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쳐서 불편한 시월드 사랑

이종연의 '아기자기' 2015. 1. 24. 10:04
  • 동기간사님의 페북링크를 통해 들어와봤네요 육아를 아직 꿈만 꾸고있는 저는 새벽기도의 효험이 가장 눈에 띄네요^^ 종종 들리겠습니다~

    지선 2015.02.18 22:58

이종연의 '아기자기'(3)

 

넘쳐서 불편한 시월드 사랑

 

 

폭풍우를 지나 보내고 주위에 임신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다. 마음 다독이며 수줍게 전하는 소식에 다들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누구보다 시부모님이 기뻐하셨다. 하지만임신 소식을 전하는 그 순간부터 시댁에서의 내 위치가 미묘하게 달라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거칠게 표현하자면, 임신 전에는 결혼을 했어도 시댁에서 나는 ''였다. '며느리'이긴 했지만 내가 김씨 가문에 '귀속됐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없었다는 뜻이다그런데 임신을 하니 달라졌다. 명쾌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랬다

몇 가지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사실 (독자들이 기대하는?) 과격한 내용은 아니다. 시부모님은 드라마나 인터넷 카페에 등장하는 시월드 주인공들과는 비교도 안 되게 좋은 분들이고, 나는 내가 존재로 사랑받는 며느리임을 잘 안다다만 '부모 세대''자녀 세대'의 가치관은 분명 다르고, 내가 시부모님 때문에 속앓이를 했던 건 사실이라 (내 입장에서) 한번쯤 정리해서 털어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했다(고 쓰고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좋아한다^^). 

에피소드1. 손주 작명은 할아버지가?

양가에 임신 소식을 전한 날이었다. 첫 번째 통화를 끊고 양가로부터 한 차례씩 다시 전화를 받았는데 그 이유는 이랬다. 며느리 본 지 3년 반 만에 임신 소식을 접한 시어머니는 "새벽마다 태문을 열어 달라고 기도를 했는데 드디어 응답을 받았다!"며 기쁨에 겨워하셨다. 그렇게 전화를 끊었는데 시아버지가 당신도 축하 인사를 해야 하는데 시어머니가 그냥 전화를 끊어 섭섭하다고 다시 전화를 하신 거였다. "종연아 축하한다. 고맙다! 애기 이름은 할아버지가 지어줄게." 

(웃자고 하는 말이지만) 그때 알았다. 새벽기도의 효험을. 그토록 조심했건만 왜 피임에 실패했을까 남편과 계속 의아해 했는데, 그게 다 시어머니의 기도 때문이었던 것이다. 아마 모르긴 해도 주일에 시어머니는 '감사 헌금'을 하셨을 거다

내가 불편했던 건 시아버지의 '고맙다'는 말씀과 스스로 가져가신 '작명'의 권리였다. 시아버지는 후에 막 태어난 아기를 보러 오셨을 때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김씨 가문에 자녀를 낳아줘서 고맙다"고 말이다. (아버님, 저는 '김씨 가문'에 아이를 낳아준! 게 아니라, 남편과 저의 아이를 낳았을! 뿐이랍니다.) 같은 맥락에서 시아버지가 아기 이름을 지어준다고 하신 것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사실 지난번 글에 등장한 존경하는 장로님도 내가 아기를 가지면 이름을 지어주시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 말씀이 오히려 영광스러웠다. 실제로 몇 번이나 장로님께 부탁드려 볼까도 생각했다.

그랬으면서 시아버지가 아기 이름을 지어주시는 게 싫었던 이유는 나와 남편의 아이를 '김씨 가문'에 예속시킨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약속대로(?) 시아버지는 이름을 지으셨고, 계획대로(?) 남편과 나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리고 시댁에는 굳이 말씀드리지 않았지만 우리는 아기 이름에 남편과 나의 성을 모두 담아 직접 이름을 지었다

한편 친정에도 임신 소식을 전하고 다시 전화를 받았는데 그 이유는 시댁과는 전혀 달랐다. 엄마는 소식을 듣고도 다소 밋밋한(?) 반응을 보이셨다. '무슨 일이 있나?' 하고 조금은 섭섭한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곧 다시 전화를 거신 엄마 목소리에는 울음이 섞여 있었다. "살아 보니 자식 낳고 사는 게 힘들어서 마음껏 축하를 못 해줬다. 그게 마음에 걸려서 다시 걸었다. 그래도 다 살아지더라. 축하한다." 조금도 거짓 없는 엄마의 마음이 전해져 오히려 고마웠다. 그리고 엄마와 나는 조용히 울었다. 2년 전 돌아가신 아빠가 유난히 보고 싶던 날이었다

에피소드2. 피할 수 없는 명절 스트레스

임신의 경험은 정말 경이로웠지만 정말 불편했다. 특히 임신 초기에는 입덧과 요통으로 아침마다 출근 버스를 타는 것마저 힘들었다. 그러나 구정 연휴는 재깍재깍 다가오고 있었으니. 친정은 경상도요 시댁은 전라도라 임신 전에도 명절이면 양가 오가는 게 쉽지 않았기에 내려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해서 조심스레 시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그래? 그럼 우리가 올라가마.” ‘내려오지 않아도 된다는 대답을 기대한 건 진정 과했던 걸까. 시부모님은 역귀경을 제안하셨다(에효). 그러나 감사하게도(?) 남편이 좀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자 시부모님은 눈치를 채시고 제안을 거두셨다

친정 엄마는? 쿨했다. “조심해야 되는 때다. 집에서 쉬어라.”

명절 스트레스는 추석 때도 계속됐다. 아기가 태어난 지 50일 갓 넘었을 때라 이번에도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았던 거다. 친정 엄마는 이미 "오지 말라"고 하셨고, 이번에도 시부모님이 걱정이었다. 당연히 역귀경을 제안하실 듯한데 아직 내 몸도 편치 않고 새벽 수유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잘 때라 그저 쉬고만 싶었다

그때 남편이 좋은 아이디어를 냈다. 마침 부모님 환갑이 다가오니 추석 때 환갑 여행을 보내드리자고 말이다. 형제들과도 얘기가 잘 되었고 시부모님도 좋아하셨다. 그렇게 순항(?)하는가 싶었지만 기대는 보기 좋게 무너졌다. 시부모님은 명절에 얼굴 못 보는 게 아쉽다며 여행 전날 우리 집에 와서 하룻밤 주무시고 여행을 떠나셨고, 돌아오시는 날도 손주가 눈에 밟혀 또 우리 집으로 오셨다.   

에피소드3. 며느리 배려보다 큰 손주 사랑

나는 아기가 나올 때 살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불에 타는 것만 같았다. 세상에나, 지금껏 그런 고통은 겪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그 와중에 시부모님이 계속 전화를 거시는 거였다. 가진통을 포함해 이틀 밤을 꼬박 새우며 진통하느라 나도 힘들었지만 시부모님도 초조하셨던 모양이다. 그래도 그렇지 전날 밤에 '아기 낳으면 전화 드리겠다'고 했는데도 이른 새벽부터 계속 전화를 하시다니. 내 옆에서 둘라 역할을 하다가도 전화만 오면 바로 상황 보고를 하는 남편에게 어느 순간 짜증이 일어 소리쳤다. "여보, 전화기 좀 꺼요!"

, 유두 통증! (이 얘긴 쓰기 싫은데 꼭 써야 할 것 같다!) 다시 생각해도 저릿해 오는 아픔이지만 그보다 더 싫었던 건 틈만 나면 내 유두의 안부를 물어오시는 시부모님의 전화였다. 모유수유클리닉도 가 보고, 아기 설소대를 자르는 시술도 했지만 유두 통증은 백 일이 넘도록 줄지 않았다. 특히 출산 초기에는 속옷에 스치기만 해도 아파서 수유를 끝내면 가슴을 열고 멍하니 앉아 있을 때가 많았는데 사정을 모르시는 시부모님은 아기를 보러 오고 싶어하셨다. 꼭 유두 통증 때문이 아니더라도 출산 후에는 산후조리라는 게 필요한데 시부모님은 산모인 며느리에 대한 배려보다는 손주를 보고 싶은 마음이 너무 크셨던 거다

결국 남편은 사정을 시부모님께 전하고 통증이 좀 줄어들면 올라오십사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진심으로 걱정하시며) 며느리가 아프니 더욱 와 봐야 하시겠다는 걸 겨우 만류했다. 그리하여 나는 거의 매일 내 가슴의 안부를 묻는 전화를 받아야 했던 것이다. 한두 번도 아니고 특히 시아버지가 부러 나를 바꿔달라 하셔서 직접 물으실 때는 정말이지 민망해서 못 들은 척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아직도 시부모님께 고분고분한 이미지를 유지해 오고 있는) 나는 그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네 네" 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아무리 이루가 아빠 판박이라고는 해도 "젖 세게 빠는 것도 지 아빠를 닮았다"고까지 하실 필요는 없지 않은가. 자기 손주 젖 먹는 모습 보고 싶다고 며느리더러 당신 앞에서 젖 물리라고 하는 시아버지도 있다는데, 그에 비할 바 아니라 다행인 건가.

그러고 보니, 평소에 "우리는 천국 백성이라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 없다" 하시더니 막상 ''이라고 하자 지나가는 말로 '둘째는 아들 낳으면 된다'고 하신 것도 뒤끝 작렬 며느리는 잊지 못하고 있다.

생각나는 얘기가 한 자루는 더 있지만 이쯤에서 정리해야겠다. 쓰면서 자꾸 웃음이 나고외람된 표현이나 시부모님이 참 귀엽게(?) 느껴지는 걸 보니 이제 나에게도 여유가 생겼나 보다. 이 정도 가지고 속앓이를 한다고 혀를 차는 사람도 있을 텐데 그런 분들에게 내가 예민한 사람으로 비쳐도 어쩔 수 없다. 뭔가 억울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에 이상이 올 정도로 내가 민감한 사람인 건 나도 인정하는 바니까.

그나저나 요즘도 가끔 (남편 표현대로) '시아버지의 주책맞음'이 발동될 때가 있다. 하지만 내가 이전만큼 속앓이를 하지 않는 건 전에는 정말 이해가 안 됐던 시부모님이 알고 보니 참 좋은 '옛날 분들'임을 알아가는 중이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나도 나중에 내 딸 이루에게는 '옛날 사람'이 되어 있겠지그나저나 "님들의 시월드는 어떤가요?"

 

이종연/IVP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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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길에 들어서다

이종연의 '아기자기' 2015. 1. 17. 10:10
  • 미리 겪는, 결혼 생활처럼 설레네요.ㅎㅎ

    리범진 2015.01.21 03:11 신고
  • 지금 이루의 눈을 바라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짧은 글을 읽으며 깊은 눈물이 베어 나온다만... 너는 결국 좋은 엄마가 될것이다. 아니 이미 그렇다^^

    이정연 2015.01.27 09:35

이종연의 '아기자기'(2)

 외길에 들어서다

 

추운 겨울밤이었다. 평소 존경하던 장로님의 '한국 교회사' 강의를 듣고 집에 가려는데 장로님께서 버스 정류장까지 태워주겠다고 하신다. 정류장까지는 걸어서 5분 거리였기에 살짝 고사하다가 팬심을 숨기지 못하고 조수석에 낼름 앉고 보니, 이전에 '애기 소식 없나' 물어보셨던 게 생각났다(당시엔 모든 생각이 '임신'에 쏠려 있었기에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다'는 표현이 맞겠다). 슬며시 "저 장로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라고 운을 뗐다. 그런데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장로님이 알고 계시다는 듯 말씀하셨다.  

"니 애기 가졌제?" 
"(헉!) 어떻게 아셨어요?" 
"내가 오늘 보니 그렇더라." 
"(이런 게 연륜인 건가….) 그런데 장로님, 사실 계획에 없던 임신이에요."
"야야, 계획 같은 소리는 하지도 마라. 생명은 소중하다. 앞으로 그저 매사에 언행을 단정히 하고 좋은 생각만 하면서 지내거라." 

장로님은 당신이 허니문 베이비로 첫째를 가졌을 때 임신 주수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없었기에 주위에서 속도 위반 아니냐는 놀림을 받았다는 시시콜콜한 얘기도 들려주면서 마음을 다독여 주셨다. 사실 그런다고 다독여질 마음은 아니었다. 다만 며칠 전 아기를 낳기로 결정(?)했기에 괴로운 마음이 정리되어 가고 있을 뿐이었다

진심, 힘든 결정이었다공항에서 "저 임산부예요"라고 말했지만 그게 내 스스로 임산부임을 받아들이겠다는 결심은 아니었다. 뭐라 설명하기 어렵지만,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없어 끙끙거리는 가운데 다만, 무의식중에 '생명'을 인식했을 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쯤에서 사족이기도 하고 본질적이기도 한 얘기를 하고 넘어가는 게 좋을 듯하다. 곧 죽어도 아이는 낳고 싶지 않았던 이유에 관해

내가 6남매 중 넷째고 딸 다섯에 막내가 아들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대충 알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어렸을 때는 사람들의 예의 똑같은 반응이 싫었는데 이제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사는 걸 보면 나도 나이가 들었고, 이제 6남매 중 넷째로 규정되는 삶을 살지 않아서일 거다

아무튼 어린 시절 우리 집엔 자식은 많은데 돈은 없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그 와중에 사내 아이인 막내에게 쏠리는 사람들의 관심이, ''평등'하지 않은 건 못 견디는 지금의 나를 만든 밑거름(?)이었던 듯 싶다. 지금도 생각난다. 걸핏하면 나는 엄마에게 대거리를 하며 악을 썼다. "막내랑 차별하지 마!"   

엄마가 어떤 차별을 했는지 지금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그때 나는 내가 당하는(?) 남녀 차별이 싫었고, 좀더 커서는 그 시절 대부분의 엄마들이 겪은 사회적 차별은 더 싫었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엄마의 삶을 동정은 할지언정 동경은 하지 않는다

문제는 후자 즉, 엄마로 살아가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오죽하면 <엄마되기, 힐링과 킬링 사이>(백소영) 같은 책까지 있겠나(이럴 땐 개정판 전의 제목인 '엄마되기, 아프거나 미치거나'가 더 와 닿는다). 출산이 '선택'일 수 없었던 예전 같았으면 '하나는 낳으라'는 조언을 많이 들었겠지만, 아기를 키우고 있는 주위 엄마들조차 '안 낳아도 되면 낳지 말라'고 했다. 우리 사회가 엄마들에게 얼마나 적대적이었으면 제 아이를 앞에 두고 그렇게 말했을까. 그러니 부러 '엄마'가 되어서 사회적 차별 만연한 외길로 들어갈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환경 문제에 민감한 나로서는 방사능 누출 사고를 비롯한 환경 오염이 만연한 세상에서 아이를 기르는 건 미안해서 못 할 짓이었다. 많은 아이를 고통으로 밀어내는 교육 전쟁과 그 아이가 뒤이어 맞게 될 취업 전쟁은 어떤가. 오히려 이런 세상에서 아이를 낳는 부모들의 용기가 대단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다만 내 생각을 존중해 '임신 유보' 정도의 입장이던 남편을 설득시키지 못했기에 소극적으로 타협은 해야 했다. 아이가 최대한 자연을 누리며 자랄 수 있고, 부부가 육아를 평등하게 할 수 있는 환경에서 살게 되면 그때 아이 낳는 걸 '고려'하자고

"그게 지금은 아니잖아. 난 이제 어쩌면 좋아..." 

열흘 가까이 남편과 끙끙댔지만 우리는 쉽게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했다. 그리고 그 깜깜한 밤들의 마지막 날, 급기야 나는 울다가 가무러칠 지경에 이르렀다

그때, 남편이 나를 그러안고 말했다. 그는 오래 생각한 듯 보였다.

"내가 회사 그만두고 아이 키울게. 우리 낳자." 

물론 남편이 육아를 한다 해도 임신 과정과 출산은 고스란히 내 몫이다. 또 아이가 남편만의 자녀일 수는 없으니 나는 결국 엄마라는 이름을 가지게 될 터였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상황 앞에서 그 자신도 혼란스러울 텐데 갈대처럼 흔들리기만 하는 아내를 위해 저토록 힘쓰는 것도 모자라 아예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겠다고까지 하는 남편을 보며, 나는 눈물을 닦아야 했다. 저 사람과 사랑한 대가를 나도 치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어젯밤, 그 외길에 들어섰다."

 

이종연/IVP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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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가 설마를 이긴 날

이종연의 '아기자기' 2015. 1. 11. 15:20

이종연의 아기자기(1)

 

혹시가 설마를 이긴 날

 

 

이루를 재워 놓고 거실로 막 나왔다. 그때 들려온 띵동하는 메신저 소리, 아 반갑다. 집에서 애 키우는 엄마에게 연락 올 일, 잘 없다. 그러니 바깥 세상과 나를 이어주는 저 기계음이 참말 반가울 수밖에.

 

하늘을 만 가지로 채우시는 하느님, 아기의 만 가지 몸짓이 제게는 당신의 뜻입니다(여성의 기도 - 임신 40주간 기도서).

 

회사 사장님이 읽다 좋아 생각나서보내셨다는 메시지다. 휴직 중인 직원까지 챙겨 주시는 사장님이 계시는 회사, 참 좋은 회사 아닌가. 하지만저 글귀도 정말 좋으냐고 묻는다면201311그날이 며칠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날, 바로 그날, 나와 남편은 지금 저 방에서 자고 있는 아기의 존재를 확인했던 거다. ‘설마하는 기대도 있었지만 혹시하는 불안이 더 컸기에 밤잠도 못 이뤘다. 그리고 새벽 6시에 나는 비장한 마음으로 화장실에 들어갔다. 결국 그날 아침에 우리는 임신 테스트기에 그어진 두 줄을 보고 말았다.

 

혹시(임신일까?)가 설마(임신은 아니겠지)를 이긴 그 날, 위 기도문이 언젠가 내 마음에 들어올 거라는 생각 따위는 할 수조차 없었다. 왜냐면, 나는 단 한 번도 아기를 갖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풍진 세상, 지옥보다 무섭다는 이 세상에서 아기를 낳아 살아가게 하는 것이 죄라는 생각마저 하며 살아온 나다. 아니, 나는 애초에 누군가를 돌볼 마음의 여력을 품고 사는 그런 여자가 아니었다. 십대 때부터 해 온 생각이니 꽤 진정성 있는 생각 아닌가. 내 한 몸 간수하며 사는 것도 버거운데 누굴 키운단 말인가. (이 이야기는 지금도 시댁에는 비밀이다. 아시면, 4년 가까이 주님이 (아기를) 주시지 않는다고 뻥을 친 며느리를 생각하며 그분들은 밤잠을 설치시고 새벽기도에 늦으실지도 모른다.)

 

다만 인생은 고해(苦海)’라고 생각하는 내가 그래도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을 꼽으라면 결혼이다. 나는 사랑하는 남편과 둘이서 지내는 시간이 진정 행복했고 평생 둘이서만 살고 싶었다. 마침 이직한 지 얼마 안 된 직장에서도 즐겁게 일하고 있었단 말이다.

 

 

때때로 주위에서 2세 계획을 물어오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내 입장을 최대한 담담 또 당당하게 전했고, 그런 날이면 침대에 누워 결혼 전부터 퍽이나 자주 했던 그 얘기를 남편에게 다시 한 번 각인시켰다. 남편은 나와 꼭 생각이 같지는 않았지만 아기를 갖고 싶은 생각이 크지 않았기에 내 의견을 존중해 주었다.

 

그런데, 덜컥 생명이 찾아온 거다. 좀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피임 실패였다. 나중에 내 딸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 해도 어쩔 수 없다. 내게 임신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고, 지금껏 살아오며 가장 큰 비탄에 빠지게 만든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내가 한 행동을 지금도 나는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일은 일인지라 침울한 마음을 숨기고 제주로 출장을 가야 했다. 김포공항 보안 검색대를 지날 때였다. 나는 무려 임산부 전용 통로로 가서 저 임산부예요라고 말했다. 으레 그래왔을 친절한 직원의 안내를 받고 나는 태연하게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비행기가 활주로를 떠나 이륙하는 순간부터 숨죽여 (아무도 듣지 못하게 꺼이꺼이) 울었다. ‘저 임산부예요, 저 임산부예요, 저 임산부예요!!’라니! 그렇게 나는 나의 임신 소식을 세상에 알렸다.

 

 

이종연/IVP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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