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숙의 글밭/시노래 한 잔
박잎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네
한종호
2021. 8. 24. 09:47
철대문으로
드나들 적마다
박잎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네
미소를 머금은 입가에
말이 없으시던
커다란 아버지 손처럼
순하게
내가 뭘 잘한 게 있나
무심코 묻기보다
몇 날 며칠을 두고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 여름 내내 혼자 있을 적에
아무리 땀이 흘러도 에어컨을 틀지 않은 일 하나
그거 말곤 별로 없는데
그 때문인지 그 불볕 더위도 어느새 물러나
어제 처서를 지나며
이렇게 시원한 바람을 부쳐주신다
그래서 나도 화답으로
양어깨에 맨 보따리가 아무리 버거워도
박줄기처럼 대문 위로 팔을 뻗어서
순하디 순한 박잎과 손끝으로 악수를 나누었지
내 머리꼭지 위에서
둥근 보름달이 내려다보며
순한 달무리로
가슴속까지 쓰다듬어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