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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의 ‘하늘, 땅, 사람 이야기/톺아보기35

에덴의 동쪽에서 살아가기 김기석의 톺아보기(27) 에덴의 동쪽에서 살아가기 -한나의 아이 북토크 • 던져짐과 던짐 사이 에덴의 동쪽에서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보편적 운명은 불안이다. 동생을 죽인 가인은 주님 앞을 떠나서 '놋' 땅에서 살았다. '놋'은 '떠돌아 다님'을 뜻하는 말이다. 정주하지 못하고 떠돈다는 것, 흐름 위에 보금자리를 치고 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홀가분하지만 동시에 불안정한 삶이다. 찰라의 불꽃처럼 번뜩이는 기쁨은 있을지언정 지속적인 평강은 언감생심이다. '안식 없음', '고향 상실'이야말로 인간의 운명이다. 삶은 익숙한 곳에서도 늘 낯설기만 하다. 어느 누구도 삶에 대한 영원한 해답을 갖고 있지 않다. 인간은 순간순간 삶의 의미를 묻는다. 그러나 동시에 시간이 혹은 우리의 외부 세계가 던지는 질문에 대답해야 .. 2016. 8. 31.
하늘 북소리 김기석의 톺아보기(26) 하늘 북소리 어른들은 참 아무 것도 모른다. 숫자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가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한 비행사와 만났을 때 자기가 살던 별을 B 612호라고 홋수까지 가르쳐 준 것은 그 때문이다. 어른들에게 새로 사귄 친구 이야기를 하면, 그들은 정작 제일 중요한 것은 묻지 않는다. "나이가 몇이냐? 형제가 몇이냐? 몸무게가 얼마냐? 그 애 아버지가 얼마나 버느냐?" 그들의 질문은 고작 이런 것이다. 그러니 "창틀에는 제라니움이 피어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들이 놀고 있는 고운 붉은 벽돌집을 보았다"고 했을 때 어른들이 그 집 모양을 상상하지 못한다고 해서 어른들을 비웃으면 안 된다. 오히려 지혜로운 어린이/젊은이라면 몇 억 원 짜리 집을 보았다고 말해야 하는 것이다. 어느 착한.. 2016. 7. 14.
진짜 어른을 보고 싶다 김기석의 톺아보기(26) 진짜 어른을 보고 싶다 중3 무렵 아들 아이는 내 곁을 지나갈 때면 언제나 허리를 곧게 펴고 고개를 쑥 빼곤 했다. 아버지와 보이지 않는 키 경쟁을 벌였던 것이다. ‘어쭈, 이 녀석 봐라’ 하면서 실소를 머금기도 했지만 한편 아이의 성장이 대견하기도 했다. 아이는 이제 곧 아버지 키를 뛰어넘게 된다는 설렘으로 나름의 통과의례를 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녀석은 키 재기를 그만 두었다. 아버지가 자기보다 작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확인한 후였다. 그때부터 녀석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기 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숙명은 아버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이미지는 아들로 하여금 언제나 자신의 행동을 검열하게 하는 ‘내면화된 타.. 2016. 7. 14.
세월호 유가족 못지않게 외로우신 하나님 세월호 유가족 못지않게 외로우신 하나님 • 라헬의 울음 주님의 은총과 위로가 이 자리에 함께 한 모든 분들에게 임하시기를 빕니다. 벌써 2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4월은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지만 우리는 봄을 봄답게 맞이할 수 없습니다. 피어나는 꽃들과 함께 누군가의 신음소리 또한 피어오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옛날 예레미야 선지자는 패망한 조국의 현실을 보며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라마에서 슬픈 소리가 들린다. 비통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라헬이 자식을 잃고 울고 있다. 자식들이 없어졌으니, 위로를 받기조차 거절하는구나”(예레미야 31:15). 이 땅의 라헬들도 위로받기를 거절하며 지금 울고 있습니다. 295명의 희생자들, 그리고 아홉 분의 미수습자들의 가족들은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은 비통의.. 2016. 4. 14.
우리는 지지 않는다 김기석의 톺아보기(25) 우리는 지지 않는다 차이를 내포한 반복 손석춘 선생님, 하염없이 내리는 장맛비를 바라보면서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오규원 선생의 시구가 떠올랐습니다. “비가 온다, 비가 와도/강은 젖지 않는다. 오늘도/나를 젖게 해놓고, 내 안에서/그대 안으로 젖지 않고 옮겨가는/시간은 우리가 떠난 뒤에는/비 사이로 혼자 들판을 가리라”( 부분) 혼자 비감해져서 “비가 온다, 비가 와도/젖은 者는 다시 젖지 않는다.”는 마지막 연만 되뇌고 있습니다. 뭔가를 적어야 한다는 생각에 컴퓨터를 켜놓고 앉아 있지만 모든 언어가 물살에 떠내려갔는지 아니면 물기를 머금어 무거워진 것인지 도무지 떠오르질 않습니다. 뜬금없이 ‘슬픔’이라는 단어만 또렷하게 떠오릅니다. 나이가 들면 젊은 날 나를 온통 .. 2016. 3. 16.
교회는 자동세탁기가 아니다 김기석의 톺아보기(23) 교회는 자동세탁기가 아니다 손석춘 선생님, 뵌 지 오래되었습니다. 경칩에서 춘분을 향해가는 이즈음 봄기운을 잘 타고 계신지요? 며칠 전 저는 겨우내 입었던 내복을 벗었는데, 그 때문인지 몸에 한기가 들어 잔뜩 옹송그린 채 책상 앞에 앉아 있습니다. 부실하기 이를 데 없는 저의 몸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그래도 매일 물이 오르고 있는 산수유나무와 개나리와 눈맞춤하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어 흘낏흘낏 창밖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잠포록한 날씨 탓인지 제가 늘 눈길을 주고 말을 건네는 삼각산이 지금은 보이지 않습니다. 높은 빌딩과 거대한 크레인만이 제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있음’과 ‘없음’의 경계가 무엇인가가 새삼 떠올랐습니다. 요 며칠 만나는 사람마다 일본 동북부에서 일어난 지진과 해.. 2016. 3. 1.
나란히 걷는 법을 배울 때 김기석의 톺아보기(22) 나란히 걷는 법을 배울 때 “길은 처음부터 있는 것이 아니다. 자꾸 가다보면 생기는 것이다.” 루쉰의 이 말과 처음 만난 것은 80년대 초반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말을 실감하고 있다. 20여 년 전 임수경과 문익환 목사는 갈 수 없는 땅, 가서는 안 되는 땅, 길이 끊긴 땅에 들어갔다. 그들에게는 반역자라는 붉은색 찌지가 붙었다. 하지만 그들이 걸었던 그 자리에 난 발자국을 따라 사람들이 오가기 시작했고, 마침내 길이 열렸다. 그 길은 시작은 꿈이었다. 이사야는 주전 8세기,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충돌하고 있던 그 암울한 시대에 이집트에서 앗시리아로 통하는 큰길을 보고, 이스라엘과 이집트와 앗시리아, 그 세 나라가 이 세상 모든 나라에 복을 주게 될 것을 꿈꾸었다... 2016. 2. 22.
순례자로 산다는 것 김기석의 톺아보기(22) 순례자로 산다는 것 ‘즐거운 망각’의 탐닉 에덴 이후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은 누구나 시간에도 이빨이 있음을 자각한다. 시간은 우리 몸과 영혼에 지우기 어려운 흔적을 남긴다. 시간이 우리에게 새겨놓은 무늬를 사람들은 문화라고도 부른다. 사람의 모듬살이는 문화를 형성하지만, 그 문화는 동시에 우리의 존재조건이 되기도 한다. 외부 세계와 낯을 익히는 과정, 그것이 삶이다. 나의 ‘있음’은 늘 ‘~이다’라는 술어로만 표현된다. 나의 있음은 늘 ‘더불어 있음’이다. 누군가와 맺는 관계 속에서만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유추한다. 사람은 신 앞에 선 단독자이지만, 그래서 늘 우주의 중심이지만, 그의 있음을 규정하고 있는 것은 다른 이들의 존재이다. ‘관계맺음’이야말로 인생이다. 문제는 이 관.. 2016. 2. 10.
행동하라는 요구 김기석의 톺아보기(18) 행동하라는 요구 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주장의 기본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권위 때문에 맹목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데 있지 아니하고, 그 변혁하고 자유하게 하는 힘을 인식하는 데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구체적인 경험 속에서 인식되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그 말씀은 참으로 듣는 사람에게 무엇인가 작용하기 때문이다.(토마스 머튼) 속이 허할수록 말은 부박해진다 속에서 들끓어 오르는 사념이 덧없게 느껴지고, 말의 부질없음이 아리게 다가올 때마다 나는 고진하 시인의 시 을 읽는다. 마치 해독제를 들이키듯…. 하루종일 입을 封하기로 한 날, 마당귀에 엎어져 있는 빈 항아리들을 보았다. 쌀을 넣었던 항아리, 겨를 담았던 항아리, 된장을 익히던 항아리, 술을 빚었던 항아리들, .. 2016. 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