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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1157

로봇이 타 준 커피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95) 로봇이 타 준 커피 심방 차 해남을 방문하는 일정을 1박2일로 정했다. 길이 멀어 하루에 다녀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다 싶었다. 마침 동행한 장로님이 회원권을 가지고 있는 숙소가 있어 그곳에 묵기로 했다. 저녁을 먹고 어둘 녘에 도착한 숙소를 보고는 다들 깜짝 놀랐다. 진도라는 외진 곳에 그렇게 큰 숙박시설이 있는 것에 놀랐고, 그 큰 숙소가 꽉 찬 것에 더 놀랐다. 평일이었는데도 그랬으니 말이다. 권사님이 권한 일출을 보기 위해 다음날 새벽 일찍 일어났다. 남해의 일출은 동해의 일출과는 사뭇 달랐다. 바다 위가 아니라 섬과 섬 사이에서 해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해가 떠오르며 하늘과 바다를 물들였던 붉은 빛은 바라보는 마음까지 물들이기에 충분했다. 해돋이를 보고 숙소로 .. 2020. 5. 27.
상처와 됫박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94) 상처와 됫박 이따금씩 떠오르는 사람 중에 변관수 할아버지가 있다. 나이와 믿음 직업 등과 상관없이 얼마든지 정을 나눌 수 있는 분으로 남아 있다. 변관수 할아버지는 단강교회가 세워진 섬뜰마을에 살았는데, 허리가 ‘ㄱ’자로 꺾인 분이었다. 언젠가 할아버지는 논둑에서 당신 몸의 상처를 보여준 적이 있다. 6.25때 입었다는 허리의 상처가 결정적인 이유였을 것이다. 해마다 겨울이 다가오면 할아버지가 이번 겨울을 잘 나실까 싶은 생각이 들곤 했다. 겨울잠에 들기라도 한 듯 바깥출입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겨울 지나 봄 돌아오면 제일 먼저 지게를 지고 나타나는 분이 변관수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의 몸도 기역자, 그 위로 삐쭉 솟아오른 지게도 기역자, 지게를 진 할아버지의 모습.. 2020. 5. 26.
고소공포증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93) 고소공포증 새벽기도회 시간에 설교를 하는 수련목회자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군에서 제대를 하기 전까지 심한 고소공포증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높은데 올라가면 가슴이 터질 것처럼 뛰고 식은땀이 나며 큰 두려움을 느꼈는데, 심지어는 텔레비전에서 누가 높은데 오르는 것을 보기만 해도 손에 땀이 날 정도였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마침내 기억해낸 어릴 적 기억이 있단다. 삼촌들이 모여 서서 어린 자신을 손에서 손으로 공을 던지듯 던지며 놀았다는 것이다. 어린 조카가 너무나 귀여워서 한 일이었겠지만, 자신이 생각할 때는 아무래도 그 일 때문에 고소공포증이 생긴 것 같다는 것이었다. 만약 그 순간에 하늘을 나는 무서움을 큰 울음으로 표현했다면 당연히 놀.. 2020. 5. 25.
전하는 것이 축복이라면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92) 전하는 것이 축복이라면 새벽 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잠에서 깨었을 때, 창밖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소리, 새들이었다. 필시 두 마리 새가 나란히 앉아 밤새 꾼 꿈 이야기를 나누지 싶었다. 그런데 신기했다. 새들의 소리가 시끄럽게 여겨지질 않았다. 끊임없이 떠들어대는 데도 오히려 정겹게 여겨졌고, 윤기 있는 소리에 듣는 마음까지 맑아지는 것 같았다. 무엇 때문일까? 단지 새소리이기 때문일까? 아닐 것이다. 새들이라고 무조건적인 아량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새벽 이른 시간 끊임없는 소리가 귀에 거슬리지 않는 데에는 분명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새소리를 들으며 세수를 할 때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잠언의 한 말씀이 떠올랐다.. 2020. 5. 24.
몸이라는 도구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91) 몸이라는 도구 인우재 방에 깔린 비닐장판을 걷어내고 종이장판을 깔았다. 처음엔 흙 위의 멍석이 전부였다. 멍석이란 짚으로 만든 것, 생각하면 단순했다. 널찍한 돌로 된 구들장을 깔았으니 돌 위의 흙, 흙 위의 풀이 방바닥의 전부인 셈이었다. 방에 누울 때마다 자연 위에 눕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좋았지만 인우재를 찾는 이들이 불편해 했다. 엉덩이가 배기는 것보다는 벌레와 친하지 못한 이들의 불편이 참으로 컸다. 어떤 이는 경기에 가까운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결국은 멍석을 걷어내고 종이를 붙였다. 쌀을 담던 부대의 종이를 붙였다. 그렇게 지내던 중 먼 친척 되는 분이 요양차 1년여 머무는 동안 비닐장판을 깐 것이었다. 비닐장판은 물걸레질을 할 수 있어 편하긴 하지만, .. 2020. 5. 23.
사랑과 두려움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90) 사랑과 두려움 사막 교부들의 금언을 읽다가 만난, 압바 이시도루스의 말이다. “제자들은 진정 자기 스승인 사부들을 사랑하고, 자기 지도자인 그들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제자들은 사랑 때문에 두려움을 잃어서도 안 되고, 두려움 때문에 사랑을 어둡게 해서도 안 됩니다.” 그의 말이 공감되는 것은 더 이상 두려움도 사랑도 찾아보기가 어려워졌기 때문, 사랑과 두려움 사이의 조심스러운 걸음새를 갈수록 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2020. 5. 22.
청개구리의 좌선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89) 청개구리의 좌선 청개구리가 선에 들었다. 작약 꽃 지고 남은 꽃받침, 그곳에 들어앉아 시간을 잊는다. 바람 거세게 불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들어앉아 세상을 잊을 나의 꽃받침은 어디일지. 2020. 5. 21.
망각보다 무서운 기억의 편집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88) 망각보다 무서운 기억의 편집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았다. 자식들의 비석을 쓰다듬는 어머니들의 눈에서는 여전히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아무리 많은 세월이 지난다 해도 그 눈물이 어찌 마를까. 어찌 뜨거움이 달라질 수 있을까. 어머니 가슴속에 묻은 자식들은 아무리 세월이 지나간다 해도 여전히 꽃다운 청춘들이다. 사진/일요신문 그 시절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부끄럽다. 모르기도 했고, 모른 척 하기도 했다. 오히려 광주의 아픔을 헤아리게 된 것은 군 입대 후였다. 입대를 한 것이 신학공부 3학년을 마친 1981년 7월 1일, 5.18이 일어난 지 막 1년이 지날 때였다. 논산에서 훈련을 받은 뒤 자대 배치를 받은 곳이 광주 송정리 평동에 있는 포대였다. 그 해였.. 2020. 5. 20.
마음에 걸칠 안경 하나 있었으면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87) 마음에 걸칠 안경 하나 있었으면 안경을 맞췄다. 어느 날부터인가 책을 읽다보면 글씨가 흐릿했다. 노트에 설교문을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쓰면서도 받침이 맞나 싶을 때도 있었다. 마침 교우 중에 안경점을 하는 교우가 있어 찾아갔다. 일터에서 교우들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이 새롭다. 마침 손님이 없어 같이 기도를 하고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야기를 들은 집사님이 우선 검사부터 하자고 한다. 자리에 앉아 정한 자리에 턱을 괴자 집사님이 내 눈을 기계로 살핀다. 그런 뒤에 집사님이 가리키는 숫자를 읽는다. 애써 잘 읽으려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안다. 이번에는 두툼한 철로 된 안경을 쓰게 하고는 렌즈를 바꿔 끼우며 다시 글자를 읽게 한다. 글자가 한결 또렷해진다. 다.. 2020. 5.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