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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양의 웃음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29) 산양의 웃음 양구를 떠나 화천까지 가는 날이다. 길을 걷기 시작한지 엿새째, 절반쯤을 지나고 있는 셈이었지만 아직은 긴장의 끈을 풀어서는 안 된다고 자신에게 이른다. 숙소 1층에 있는 식당에서 이른 아침을 먹고는 곧바로 길을 나섰다. 로드맵에 ‘전 여정 중 가장 난코스’라 적혀 있는 날이었다. 38.3km, 걸어야 할 거리 또한 가장 긴 날이었다. 동네 앞을 흐르는 큰 개울을 따라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멋진 수묵화를 누군가가 맘껏 그리고 있었다. 저 한없이 부드럽고 막힘없는 붓질이라니! 문득 단강에서 물안개를 보며 썼던 ‘두 개의 강’이 생각났다. ‘좋은날 풍경’ 박보영 씨가 곡을 붙인 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바다까지 가는 먼 길 .. 2017. 9. 7.
인민군 발싸개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28) 인민군 발싸개 돌산령터널 안에서 만나 하루를 꼬박 동행했던 정 장로님 내외분과의 일정은 방산에 도착하면서 마쳤다. 폭염 속 땡볕 아래를 종일 같이 걸었던 시간과 나눴던 이야기들은 두고두고 아름답고 소중한 기억으로 남으리라. 방산에 도착을 했을 때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다. 독일을 처음 찾았을 때였다. 슈투트가르트에서 집회를 마치고 그곳 목사님의 안내로 독일 안에 있는 종교개혁과 관련된 곳을 돌아보던 중 벨기에를 찾았다. 독일 국경에서 가까운 곳에 유명한 성지가 있다고 했다. 독일에서 벨기에로 들어가는 길, 국경을 넘는 일이니 당연히 겹겹의 철조망과 총을 든 군인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방금 국경을 지나왔어요.” 목사님이 그렇게 말하지.. 2017. 9. 4.
팔랑리 풍미식당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27) 팔랑리 풍미식당 너덜너덜해질 만큼 로드맵을 손에 들고 다닌 것은 그것이 내가 지닌 유일한 나침반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열하루 동안 걸을 길을 지도도 없이, 다른 기기의 도움도 없이 단지 지명이 적혀 있는 인쇄물만을 들고 다니는 나를 걱정 반 딱함 반으로 바라보던 김정권 형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로드맵을 따라 양구 동면에 있는 팔랑리를 지나게 되었다. ‘팔랑리’라는 지명은 낯설다. 무슨 내력이 있을 것 같아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 자료를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다. 그만한 사연이 있는 동네 팔랑리에는 예로부터 전해져 오는 민요도 있다. 산이 높고 골이 깊은 팔랑리는 곰취로 유명한 곳인데, 그래서 그럴까 나물 뜯는 노래인 이 .. 2017. 8. 30.
왜, 지혜의 낙관적 기대를 무너뜨리는가? 김순영의 구약지혜서 산책(7) 왜, 지혜의 낙관적 기대를 무너뜨리는가? 지혜는 유산처럼 아름답다전도서의 저자 코헬렛(전도자)은 지혜의 가치와 유용성을 말하고 가르치는 지혜 선생이다(전도서 12:9-10). 그에게 지혜는 유산처럼 아름답고, 돈의 그늘 아래 있는 것처럼 유익하다. 지혜를 소유한 자는 생명까지 보호받는다(7:11-12). 지혜는 유산 같이 아름답고햇빛을 보는 자에게 유익 되도다지혜의 그늘 아래 있음은 돈의 그늘 아래에 있음과 같으나지혜에 관한 지식이 더 유익함은 지혜가 그 지혜 있는 자를 살리기 때문이라(7:11-12, 개역개정) 코헬렛이 지혜의 가치를 돈과 비교하니 이 보다 더 적나라할 수 있을까 싶다. 이 말은 잠언의 지혜처럼, 지혜의 오른 손에는 장수가 있고 왼손에는 부와 명예가 있다(.. 2017. 8. 30.
‘화’와 ‘소’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26) ‘화’와 ‘소’ 끝을 안다는 것은 위로가 된다. 얼마만큼을 견디면 주어진 시간이 끝날 지를 짐작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정말로 힘든 것은 끝을 모르는 것이다. 주어진 상황보다는 때를 짐작할 수가 없다는 것, 우리를 지치게 하고 두렵게 하는 것은 오히려 그런 것들이다. 2995m가 아무리 길어도 끝이 있는 거지, 돌산령터널 앞에서도 그렇게 생각을 했지만 터널은 만만치 않았다. 길어도 정말 길었다. 심호흡을 길게 한다 생각하면 빠져나가겠지 싶었는데, 아니었다. 가도 가도 제자리다 싶었다. 중간에 만들어놓은 차량 대피소를 몇 차례나 지나야 했다. 터널 끝 출구로 보이는 하얀 점은 커지지도 않았고 가까이 다가오지도 않아, 내가 걸어가는 만큼 뒤로 물러서는 것 아닌가 .. 2017. 8. 28.
해안(亥安)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25) 해안(亥安) ‘해안’이라는 지명은 낯설었다. 오히려 ‘펀치볼’이 더 익숙하다. 우리나라 땅인데도 영어로 된 이름이 더 친숙한 아이러니라니! ‘펀치볼’은 6.25전쟁 당시 미군 정찰병들이 해안의 특이한 지형을 보고는 과일 화채를 담는데 쓰이는 ‘Punch Bowl’과 그 모양이 흡사하다고 해서 별명처럼 붙여준 이름이라 한다. 해안을 떠나며 언덕에 서서 바라보니 그곳이 왜 펀치볼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는지를 한눈에 이해하게 되었다. 사방 산으로 둘러싸인 채 그 안에 펼쳐진 드넓은 땅, 펀치볼은 그야말로 하늘을 향해 놓인 빈 그릇 같았다. ‘해안’이라는 이름의 뜻도 뜻밖이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바다와 육지가 맞닿은 곳을 가리키는 ‘海岸’이 아니었다. 실제로.. 2017. 8. 24.
함께 짐을 진다는 것은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24) 함께 짐을 진다는 것은 “펀치볼은 그 옛날 운석이 떨어져 생겼다는 설과 차별침식분지라는 설이 양분합니다. 전 노아의 홍수 지구 재편 때 만들어진 하나님 작품이라고 주장합니다. 해질 무렵이면 그분이 빚은 작품을 만난다는 기대도 격려가 될 겁니다.” 함광복 장로님이 그렇게 표현했던 펀치볼에서 하루를 묵고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처음부터 긴 팔 옷을 입고 나선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조금만 가면 돌산령터널이 나오는데 돌산령터널 안은 한 여름에도 추우니 꼭 긴팔 옷을 챙겨 입으라고, 전날 보건지소에서 만난 마을분이 일러준 말을 너무 고지식하게 따른 결과였다. 바람막이 긴팔 옷은 이내 땀에 젖고 말았는데 그러면서도 터널이 금방 나타나겠지 싶어 옷을 벗지 않은 .. 2017. 8. 22.
전도서에서 말하는 노동은? 김순영의 구약 지혜서 산책(6) 전도서에서 말하는 노동은? 종교인의 세금납부 의무를 2년 유예시키자는 법안이 발의되었다. 이 법안 발의를 주도한 국회의원들이 모두 기독교인으로 알려졌다. 종교인의 세금납부 정당성과 찬반문제를 논하기 전에 교회 공동체에서 전문성을 갖추고 수고하는 이른바 ‘목회’ 혹은 ‘교회사역’이 노동의 영역인가를 정의하는 제도권 교회의 내부적인 합의가 우선되어야겠다. ‘목회’가 ‘노동’으로 간주되면 그 대가로 발생한 소득 때문에 목회자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세금납부의 의무를 이행해야한다. 일반적으로 노동은 생계를 꾸리기 위해 몸을 움직여 일하여 필요한 물자를 얻는 육체적 혹은 정신적인 노력과 수고를 총칭하는 말이다. 그러면 목회자의 목회활동은 노동의 영역인가? 기독교의 삶의 표준인 정경.. 2017. 8. 19.
이 땅 기우소서!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23) 이 땅 기우소서! 산은 말없이 길을 품고길은 말없이산을 넘느니좋은 벗 좋은 길좋은 벗 좋은 길 -‘동행’ 매해 여름이 되면 부산 에서 주최하는 독서캠프가 열린다. 책 좋아하고, 이야기 좋아하고, 노래 좋아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격의 없는 만남을 좋아하는 이들이 모여 2박3일 시간을 함께 보낸다.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사소한 것에 감탄하고, 별 것 아닌 것에 웃음과 눈물이 터지는, 따뜻하고 진지하고 맑은 모임이다. 오래 전부터 이야기 손님으로 참여를 하고 있는데, 몇 해 전 모임을 가질 때였다. 모임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을까, 모임을 마치는 날 ‘동행’이라는 짧은 글 하나를 썼고 노래꾼으로 참여한 박보영 씨가 곡을 붙였다. 즉석에서 만들어진 노래였지.. 2017. 8.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