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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자리> 출간 책 서평

결국은 믿음으로?

by 한종호 2024. 4. 22.

답답한 시절이다. 한 줄기 빛과 한 뼘의 위로조차 절실한 시절이다. 세상은 과거로 돌아가는 것 같고, 새로운 전망은 쉬이 보이지 않는다. 과거와 비교하며 현실을 이야기하기에 젊은 세대는 저 멀리 떨어져 있다. 지난 몇 십년간 우리 세대와 사회가 이룩한 성취들은 다 어디로 갔나? 기나긴 여정 끝에 도달한 곳이 고작 여기란 말인가? 많은 이들의 낙담과 한탄도 이제는 지겹다. 과연 역사에는 어떤 정답이 있는 것인가? 인간의 머리와 가슴으로 쉽게 가늠이 안 된다. 이런 자괴와 혼돈의 시간들 사이로 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나님 나라의 방식은 이렇게 현재의 조건만을 주목할 때 납득이 가지 않고,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법입니다. 그러나 현실적 조건에 의존하는 해결이라면 그것은 굳이 하나님 나라의 능력에 의존할 이유가 없는 것 아닙니까?"(「축제의 사람, 그 영혼의 힘」)

 

그래서 그는 주말마다 여전히 바람 부는 광장으로 나가고 있는 것일까? 많은 이들의 낙담과 좌절 속에서도 여전히 변혁의 전망을 잃지 않고, 희망의 빛을 쏘아 올리면서?


역시 그는 ‘목자’였다. 박사, 교수, 목사, 사회운동가, 언론인 등으로 다양하게 묘사될 수 있는 그이지만 이 설교집을 읽으면서 다시 보는 그는 ‘거리의 목자’이다. 광야에서 외치는 선지자이기 보다는 속세의 저자거리에서 우리 곁에 다가와 조근조근 이야기하며 손 잡고 함께 걷고 있는 목자였다. 하루의 일상에 지치고, 생계의 비루함에 발목 잡힌, 그러면서 감당하기 힘든 역사의 반동을 겪어내야 하는 이들에게 그는 이런 위로를 전한다.


"현실의 악조건을 뚫지 못하면 그 사랑은 사랑으로서의 진정한 생명과 위력을 갖지 못하게 되고 만다. 전도서 본문(전도서 11:4)의 의미는 하나님의 뜻과, 그것을 이루어 나가는데 등장하는 기회주의적 현실론과의 충돌을 보여준다. 그리고 현실의 형편을 근거로 삼지 말고, 하늘이 우리의 삶에 내린 소명 그 자체를 가지고 살아나갈 것을 촉구하고 있다."(「사랑이여, 바람을 가르고」)

 

그러면서 말한다.


"사랑은 현실에서 끊임없이 도전에 처한다. 그 사랑이 완성되는 것을 질시하고. 좌절시키고 패배하게 만들려는 세력이 이 세상에는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정세를 살피는 자가 되고, 기회를 엿보는 자가 되며 급기야는 이른바 ‘작전상 후퇴’를 하는 자가 되기도 한다."(「사랑이여, 바람을 가르고」)


우리들의 약함을 있는 그대로 본다. 그러면서 우리들을 위로해 주기 위해 저자는 저자거리의 노래를 세심하게 찾아내기도 한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셋이라면 더욱 좋고/둘이라도 떨어져 가지 말자/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앞에 가며 너 뒤에 오란 말일랑 하지 말자/뒤에 남아 너 먼저 가란 말일랑 하지 말자/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여차 넘어주고/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주고/산 넘고 물 건너 언젠가는 가야 할 길/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네가 넘어지면 내가 가서 일으켜주고/내가 넘어지면 네가 와서 일으켜주고/에헤라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사람들은 현실적으로 방법이 있다고 여길 때 설득되고 확신을 하지만, 믿음은 보이지 않는 길을 보고 간다. 보통사람들로서는 쉽게 따를 수 있는 길이 아니지만 아마 여기에 믿음의 마법이 있을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이른바 ‘오병이어의 기적’이 그렇다.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 생선으로 오천 명 이상을 배불리 먹이고도 남은 ‘기적’은 현실적 계산으로는 이해가 안되지만, ‘믿음이 곧 방법이다’라고 일깨우시는 예수님에게는 가능한 현실이었다. 김민웅 목사가 내게 해 준 이야기 중 주변사람들에게 종종 인용하는 말이 있다.


“가나안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광야를 지나지 않을 수 없다.”


힘들고 어렵다고 느껴지던 시절, 실제로 내게 많은 힘과 위안을 주었던 구절이다. 문제는 그 시절을 다 지나왔다고 생각한 순간 다시 가나안이 여전히 멀고, 우리는 정처없는 광야에서 헤매고 있다는 자각이었다. 이 광야를 과연 무사히 건널 수 있을까? 그리고 이 광야의 저 편에 과연 가나안이 있기는 한 것일까? 의심많은 자의 불안은 여전하다. 그런 나의 질문에 김민웅은 대답한다.


"성서는 모두 ‘변방’의 의미를 주시하는 선언이다. 새것은 변방에서 태어나고 자란다. 중심은 기득권의 탐욕과 부패가 혁신의 길을 가로막는다. 하나님 나라를 이끈 예수와 그 제자들 역시 변방의 존재들이다. 그러나 변방이 기존 질서의 중심을 흔든다. 그래야 새것이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나는 하늘을 얻고 하늘은 나를 얻고」)


우리가 지금 걷고 있는 이 광야가 변방에서 중심으로 이르는 길이 되기를 간절히 빈다.

 

"특권의 성채는 결국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반드시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강도의 소굴은 그 정체가 밝혀질 것입니다. 사악한 자들은 모두 놀라 도망칠 날이 올 것입니다. 저들은 군대귀신처럼 강력하게 뭉쳐있지만 마침내 죄다 패망하게 될 것입니다. 갈 곳은 모두가 혐오하는 존재와 거처의 상징, 돼지 속이며 그 갈 길은 바다에 빠져 죽는 일만 남았습니다. 이 나라 역사의 모든 악한 권세자들, 독재자들과 그 세력들은 그렇게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만큼 진전해온 것입니다."(「나는 하늘을 얻고 하늘은 나를 얻고」)

 

김민웅의 설교가 선지자의 그것처럼 웅장하다.


"나이를 먹으며 더욱 쓸쓸해 지는 것은 순결을 잃고 하루하루 낡아져 가고 있다는 자괴감이다. 그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세파를 무수히 겪어도 여전히 순결한 열정을 지니고 살 수 있을까? 우리의 존재가 언제까지나 아름다움으로 빛날 수는 없는 것일까? 사는 일의 힘겨움을 알면 알수록 우리는 영혼의 순결을 스스로 포기해 버리고 만다. 그렇지 않으면 생존의 현실에서 이겨낼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여기에 우리 생의 본질적 비극이 도사리고 있다. 이것을 건너뛰어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본래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면서살아가는 길은 없는가? 그것을 위해서 우리에게는 도대체 무엇이 필요한 것일까?"(「참 주인을 기다린 보물」)


그러면서 스스로 이렇게 답한다.

 

"시인 윤동주는 그 영혼의 순결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가 살아야 했던 시대의 폭력과 거칠기 짝이 없는 세월을 생각해보면, 그가 끝까지 지켜 내려한 마음의 아름다움은 놀랍기만 하다. 우리는 얼마나 쉽게 세월과 시대의 탓으로 자신의 타락을 정당화하는가?"(「참 주인을 기다린 보물」)


결국은 다시 믿음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일까?

 

정범구/전 독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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