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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용의 '종교로 읽는 한국 사회'34

메르스가 던지는 메시지 이길용의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25) 메르스가 던지는 메시지 바이러스. 그 이름은 ‘독’을 뜻하는 라틴어 비루스(virus)에서 왔다. 그런데 사실 바이러스는 그렇게 해롭고, 있어서는 안 될 존재만은 아니다. 늘 있어왔고,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고, 그리고 실제로 지구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유기물질이 바로 바이러스이다. 바이러스는 묘하다. 독립 세포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스스로 살아갈 수 없다. 구성체라고는 일정한 유전물질과 단백질, 그리고 그것을 담고 있는 껍질 정도이다. 바이러스는 생명체라 부르기도 애매한 것이 독립적으로 물질대사를 할 수 없기에 반드시 숙주를 필요로 한다. 바이러스는 숙주의 세포에 있는 핵산을 통해서만 자신의 고유한 유전정보를 복제하여 증식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생존 방식 때문에 바.. 2015. 6. 17.
페스트, 메르스, 그리고 희생양 이길용의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24) 페스트, 메르스, 그리고 희생양 메르스(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중동호흡기 증후군)의 침입에 한국 사회가 휘청거리고 있다. 치사율 40%라는 공포의 수치가 사람들의 마음을 어둡고 차갑게 만들었다. 그래서 정부가 제 아무리 공기 중 감염은 희박하다고 강조를 하여도 사람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바깥출입을 자제하고 있다. 이런 지경이니 평소 사람들로 북적이던 곳들이 한산해진다. 각종 쇼핑센터, 대형 할인마트, 백화점, 영화관, 음식점 등에 손님의 발길이 뚝 끊어졌고, 각종 학교의 휴교령으로 대중교통도 여유로워졌다. 다만 주택가 근방의 PC방들은 학교를 가지 않는 학생들로 성업 중이라고 한다. 모여 있지 말라고 내린 휴교령인데, 결국 아이들.. 2015. 6. 10.
인문학 진흥과 대학의 학과들… 이길용의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23) 인문학 진흥과 대학의 학과들… 인문학 붐이 한창이다. 한쪽에서는 대학의 인문학과가 죽어간다고 난리를 치고, 또 한편에서는 각종 인문학 강좌들이 예서제서 하루가 멀다 하고 국내외 명사들을 초청하여 향연을 펼친다. 이런 어색한 불균형이 이 땅에 자리 잡은 지도 제법 된 것 같다. 정부로서도 세상의 기초학문(?)이라 불리는 인문학을 살리고자 다양한 정책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래서 내세운 것인 이른 바 인문한국(HK) 프로젝트였다. 당시 이 정책은 인문학자들로서는 혹할 정도로 후한 인심 쓰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프로젝트에 당첨(?)이라도 될라치면, 장장 10년 동안 HK교수는 월 4백, HK연구교수는 월 3백을 보장하고, 정부의 지원이 종료된 이후에는 심사를 거쳐 HK.. 2015. 6. 2.
종교학-신학-교학 어떻게 만날까? 이길용의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22) 종교학-신학-교학 어떻게 만날까? 철지난 과제? “종교학-신학-교학 어떻게 만날까?”는 사실 낡은 물음이요 철지난 과제이기도 하다. 1870년 영국 왕립연구소에서 막스 뮐러(Friedrich Max Müller, 1823~1900)가 새로운 정신과학으로서 종교학(science of religion)을 선언할 때 이미 저 물음은 뜨거운 이슈였고, 그때가 이미 백 년도 더 된 옛날이다. 뮐러의 선언적 작업 이후 많은 초기 종교학자들이 독립학문으로서 종교학의 자립을 위해 모학문이랄 수 있는 신학, 교학과의 자리매김과 역할 분담을 위해 가열하게 경쟁해 온 것 또한 사실이다. 그 결과 지금 종교학은 종교를 연구하는 경험학문으로 나름대로 학문적 입장을 정리했고, 신학이나 교학에.. 2015. 5. 28.
생활 속 경전 읽기 이길용의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21) 생활 속 경전 읽기 경전(經典, canon) 어쩌면 우리는 이 이름을 무겁게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치 위엄 있는 책장에 속한 서물(書物)들 중에서도 가장 버겁고, 혹은 가장 훌륭한 치장 속에 출중한 권위를 만끽하고 있는 금박의 책들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잠시 고개를 들어 과연 ‘경전이란 무엇인가?’에 생각을 집중해보면 잠시 아찔한 현기증이 일어나는 것도 쉽게 부인하지는 못한다. 지금껏 지구라는 이름의 땅덩어리에 수없이 많은 전통과 문화, 그리고 종교들이 생멸 해왔고, 또 그만큼 많은 양의 경전들이 우리에게 전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경전 자체에 대해 던지는 진지한 질문에는 너무 인색하지는 않았는가. 바로 이러한 경전 자체에 던지는 우리의.. 2015. 5. 21.
종교와 근본주의 이길용의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20) 종교와 근본주의 사람들은 왜 종교를 택할까? 다들 행복하자고 하는 일일 텐데, 때로는 종교 때문에 더 심각한 갈등과 분열이 생겨나기도 한다. 다들 생각이 있고 뜻도 있어 ‘무언가’를 주장하는 것일 텐데, 그런 주장 행위 때문에 적잖은 아픔과 균열, 그리고 분쟁이 생겨난다. 때론 그것이 구호나 추상적 이념 논쟁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행동으로 나아가 실질적 피해가 생겨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또 근본주의가 문제라는 서늘한 비판이 회중의 입에 오르내린다. 왜 그럴까? 행복하자고 택한 종교인데. 왜 그 때문에 괴롭고 힘든 상황이 펼쳐지는 것일까? 도대체 종교가 무엇이기에! 이처럼 종교는 커다란 벽이 되어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다. 우리들 인간에게 종교는 어떤 것이.. 2015. 5. 11.
왕조 사회의 어르신 이데올로기 이길용의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19) 왕조 사회의 어르신 이데올로기 세월호의 아픔이 한창이던 2014년 여름에 로마 가톨릭의 수장 프란치스코 교종이 한국을 방문했다. 당시 프란치스코 교종은 오랜만에 바티칸의 수장이 된 진보계열의 사제였다. 사전에 예고했던 것만큼 한국에서 그가 보여준 행보는 파격적이고, 신선했고, 또한 감동적이었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노란 리본을 달고 등장한 것부터, 이동을 위해 소형차를 선택했고,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을 위해 거리낌 없이 손을 내밀었고, 아이들에게 입맞춤하는 것마저 자연스럽던 그의 행보는 사회를 뒤흔든 참사에 속앓이를 하고 있던 이들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그래서 열광으로 그에게 응답했다. 많은 사람들이, 국내 대부분의 미디어들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 2015. 5. 6.
‘갑질’은 ‘왕질’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이길용의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18) ‘갑질’은 ‘왕질’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나는 지속적으로 우리 사회의 에토스가 여전히 왕조적이라고 지적해 왔다. 그리고 그런 이유 중 하나로 공화정의 도입이 시민들의 주체적이고 자발적 행위와 자각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외부에 의해 순식간에 이식되었음을 지적하였다. 서구 사회가 프랑스 혁명(1789~1794)이라는 시민의 힘으로 왕정을 종식시킨 역사적 경험을 소유한 것에 반해, 우리는 세계 대전이 끝난 후 강대국이 주도한 세계 체제 재편 과정의 하나로 타력에 의해 공화제가 시작되었을 뿐이다. 그러니 여전히 우리 사회 대부분의 마인드와 에토스는 임금을 모시던 때의 역사적 경험과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대의 등장이 어느 누구도 간섭하거나 훼방할 수.. 2015. 4. 27.
통증사회, 트라우마 공화국 이길용의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17) 통증사회, 트라우마 공화국 다시 우리 사회를 생각해본다. 지난 글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분노의 메커니즘과 그것이 가지는 사회적 영향력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헌데 생각을 달리해보니 우리 사회를 분노사회라 칭하는 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해 보인다. 분노의 요인이 무엇일까? 정지우가 지적했듯이 특정한 가치 기준이 깨어질 때 생겨나는 것일까? 내가 생각했던 기준들이 타인에 의해 허물어질 때 튕겨져 나오는 것이 우리 사회 분노의 이유일까? 물음이 꼬리를 물 때, 난 우리의 근현대사를 생각해 보았다. 일제 강점기(1910~1945), 105인 사건(1911), 3.1만세 운동(7천여 명 사망, 1919), 제주 4.3사태(14,000여명 사망, 1948), 한국전쟁(최소 150만 .. 2015. 4.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