 품다 http://fzari.com/1030

박광숙/ 소슬한 가을바람 같은 청량감이 드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http://fzari.com/1031 

* 이명행/ 하나님의 충직한 손발 엔텔레키아의 신비 http://fzari.com/1032

*민영진/ 한 때 당신은 나의 학생이었지만, 지금은 내가 당신의 학생입니다 http://fzari.com/1033

* 김삼웅/ 먹물과 속물 동거시대의 알곡처럼 http://fzari.tistory.com/1036

* 홍순관/ 다만 노을이 되어 내일 아침의 빛나는 태양을 도울 뿐입니다 http://fzari.com/1042

* 이정모/ 움파와 움씨 http://fzari.tistory.com/1043

* 김병년/ 아픔에 부딪히는 능력이 희망을 만드는 길임을 http://fzari.com/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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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목사님께(8)


먹물과 속물 동거시대의 알곡처럼


목사님, 40년 또는 반세기만이라는 불볕더위 속에, 10년은 족히 되는 선풍기마저 고장 난 방에서 목사님의 책,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를 읽었습니다. 참, 책은 시기와 장소에 따라 읽는 맛이 다릅니다.


마침 박근혜 대통령이 8ㆍ15경축사에서 “세계가 부러워하는 대한민국을 비하하는 신조어들이 확산되고 있다”면서 ‘헬 조선’ 등 세간의 유행어를 매몰차게 비판하던 뒤끝이라 목사님이 펴내신 책의 이 제목부터가 맘에 끌렸습니다. 모두 아는 바대로 ‘헬 조선’이란 유행어는 박근혜 정부 시기에 나온 ‘민중의 소리’인데, 여전히 남 탓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헬 조선’은 자살율 세계1위, 청년실업, 빈부격차, 안보불안, 출산율 세계최저, 부패지수 세계최고 등의 현실에서 생긴 말입니다.

하긴 100g에 수백만 원씩 하는 송로버섯, 바닷가재, 훈제연어, 칠갑상어알 샐러드, 상어지느러미찜, 한우갈비 등으로 오찬을 즐기는 그들에게 ‘헬 조선’은 이해하기 어렵고, 불온하기 그지없는 말일 것입니다. 그들만의 ‘지상낙원’을 모르는 채 ‘더위나 먹으면서’ 사는 99%의 ‘개·돼지’들의 나라가 왕조국가인지 공화국인지 헷갈리게 합니다.



원나라 시대의 학자 김이상金履祥이 “글 읽는 사람을 만나면 그 다섯 가지 맛이 섞여 있어서 재미가 진진하다”고 했거니와 김기석 목사님의 책이 꼭 그렇습니다. 52가지 소제를 빼어난 문장력으로 풀고 동서고금 명저에서 솎아낸 다양한 인용문은 청와대 오찬에 나온 값비싼 메뉴와는 비할 바가 아니더군요.


“문은 인”이라 하여 글은 곧 사람입니다. 글과 책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에 글 같은 글, 책다운 책을 만나기란 여간 쉽지 않은 터에, 모처럼 ‘인과 문’이 일치한 글을 만났습니다.


연암 박지원은 “그의 시를 읽고 그의 글을 읽으면서,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면 옳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문은 곧 인’이기 때문입니다. 김기석 목사님이니까 이런 책을 쓸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사이비 문인ㆍ학자ㆍ언론인ㆍ목사ㆍ주교ㆍ승려들이 판치는 시대에 김 목사님은 참 문인이고 신실한 목사라고 생각됩니다. 옛날식으로 하면 참 선비인 거지요. 조선초기의 혁명적 지식인이었던 정도전은 ‘참 선비상’을 다음과 같이 그렸습니다.


첫째, 사는 학지제천지學之際天地하여 음양ㆍ천문ㆍ지리ㆍ생물ㆍ복서卜筮 등 자연과학에도 조예가 깊어야 한다.

둘째, 사는 명윤리明倫理하여 오륜을 실천할 수 있는 도덕적 인간이어야 한다.

셋째, 사는 달어고금達於古今하는 역사가가 되어야 한다.

넷째, 사는 지성지본호천명知性之本乎天命하는 성리학자여야 한다.

다섯째, 사는 관인이면서 교육자의 기능을 담당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섯째, 시문을 통해 진리를 나누는 벗이어야 한다.

일곱째, 골육지친과 사귀는 벗이어야 한다.

여덟째, 책을 붙잡고 옛것을 뒤적이며 새로운 도덕을 말하는 벗이어야 한다.

아홉째, 생사를 함께하는 벗이어야 한다.

열째, 심장을 가르고 간을 꺼내며 믿게 할 만한 친구여야 한다.


목사님, 한국 사회가 ‘헬 조선’이 된 이유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언론인과 지식인(종교인 포함) 등 이른바 선비들이 제 기능과 역할을 하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 장차관, 국회의원, 검사, 판사 등은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머슴들입니다. 그런데 머슴들이 주인 행세를 하고 설치는 적반하장은 일차적으로는 주인인 국민의 책임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정의와 진리를 존재의 사명으로 하는 지식인들이 책무를 다하지 않거나 오히려 권력과 유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머슴들이 상전 노릇을 하기에 이르렀던 겁니다.


고대로 지식인 사회는 먹물과 속물이 동거하기 마련입니다. 대학 사회ㆍ정계ㆍ언론계ㆍ법조계ㆍ종교계에는 알곡과 쭉정이가 뒤섞여 있습니다. 속물과 쭉정이가 더 설치고 종교계에서는 그 속물, 쭉정이가 더 선지자 행세를 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대형교회와 사찰을 짓고 권력자를 우상으로 섬기면서 신도들의 지갑을 털지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설교와 설법으로 기복신앙을 부추겨 종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묶어둡니다.


목사님은 어찌 보면 평범한 기독교 목사이고 문학평론가입니다. 그런데 혼탁한 시대에는 ‘평범’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지배세력, 주류 패거리에 섞이지 않으면 ‘찬밥’ 신세가 되거나 ‘이단’으로 몰리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은 평범함 속에서 진실을 말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벗이 되고, ‘다섯 가지 맛’이 나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과외의 재미와 지식을 준 ‘인용문’


목사님의 책을 읽으면 자주자주 ‘쉼터’를 만나게 됩니다. 그 쉼터는 때론 사막의 오아시스일 수도 있고, 풍성한 과수원일 수도 있습니다. 바로 목사님이 책을 통해 보여준 ‘인용문’ 말입니다. 다양한 책에서 발췌하여 그때그때 제시한 인용문은 과외의 재미와 지식, 신선한 석간수, 엄동의 딸기 맛이 납니다. 마음에 와 닿는 인용문 및 편을 골라보았습니다.


십자군은 자기네 땅에 살고 있던 유대인한테 손을 내밀 생각도 못했고. (자기들보다 훨씬 앞선 문명을 가지고 있었던) 이슬람한테서 배우려는 생각도 못했고. 자기들의 공포와 원한을 다스릴 줄도 몰랐다. 그들은 자기들이 정신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죽이고 망가뜨리고 태우고 모독하고 부수었다. 그 과정에서 자기들의 도덕성을 무너뜨렸다. 아우슈비츠는 그런 의도된 증오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지만. 서양인이 계속해서 이슬람을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 볼 경우 오류는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카렌암스트롱, 《마음의 진보》, 435-436쪽).


인간이 어쩌면 저렇게 눈멀 수 있단 말인가? 형제의 흠을 찾아내는 데는 아르고스의 백 개의 눈을 가진 자가 자신에 대해서는 어떻게 저렇듯 완전히 눈멀 수 있단 말이냐? 저자들은 구름 위에 서서 사람들에게 온유하고 너그러우라고 호통을 치면서 자신들은 불꽃을 휘두르는 몰록처럼 사람들을 하나님에게 제물로 바치고 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설교하면서, 팔순의 눈먼 노인은 문밖으로 내모는 족속들이다. 탐욕 부리지 말라고 아우성치면서, 금붙이에 눈이 멀어 페루인들을 말살시키고 이교도들에게 짐승처럼 수레를 몰게 한다(프리드리히 폰 실러, 《도적패》, 119쪽).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창공은 그의 솜씨를 알려 준다. 낮은 낮에게 말씀을 전해주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알려 준다. 그 이야기 그 말소리. 비록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그 소리 온 누리에 울려 퍼지고. 그 말씀 세상 끝까지 번져 간다(시편 19:1-4).


어찌해서 당신들은 여기 수도원에 편히 앉아 가난한 사람들의 땀과 눈물로 빚어진 빵을 먹으면서. 그 지식을 필요로 하는 백성들과는 동떨어져서. 저들의 무지를 깨우쳐 주기는 커녕 고지식한 그들의 피를 빨아먹고 있습니까?


예수께서는 당신들 보고 이리떼로부터 양들을 지키는 어진 목자들이 되라 하셨는데. 어떻게 당신들은 양들을 잡아먹는 이리 떼가 될 수 있습니까?


어떻게 당신들은 가난 속에서 평생도록 헌신적인 삶을 살기로 굳게 맹세하고 또 서약하고서도 당신들이 한 말은 모두 잊어버린 채 안락한 생활을 할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산다고 하면서, 종교가 뜻하는 모든 것을 다 저버릴 수 있습니까?


마음이 욕심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 어떻게 수도를 한다는 것입니까? 당신들은 겉으로는 당신들의 육신을 죽이는 체하나, 속으로는 당신들의 영혼을 죽이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세상의 모든 세속적인 것들을 질색인 양하면서도 속마음은 탐욕으로 부풀어 있습니다. 스스로백성의 지도자요. 스승이라 자처하나. 사실을 말하자면 당신들은 강도와 다를 바가 없습니(칼랄 지브린, 《반항하는 정신》, 22-24쪽).


시의적ㆍ감성적인 문장


김 목사님은 또한 대단한 문장가입니다. “보기 좋은 떡은 먹기도 좋다”는 격언대로 아무리 천하의 경륜을 담았대도 글이 난삽하면 읽히지 않지요. 좋은 글이란 읽기 쉬우면서도 논리적이고 시의적이면서 감성적이어야 합니다. 목사님께서 쓴 본문 중에서 몇 대목을 골라봤습니다. 한 번 더 읽고 싶어서입니다.


세상이 온통 부정한 돈 냄새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정치권에 유입되는 부정한 자금은 가진 자들만의 리그를 조성하는데 활용됩니다. 사회적 약자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돈은 문화계, 경제계, 언론계, 종교계 할 것 없이 모두를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근원’이라는 말씀을 지금처럼 처절하게 실감하는 때가 또 있을까요? 저는 늘 돈을 매개로 하지 않는 우정의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해왔습니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물질을 마련할 수 있다면. ‘서로 함께’의 공동체를 일구기 위해 자신의 재능을 기꺼이 선물로 내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돈의 전능을 해체하라」, 130쪽).


지난 시절에는 우리 의식 속에 동두렷이 떠오르는 별들이 있었습니다. 시절이 아무리 어두워도 그분들이 계시기에 절망 속에 유폐되지 않을 수 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에 마른 목을 축이는 새들처럼 그분들의 말씀을 경청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도 그런 권위에 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큰 정신이 사라졌다는 증거로 볼 수도 있지만, 들으려는 마음이 사라진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중력에 이끌릴 뿐 하늘을 향해 비상하려는 마음이 망실되었기 때문일 겁니다(바라보아야 할 별 하나」, 143쪽).


손이 아름답던 한 사람을 압니다. 예수입니다. 그는 나병에 걸려 사랑하는 이들과의 접촉의 기쁨을 포기한 채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몸에 손을 대셨습니다. 열병에 시달리던 베드로의 장모의 손을 잡아 일으키기도 하셨습니다. 바다 물결 속에 잠겨들던 베드로의 손을 붙잡아 끌어올려 주시기도 했습니다. 그의 손이 닿는 곳마다 생명이 깨어났습니다(마주 잡을 손 하나」, 158쪽).


철학자인 하이데거는 인간을 ‘서로 함께 존재’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함께 지낸다는 것이 늘 즐겁고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함께 지내다 보면 연애 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상대방의 낯선 모습에 낙심할 수도 있습니다. 그 낯섦을 품어 안을만한 여백이 없을 때 불처럼 타올랐던 사랑은 차가운 재만 남긴 채 꺼져 버리기도 합니다. 사랑의 위기입니다. 하지만 잊지 마십시오. 그러한 낯선 모습이야말로 두 사람의 사랑을 크고 깊게 만들기 위한 기회라는 사실을 말입니다(둘이서 함께 걷는 길」, 176쪽).


누군가의 호된 꾸지람을 듣고 돌이킬 줄 아는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는 큰 사람입니다. 아무리 맞아도 돌이킬 줄 모르는 이들이 더 많으니 말입니다. 제가 전하는 말씀이 가끔은 “장군죽비가 되어 어깨를 후려치는 것 같았고. 때로는 싸리비로 마당을 정갈하게 쓸어내는 것 같기도 했고. 때로는 양철북 소리처럼 쟁쟁하게 들려왔다”고 하셨지요? 세월이 흘러도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모르겠다며 얼굴을 붉히실 때, 오히려 제가 부끄러워졌습니다. 저의 말과 삶의 괴리를 누구보다 제가 잘 알기 때문입니다. 물론 말씀을 따라 살아보려는 애는 쓰지만 그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배는 그만 먹으라고 하는 데도 숟가락질을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처럼 우리는 몸과 마음에 밴 습기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삽니다. 그렇다고 하여 지레 포기할 수도 없습니다(인생은 ‘오늘’의 점철」, 345쪽).


일상적인 세계, 상식의 세계. 예측 가능한 세계가 무너질 때 삶은 혼돈으로 변합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그런 무난한 세계에 쉽게 싫증을 느낍니다. 일탈의 욕망은 그렇게 나타납니다. 이런 일탈의 욕망이 없다면 인간 세계는 지루함 때문에 지옥으로 변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욕망이 타자를 물화시키거나 그의 존엄을 훼손하기 시작할 때 심각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종교는 그런 과도한 욕망을 경계하는 나팔소리여야 합니다. 종교가 분명한 소리를 내지 못할 때 세상 도처에서 괴물들이 나타납니다(인간보다 이상한 존재는 없다」, 215쪽).


의를 살리는 루터의 길을


목사님, 내년 2017년은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입니다. 루터가 만크펠트에 있는 부모를 방문하고 학교로 돌아오는 길에 폭우를 만나게 됐는데, 그때 번개가 그의 옆에 있는 숲을 때렸다고 하지요. 그는 죽음의 공포에서 자신도 모르게 광부들의 수호성인 안나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수도사가 되기를 서원했습니다.


루터는 이와 더불어 어느 날 신약성서 로마서 1장 10절의 “하나님의 의는 복음 속에 나타나서 믿음으로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는 바울의 말에 큰 깨달음을 얻고 ‘의의 길’에 나섰다고 합니다. 그것이 종교개혁의 위대한 출발이었지요.


김기석 목사님, 종교개혁의 주체이던 기독교(개신교)가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한 시대에, 김 목사님과 같은 분들이 한국기독교 개혁의 선지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또한 목사님의 편지 글인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가 루터의 “진리에 대한 사랑과 이를 명백히 할 목적”으로 쓴 ‘95개 조항’과 같이 ‘의에 목마른’ 시대의 길잡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건필 하십시오.


김삼웅/전 독립기념관장, 《김남주 평전》 저자


* 곽건용/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을까요 http://fzari.com/1027

* 김근수/ 예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http://fzari.com/1028

* 법인/ 이상동몽(異床同夢), 대동소이(大同小異)의 길을 가는 수도자 http://fzari.tistory.com/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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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숙/ 소슬한 가을바람 같은 청량감이 드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http://fzari.com/1031

* 이명행/ 하나님의 충직한 손발 엔텔레키아의 신비 http://fzari.com/1032

* 민영진/ 한 때 당신은 나의 학생이었지만, 지금은 내가 당신의 학생입니다 http://fzari.com/1033

* 지강유철/ 목사님은 소리의 신학자이자 소리의 철학자이십니다 http://fzari.com/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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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년/ 아픔에 부딪히는 능력이 희망을 만드는 길임을 http://fzari.com/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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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목사님께(7)


한 때 당신은 나의 학생이었지만, 

지금은 내가 당신의 학생입니다


나는 감신대학에서 4년 동안은 당신의 교수였지요. 그러나 당신이 감신대학을 졸업하고 평생 목회자의 길을 걷는 동안 나 역시 교수직을 떠나서 성경 번역에 몰두해 온 지가 벌써 서너 성상이 지났습니다. 최근 20여 년 동안은, 내가 당신의 학생이고 당신이 나의 교수라고, 나는 주저 없이 고백합니다. 현재까지 20여권이나 되는 당신의 저서를 통해서 배운 바가 크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저서들은 내가 주문한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당신이 그때그때마다 나를 생각해서 챙겨준 것도 아닌데, 마치 누군가가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을 내게 일러바치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니면, 내가 당신의 책을 특별히 좋아하는 것을 아는 내 주변의 극히 소수 중에 어느 누군가가 그 책들을 내게 줄곧 보내주었습니다. 하여 나는 그 책들 속에서 당신의 육성을 들으면서, 당신이 목회자로서의 당신 잘못을 뉘우칠 때(「옹송그리며 쓰는 반성문」, 147-152쪽 특히 151쪽), 나도 그와 똑같은 나의 잘못을 뉘우쳤고, 당신이 하는 기도(병상에 누운 그의 손을 마주 잡은 채 나는 조용히 기도를 올렸습니다. ‘나의 손을 통해 주님께서 그의 손을 잡아 달라’고, 159쪽)를 엿들으며 난처한 처지에서도 어떻게 간절히 기도할 수 있는지를 배웠습니다. 또한 당신 덕분에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법을 발견하였고, 성도의 교제에서 함께 나눌 메시지도 얻곤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목사안수례를 앞둔 이에게 주는 조언(109-117쪽)은 백미입니다. 나는 그런 조언에는 늘 실패해 왔습니다. 신학을 지원하는 젊은이들에게는 지레 겁먹도록 예레미야가 소명을 거절했던 것(예레미야 1:6; 20:7)을 상기시키면서 신학 지원을 함부로 하지 못하도록 겁박했는가 하면, 목회의 길로 들어선 둘째 아들이, 어릴 적, 암병동에서 사경을 헤맬 때는 하나님께 이 자식 제발 빨리 데려가시든지 빨리 살려주시든지 어서 결정해주시라고 기도했었지만, 그 아이가 목사 안수 받던 날은 이 아비는 이 자식이 당신을 섬기다가 거기에서 죽게 해달라고 기도했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말은 목사 안수를 받는 아들을 격려한 것도 아니고 축복한 것은 더더구나 아니고, 오히려 위협이 되어버리고 말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신이 목사 안수례를 앞둔 후배에게 해준 격려의 말들을 읽으면서 내가 얼마나 다혈질이었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구도자의 자세를 가지라고 한 것, 묵상과 기도를 위한 시간의 지성소를 만들라고 한 것, 파당을 짓지 말라는 것, 설교 언어에서 매너리즘을 피하라고 한 것 등은 그렇게 살아온 선배가 아니고서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조언이 아니지요.



이번에도 독자들은 당신의 글을 탐독하면서 당신이 인용한 여러 철학자(사상가, 하이데거 외 13인), 신학자와 교회지도자(디트리히 본회퍼 외 10인), 시인(강은교 외 국내 시인들 32인, 칼릴 지브란 외 외국 시인들 10인) , 여러 분야 작가(법인 외 한국작가들 10인, 니코스 카잔차키스 외 외국 작가들 22인), 화가(렘브란트 외 10인), 오르겔 마이스터, 피아니스트, 사진작가, 영화감독 작곡가, 가수 수녀 등 각 분야 전문가(홍성훈 외 7인)를 만나서, 그들의 창작 세계가 주는 감동을 전달 받기도 합니다. 별도로 당신이 “아름다운 영혼의 성좌”(이용도, 루쉰, 토리, 김약연, 강순명, 마더 테레사, 톨스토이, 토마스 아퀴나스, 최홍준, 이세종, 토마스 머튼, 함석헌, 디트리히 본회퍼, 마하트마 간디, 원경선, 가가와 도요히코, 우찌무라 간조, 김교신, 김구, 전우익, 로제 수사, 이승훈, 앨버트 슈바이처, 이현필, 프란체스코, 이찬갑, 권정생, 윤동주, 유누스, 문익환, 안창호 등 245쪽)라고 일컫는 이들은, 당신의 신앙과 지성의 원천이기 이전에, 당신의 책을 좋아하는 많은 독자들에게도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도록 이끌어준 이들이고, 생명의 빛을 반사한 별들이지요.


당신이 인용한 이들을 보다가 우연히 당신이 읽는 도서 목록을 정리해 볼 수 있었던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나라 안팎 어느 곳을 방문하든지 늘 그곳 역사와 관련된 인물을 찾는 당신에게서 우리는 우리에게 희망을 가지게 한 이들을 만나는 것도 은총입니다(예를 들면, 통영 방문기 「지중지중 물가를 거닐면」에서는 유치환, 백석, 김춘수, 김상옥, 박경리, 윤이상, 전혁림, 이중섭).


이뿐만 아니라 책에서 당신이 조형한 아포리즘만 거두어도 결실이 풍요롭습니다. 몇 가지 예만 들어봅니다. 문맥을 떠나서도 우리에게 어떤 영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생명은 스러져도 이야기는 죽지 않는 법, 이야기를 불멸로 만드는 것은 살아있는 자의 기억에의 의지다.”(90쪽), “척박한 환경을 자기 삶으로 수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기 내면에 꽃이 피어나는 법이다.”(97쪽), “시혜자의 자리에 서는 순간 선한 뜻은 공적 쌓기로 전락하고 만다.”(100쪽), “칭찬을 구하는 이들은 실망을 추수하게 마련이다.”(100쪽), “희망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속에서 숨은 불씨를 찾는 것이다.”(108쪽), “이익의 원리가 의의 원리 혹은 신앙의 원리를 대체할 때 거룩함은 가뭇없이 스러지게 마련이다.”(126쪽), “주님을 기다린다는 것은 오실 분의 삶을 이 땅에서 재현하며 사는 것이다.”(164쪽), “자기 성찰로 이어지지 않는 신앙 고백은 허망한 것이다.”(216쪽), “신앙은 ‘떠남’과 ‘따름’ 사이에서 형성된다.”(337), “과도한 욕망의 길 끝에는 수치가 있다.”(355쪽)


시절을 적는다, 세상을 읽는다


당신의 글을 읽다가 매 챕터마다 당신이 절기 코드를 적어 넣은 것을 발견하고, 재미있었습니다. 내 마음대로 당신의 글을 <겨울 편>(14-82쪽), <봄 편>(83-189쪽), <여름 편>(190-264쪽), <겨울 편>(265-383쪽), 이렇게 넷으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겨울 편>에서는 “소한에서 대한으로 넘어가는 이즈음”, “대한이 지났는데도”, “소한 추위가 지나더니”, “입춘이 지난 후”와 같은 언급을 봅니다. 당신이 당신의 글을 우리의 24절기에 맞추어 정리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도 합니다. 그러나 <봄 편>을 보면, “접동새 우는 4월에는 채 피어보지도 못한 채 스러져간 세월호 참사자들이 떠오르고, 5월이면 1980년 광주에서 죽어간 넋들을 떠올리게 되고, 6월에는 이 한반도를 피로 물들인 전쟁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132쪽)고 하여 땅의 사건을 읽고 있고, <여름 편>에서는 다시 “장마철이 되어서인지…”, “소서가 코앞이어서”, “이제 본격적 무더위가…” “여름의 끝자락” 같은 코드를 숨겨 비와 바람과 태양의 열기를 읽고 있습니다. <가을 편>에도 “백로가 지나서인지”, “이 가을 날, 저 청명한 가을 하늘처럼”, “추석연휴 기간 중에…”, “한로를 앞둔 절기여서…” 등을 언급하면서 하늘과 땅의 변화를 읽습니다. 어쨌든 당신의 글이 <겨울, 봄, 여름, 가을> 이렇게 네 계절로 뚜렷하게 구분되어 골고루 편집이 되어 있는 것이 재미있군요. 대림절부터 시작되는 교회력을 따른 것 같기도 하고… 잊혀가는 24절기를 당신에게서 다시 찾는다는 것이 소중했습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당신이 의식했든 안 했든 독자들은, 기후와 우리의 삶 우리의 생각이 참으로 밀접하다는 것도 당신의 글에서 읽을 수 있었으니까요.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이 공간 위의 삶과 역사를 관찰하면서, 우리가 놓치기 쉬운 하늘과 시절을 읽는 당신이 이번에는 돋보였습니다.


얼마 전, 내가 속한 독서회에서 조지 기싱의 《헨리 라이크로프트 수상록》을 읽는 적이 있습니다. 조지 기싱이야 영문학계에서는 워낙 유명한 인물이니까 그의 여러 저서 중 하나를 읽나보다 했지만 책 제목에 나오는 ‘헨리 라이크로프트’라는 이름은 처음 듣는 이름이어서 왜 우리가 그의 수상록을 읽어야 하나, 왜 또 그의 수상록을 조지 기싱이 써주었나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책을 펴보니, 목차가 <봄, 여름, 가을, 겨울>입니다. 그의 유고 뭉치를 읽으면서 기싱은 적습니다. “나는 라이크로프트가 하늘의 상태와 계절에 순환에 언제나 많은 영향을 받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이 작은 책을 계절에 따라 네 개의 장(章)으로 나누기로 마음먹었다”(13쪽). 읽다가 보니 이 책은 조지 기싱이 죽기 전에 자기 이야기를 남 이야기하듯, 가상의 인물, 발음도 하기 힘든, 헨리 라이크로프트를 내세워 하고 있습니다. 자서전에 소설적 허구를 넣자니 그렇고 안 넣자니 무엇이 빠진 것 같아 아쉽고,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친구의 수상록 써주기 형식을 취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나는 이미 당신의 《길은 사람에게로 향한다》에서도 당신이 “하늘의 상태와 계절의 순환에 언제나 많은 영향을 받고 있음”을 이번에 다시 읽어 보면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이 하늘과 땅을 함께 읽으며 2016년 봄과 사순절과 부활절을 함께 보낸 우리에게 준 메시지, 따로 인용하여 우리의 믿음을 성찰하고 싶습니다.


엄벙덤벙 살다보니 벌써 사순절 순례여정을 마감하고 부활절을 맞이하게 되네요. 세상에 가득 차 있는 고난과 슬픔과 연약함을 부둥켜안음으로 더 깊은 세계를 지행해야 했는데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광화문에서 삭발식을 거행하는 것을 보며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죽은 자들의 억울함을 신원해주는 것이 산 자의 의무일진대 그들은 그 길조차 막혀 있어 피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자기만족에 겨운 사람들은 그들의 존재를 거추장스럽게 여길 뿐만 아니라, 그들을 모욕하는 일에도 주저함이 없습니다(103쪽).


「길을 잃으면 어때」라고 하는 마지막 장이, 이성복이 말하는 ‘장난끼’(285쪽)와는 얼마만큼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자못 심각하게 끝날 줄 알았는데, 긴장했던 (당신은 늘 독자를 긴장시키죠.) 우리 독자들을 크게 웃게 했습니다. 당신이 이렇게 무장해제 하듯 하는 말을 하는 것은 그렇게 흔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뿐인가요? “길을 잃지 않았더라면 만날 수 없었던 인연을 생각하면 길 잃음이야말로 은총이 유입되는 통로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381쪽). 이 말에서 우리는 큰 위로를 받고 동시에 또 꺼지지 않는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토박이말을 발굴하는 재미


당신의 최근 저서들을 읽을 때마다 나의 일차적 관심은,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당신이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보다는 당신이 활용하는 우리 토박이말들을 정리하고 익히는 것입니다. 거듭 죄송합니다. 이것이 저자의 저술 목적이 아닌 줄 알지만, 아마 최근의 당신의 저서들, 《아슬아슬한 희망》, 《말씀의 빛 속을 거닐다》, 《광야에서 길을 묻다》 등을 읽으면서부터 생긴 내 버릇인 것 같습니다. 이번 책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도 마찬가지고요. 이번에도 또 어떤 아름다운 토박이말이 이 책에서 활용되었는가 하는 것을 먼저 관찰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조사하면 더 많겠지만 책을 절반까지 읽으면서 내가 찾아낸 토박이말 활용의 예는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이미 아는 것은 빼놓고 아직 처음 본 듯한 것들만 적어 봅니다.


시난고난 애끓이지는 않을 겁니다”(18쪽), “마음을 도스르지 않으면”(26쪽), “자꾸 틀리게 부른다고 지청구를 듣곤 했습니다.”(33쪽), “신산스러운 삶의 경험이 없었다면”(36쪽), “요즘은 무지근한 어깨 통증 때문에”(49쪽), “오늘도 희떠운 소리가 많았습니다.”(59쪽), “나뭇잎은 이미 오가리 들어 있고”(65쪽), “선들어진 발걸음으로 걷는 젊은이들”(67쪽), “어른들의 모습도 오련하게 떠오릅니다.”(69쪽), “그 소리를 따라 무람없이 걷다보면”(73쪽), “진동한동 다니느라 거칠어졌던 호흡이 가지런해지고”(77쪽), “특별한 장식이 없기에 그 공간은 오히려 깔밋하게 보였습니다.”(79쪽), “나는 그분의 느르심을 흔감하게 경험하였습니다.”(79쪽), “울가망하던 마음이 조금은 거늑해졌습니다.”(79쪽), “단정하고 뜸숙한 글씨는”(80쪽), “마당가의 살피꽃밭을 살피게 됩니다.”(83쪽), “앙버티던 그때의 느낌이 지금도 생생합니다.”(90쪽), “엄부렁한 내 삶의 실상을”(92쪽), “여전히 여줄가리에나 집착할 뿐 깊은 곳에 당도하지 못한 채 어뜩비뜩 걷고 있는 내가”(92쪽), “서리 내린 밭에 남아 있는 희아리”(93쪽), “움씨를 뿌리는 마음”(95쪽), “아무리 겨울의 뒤끝이 무작스럽다고는 해도”(125쪽), “이익의 원리가 의의 원리 혹은 신앙의 원리를 대체할 때 거룩함은 가뭇없이 스러지게 마련입니다.”(126쪽),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너름새가 절로 드러난다.”(139쪽), “무작스런 말본새와 태도로 남의 속을 건드리는 이들”(139쪽), “저는 목사님을 뒤흔들었던 혼돈을 아령칙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140쪽), “옹송그리며 쓰는 반성문”(147쪽), “툽상스러운 듯하나 씩씩하기 이를 데 없는”(148쪽), “그 동안 현실 주변을 베돌기만 한”(148)쪽, “무작스럽게 쇄락의 방향으로 나를 잡아채는”(152쪽), “내 정신노동이 힘겨웠노라 언거번거 말할 수 없습니다.”(158쪽) “더덜뭇한 성격 탓에 삶의 비애만 가중되고(162쪽), 불쾌한 일들로 인해 오갈든 마음을 미소로 어루만지십시오.”(165쪽), “요셉의 눈길은 지며리 예수를 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172쪽) 등등.


언젠가 한 번 내게 말해준 적이 있지요? 당신도 이런 토박이말을 만나면 어느 경우에 어떻게 쓰는 말인지 충분히 알아서 예문들을 많이 만들어서 사용해 보고, 그래서 어색함이 없을 때 자신의 글에 활용한다고…. 내가 아는 문인 중에 시나 수필 전문을 토박이말로만 쓰는 이가 있는데, 그것은 번역본이 따로 있어야 읽겠던데, 당신의 경우는 독자들이 토박이말에 흥미를 가지고 다가가며 배워보겠다는 끌림을 주니, 대단히 교육적인 면이 있습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토박이말 사전(<재미있고 순우리말 사전>, <아름다운 우리말 이름 및 단어 모음>)에도 안 나오는 낱말들은 당신의 설명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책으로 엮어 보낸 편지를 읽다보니, 이처럼 여러 좋은 대목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또 한 번 기꺼이 당신의 학생이 되어 배울 수 있으니 즐겁습니다. 같은 시공간에 이처럼 배움을 나누는 당신과 함께 있다는 것은 그리하여 내게 즐거움입니다.


올 여름이 뜨거운 만큼 다가오는 또 다른 계절은 그 아니 좋지 않겠습니까? 부디 좋은 시간 속에서 함께 만납시다. 만나 즐거울 때까지 안녕하기를.


민영진/전 대한성서공회 총무


* 곽건용/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을까요 http://fzari.com/1027

* 김근수/ 예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http://fzari.com/1028

* 법인/ 이상동몽(異床同夢), 대동소이(大同小異)의 길을 가는 수도자 http://fzari.tistory.com/1029

* 손성현/ 독수리, 깊이 날아 뜻을 품다 http://fzari.com/1030

박광숙/ 소슬한 가을바람 같은 청량감이 드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http://fzari.com/1031

* 이명행/ 하나님의 충직한 손발 엔텔레키아의 신비 http://fzari.com/1032

* 김삼웅/ 먹물과 속물 동거시대의 알곡처럼 http://fzari.tistory.com/1036

* 지강유철/ 목사님은 소리의 신학자이자 소리의 철학자이십니다 http://fzari.com/1037

홍순관/ 다만 노을이 되어 내일 아침의 빛나는 태양을 도울 뿐입니다 http://fzari.com/1042

* 이정모/ 움파와 움씨 http://fzari.tistory.com/1043

* 김병년/ 아픔에 부딪히는 능력이 희망을 만드는 길임을 http://fzari.com/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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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목사님께(6)


하나님의 충직한 손발 엔텔레키아의 신비


목사님이 쓰신 편지글을 읽으며, 지난 한 주간이 참 행복했습니다. 홀로 지내는 공간을 따뜻하게 유지하는 것이 죄스럽게 느껴지셨다니, 수도자로서의 금욕이 목사님에게는 운명적인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편지글 「움씨를 뿌리는 마음」 편에서 ‘‘흔들림’과 ‘젖음’은 우리를 존재의 근원과 연결 시켜주는 촉매인지 모른다”고 쓰신 것을 읽었습니다. 내게도 그런 것이 있지 않았을까. 그것을 읽으면서 살짝 전율이 이는 것을 느꼈습니다. 오래된 일 하나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오늘 목사님께 드리는 편지에서 그 얘기를 서두에 놓습니다.



절망의 핏빛 노을


1967년, 초등학교 4학년 초봄쯤으로 기억합니다. 그날 저는 어떤 일로 홀로 귀가하던 중에 텅 빈 신작로 위에서 노을이 져 온통 붉어진 세상을 만났습니다. 미루나무가 촘촘히 늘어선 신작로 저 끝 지평선 아래에서 태양이 터져버린 것처럼 세상은 온통 붉었습니다. 생전 처음 본 광경이었습니다. 마치 그것은 무슨 계시이고, 거기에서 무엇인가 뜻을 발견하지 못하면, 곧 내려질 재앙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은 시뻘건 공포가 엄습했습니다. 신작로 저만치 어딘가에는 내가 살던 동네가 있었을 테지요. 하지만 나는 망연히 그 지평선 끝을 바라보며 서늘한 공포 속에 서 있었습니다. 과연 내가 그곳을 향해 가야 하는지, 그곳에 내가 가야할 집이 있기는 한 것인지. 처음 맞닥뜨린 거대한 공포였습니다. 물론 그 정경만이 자아낸 공포는 아니었지요.


저는 교회 옆집에서 자랐습니다. 교회와 우리 집 사이에는 호박돌을 넣어 흙을 빚어 쌓고 그 위에 기와를 얹은 토담이 있었습니다. 제법 그럴싸하게 보이는 이 고풍스러운 담장이 어느 해 장마 때 기와 사이로 빗물이 스몄던지 그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담이 무너지는 큰 일이 벌어졌는데도 웬일인지 아버지나 어머니는 무심했습니다. 교회와의 사이에 있던 담이 무너졌으니 축복이었을까요? 담이 무너지고 난 뒤 그 흙더미가 치워졌을 뿐, 한동안 교회와 우리 집은 서로 트인 채로 지냈습니다. 그 전에도 담장 위로 떡 접시나 계란 꾸러미 같은 것이 넘나들곤 했습니다. 그랬던 그것들이 이제는 당당히 뒷마당을 가로질러 걸어서 넘어 다니게 된 것이죠. 아버지나 어머니는 교인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목사님네와는 잘 지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담이 무너진 뒤 저는 간혹 트인 교회 쪽을 흘깃거리며 지냈는데, 어느 날인가 마당을 쓸고 계시던 목사님이 저를 보더니 넘어 오라는 손짓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아마 계시 받은 손짓이었을 것입니다. 저는 그 은밀한 손짓에 홀렸습니다. 그리고 넘어간 그 길로 ‘교인’이 되었습니다. 돌아올 때 제 손에 성경책과 찬송가가 들려 있었는데, 그것에 대해 신자가 아니었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무한히 격려해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제 나쁜 짓은 못할 것’이라고 소곤거리시는 걸 귓등으로 들었습니다. 하지만 손짓에 홀렸으므로 그것은 제가 선택한 일이 아니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책임질 일 없는 손짓이었고, 손해 볼 일이 없는 결정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지금까지는 그렇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그 절망의 핏빛 노을 속으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저는 그날 학교에서 돌아온 후 낮잠을 잤습니다. 자고 일어나니 ‘아침’이 되어 있었습니다. 당연히 아버지는 출근을 하셨고, 어머니마저 집에 안계셨으므로 아주 심각하게 늦은 것이 분명했습니다. 다급했으므로 ‘어제’ 메고 온 가방을 그대로 멘 채로 학교에 갔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너무 일찍 온 모양이더군요. 아무도 없었습니다. 갑자기 예상하지 못했던 여유가 생겼습니다. 게을러 지각을 밥 먹듯 하던 저로서는 그 망중한이 꿀처럼 달콤했습니다. 창 가득 들어오는 햇빛을 돋보기로 끌어 모아 습자지를 그슬리는 재미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해는 점점 짧아졌고, 습자지에 들이민 돋보기에서도 햇살은 멀어져 가기 시작했습니다. 문득 시간을 의식하자 어리숙한 영혼은 혼란 속에 빠져버렸습니다. 늪처럼 갈앉은 의식을 헤집어 가까스로 뭔가 잘못되었다는 사실 하나를 거두었습니다.


어두운 운동장을 걸어 나오는 나의 의식을 가득 장악한 이 날의 ‘아침’과 ‘저녁’의 혼란은 간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착각한 것을 인정할 수 있었으면 간단했겠지요, 하지만 운동장을 가로질러 나오는 동안 저는 여전히 그 ‘현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 그 무섭게 붉어진 노을을 마주하고서도, 아침에서 저녁으로 건너뛰고 낮은 여전히 실종된 상태였습니다.


미망. 무엇인가가 닥쳐왔는데, 모른다는 것. 이것이 내게 큰 영향을 줄 것이 자명한데,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집에 돌아와서야 내게 일어난 일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을 보았고, 그것이 바로 ‘미망’이었습니다. 사리에 어두워 실제로는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어둠 속에 빠져 있는 것. 목사님의 편지글을 읽다가 전율이 일었던 것은 그날 그 미망의 깊이가 주었던 두려움이 저의 존재의 근원과 연결시켜주는 촉매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집에는 무슨 보상처럼 타지에 나가있던 가족들이 와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물론이고, 일찍이 출가했던 누이들과 도시에 유학 중이던 형이 돌아와 있었습니다. 설날이거나 추석이었으면 이해할 수 있을 일이었습니다.



칼 세이건이 인용한 <욥기>


얘기를 하다 보니 더불어 떠오르는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활성화 신호를 기다렸던 억압된 기억’처럼 선명하게 되살아난 사건입니다. 그것은 1980년 5월 광주의 일이었습니다. 저는 입대를 앞둔 청년이어서 영장을 받아들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고향으로 가는 초입은 언제나 광주역이었습니다. 열차에서 내려 역 광장으로 나왔을 때 그곳에 서 있던 탱크를 보았습니다. 그걸 바라보며 서 있는데, 중년의 한 사내가 달려와 저를 낚아채 택시에 태웠습니다. “죽으려고 환장했나?” 그의 말을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렇게 말한 이유를 물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택시 창밖으로 보이는 창백한 정경들이 그것의 답이었습니다. 택시는 제가 가리킨 광주 발산의 누이 집으로 실어다 주었습니다. 집에 들어서자 누이는 택시기사와 똑같은 목소리를 내며 저를 작은 골방에 밀어 넣고는 꼼짝 말고 거기 자빠져 있으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저는 누이의 명령대로 하룻밤은 꼼짝하지 않고 지냈지만, 여전히 그렇게만 자빠져 있을 나이가 아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집을 나서 광주천 뽕뽕다리를 건너 큰길로 나가니, 제 앞에 트럭 한 대가 와서 멈춰 섰습니다. 트럭 뒤에는 피투성이가 된 시신 두 구가 실려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저는 바로 뒤따라온 버스를 타고 도청 앞으로 나갔습니다. 저는 거기에서 이틀을 더 있었고, 그곳에서 듣고 본 것들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 – 5·18 광주 민주화운동 – 으로 저의 입대가 미뤄졌습니다. 저는 한동안 그곳에서 지내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서울에 온 저는 1980년 그 늦봄, 서울의 그 평화가 낯설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낯설고 또 낯설었습니다. “여기는 왜 이렇게 조용한지요?” 하고 외치고 싶은 것을 참아내느라 가슴에 응어리가 생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시점에, 저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그 평화가 아니라 홀로 공포에 사로잡힌, 세상의 질서에서 비껴 앉은 저 자신이 아닌가 싶어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교회 주일 예배에 앉아서도 저는 홀로 섬처럼 낯설었습니다. 1967년 그날 그 운동장에 깔리기 시작했던 땅거미처럼 두려웠습니다. 저는 낯선 그것과 맞서서 점점 더 큰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점점 그 속에서 질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공포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진실은 오래전 나를 혼돈 속으로 밀어 넣었던 ‘아침’과 ‘저녁’처럼 멀리 있었습니다. 알 수 없는 공허만이 점점 더 커졌습니다.


저는 여전히 그 핏빛 노을 속에 있었습니다. 미망迷妄입니다. 헤어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신앙인이라고 자처하는 죄를 짓고 있었습니다. 저는 ‘성령’이나 ‘부활’의 기호 안에서는 고백할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제 신앙의 고백입니다. 사랑하는 예수님의 일이었으니, 그 안에 들어 있을 복잡한 질서들을 경외할 뿐이지요. 그것을 체험한 고백은 제게 없습니다.


세상의 권력들은 신앙을 자신들의 지배에 효율적이게 하는데 이용해 왔습니다. ‘믿고 받드는 마음’을 조작해 내는 데에 그 신비한 무엇이 가장 쉬운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미륵이나 재림 예수까지를 말하지 않아도 작은 것들이 숱하게 우리 현실 속에서 똬리를 틀고 앉아 저지른 짓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신앙에 견고한 무엇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의 그 미망을 깨는 일에 유용했던 것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나 데이비드 아텐보로의 《생명의 신비》나 리차드 리킨의 《오리진》 같은 책이었습니다. 제 이십 대의 동반자들입니다. 그것이 질서를 잃어버린 나에게 준 것은 어떤 믿음이었습니다. 주님이 내게 주신 메시지를 거기에서 읽었습니다. 미망을 걷어내는 데에는 그 메시지가 매우 효율적이었습니다. 그것은 질서를 말하고 있었고, 그 질서와 질서 사이에 숨어 작동하는 하나님의 신비한 방법을 제게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이 얼마나 큰지 아느냐? 빛이 어디에서 오는지 아느냐? 어둠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 빛과 어둠이 있는 그 곳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 빛과 어둠이 있는 그곳에 이르는 길을 아느냐?(욥기 38:18-21).


칼 세이건이 인용한 <욥기>입니다. 내게는 그 빛이 그날의 아침이고, 그 어둠이 그날의 저녁이었습니다. 그리고 칼 세이건은 보이저 1호가 찍은 지구 사진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것은 ‘창백한 푸른 점’이었습니다. 오직 점이었습니다. 그 점에 관해 칼 세이건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 있다.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다. 이곳이 우리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들어 봤을 모든 사람들, 예전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이곳에서 삶을 누렸다. 우리의 모든 즐거움과 고통들, 확신에 찬 수많은 종교, 이념들, 경제 독트린들,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 (중략) 모든 슈퍼스타, 모든 최고 지도자들, 인간역사 속의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여기 태양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이다(칼 세이건 《창백한 푸른 점》).


하나님이 칼 세이건을 통해 이 말을 제게 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상상할 수 없이 엄청나고 강고한 질서 속에 내가 존재한다는 믿음이 구원이었습니다. 그것에 제가 겪었던 그 미망에 대응할 답이 들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충직한 손발 엔텔레키아의 신비입니다. 봄이 되어 한 포기의 풀이 자라고, 그것에서 한 송이의 꽃이 피는 질서가 주는 메시지를 아주 절실하게 느꼈던 시절이었습니다.


이것은 사족입니다만, 저는 위에서 1967년 그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집안 가득 가족들이 와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날 집에 어머니가 안 계셨던 것은 월남전에 참전했던 둘째 형의 전사 소식을 아버지에게 전하러 가셨기 때문이었고, 가족들은 그 부음을 듣고 온 것이었습니다. 내가 잃어버렸던 그 낮 동안 ‘창백한 푸른 점’에서 벌어진 혼돈 속에서 형이 떠난 것입니다.


  이것이 목사님께 드리는 제 첫 편지입니다. 목사님께 드리는 첫 편지에서 이런 신앙고백은 마땅할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그리스도인.’ 저는 이 표어 덕분에 무엇인가를 정해야 하는 판단을 앞두면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이 두려움은 제게 큰 축복입니다. 미망을 밝힐 등대니까요. 이 더위 속에서도 서재의 에어컨은 꺼져 있을 때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부디 건강하시길 빕니다.


이명행/소설가, 《대통령의 골방》 저자


* 곽건용/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을까요 http://fzari.com/1027

* 김근수/ 예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http://fzari.com/1028

* 법인/ 이상동몽(異床同夢), 대동소이(大同小異)의 길을 가는 수도자 http://fzari.tistory.com/1029

* 손성현/ 독수리, 깊이 날아 뜻을 품다 http://fzari.com/1030

박광숙/ 소슬한 가을바람 같은 청량감이 드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http://fzari.com/1031 

*민영진/ 한 때 당신은 나의 학생이었지만, 지금은 내가 당신의 학생입니다 http://fzari.com/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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