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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종호의 '너른마당'78

본회퍼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한종호의 너른마당(16) 본회퍼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오늘(4월 9일)은 독일 신학자이자 나치스에 저항했던 디트리히 본회퍼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지 70년 되는 날이다. 그는 현실의 고난, 그 중심에서 하나님으로 자신을 드러낸 그리스도를 만날 것을 촉구한 사람이었다. 그것은 영광스런 신적 존재를 기대하고 있는 이들에게 매우 당혹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본회퍼는 바로 이 십자가 신학 속에 인간과 하나님의 만남을 극적으로 목격한다. 그는 나치스로 인해 독일은 물론이고 인류 사회가 전쟁과 억압의 현실 속에 빠져 들어가는 것에 대해 분노했고, 이를 막기 위해서라면 자신이 희생당해도 좋다고 믿었다. 그런 점에서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과 현실의 권력이 정면에서 충돌한 지점이었고, 그 자신은 그리스도를 따라 십자가에.. 2015. 4. 9.
세월호 참사 1년, 대통령과 권력, 그리고 부활 한종호의 너른 마당(15) 세월호 참사 1년, 대통령과 권력, 그리고 부활 세월호 참사 1주년이다. 잔뜩 흐린 날씨가 우리네 삶의 풍경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지난 4월 4일 영정을 들고 안산을 출발하여 광화문 광장을 향하여 걷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절규를 들으며 지금은 더 이상 절망하지 않는 것이 희망이지 싶다. 참사 후 1년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365일이지만 유가족들에게는 2014년 4월 16일에서 단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세월호 특위는 만들어졌지만 그마저도 조사권이 위태로운 지경에 처한 것은 우리 사회가 어떤 현실에 있는지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진상은 아직도 오리무중이고 책임을 따지는 문제는 언제 정리될 수 있을지 도무지 가늠이 잡히지 않는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한다”는데.. 2015. 4. 5.
<조선일보>의 달관할 정도가 되었다? 한종호의 너른 마당(14) 의 달관할 정도가 되었다? 가 지난 2월 말부터 ‘달관세대가 사는 법’이라는 시리즈 기사를 내면서 이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달관이라니? 절망하고 있는데”라는 반론부터, “새로운 행복관을 가진 세대의 등장”이라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달관세대”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이어진다. 이 논쟁의 중심에는 오늘날 미래에 대한 전망을 잃고 있는 청년세대의 현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라는 시선 문제가 놓여 있다. 그에 더해 어떻게 청년들이 뜻을 펼쳐나갈 수 있도록 해 줄 것인가라는 사회적 과제에 대한 문제제기다. 달관세대는 일본의 ‘사토리 세대’를 차용한 개념으로, 사토리(さとり)란 ‘득도, 깨달음’으로,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일본에서 태어난 10대 후반~20대 중반의.. 2015. 3. 31.
왜 산상수훈인가? 한종호의 너른 마당(13) 왜 산상수훈인가? 산상수훈’은 파격적이다. 성전에서 선포한 이야기가 아니라 산에서 무리들에게 말씀하셨다는 대목도 눈을 끌거니와, 그 내용도 통상의 유대적 종교성을 넘고 있다. 이는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아도 여전히 파격적이다. 산상수훈대로 설교하고 선포하며 살아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는 점에서만이 아니라, 산상수훈의 논리를 오늘의 교회가 잘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모세가 산에 올라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고 돌 판에 율법을 새기는 장면은 산상수훈과 그대로 겹친다. 산상수훈은 그런 면모에서 히브리 신앙 전통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그건 다름 아닌 광야의 야성적(野性的) 종교가 가지고 있는 생명력의 복원이다. 이미 기득권으로 무장되어 있고, 교리가 되어버린 성.. 2015. 3. 22.
이 시대의 ‘하나님 생각’ 한종호의 너른 마당(12) 이 시대의 ‘하나님 생각’ 어딜 가나 모두가 아우성치는 이 시대에 교회가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늠하고 있자면, 그 모든 재고(在庫)가 턱없이 빈약하다는 사실을 피할 수 없이 목격하게 된다. 믿음, 소망, 사랑 그 어느 것 하나도 우리가 풍요하게 가지고 있다고 자신하지 못하는 지점에 서 있는 것을 부인하지 못하겠다. 도리어 우리에게는 분쟁과 시기, 경쟁과 기득권, 자기과시와 아부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기심만을 키워온 부끄러운 모습이 가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든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의 현실이 이토록 폐허로 달려오기까지 아무런 일깨움을 일으키지 못하는 사태는 없었을 것이다. 우리의 정력은 온통 교회 안에서 힘 겨루는 일과 교회 자신을 살찌우는 일, 교회를 내세우.. 2015. 3. 6.
갈 길 잃은 내면화된 영성의 탐욕 한종호의 너른 마당(11) 갈 길 잃은 내면화된 영성의 탐욕 오늘날 우리사회는 “정신적 권위”를 가지지 못한 지경에 처했다. 원로의 존재만 생각해봐도 예전 같지 않다. 세월호 침몰 참사로 인해 한국사회가 난마처럼 얽히고 여전히 진상 규명의 실마리조차 풀고 있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귀 기울여 경청할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뭔가 혼란스럽고 문제가 충격적으로 터지면 이걸 중심잡고 수습해줄 수 있는 신뢰할 만한 힘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런 현실은 우리사회가 위기에 직면할 경우 대단히 위태로워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종교가 그런 상황을 이겨내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도리어 조롱거리가 되고 있는 판국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 답을 생각해내는 일은 그리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어떤 종교인가의 .. 2015. 2. 25.
왜 근본주의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일까? 한종호의 너른 마당(10) 왜 근본주의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일까? 뭐든 문제는 언제나 근본적인 차원으로 들어가야 제대로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근본을 따지는 것은 올바른 인식 태도다. 곁가지만 쳐서는 잘못된 것을 바로 잡을 수도 없고, 어떤 원칙을 똑바로 세울 수도 없다. 우리의 교육도 그런 점에서 근본에 대한 성찰보다는 암기와 당장의 실용적 가치에만 주목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적지 않다. 이러다보니까 정작 따지고 들어야 할 바보다는 피상적인 사고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근본이 없는 교육이다. 근본이란 한자로 쓰면 뿌리 근(根)에 기원 또는 밑바탕이 된다는 본(本)을 쓴디. 뿌리나 밑바탕이나 기원이나 다 마찬가지 뜻이다. 모든 게 다 뿌리로부터 출발해서 겉모양이 드러나게 되어 있으니.. 2015. 2. 20.
‘니나노’와 ‘강강수월래’ 한종호의 너른 마당(9) ‘니나노’와 ‘강강수월래’ 사람은 먹어야 산다. 지당한 말이다. 사람은 놀아야 건강하다. 그 또한 맞는 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사람은 사랑과 정을 나누며 살아야 한다. 그래야 사람답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살면서 일만 하면 그건 결국 인생을 시들게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놀 줄 모르는 인생과 사회는 그만큼 흥도 없고 신명도 나지 않는 현실을 의미할 뿐이다. 어디 그래가지고서 사람 사는 것 같을까? 그런데 어느새 우리는 가슴 속에 흥을 잃고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산업화의 과정에서 “일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일하자”라는 구호는 분단의 군사적 긴장을 망각하지 말라는 국가의 요구였다. 청소년들은 입시 지옥에서 헤맸고 성인들은 집단적인 노동 윤리에 묶여 그 압박감을 제.. 2015. 2. 17.
모두가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한종호의 너른 마당(8) 모두가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전도서는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의 왕, 전도자”라고 이 글을 쓴 사람이 누구인가를 밝히고 있다. 시작은 다윗의 아들이며, 그 삶의 중심은 왕이고, 결론은 전도자가 되는 셈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부터 우리는 전도서가 지향하는 최종 목표를 알게 된다. 그것은 이 세상의 영광과 권세, 그 모든 것을 쥐고 있었으나 그 자신이 결국 마지막에 도달한 모습은 다름 아닌 “전도자”라는 것이다. 이 전도서의 저자가 다윗의 아들 솔로몬인지, 아니면 그와 정신적 계보를 같이 하는 존재인지를 규명하는 일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보다 본질적으로는 전도서가 다윗의 혈통에 속하는 이스라엘의 권력, 그 정통성의 중심에 있는 존재이자, 그 권력을 스스로 누린 최고 통치자의 신.. 2015. 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