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숨을 쉰다

홍순관의 '노래 신학' 2015. 1. 28. 08:27

홍순관의 노래 신학(5)

 

나는 내 숨을 쉰다

홍순관 글 / 백창우 곡

- 2002년 만듦, ‘나처럼 사는 건 나밖에 없지음반수록 -

 

 

숨 쉰다 숨을 쉰다

꽃은 꽃 숨을 쉬고

나무는 나무 숨을 쉰다

 

숨 쉰다 숨을 쉰다

아침은 아침 숨을 쉬고

저녁은 저녁 숨을 쉰다

나는 내 숨을 신다 내 숨을

 

숨 쉰다 숨을 쉰다

별은 별 숨을 쉬고

해는 해 숨을 쉰다

 

숨 쉰다 숨을 쉰다

바람은 지나가는 숨을 쉬고

신은 침묵의 숨을 쉰다

나는 내 숨을 쉰다 내 숨을

 

은 인간에겐 영원한 테마요, 화두입니다. 숨처럼 강하고 고운 것도 없습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강요받으려고 태어난 게 아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숨 쉴 것이다. 누가 강한지는 두고 보도록 하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시민 불복종에 나오는 글입니다. 사람뿐 아니라, ‘제 숨을 쉬며 사는 생명이 가장 평화요, 가장 강한 것입니다. 제 숨을 쉬어야 건강하고 당당한 것이니까요 

어른 때문에 아이가, 학교 때문에 학생이, 남자 때문에 여자가, 정부 때문에 백성이, 강대국가 때문에 약소국가가 제 숨을 쉬지 못한다면 평화는 아닙니다. 과거 때문에 지금이, 지금 우리가 산 것 때문에 내일(미래), 사람 때문에 자연이 제 숨을 쉬지 못한다면 평화는 어렵습니다.

자유롭게 살기 위해 굳세게 서라는 성경의 말씀(갈라디아서 5:1), ‘은 쉬운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숨보다 자유로운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숨을 쉬기 위해서는 다른 이도 숨을 쉬어야 됩니다. 나의 숨과 너의 숨은 따로가 아닙니다.

종교의 숨이 거짓이 되면 세상은 깊은 상처를 받고 심각한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신자의 숨이 가식假飾이 되면 이웃은 멀어지고 하나님은 세상에 통로를 그만큼 잃어버리게 됩니다.

나의 프로필은 84해프닝(happening 또는, performance art)으로 시작합니다. 그 행위미술의 제목은 이용하는 것과 이용당하는 것이었습니다. 당돌한 미대생의 행위는 무대와 객석, 모두에게 낯선 것이었습니다.

당시 대학가에 즐비하게 들어서있던 복사 가게를 연상하며 만든 작품이었습니다. 한 집 걸러 보이던 복사 가게는 80년대 초. ‘무엇이든 복사하여 살던 시대의 상징 같은 것이었습니다.

주제는 확연합니다. 그것은 제 숨(자기 색깔)’없이 만들어 내놓는 미술, 노래, 광고, , 건축, 드라마, 영화를 보며 천박한 카피를 비판했던 것이지요. 80년대 즈음, 유럽 쪽에 유학 갔던 학생들에게 특이한 아르바이트가 있었답니다. 그 나라에서 방영되는 CF(광고)를 녹화(복사)하여 그 일을 부탁한 방송국(혹은, PD)에 보내는 일입니다.

베껴먹는 일이 예사가 되면, 거짓은 중독이 됩니다. 대학에서는 베낀 논문이 통과되고, 예술가들은 카피를 심지어 기술로 여기게 됩니다. 창작을 뒤로하게 되지요. 숨처럼 깊은 번민은 사라집니다. 부끄러움을 모르고 체면도 사라집니다. 그런 세상은 내 것 네 것이 없고, 국경이 없어지고, 경계가 사라지고, 소유가 무의미해지는 천국이 아니라, 거짓과 음모와 술수가 설치는 이성을 잃은 시대가 되는 것입니다.

제 숨이란, 진지한 삶과 성실한 일상에서 우러나오는 산제사같은 겁니다. 정직하게 일하고 땀 흘리는 삶입니다.

, ‘이란 얼마나 좋은 것인가요. ‘은 곧, 목숨입니다. 이토록 아름답고 귀한 것이 또 어디 있을까요. 깨끗한 숨을 쉴 수 있는 맑은 공기가 없다면 인간은 무엇으로 위로를 얻을 수 있을까요. 이런 고백은 계절의 풍요에서 그치는 감상이 아니요, 시인의 감성도 아닌 공멸로 떨어지는 지구를 향한 절실한 연민이요, 통회痛悔입니다.

꽃이 시들면 꽃이 진다!”고 하고, 사람도 목숨이 다하면 숨진다!’고 합니다. 숨과 더불어 함께하지 못하고 지는 것입니다. 자연이 숨지면 사람도 숨집니다. 나무가 숨을 쉬어야 사람도 숨을 쉽니다. 우주가 숨을 쉬어야 지구도 자연도 사람도 숨 쉴 수 있습니다.

묘혈墓穴로 빠져드는 문명을 바라보면서도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류의 문명이 무덤으로 바뀌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바람은 지나가는 숨을 쉬고 하나님은 침묵의 숨을 쉬기 때문일까요?

 

홍순관/가수

 

'홍순관의 '노래 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푸른 춤  (0) 2015.02.10
깊은 인생  (0) 2015.02.02
나는 내 숨을 쉰다  (0) 2015.01.28
쌀 한 톨의 무게  (2) 2015.01.21
저 아이 좀 봐  (0) 2015.01.14
벽 없이  (0) 2015.01.08
posted by

저 아이 좀 봐

홍순관의 '노래 신학' 2015. 1. 14. 10:24

홍순관의 노래 신학(3)

저 아이 좀 봐

홍순관 글 / 백창우 곡
- 2003년 만듦, ‘나처럼 사는 건 나밖에 없지’ 음반수록 -

 

디디담담 디디담담∼

저 새들 좀 봐
자유로이 하나님도 볼 수 있겠네
저 흐르는 강을 봐
너무 깊어 하나님도 건널 수 없겠네
저 나무를 봐
빛깔 고운 과일을 태어나게 하네

저 아이 좀 봐
이 세상을 넘어 가네
꽃과 말하며 신神과 말하며 생명을 말하며
쉬운 말 툭툭 던지며
쉽게도 넘어 가네
어지런 세상 참 쉽게도 넘어 가네

디디담담 디디담담∼

“저 강은 너무 깊어 하나님도 건널 수 없겠네!” 어느 날 아빠는 일기를 쓰다 잠든 딸, ‘소리’의 일기를 봅니다. 이 조그만 아이가 시골 목사로 사는 아빠가 힘들게 보인 겁니다. 집 앞에 내(川)가 흐르고 있는데 그걸 보고 강江으로 압니다. 아이의 일기에 흐르는 강과 아빠가 겹쳐진 겁니다.

단강이라는 곳에서 목회를 했던 한희철 목사님 이야기입니다. 농촌 목회이니 가난한 살림이었을 테지요. ‘소리’는 타고난 시인입니다. ‘강이 너무 깊다니’ 그래서 하나님도 ‘건널 수 없다니’ 기막힌 표현이요, 이입移入입니다. 어떤 시인도 가난한 목회 사정을 이보다 깔끔하고 깊이 있게 다루지는 못할 겁니다.

 

 

얼마 후, 신기하게도 비슷한 일이 벌어집니다. 어린 아이들이 통했는지, 같은 시기에 이런 말을 동시에 들려줍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던 길, 여덟 살 다빈이가 아빠에게 말합니다.
“아빠, 새들은 날면서 하나님도 볼 수 있겠다. 그치?”
동생인 여섯 살 다솔이는 덩달아 호기심 많은 눈으로 열매열린 나무를 보며,
“아빠, 아빠, 저 과일은 나무가 태어나게 하지?” 그럽니다.

아둔한 세상에 급했나봅니다. 하늘의 언어들이 비처럼 나립니다. 주워 담기도 벅찹니다. 어김없이 아이들은 어른의 스승입니다. 어렵게 말을 꾸며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난 것을 그대로 말하니, ‘제 말’이 되고 ‘제 세상’이 됩니다.

쉬우니 통합니다. 누굴 속이려면 꾀를 부리고, 편법便法을 쓰니 어렵고 복잡해집니다.


예수는 죽음을 향해 정면으로 걸었습니다.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비뚤어진 세상에게 조금도 숨기지 않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성서를 다시 들여다보니 예수에게는 광야도 쉬웠고, 물 위도 쉬웠습니다. 돌을 떡으로 만들지도 않았고, 언덕에서 뛰어내리지도 않았고, 뭘 준다고 받지도 않았습니다. 가만히 있었습니다. 구주 예수의 완성은 그랬습니다. 싱겁도록 쉬웠습니다. 그러고 보니 쉬운 것은 어려움을 넘어 있습니다. 가만히 서있는 나무가 그렇고, 흐르는 시간이 그렇습니다.

하늘의 길은 이 땅에서의 번민과 갈등도 쉽게 만드는 신비가 있습니다. 광야도 버티고, 물 위도 걸으며, 뱃머리에서도 잠들 수 있습니다.

어울려 사는 세상에 옳은 말하기 어렵고, 남들 가는 쉬운 길 버리기가 어렵습니다. 신자라면 마음과 영혼이 흐려지는 길은 걷지 말아야 합니다. 절로, 쉬운 길이 옳은 길이 되어야 합니다.

바늘구멍을 어떻게 쉽게 들어가며, 저 너머의 세상을 어떻게 가뿐히 건너갈 수 있을까요. 어린아이처럼 꽃과 말하고 하나님과 말하며 생명과 말하고 자연과 말한다면 천국은 쉬운 것이 되겠지요.

“저 아이를 좀 보라”는 것은, 아이가 바라보는 자연과 세상을 보라는 것이요, 아이 속에 숨어있는 신비한 언어를 들으라는 것이요, 아이처럼 되지 않으면 갈 수 없는 천국을 보라는 것입니다.

아이처럼 되라는 것은 순진하게 되라는 것만 아니요, 이 세상을 넘어 있으라는 말씀이겠지요. 복잡한 세상에 잡혀 살지 말고 훌훌 털어 쉽게 살라는 말씀일 겁니다.

홍순관/가수

'홍순관의 '노래 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깊은 인생  (0) 2015.02.02
나는 내 숨을 쉰다  (0) 2015.01.28
쌀 한 톨의 무게  (2) 2015.01.21
저 아이 좀 봐  (0) 2015.01.14
벽 없이  (0) 2015.01.08
나처럼 사는 건  (2) 2015.01.01
posted 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