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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자리> 출간 책 서평75

아,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두려움 없이, 두리번거림 없이/-눈부시지 않아도 좋은, 하루 한 생각을 읽고 ____________________ 난 어릴 때부터 철이 삼촌이 좋았다. 따뜻하고 재미있고 나를 예뻐하는 삼촌이 있다는 건 참 멋진 일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들과 북적이며 살았던 덕분에 타닥이며 돌아가는 전축판에서 해바라기, 조동진의 노래를 들으며 자랄 수 있었던 것도, 돌이켜 보면 감사한 일이다. 어느 날 삼촌의 손을 잡고 나타난 여인을 봤을 때의 충격, 그 이후 삼촌에게 하나 둘 아이가 태어나면서 점점 멀어져간 조카 사랑, 이 모든 걸 웃음으로 떠올리는 지금의 나는, 그때의 삼촌보다 훌쩍 더 많은 나이, 네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글을 읽는 것, 글을 쓰는 것, 그게 삶이 되면 좋겠다는 꿈을 꾼 적이 있었다. 그.. 2022. 2. 26.
인간의 삶이 빚어낸 다채로운 무늬 거의 평생을 목회자로 살아오는 동안 길이 막힐 때마다 시편을 붙들고 살았다는 저자는 시편의 구절들이 거친 바다를 비추는 등대 구실을 해줄 때가 많았다고 고백한다. 시편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일상의 무게에 짓눌려 보지 못했던 삶의 다른 층위를 바라보는 일이다. 인간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과 욕망 사이에서 바장인다. 희망과 절망, 기쁨과 슬픔, 확신과 회의, 빛과 어둠, 아름다움과 추함, 정의와 불의, 사랑과 미움이 시도 때도 없이 갈마들며 삶의 무늬를 만든다. 이 책은 그런 인간의 삶이 빚어낸 다채로운 무늬로 가득 차 있는 시편의 세계를 보여준다. 기쁨의 찬가가 있는가 하면 깊은 탄식이 있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대한 감사가 넘치는가 하면 아무리 불러도 응답하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도 있다. 가없.. 2022. 1. 22.
한없이 부끄러움을 배우게 하면서도 한없이 기쁘게 만드는 책 요즘은 어느 하루도 황폐하도록 기진하지 않는 날이 없다.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추악한 요괴들이 도처에 출몰해서 우리의 일상을 무너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다간 온 몸에 독(毒)이 퍼지겠다 싶을 정도다. 어쩌겠는가. 그러나 이렇게라도 싸우지 않으면 “악의 퇴치”는 없다. 그러나 이런 중에도 우리의 영혼을 스스로 돌보지 않으면 병이 깊어질지도 모른다. 이런 때에 좋은 말씀 한 구절 가슴에 스미면 그게 그날의 구원이다. 우린 어느새 사원(寺院)을 잃은 시대를 살고 있으니 말이다. 일년 열두달, 계절까지 포개어 하루하루의 짧은 일기처럼 쓰여진 한희철의 은 잠언이자 시편이며 말씀이다. 그건 세월로 빚어낸 영혼의 노작(勞作)이며 우리 모두를 위해 길어올린 기도의 생수(生水)다.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詩’란 .. 2022. 1. 22.
「하루 한 생각」, 낯설지 않은 ‘마음’이 밀려온다 저자는 서문에서 「하루 한 생각」이 ‘누군가 지친 이에게 닿는 바람 한 줄기, 마음 시린 이에게 다가 선 한 줌의 볕’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표현이 적합할지 모르겠지만, 글이 참 맛있어 쉬이 책장을 넘기기 아쉬워 자연히 저자의 바람이 내게서 이루어진 독서의 시간이었다. 꽤나 지쳤던 내게 닿았던 ‘바람 한 줄기’가 바로 여기에 담겨 있고, 꽤나 마음 시린 일상을 이어가던 내게 다가 선 ‘한 줌의 볕’같은 맛있었던 시간, 책을 덮는 순간 그 시간을 떠나보내는 것 같은 아쉬움이 느껴진다. 어떤 책에선가, ‘삶은 관계’라는 것을 본 일이 있다. 꽤 공감했던 이유는 그간 내가 가진 고민과 고통은 ‘인간관계’이자, ‘소통’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 때문이었는지, 열한 번째 챕터, ‘길’이라는 제목의.. 2022. 1. 9.
어딘가엔 또 불고 있으리니 오래 전, 관옥 이현주 목사님이 보내주신 연하장에는 ‘오늘 하루’라는 붓글씨가 쓰여 있었습니다. 그 글씨는 나를 침묵 속으로 데려가 잠시 시간을 멈추게 했습니다. ‘오늘’이라는 말과 ‘하루’라는 말이 무척 새롭게 그리고 퍽 무겁게 와 닿았습니다. 이후로 이런 하루, 저런 하루, 어떤 하루, 그때 하 루, 내일 하루… 그 하루마다 ‘오늘’이고 그 오늘마다 ‘하루’ 였습니다. 한희철 목사님은 이 책 제목을 ‘하루 한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걸음과 길’이란 글에 이렇게 썼습니다. “그럭저럭 별일 없이 지내는 하루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런 하루가 모여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길은 걸음과 걸음이 모여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나의 행동이 나의 유언이다.’ 규암 김약연 선생께서 말씀하신 .. 2021. 12. 31.
<그리워서, 괜히>를 읽으면서_ 두고 온 그리운 모든 것들 저녁 늦게 책 한 권이 배달되었다. 포장을 열어 보니, 에서 출판된, 최창남 작가의 유년 회고록 다. 책을 읽기 전에, 표지의 책 제목의 생김새가 범상(凡常)치 않아, 표지에 잠시 머문다. 표지 날개를 펼쳐보니, 임종수 화백의 캘리그라피다. 글이라기보다는 한 컷 그림이다 이 책은 저자 최창남 작가가 1950년대 중반부터 60년대 중반, 태어나서부터 초등학교 2학년 시절까지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살아온 시대가 저자와 부분적으로 겹치는 이들은 최창남의 유년 회고록이 작가 자신의 이야기만이 아닌, 독자 자신들의 이야기를 작가가 대신해서 말해 주는 것 같은 체험을 하게 된다. 이 책은 작가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이지만 독자에 따라서는 우리 세대의 우리의 자서전 격인 사회적 전기를 읽게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 2021. 12. 10.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는 오래 전 사라져간 유년의 시절을 노년이 되어가는 세월에 다시 손에 어루만져 읽는 이들에게 그리움, 슬픔 그리고 아련함과 자기성찰의 자리로 초대해줍니다. “내 기억 속의 유년 시절은 대체로 가난하고 힘겨웠지만 불행하지는 않았습니다. 불행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행복에 더 가까웠습니다.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고 가난해져 사탕을 사 먹지 못하게 된 일들에 대한 기억도 있지만 행복했던 기억들이 비교할 수 없이 많습니다.” 이렇게 말문을 여는 저자는“메뚜기, 잠자리, 방개, 거머리, 문둥이, 미군이 던져주던 사탕, 양색시 누나들, 친구들, 형과 누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셀렘민트껌, 바브민트껌, 텔레비전, 버드나무, 옥수수밭, 얼음공장, 경미극장, 장안벌 등과 루핑으로 지붕이 덮여 있던 교실, 개울에 떠내려.. 2021. 12. 7.
시골에서 흙내음으로 태어난 ‘칠칠한’ 옛말 ‘속담(俗談)’은 “예부터 민간에 내려오는 쉬운 격언이나 잠언”이라고 합니다. ‘민간(民間)’은 “여느 사람들 사이”를 가리키고, ‘격언(格言)’은 “겪은 이야기”를 가리키며, ‘잠언(箴言)’은 “가르치는 말”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그런데 곰곰이 살펴보면 옛날부터 여느 사람들 사이에 내려오던 말이란 ‘시골에서 살며 흙을 만지는 일을 하는 동안 내려오던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속담 = 시골말’인 셈이요, ‘시골 이야기’인 셈입니다. 시골에서 흙을 만진 말이요, 시골에서 흙을 만지며 겪은 이야기예요. “칠칠하지 못해서 야단을 맞았다면 칠칠하면 되었을 텐데, 왜 우리는 칠칠하지 못하다는 야단만 맞았을 뿐 칠칠함에 대해서는 생각을 못했던 것일까”(31쪽). “그가 돌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것 좀 보세요. .. 2021. 7. 1.
자족적 관조의 삶 존경하는 페친 최창남 목사님이 내신 책 (꽃자리)를 단숨에 읽었다. 술술 잘 읽힌다. 아포리즘처럼 읽히고 수필처럼 읽히고, 또 거친 역사의 시간을 헤쳐온 한 인간의 자성적 고백처럼도 읽힌다. 최 목사님은 군부독재, 졸속근대화 시기의 거친 세월을 노동운동, 빈민운동, 문화운동과 같은 운동권에서 살아오시면서 많은 고난과 상처를 온 몸으로 겪어내셨다. 그러다가 연세 70이 가까운 시점에 제주도 중산간 지역에 집을 만들어 그 가운데 유유자적하며 은자처럼 사신다. 많은 시간 주변의 자연물을 관조하고 지난 삶을 성찰하면서, 또 떠돌이 고양이들 친구 삼아 밥 주면서 세상만사에 초연한 듯, 자족적으로 안돈하며 사신다. 이 책의 글들은 어찌 보면 고대 스토아 사상가들이 추구한 '초연한 무관심'(adiaphora)의 자세.. 2021. 6.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