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길에 들어서다

이종연의 '아기자기' 2015. 1. 17. 10:10
  • 미리 겪는, 결혼 생활처럼 설레네요.ㅎㅎ

    리범진 2015.01.21 03:11 신고
  • 지금 이루의 눈을 바라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짧은 글을 읽으며 깊은 눈물이 베어 나온다만... 너는 결국 좋은 엄마가 될것이다. 아니 이미 그렇다^^

    이정연 2015.01.27 09:35

이종연의 '아기자기'(2)

 외길에 들어서다

 

추운 겨울밤이었다. 평소 존경하던 장로님의 '한국 교회사' 강의를 듣고 집에 가려는데 장로님께서 버스 정류장까지 태워주겠다고 하신다. 정류장까지는 걸어서 5분 거리였기에 살짝 고사하다가 팬심을 숨기지 못하고 조수석에 낼름 앉고 보니, 이전에 '애기 소식 없나' 물어보셨던 게 생각났다(당시엔 모든 생각이 '임신'에 쏠려 있었기에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다'는 표현이 맞겠다). 슬며시 "저 장로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라고 운을 뗐다. 그런데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장로님이 알고 계시다는 듯 말씀하셨다.  

"니 애기 가졌제?" 
"(헉!) 어떻게 아셨어요?" 
"내가 오늘 보니 그렇더라." 
"(이런 게 연륜인 건가….) 그런데 장로님, 사실 계획에 없던 임신이에요."
"야야, 계획 같은 소리는 하지도 마라. 생명은 소중하다. 앞으로 그저 매사에 언행을 단정히 하고 좋은 생각만 하면서 지내거라." 

장로님은 당신이 허니문 베이비로 첫째를 가졌을 때 임신 주수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없었기에 주위에서 속도 위반 아니냐는 놀림을 받았다는 시시콜콜한 얘기도 들려주면서 마음을 다독여 주셨다. 사실 그런다고 다독여질 마음은 아니었다. 다만 며칠 전 아기를 낳기로 결정(?)했기에 괴로운 마음이 정리되어 가고 있을 뿐이었다

진심, 힘든 결정이었다공항에서 "저 임산부예요"라고 말했지만 그게 내 스스로 임산부임을 받아들이겠다는 결심은 아니었다. 뭐라 설명하기 어렵지만,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없어 끙끙거리는 가운데 다만, 무의식중에 '생명'을 인식했을 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쯤에서 사족이기도 하고 본질적이기도 한 얘기를 하고 넘어가는 게 좋을 듯하다. 곧 죽어도 아이는 낳고 싶지 않았던 이유에 관해

내가 6남매 중 넷째고 딸 다섯에 막내가 아들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대충 알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어렸을 때는 사람들의 예의 똑같은 반응이 싫었는데 이제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사는 걸 보면 나도 나이가 들었고, 이제 6남매 중 넷째로 규정되는 삶을 살지 않아서일 거다

아무튼 어린 시절 우리 집엔 자식은 많은데 돈은 없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그 와중에 사내 아이인 막내에게 쏠리는 사람들의 관심이, ''평등'하지 않은 건 못 견디는 지금의 나를 만든 밑거름(?)이었던 듯 싶다. 지금도 생각난다. 걸핏하면 나는 엄마에게 대거리를 하며 악을 썼다. "막내랑 차별하지 마!"   

엄마가 어떤 차별을 했는지 지금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그때 나는 내가 당하는(?) 남녀 차별이 싫었고, 좀더 커서는 그 시절 대부분의 엄마들이 겪은 사회적 차별은 더 싫었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엄마의 삶을 동정은 할지언정 동경은 하지 않는다

문제는 후자 즉, 엄마로 살아가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오죽하면 <엄마되기, 힐링과 킬링 사이>(백소영) 같은 책까지 있겠나(이럴 땐 개정판 전의 제목인 '엄마되기, 아프거나 미치거나'가 더 와 닿는다). 출산이 '선택'일 수 없었던 예전 같았으면 '하나는 낳으라'는 조언을 많이 들었겠지만, 아기를 키우고 있는 주위 엄마들조차 '안 낳아도 되면 낳지 말라'고 했다. 우리 사회가 엄마들에게 얼마나 적대적이었으면 제 아이를 앞에 두고 그렇게 말했을까. 그러니 부러 '엄마'가 되어서 사회적 차별 만연한 외길로 들어갈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환경 문제에 민감한 나로서는 방사능 누출 사고를 비롯한 환경 오염이 만연한 세상에서 아이를 기르는 건 미안해서 못 할 짓이었다. 많은 아이를 고통으로 밀어내는 교육 전쟁과 그 아이가 뒤이어 맞게 될 취업 전쟁은 어떤가. 오히려 이런 세상에서 아이를 낳는 부모들의 용기가 대단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다만 내 생각을 존중해 '임신 유보' 정도의 입장이던 남편을 설득시키지 못했기에 소극적으로 타협은 해야 했다. 아이가 최대한 자연을 누리며 자랄 수 있고, 부부가 육아를 평등하게 할 수 있는 환경에서 살게 되면 그때 아이 낳는 걸 '고려'하자고

"그게 지금은 아니잖아. 난 이제 어쩌면 좋아..." 

열흘 가까이 남편과 끙끙댔지만 우리는 쉽게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했다. 그리고 그 깜깜한 밤들의 마지막 날, 급기야 나는 울다가 가무러칠 지경에 이르렀다

그때, 남편이 나를 그러안고 말했다. 그는 오래 생각한 듯 보였다.

"내가 회사 그만두고 아이 키울게. 우리 낳자." 

물론 남편이 육아를 한다 해도 임신 과정과 출산은 고스란히 내 몫이다. 또 아이가 남편만의 자녀일 수는 없으니 나는 결국 엄마라는 이름을 가지게 될 터였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상황 앞에서 그 자신도 혼란스러울 텐데 갈대처럼 흔들리기만 하는 아내를 위해 저토록 힘쓰는 것도 모자라 아예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겠다고까지 하는 남편을 보며, 나는 눈물을 닦아야 했다. 저 사람과 사랑한 대가를 나도 치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어젯밤, 그 외길에 들어섰다."

 

이종연/IVP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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