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얘기마을502

가난한 사랑 한희철의 얘기마을(168) 가난한 사랑 아이들에게 미안할 때가 많습니다. 뭐가 그리 바쁜지 밖으로 돌아치기 일쑤고, 그나마 집에 있는 날은 뭔가를 읽고 쓴다고 방안에 쳐 박히곤 하니 같이 어울릴만한 시간이 부족한 것입니다. 하루 종일 두 녀석이 마당에서 노는 걸 보면 은근히 마음이 아프면서도 함께 하는 시간은 많지 못합니다. 그걸 잘 알기에 한가한 시간이 주어지면 아이들과 어울리려고 애써 노력을 합니다. 그중 쉽게 어울리는 것이 오토바이입니다. 혼자 타기에도 벅찬 조그만 오토바이지만 앞쪽에 규민이 뒤쪽에 소리를 태웁니다. 두 녀석은 오토바이 타는 걸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규민이는 오토바이를 탄다면 신이 나서 엉덩이를 들썩이고 어서 떠나자고 아무나 보고 손을 흔들어 댑니다. 떨어지면 어떡하나 싶었던 처음과.. 2020. 12. 9.
불 하나 켜는 소중함 한희철의 얘기마을(167) 불 하나 켜는 소중함 어둠이 다 내린 저녁, 오토바이를 타고 작실로 올랐다. 패인 길을 고친다고 얼마 전 자갈을 곳곳에 뿌려 놓아 휘청 휘청 작은 오토바이가 춤을 춘다. 게다가 한 손엔 긴 형광등 전구를 잡았으니 어둠속 한손으로 달리는 작실 길은 쉽지가 않았다. 전날 우영기 속장님 집에서 속회 예배를 드렸는데, 보니 형광등 전구가 고장 나 그야말로 캄캄절벽인지라 온통 더듬거려야 했다. 전날 형광등이 고장 났으면서도 농사일이 바빠 전구 사러 나갈 틈이 없었던 것이다. 다행히 교회에 형광등 여유분이 있었다. 그토록 덜컹거렸으면서도 용케 전구는 괜찮았다. 형광등 전구를 바꿔 끼자 캄캄한 방안이 대낮처럼 밝아졌다. 막 마치고 돌아온 속장님이 밝아진 방이 신기한 듯 반가워한다. 필요한 .. 2020. 12. 8.
공부 한희철의 얘기마을(166) 공부 교회 구석진 공간 새로 만든 방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누군가 빼꼼 들여다보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종순이였습니다. “목사님 뭐 해요?” 열린 창문을 통해 발돋움을 하고선 종순이가 묻습니다. “응, 공부한다.” 그러자 종순이가 이내 눈이 둥그레져 묻습니다. “목사님두 공부해요?” 공부는 자기 같은 아이들만 하는 것으로 알았나 봅니다. “그럼, 공부는 죽을 때까지 하는 거야.” 고개를 갸우뚱, 종순이가 돌아섭니다. 그런 종순이를 내다보며 미안하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합니다. 농사일에 책 볼 겨를이라곤 없을 종순이 엄마 아빠 종순이에겐 미안하기도 했고, 종순이를 위해서라면 다행스럽기도 했습니다. - (1992년) 2020. 12. 7.
성지(聖地) 한희철의 얘기마을(165) 성지(聖地) “한 목사도 성지 순례를 다녀와야 할 텐데.” 목회하는 친구가 성지순례를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어머니가 그러신다. 자식을 목사라 부르는 어머니 마음에는 자랑과 기대, 그리고 한 평생 지켜 온 목회자에 대한 경외심이 담겨 있다.농촌목회를 해서 성지순례를 다녀올 기회가 없다 생각하시는 건 아닐까 싶어 어머니께 그랬다. “성지가 어디 따로 있나요. 내가 사는 곳이 성지지요.” 혹 어떨지 몰라 어머니를 위로하듯 한 말이지만, 그 말을 삶으로 확인하며 살고 싶다.내 사는 곳을 성지(聖地)로 여기며. - (1992년) 2020. 12. 6.
일렁이는 불빛들 한희철의 얘기마을(164) 일렁이는 불빛들 밤이 늦어서야 작실로 올라갔습니다. 속회 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요즘 같은 일철엔 늦은 시간도 이른 시간입니다. 아랫작실 초입에 이르렀을 때 저만치 다리 있는 곳에 웬 휘황찬란한 불빛이 번쩍거리고 있었습니다. 늦은 시간에 웬 불빛일까, 가까이 가보니 그 불빛은 자동차에 늘어뜨려 놓은 전구들이었습니다. 이런저런 물건들을 가득 실은 트럭이 날개 펼친 듯 양 옆을 활짝 열고 줄줄이 불을 밝히는 것입니다. 차려 놓은 물건 규모가 웬만한 가게를 뺨칠 정도였습니다. 그야말로 기발한 이동 가게였습니다. 마을 아주머니들이 나와서 필요한 물건을 샀고, 할머니 몇 분은 다리 난간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매주 토요일 밤이면 들어오는 가게 차입니다. 충주에서 오는 차라.. 2020. 12. 5.
어떤 고마움 한희철의 얘기마을(163) 어떤 고마움 손님이 없어 텅 빈 채 끝정자를 떠난 버스가 강가를 따라 달릴 때,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가던 아이들이 버스를 보고 손을 들었다. 등에 멘 책가방이 유난히 커 보이는 것이 1, 2학년 쯤 됐을까 싶은 아이들이었다. 학교에서 조귀농까진 차로 5분 정도 되지만 아이들 걸음으론 30분이 족히 걸리는 거리다. 등굣길 하굣길을 아이들은 걸어 다닌다. 녀석들은 장난삼아 손을 들고 있었다. 장난기 어린 웃음과 주저주저 들어보는 손 모습이 그랬다. 한눈에 보아도 녀석들이 장난치고 있음을 알 만한데, 버스기사 아저씨는 길 한쪽에 버스를 세웠다. 정작 버스가 서자 놀란 건 손을 들었던 아이들이었다. 버스가 서고 출입문이 덜컥 열리자 녀석들은 놀란 참새 달아나듯 둑 아래 담배 밭 속으.. 2020. 12. 4.
순례자 한희철의 얘기마을(162) 순례자 된 소나기가 한참 쏟아진 지난주일 오후, 한 청년이 찾아 왔습니다. 비를 그대로 맞은 채였습니다. 단강으로 오는 차편을 잘 몰라 중간에서 적지 않은 고생을 했다 했습니다. 그날 청년은 세례를 받았다 했습니다. 천주교 신자인 그는 처음 믿음을 잘 지켜 신부님께 성당에서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세례,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고 그러다가는 뛰고 그러다간 불쑥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졌습니다. 마음속에 담아뒀던 단강을 무작정 찾았던 건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잠깐 인사하고 잠깐 이야기하고 돌아서는 길, 비는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우산 하나 전하며 빗속 배송합니다. 불편한 걸음걸이. 세례 받은 날 먼 길을 고생으로 다녀가는 그녀의 뒷모습은 세례의 의미를 마음속 깊이 새기는 순례자의 모.. 2020. 12. 3.
우리의 소원은 통일 한희철의 얘기마을(161) 우리의 소원은 통일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정성 대해서 통일, 통일이여 오라.” 작실서 섬뜰로 내려오는 산모퉁이 길, 아침 일찍 커다란 노래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책가방 등에 메고 준비물 손에 든 5학년 병직이입니다. 하루 첫 햇살 깨끗하게 내리고, 참나무 많은 산 꾀꼬리 울음 명랑한 이른 아침, 씩씩한 노래를 부르며 병직이가 학교로 갑니다.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 (1992년) 2020. 12. 2.
제비집 한희철의 얘기마을(160) 제비집 사택 지붕 아래 제비가 집을 지었습니다. 며칠 제비 울음 가깝더니 하루 이틀 흙을 물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붉은 벽돌 중 조금 튀어나온 부분을 용케 피해 집 자리로 잡았습니다. 언제 부부의 연을 맺었는지 두 마리의 제비는 보기에도 정겹게 바지런히 집을 지었습니다. 진흙을 물어오기도 하고 지푸라기를 물어오기도 하며 제비는 하루가 다르게, 낮과 저녁이 다르게 집을 지었습니다. 전깃줄에 새까맣게 앉곤 했던 어릴 적과는 달리 해마다 수가 줄어드는 제비가 내가 사는 집을 찾아 집을 짓다니 반갑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 유심히 집 짓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언제 어디서 배운 것인지 며칠 사이로 봉긋 솟은 모양의 제 집을 제비는 훌륭하게 지었습니다. 지나가던 승학이 엄마가 제비집을 보더.. 2020. 1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