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 밖의 새로운 하나님 나라
「마음의 눈」이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김기석 목사는 예수로부터 눈 고침을 받은 이가 회당에서 축출 당한 이후 예수와 다시 만난 장면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참 어려운 진실과 만나게 됩니다. 그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신 자리는 기득권자들에게 쫓겨난 자리였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풀무불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다니엘은 사자굴 속에서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했습니다. 우리가 한 평생 교회에 출입하면서도 주님을 깊이 체험하지 못하는 까닭은 안주의 울타리를 조금도 벗어나지 않으려는 삶의 관성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도 유대교와 로마 제국에 의해 울타리 밖으로 쫓겨나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래서 예수께서 자기의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신 것처럼 우리도 진영 밖으로 나가 그에게로 나아가서 그가 겪으신 치욕을 짊어 지자고 말합니다.… 새로운 세계는 중심이 아니라 변두리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시고,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십니다. 눈멀었던 사람, 이제는 공동체의 울타리 밖으로 쫓겨난 사람에게 주님은 당신의 소명이 무엇인지 알리십니다.”
이렇게 김기석 목사는 기존의 독선과 안주로 인해 하나님의 길과 멀어지고 있는 이들에게 다시 편입되어 들어가려는 것이 아니라, 이와는 도리어 결별하고 쫓겨나고 밀려난 바로 그 울타리 밖이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중심이 되는 출발점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이는 예수 선교의 총체적 핵심을 그대로 압축시킨 내용이라고 하겠다. 바로 그 자리에서 비로소 우리는 이전에 보았던 것이 정작은 보 지 못했던 것이며,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것을 보게 되는 놀라움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야말로 인식론적 혁명이 이루어지는 순간 이다. 이로써, 예수의 손길에 의해 눈뜨게 된 장님은 바로 이 인식론 적 혁명을 온몸으로 경험한 자가 된다. 사도 바울(사울) 역시 그런 체 험의 전형이 된다.
“다마스커스로 가던 사울은 스스로 ‘본다’는 자부심에 가득찼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환한 빛 앞에서 소경이 된 것은 은총이었습니 다. 자기의 눈멂을 자각할 때라야 비로소 눈을 뜰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이어 김기석 목사는 아주 인상 깊은 “인당수”론을 펼친다. 아버지의 눈이 뜨여지기를 바라고 심청이가 뛰어든 인당수를 영의 세계가 열리는 지점으로 주목한 것이다.
“그들의 눈뜸의 시작은 바로 깊이를 알 수 없는 인당수였습니다. 아버지의 한을 풀어드리고 싶어 자기를 희생한 그 자리야말로 제3의 눈이 열리는 지점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골고다 언덕에 세워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야말로 인당수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눈을 열어주려고 스스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 아래 서있던 백부장은 ‘이 사람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로구나’하고 고백했습니다. 눈이 열린 것입니다.”
결국 문제는 욕망과 독선, 그리고 고정된 교리에 세뇌되어버린 마음이 진리로 해방되어야 하는 것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하신 말씀대로다. 그것은 예수 자신에게도 매우 중대한 경험으로 압축되어 나타난다. 사탄의 시험을 이기고 하나님의 길로 들어서는 순간의 사건이 존재했던 것이다. 김기석 목사는 이 시험의 대목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당하신 시험은 육적인 욕망의 탈을 벗는 기회였습니다. 그 후로 예수님은 흔들리지 않는 바위처럼 당신의 길을 가셨습니다. 우리는 그 길이 생명의 길이라고 믿기에 그 길을 따르기로 한 사람들입니다. 물질과 허영심과 권력의 유혹을 물리치고 나면 우리 삶도 맑아질 것입니다. 예수님이 택하신 좁은 길을 통해 우리는 하늘에 이를 것입니다.”
이렇게 그는 예수의 길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인식하면서 그 길로 따라 나서는 것이 곧 믿음임을 일깨우고 있다. 이러한 김기석 목사 의 ‘믿음’에 대한 이해는, 예수의 길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이름을 앞에 내세워 “욕망을 채우는 길”을 신앙으로 포장하고 있는 한국교회 전체에 대한 질타와 도전이 된다. 사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이렇게 신학적 논전을 펼치지 않아도 이미 사회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어온지 오래다. 한국교회는 부와 명성과 권력의 산실처럼 여겨지고 있으며, 이로써 예수의 부활은 사라진 채 부활하신 예 수조차 다시 자기들의 독선의 무덤에 묻어버리고 조작된 비명(碑銘)을 가지고 장사하기 바쁘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과 돈을 함께 섬기지 못한다고 하셨는데, 예수께서도 하지 못한다고 하신 이 일을 한 국교회는 할 수 있다고 선전하고 있으니 이를 어찌해야 할까?
《말씀 등불 밝히고》 중에서
한종호/꽃자리출판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