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다 누이여

  • 낮은울타리를 통해 "단강마을 이야기"를 접했을 때...
    동화처럼 그려지는 단강마을에 흠뻑 빠져들고는 했습니다.
     
    어느날인가…
    “단강을 떠납니다.” 라고 시작되는 마지막 글을 읽으며
    펑펑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나기도 하구요…
     
    저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단강이었지만
    아마 제 마음속 고향을 떠나는…
    그런 마음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얘기마을을 통해, 뉴스앤조이라는 매체를 통해
    계속 목사님의 글을 감상하고 있고…
    흘러흘러 이곳 꽃자리라는 곳까지 이르렀네요..
    앞으로 이곳이 저의 마음속 우물이 될 것 같아
    많은 기대가 됩니다.
    다시 접하게 되는 단강마을 이야기...
    단강을 사랑했던 마음..
    다시금 꺼내야 겠습니다.  *^^*
     
    제 소중한 친구에게도 이곳을 소개 했고..
    많은 이들에게 이곳을 전하고 있습니다.
     
    늘 감사하는 마음과 존경의 마음을 올립니다.
     

    최상훈 2015.01.21 09:55
  •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갑습니다.
    흑백사진처럼 남은 단강 이야기를 고향 이야기처럼 간직하고 계신 분을 만나니 말이지요.

    단강을 떠날 때의 이야기에 함께 눈물을 흘리셨다는 말에 감정의 동질감을 진하게 느낍니다.

    일부러라도 마음 한 구석으로 밀어두었던 이야기,
    다시 꺼내는 것이 조심스럽습니다만 그럴수록 나직한 마음으로 이어가겠습니다.

    반갑고 고맙습니다.

    한희철 2015.01.22 11:33

한희철의 두런두런(21)

살고 싶다 누이여

 

창립예배를 드리는 날이다. 수원에서 원주행 새벽 버스를 탔다. 3월 25일, 봄이라면 봄일 수 있지만 차창엔 성에가 번져 있었다.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아무 것도 짐작할 수 없는 길, 성에에 가려 보이지 않는 세상과 닮았다 싶었다. 창밖 풍경 보려고 입김을 불어 창을 닦을 때 문득 마음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황동규의 시 한 구절이었다. ‘熱河日記’ 어디쯤이었을 것이다.

“살고 싶다 누이여, 하나의 피해자로라도.”

왜 그랬을까, 낡은 레코드판이 같은 자리에서 튀듯 같은 생각이 이어졌다.

단강행

원주에서 이정송 감리사님을 만나 감리사님 차를 타고 단강으로 들어간다. 예배당이 없던 한 마을에서 창립예배를 드리는 날, 목회의 첫 걸음을 내딛는 전도사가 처음으로 그 마을 찾아간다. 그럴수록 옆 자리에 앉은 사람이 고마웠다. 어쩌면 그는 나보다도 더 막막할 것이다. 그런데도 함께 길을 가고 있지 않은가?

문막까지는 그런대로 지명이 낯익었다. 다음부터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마을 풍경도, 이따금씩 나타나는 마을 이름도. 산 하나 넘어 동네가 나오면 단강에 여긴가 싶었고, 들판을 지나 동네가 나타나면 단강이 이 정도만 되어도 좋겠다 싶었다.

그러기를 여러 차례, 그래도 차는 서지 않았고 마침내 감리사님 차가 비포장도로로 접어들었을 때 마음으로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 어디든 좋습니다, 멈춰만 주십시오. 그런 생각 끝에 나타난 동네가 단강이었다.

 

 

첫 예배

단강의 첫 모습은 낯설었다기보다는 예기치 못한 충격이었다. 충분히 짐작했다 싶었는데도, 아직 우리나라에 이런 동네가 남아있었구나, 그렇게 다가왔다.

나중에 들었지만 아내는 단강의 첫 인상을 ‘6.25 전쟁 영화를 찍는 세트장’ 같았다고 했다. 어디가 길인지 외양간인지가 구별되지 않았고, 곳곳에 서 있는 흙벽돌로 쌓아올린 잎담배 건조실이 오히려 이국적인 풍광으로 다가왔다.

예배당으로 쓰기로 한, 오랫동안 잎담배를 널어 말리던 백수네 사랑방을 두고 마당에 둘러 서서 창립예배를 드렸다. 모인 사람들이 많진 않았지만 두어 평 되는 방안에는 다 들어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은 오늘 우리가 모인 이 자리를 두고 분명 거룩한 땅이라 부를 것입니다.”

순서지에도 나와 있지 않은 담임자 인사를 할 때 나도 모르게 목이 메었다. 가슴은 떨렸고, 빈 말을 삼가고 싶었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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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유머

  • 가끔씩 들리겠습니다.. 멀리 있지만 이렇게 글로 뵐 수 있으니 좋습니다.

    이만성 2015.01.09 00:24
  • 반가운 이름을 이곳에서 대하게 되네요.
    잘 지내시지요?
    하나님의 선한 도구로 아름답게 쓰임 받으시기를 빕니다.

    한희철 2015.01.17 12:15

한희철의 두런두런(22)

하나님의 유머

강원도 단강에서 시작된 나의 첫 목회는 하나님의 유머를 생각하게 한다. ‘하나님을 크게 웃기려거든 너의 계획을 이야기하라고 했던. 

원주 근교에서 목회를 하고 있던 친구를 찾아간 것이 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서울에서 성경공부를 하던 이들과 함께 청량리에서 저녁 기차를 타고 만종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성경공부도 하고, 다음날 동네 주민들에게 전도를 하고 돌아오는 12일의 일정이었다. 일정을 마치고 역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를 기다릴 때 너도 목회를 시작해야 하지 않니?” 친구는 내게 물었고, “기회가 주어지면 해야지.” 쉽게 대답을 했는데, 결국은 그 대답이 나를 단강으로 이끈 셈이었다.

단강으로 향하기 전 나는 나를 아프게 돌아보아야 했다. 처음부터 단강에서 목회를 시작하기로 한 것은 아니었다. 친구가 나에게 추천한 교회는 신학 후배가 목회하고 있던, 부론면에 있는 다른 교회였다. 군목으로 떠나게 된 후배의 후임으로 나를 추천한 것이었다.

강원도로 목회를 떠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고향교회 장로님이 듣고서는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너무 외진 곳으로 간다며, 수원 외곽에 개척교회를 시작할 수 있도록 주선하겠노라 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나를 추천한 곳에 다른 이를 소개하면 좋겠노라고 양해를 구했다. 그러면 한 사람이 더 목회를 할 기회를 갖게 되지 않겠냐 했지만, 사실 마음으로는 수원 쪽에서 목회를 시작하는 것이 더 좋게 여겨졌다. 강원도 구석진 곳으로 가는 것보다는 가까운 곳에서 시작하는 것이 더 좋게 여겨졌고, 그러면 서울에서 인도하고 있는 성경공부도 계속 이어갈 수가 있을 터였다.

하지만 친구의 대답은 내 생각과 달랐다. 이미 나를 추천하였기에 내가 오지 않으면 자기도 신의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들었지만 친구는 가까운 곳에서 함께 목회를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는 고향교회 장로님의 제안을 송구함으로 물렸다. 그리고는 친구에게 내려가겠노라 연락을 했다. 맡고 있던 몇 가지 일들도 정리를 했다.

 

꿈에도 그리던 첫 목회를 드디어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아뿔싸,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강원도로 내려가기로 한 며칠 전,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었다. 내가 가기로 한 교회에 다른 교역자가 이미 이삿짐을 풀었다는 것이다.

이런 일도 다 있구나, 맥이 탁 풀렸다. 강원도행을 위해 포기했던 일들이 큰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그런 생각 끝 마음을 찔러오는 것이 있었는데, 나는 나를 아프게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시골교회로 가 준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 생각은 자책으로 이어졌다. 나는 아직도 시골에 있는 작은 교회조차 섬길 자격이 없는 것이구나, 마음이 참 아팠다.

어지럽고 힘든 마음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 무조건 길을 떠나 어디라도 떠돌아다닐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친구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단강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예배당이 없는 마을이라고 했다. 거기에서 시작하면 어떻겠냐는 이야기였다. 아프고 혼란스러운 마음에 친구의 이야기는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무작정 길을 나서기로 한 아침, 결정을 바꾸었다. 점점 또렷해지는 생각이 있었다. 단강은 꼭 가야 하는 곳이었다. 내가 가지 않으면 친구는 내게 평생 미안한 마음을 가질 터인데, 그것은 친구로서의 도리가 아니다 싶었다. 그 하나만으로도 단강은 외면해선 안 될 곳이었다. 무조건 가겠다고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서둘러 날을 정해 원주로 내려갔다. 단강마을을 보고 싶었다. 어떤 마을인지를 알아야 어떤 목회를 할지 마음의 준비라도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단강이 어디쯤 있는지, 어떻게 가는 것인지, 어떤 모습인지를 보고 싶었다. 교제를 시작하고 결혼을 생각하고 있던 지금의 아내와 함께 원주행 시외버스를 탔다.

우리는 그 날 단강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돌아오고 말았다. 친구가 반대를 했는데, 단강으로 들어가는 버스는 하루에 네 대 밖에 없다고 했다. 단강에 들어가면 버스가 끊겨 돌아 나올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 또한 나중에 알았지만, 단강의 모습을 보면 어느 누구도 단강에 내려오지 않을 것이 뻔해 보였기에 아예 단강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결국은 창립예배를 드리던 날 단강에 첫 발을 디뎠다. 애지중지 사랑으로 곱게 키운 딸을 시골교회 전도사의 아내로 보내는 아버지의 심정은 어떤 것일까? 그런데 딸을 데리고 살 사위는 첫 목회지로 가는 길조차 알지를 못하니 얼마나 혼란스러우셨을까? 창립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단강으로 가는 길을 물었을 때 나는 대답을 못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원주, 문막, 후용, 노림, 부론, 정산, 단강. 지금이야 손금처럼 훤하지만 당시로서는 처음 듣는 지명을 받아 적어 마을 이름을 약도처럼 전해드렸다. 그 때의 어색함과 송구함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렇게 단강에서의 목회는 시작이 되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땅으로 하나님은 나를 거칠게 이끄셨다. 그야말로 땅 끝’, 단강에서 보낸 15년의 시간은 내내 아릿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혹시 아릿한이라는 표현이 맞는가 싶어 사전을 찾으니, ‘조금 아린 느낌이 들다고 풀고 있다. 있는 그대로를 말하자면 조금이 아니라 많이아리다. 단강의 시간은 퇴색한 흑백사진처럼 여겨지다가도 막상 떠올리면 울컥 뜨거움으로 되살아난다.

아무 준비 없이 찾아간 단강에서 한 일 중에는 단강에서 일어난 일들을 적는 것이 있었다. 탄광촌에서 목회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고흐가 목회 대신 그림을 택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가갔던 것처럼, 껍질처럼 남은 그 작고 외진 마을에서 무얼 해야 좋을지 모르는 막막함을 나는 그렇게 견디어냈다.

그 때 적은 글들이 그동안 몇 권의 책으로 묶여 나오기도 했고, <낮은 울타리>에 연재되기도 했다. 몇 안 되는 교우들과 마을 분들과 나눠보던 소식지를 나중에는 칠백 명 정도 나눠보게도 되었다.

지렁이 글씨로 쓴 글을 아내가 옮겨 적었다. 오랫동안 단강에서 쓴 글을 읽지 않았다. 왜 그럴까, 읽을라치면 또다시 마음이 아프고 미어지곤 했다. 오랫동안 구석진 곳에 처박아두었을 뿐이었다.

문득 그 글을 지금 다시 읽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빛깔로,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오래 전 흘러간 물을 되돌리려는 어리석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 때 적은 글은 그 땅에 살 때 의미를 가질 뿐, 그곳을 떠나 이만큼 세월이 지난 지금은 더더욱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옛 기억에 마음을 기대려는 약한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주저함으로 옛 글을 꺼내드는 것은 그 때의 글 안에는 여전히 땀과 눈물이 남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땅 끝에 그래도 발붙여 서려던 안간힘이 담겨 있다. 시절과 상황은 다르지만 여전히 땅 끝에 서야 하는 것은 우리의 숙제 아닐까 싶다.

지금도 여전히 그리운 단강,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마음의 고향으로 남은 그 때 그 시절을 통해 끝내 외면할 수 없는 땅 끝에 어떻게 서야 하는지 다시 한 번 발끝을 살피고 싶다. 여전히 나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유머 앞에 내 삶을 맡기면서.

한희철/성지교회 목사,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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