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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490

제 기도의 응답도 [사랑]입니다 신동숙의 글밭(277) 제 기도의 응답도 [사랑]입니다 "엄마, 울어요?""아빠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마술 카드 사주기로 했어요. 그런데 엄마, 왜 울어요?" 늦은 밤에 책상에서 울다가 아들한테 들키고 말았습니다. 친정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례식장에서도 눈물보다는 지인 목사님을 모셔서 천국 천도의 예배를 드리고 챙기느라 제겐 눈물을 흘릴 경황이 없었습니다. "아빠, 예수님 손 잡고 가세요."를 삼일장 내내 호흡처럼 주문처럼 기도처럼 속으로 되뇌었습니다. 곁에서 어쩔줄 몰라하시던 친정 엄마께도 그 한 문장만 가르쳐드렸습니다. 그냥 지금까지도 혼자 있을 때면, 운전을 하다가도 아버지가 생각 나서 울컥할 뿐입니다. 가족들 앞에서 좀체 보인 적이 없던 엄마의 눈물은 아들의 눈에는 놀라움이었을 겁니다. 자정이 다 .. 2020. 11. 16.
달빛 가로등 신동숙의 글밭(276) 달빛 가로등 집으로 가는 밤길길 잃지 마라 가로등은고마운 등불 달빛에 두 눈을 씻은 후 달빛 닮은가로등 보면은 처음 만든 그 마음 참 착하다 달과 별을 지으신 첫 마음을 닮은 2020. 11. 15.
"엄마, 오다가 주웠어!" 신동숙의 글밭(275) "엄마, 오다가 주웠어!" 아들이 "엄마, 오다가 주웠어." 하며왕 은행잎 한 장을 내밉니다. "와! 크다." 했더니"또 있어, 여기 많아." 하면서 꺼내고꺼내고또 꺼내고 작은잎찍힌잎푸른잎덜든잎예쁜잎못난잎찢어진 잎 발에 밟혀 찢어진 잎 누가 줍나 했더니 아들이 황금 융단길 밟으며 엄마한테 오는 길에 공평한 손으로 주워건네준 가을잎들 비로소 온전한 가을입니다. 2020. 11. 14.
찢어진 커튼 바느질 신동숙의 글밭(274) 찢어진 커튼 바느질 거실창 커튼이 찢어지기 시작한 것은 우리집에 탄이가 오면서부터입니다. 탄이는 털이 새까맣고 작고 귀여운 강아지 포메라니안입니다. 이제는 몸집이 다 자랐는데도 원체 작다 보니 탄이는 계속 강아지로만 보입니다. 새로 산 핸드폰 충전기 줄을 세 개나 물어서 끊어 놓고, 유선 케이블 연결선을 세 차례나 끊어 놓아 통신사 기사님을 성가시게 한 적도 많고, 아무리 미운 짓을 거듭해도, 탄이의 까만 눈망울을 보고 있으면, 미운 마음이 스르르 녹아서 사라지게 되는, 탄이의 얼굴은 이미 현묘지도(玄妙之道)를 지닌 듯도 합니다. 제 어릴 적 기억에, 겨울이 다가오는 이 무렵이면 부모님에겐 월동 준비로 연탄 100장을 장만하시는 일이 큰 숙제였습니다. 키다리 연탄집 아저씨가 연탄을.. 2020. 11. 13.
가을은 레몬 홍차 신동숙의 글밭(273) 가을은 레몬 홍차 차 한 잔이 주는 여유와 여백을 좋아합니다. 가을빛이 짙어갈 수록 도로변에 서 있는 가로수들도 저처럼 여유와 여백을 좋아하는지, 여름내 푸른 잎들로 무성하던 나무들이 이제는 자신의 둘레를 비우고 덜어낸 자리마다 하늘의 여유와 여백으로 채워가고 있는 11월의 가을입니다. 사람에게도 자신이 살아가는 물질적인 삶의 둘레를 비운 만큼 마음의 하늘이 차지하는 공간은 넓어지리라 여겨집니다. 해 뜨기 전부터 시작하여 해가 져도 그칠 줄 모르는 분주한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잠시 멈춤이란 얼음땡 놀이에서 구하는 멈춤의 순간 만큼이나 몸과 마음과 숨을 부자유하게 만드는지도 모릅니다. 숨을 쉬고 움직이며 살아가는 생명들에겐 왠지 부자유스러운 멈춤을 물 흐르듯이 자유로이 흐를 수 .. 2020. 11. 12.
빈방은 설레임으로 다가옵니다 신동숙의 글밭(272) 빈방은 설레임으로 다가옵니다 빈방은 설레임으로 다가옵니다. 빈방은 맑은 가을 하늘을 바라볼 때의 푸른 설레임입니다. 눈에 보이는 모습은 텅 비었지만, 바라보는 마음은 비우면 비울 수록 충만해져 오는 이치입니다. 빈방은 우리의 본래면목(本來面目) 즉 순수한 본성을 닮았습니다. 우리의 순수한 본성은 또한 맑은 가을 하늘을 닮아 있는 크고 밝은 하늘의 무진장입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빈방을 본 것은 언양 석남사 한 비구님 스님의 방이었습니다. 요즘처럼 단풍이 아름다운 어느 가을날 스물 한 살의 나이에 친구가 구했다는 흑백 필름 사진기로 추억 여행 사진을 담으려 둘이서 버스를 타고서 친구의 이모 스님이 출가한 곳이라는 언양 석남사를 처음으로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학창시절 함께 한 행복한.. 2020. 11. 10.
침묵의 등불 신동숙의 글밭(271) 침묵의 등불 초 한 개로 빈 방을 채울 수는 없지만 초의 심지에 불을 놓으면 어둡던 빈 방이 금새 빛으로 가득찹니다 백 마디 말씀으로 하늘을 채울 수는 없지만 마음의 심지에성호를 그으며 내 안에 하늘이 금새 침묵으로 가득찹니다 촛불처럼나를 태워 침묵의 등불을 밝히는고독의 사랑방에서 2020. 11. 8.
평화의 밥상 신동숙의 글밭(270) 평화의 밥상 따끈한 무청 시래기 된장국 한 그릇, 김밥 반 줄, 유부 초밥 세 개, 깍두기 일곱쪽, 수도승들이 산책길에 주운 알밤 한 줌, 제주도 노란 귤 하나로 따뜻하고 맛있는 풍요로운 이 가을날 점심밥상의 축복을 받습니다. 아침부터 분주히 많은 양의 식사 준비를 하시던 누군가의 마음이 손길이, 먹는 이의 입으로 가슴으로 전해지는 거룩한 식사 시간은 그대로 고요한 감사의 기도 시간이 됩니다. 단풍이 아름다운 앞마당엔 기도하는 성모 마리아상이 보이고, 밥을 먹는 제 곁엔 사찰의 공양게송이 가까운, 이곳에선 하느님과 부처님이 사이좋은 이웃입니다. 하나의 평등한 하늘을 머리에 이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이미 깊은 땅속에서 하나에 뿌리를 둔 하나라는 사실을 문득 해처럼 떠올리다 보면 어.. 2020. 11. 6.
조율하는 날 신동숙의 글밭(269) 조율하는 날 밥은 먹었니?가슴 따뜻해지는 말 차 한 잔 하자가슴 설레이는 말 어느 날 문득그러한 초대에 따뜻해지지도 설레이지도 않는 날 내 마음의 결을 고요히 조율하는 날 2020. 11.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