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와, 믿음으로 실패와 아픔을 이겨내다(2)

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3)

 

하우와, 믿음으로 실패와 아픔을 이겨내다(2)

 

 

1. 어머니 하우와. 창세기 4장은 2장과 3장의 서술과는 달리, 하우와가 세 자녀를 낳고 키우면서 일상의 희노애락을 경험하며 살던 한 평범한 어머니였음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무엇보다 하우와가 신앙적인 여인이었음을 보여준다. 하우와는 셋째 아들인 셋을 낳고 난 다음에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25절).

 

하우와가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의 이름을 '셋'이라고 짓고 나서 그렇게 이름을 지은 이유를 밝히는 장면이다.

 

2. 이것과 비슷한 구절이 4장 1절에도 나온다.

 

“아담이 그의 아내 하우와와 동침하매 하우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우리는 이 두 절이 닮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래서 창세기 4장은 첫아들을 낳은 다음 하우와가 하는 말로 시작해서 막내 아들을 낳은 다음 하우와가 하는 말로 끝난다. 그렇기에 4장 전체의 주인공은 다른 사람이 아닌 하우와이다.

 

3. 우리는 이 구절에서 하우와의 깊은 신앙을 엿볼 수 있다. 하우와는 자기 아들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을 결코 심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아들이 태어나는 일을 중대한 사건으로 보고 그 사건을 하나님의 사건으로 해석한다. 하우와는 가인을 낳을 때도 그랬고 셋을 나을 때도 그랬다. 하우와가 아들 낳은 것을 하나님의 사건으로 해석하는 것이 창세기 4장에 두 번이나 나오고, 그것이 4장 맨 앞부분과 뒷부분에 나오고 있다는 것은 그녀가 언제나 그랬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창세기 4장에 나오는 비극적인 사건들을 하우와의 신앙고백으로 끌어안고 있음을 알려준다.

 

Emil Nolde - Verlorenes Paradies (Paradise Lost) (1921) Oil on canvas, 106 x 157 cm

(출처: Playing Futures: Applied Nomadology (http://www.flickr.com/photos/centralasian))

 

 

4. 우리는 여기서 하우와의 새로운 모습을 본다. 이 구절에서 우리가 만나는 하우와는 얼마나 신앙적인 인물인가? 우리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신앙심 깊은 한 여인을 만난다. 자녀들로 인해 아픔을 겪으면서, 그것을 신앙으로 극복해내는 한 어머니의 모습을 본다. 지금까지 성경에 묘사되어 있는 하우와를 어떻게 생각했는가? 우리와 같은 한 인간으로 생각한 적이 있는가?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감사하고 노래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그런 하우와를 생각한 적이 있느냐는 말이다. 본문 속에 감추어져 있는 하우와의 기쁨과 슬픔을 살려내는 것, 그래서 그를 한 인간으로 경험하는 것, 이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성경독자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5. 4장 처음 부분과 마지막 부분 사이에는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비극적인 사건이 나온다. 물론 이 사건의 주인공은 가인이다. 그래서 성경은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다보니 이 사건으로 인해서 아담과 하우와가 얼마나 큰 고통을 당했는지에 대해서는 본문은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것을 밝혀내는 것이 바로 독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성경이 표면적으로 말하는 바를 꼼꼼하게 읽어내야 할 뿐만 아니라, 성경이 침묵으로 전달해주는 정작 더 귀중한 메시지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아니, 본문에 등장하는 아담과 하우와가 우리에게 조용히 들려주는 말에 귀를 기울어야 한다.

 

6.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우리는 이 말에서 아들을 낳은 한 어머니가 지르는 환호성을 듣는다. 하우와는 가인을 낳고 얼마나 기뻐했을까? 물론 아벨을 낳은 후에도 그런 맘이 들었겠지만, 아벨을 낳고 그런 말을 했다는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하우와가 가인을 낳고 얼마나 기뻐하고 감격하고 감사했는지 알 수 있다. 하우와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장면을 읽을 때, 무덤덤하게 읽을 수가 없다. 우리와 똑같은 한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7.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이 말을 하는 하우와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하나님이 주신 아들. “아 하나님이 아들을 주셨다.” 기쁨에 넘쳐서 외쳤던 그 아들이 사랑하는 둘째 아들 아벨을 죽이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서 멀리 떠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하우와는 얼마나 피눈물을 흘렸을까? 또 피 흘린 채 죽어있는 둘째 아들 아벨의 시신을 끌어안고 하우와는 얼마나 가슴 아파했을까? 고통당하는 하우와. 그러면서도 그 모든 일들을 신앙으로 이겨내는 하우와. 그 하우와의 모습을 생생하게 느껴야 한다.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던 하우와. 아들 낳은 일을 하나님의 사건으로 해석해내고 모든 아픔을 신앙으로 이겨내는 하우와는 분명히 신앙심 깊은 인물이었다. 이 하우와가 창세기 4장을 지배하는 무서운 증오와 죽음을 신앙으로 끌어안아서 녹여내고 있다.

 

8. 아담과 하우와가 낳은 셋째 아들은 누구인가? ‘셋’이다. ‘셋’의 뜻이 무엇인가? ‘대신한다’이다. 셋은 가인과 아벨을 대신하는 아들이다. 셋은 가인과 아벨로 상징되는 증오와 죽음을 대신하는 아들이다. 그렇기에 아담과 하우와가 아들을 낳은 것은 하나의 사건이다.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그 증오와 죽음을 넘어서서 새로운 사랑과 삶으로 나아가는 사건이다.

 

9. 셋이 태어난 것은 증오와 죽음의 현장, 증오와 죽음의 시대를 넘어서 사랑과 삶의 시대로 나아가는 사건이다. 만약 셋이 탄생해서 에노스로 그 계보가 이어지지 않았다면, 증오와 죽음이 세계를 지배하고 비극의 역사가 계속되었을 것이다. 가인에서부터 라멕까지 이어지는 증오와 죽음의 역사를 문학적으로 단절하는 것이 바로 ‘셋’의 탄생이다.

 

10. 창세기 4장의 구성을 보면, 증오와 죽음의 역사는 셋의 탄생으로 일단 끊어지는 구조를 보인다. 4장 3절부터 15절까지는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이야기이고, 16절부터 24절까지는 가인과 그의 후손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가인과 그의 후손들의 이야기는 라멕이 부르는 증오와 죽음의 노래로 종결된다. 그래서 4장 3절부터 24절까지가 증오와 죽음의 이야기이다. 이 비극적인 이야기들을 감싸는 것이 바로 아들들의 탄생과 하우와의 신앙고백이다.

 

 

이종록/한일장신대학교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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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와, 믿음으로 실패와 아픔을 이겨내다(1)

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2)

 

하우와, 믿음으로 실패와 아픔을 이겨내다(1)

 

 

 

1.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뭘까? 뭘 보고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이런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성서학자로서 내가 하는 일은 이런 의문들을 통해서 성서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를 강력하게 지배하는 그릇된 고정관념들이 참 많고, 그것들을 파악해서 넘어서는 게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읽든, 대다수 경우 결국은 우리에게 굳게 박힌 고정관념을 보고 그것을 읽어내는 것 이상이 아님을 새삼 깨닫는다.

 

2. 하우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하우와는 인류 최초의 여자라고 하는 하와를 히브리어그대로 읽은 이름이다. 하우와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동사 하야에서 왔다고 하는데, “하야살다” “살아있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하우와의 뜻은 생명또는 이다. 창세기 기자는 하우와를 모든 산 자의 어머니로 풀이한다.

 

3. 이 하우와를 영어식으로 이브”(Eve)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브는 도대체 하우와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히브리어 성경을 70인 역이라는 헬라어 성경으로 번역하면서, 번역자들이 하우와라는 히브리어를 맨 처음에 딱 한 번 그 의미를 살려서 헬라어 조에”(생명)로 옮겼는데, 그 다음부터는 에우와로 음역했다. 이것이 영어식으로는 이브가 된 것이다. 그러니 이브는 하우와라는 히브리어의 헬라어 음역을 흉내 낸 것일 뿐이다. 그러다보니 이브에는 생명이라는 의미가 전혀 담기지 않았다. 그리고 원명이 하우와인데, 왜 헬라어 음역에서 파생한 이브라는 이름을 사용하는가? 제 이름 그대로 불러주는 것이 상대방에 대한 예의 아닌가? 여성신학자들마저도 하우와를 이브라고 칭하는 것은 한심해 보인다. 이것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고정관념을 넘어서 하우와를 제대로 평가하는 일은 하우와를 하우와로 부르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4. 하우와라는 이름은 아담이 지어주었다. 하나님이 아니고 아담이 지어준 이름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런데 그 시점이 매우 의미심장하다. 아담이 자기 아내에게 하우와라는 이름을 지어준 때는 그들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은 사실을 하나님이 아시고 아담과 그의 아내에게 각각 벌을 내리신 바로 다음이다. 어떻게 해서 아담이 아내의 이름을 하우와라고 지어주는 구절이 거기에 자리를 잡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게 자리를 잡고 있는 형태는 큰 의미를 갖는다. 본문을 쓴 사람은 아담이 아내를 하우와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언급한 바로 다음에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3:21)는 자기 진술을 첨부하는데, 아담과 하우와라고 하지 않고 아담과 그의 아내로 부르는 것에서 그가 아직 하우와라는 이름에 익숙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출처: pcstratman (https://www.flickr.com/photos/32495192@N07)

 

 

5. 우리는 아담과 그의 아내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었다는 이유로 하나님께 추궁을 받는 동안 잘못을 서로에게 전가했기 때문에, 그들이 벌 받은 이후에 관계가 원만치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현재 본문 구성을 보면, 그렇게 볼 근거가 전혀 없다. 만약 아담과 그의 아내가 서로 원망하고 증오했다면, 아담이 아내 이름을 하우와라고, 즉 모든 산자의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우와라고, 즉 생명이라고 부르는 대신, 증오, 저주, 죽음, 이런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붙여주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아담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우와, 즉 생명이라는 귀중하고 의미심장한 이름으로 아내를 불렀다.

 

6. 아담이 아내를 하우와라고 부르는 것을 아담이 아내를, 즉 남자가 여자를 지배하고 다스리는 인간관계형태를 반영한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꼭 그럴까? 이것은 전체적으로 분위기 파악을 하지 못한 결과로 보인다. 아담과 하우와는 사건 이후에 더 성숙해지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아담이 아내에 대한 지배권을 확증하기 위해서 아내를 하우와라고 부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매사에 아담보다 하우와가 주도적이기에 결코 그럴 리가 없다.

 

7. 사람들은 하우와를 정죄하고 낙인찍기를 좋아하는 듯하다.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죄를 짓는다고 여기는데, 그 까닭을 하우와 때문인 것으로 본다. 하우와가 유혹하는 뱀에게 넘어가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그것을 남편에게도 주었기 때문에, 인류가 이처럼 타락해서 죄를 짓는다는 것이다. 도대체 하우와가 죄를 지었다고 하자. 그것이 그토록 엄청난 일이었던가? 그리고 그것이 하우와 개인에게 그치지 않고, 온 인류에게 전달되는 무시무시한 유전자로 변형되어서 생물학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유전될 수 있는가?

 

8. 밀턴은 자신이 쓴 책 실낙원에서 하우와가 아름답고 탁월하긴 하지만, 결정적인 게 2퍼센트 부족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 부족한 2 퍼센트로 인해 심각한 잘못을 저지를지 몰라 아담은 항상 노심초사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홀로 밭에 나가서 일하겠다는 것을 막지 못해서, 하우와가 뱀에게 유혹당해 죄를 범하고 결국 온 인류를 죄에 빠지게 했다는 것이다.

 

9. 오래된 유대 전설은 하우와가 아담의 첫째 아내가 아니고 둘째 아내라고 한다. 첫째 아내는 너무 고집이 세서 아담이 이혼을 했고, 그래서 하나님이 둘째 부인인 하우와를 순둥이로 창조하셨는데, 하우와가 예상을 깨고 아담에게, 하나님에게 불순종함으로써 그 엄청난 사단, 인류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10. 이렇듯 하우와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게 고정관념으로 전달되고 전파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서, 하우와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상당히 강력한 차별과 억압의 이데올로기가 작동한다. 그런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하우와를 바르게 읽어내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여기서는 특히 하우와가 세 아들을 낳고 키운 어머니였음에 주목하려 한다.

 

이종록/한일장신대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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