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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17

투명하게 지으신 몸 밥은 자식이 먹었는데 엄마 배가 부르다고 하셨지요 밥을 먹다가 뉴스에서 누군가가 높은데서 떨어지거나 다쳤다고 하면 내 정강이뼈가 저릿해지고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 떨며 아파하고 밤새 마음이 아파서 잠을 설치게 된다 그래서 평화의 숨으로 스스로를 다스려야 한다 나의 몸은 나를 스쳐 지나는 이 모든 걸 그대로 느끼며 투명하게 반응한다 저녁밥을 먹다가 이런 나를 지으신 이가 누구인지 그리고 안녕하신지 나는 문득 궁금해진다 2022. 1. 24.
인간의 삶이 빚어낸 다채로운 무늬 거의 평생을 목회자로 살아오는 동안 길이 막힐 때마다 시편을 붙들고 살았다는 저자는 시편의 구절들이 거친 바다를 비추는 등대 구실을 해줄 때가 많았다고 고백한다. 시편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일상의 무게에 짓눌려 보지 못했던 삶의 다른 층위를 바라보는 일이다. 인간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과 욕망 사이에서 바장인다. 희망과 절망, 기쁨과 슬픔, 확신과 회의, 빛과 어둠, 아름다움과 추함, 정의와 불의, 사랑과 미움이 시도 때도 없이 갈마들며 삶의 무늬를 만든다. 이 책은 그런 인간의 삶이 빚어낸 다채로운 무늬로 가득 차 있는 시편의 세계를 보여준다. 기쁨의 찬가가 있는가 하면 깊은 탄식이 있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대한 감사가 넘치는가 하면 아무리 불러도 응답하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도 있다. 가없.. 2022. 1. 22.
한없이 부끄러움을 배우게 하면서도 한없이 기쁘게 만드는 책 요즘은 어느 하루도 황폐하도록 기진하지 않는 날이 없다.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추악한 요괴들이 도처에 출몰해서 우리의 일상을 무너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다간 온 몸에 독(毒)이 퍼지겠다 싶을 정도다. 어쩌겠는가. 그러나 이렇게라도 싸우지 않으면 “악의 퇴치”는 없다. 그러나 이런 중에도 우리의 영혼을 스스로 돌보지 않으면 병이 깊어질지도 모른다. 이런 때에 좋은 말씀 한 구절 가슴에 스미면 그게 그날의 구원이다. 우린 어느새 사원(寺院)을 잃은 시대를 살고 있으니 말이다. 일년 열두달, 계절까지 포개어 하루하루의 짧은 일기처럼 쓰여진 한희철의 은 잠언이자 시편이며 말씀이다. 그건 세월로 빚어낸 영혼의 노작(勞作)이며 우리 모두를 위해 길어올린 기도의 생수(生水)다.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詩’란 .. 2022. 1. 22.
미장이 싸늘한 벽돌과 껑껑 언 모래와 먼지 같은 시멘트 이 셋을 접붙이는 일 이 셋으로 집을 짓는 일 하늘에서 눈이 내리는 날 이 차가운 셋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사람 제 살처럼 붙으리라는 강물 같은 믿음으로 나무 토막 줏어 모아 쬐는 손끝을 녹이는 모닥불의 온기와 아침 공복을 채워주는 컵라면과 믹스 커피 새벽답 한 김 끓여온 생강차 한 모금 2022. 1. 22.
바람 빈 가지가 흔들린다 아, 바람이 있다 나에게 두 눈이 있어 흔들리는 것들이 보인다 보이지 않지만 있다가 없는 듯 한낮의 햇살이 슬어주는 잠결에 마른 가지 끝 곤히 하늘을 지우는 보이지 않지만 없다가 있는 듯 앙상한 내 가슴을 흔드는 이것은 누구의 바람일까? 2022. 1. 13.
마른잎 스치는 겨울 바람에 몸도 마음도 움츠러들지만 내려 주시는 한 줄기 햇살에 몸도 마음도 가벼워만 집니다 - 겨울나무 (53) 2022. 1. 10.
「하루 한 생각」, 낯설지 않은 ‘마음’이 밀려온다 저자는 서문에서 「하루 한 생각」이 ‘누군가 지친 이에게 닿는 바람 한 줄기, 마음 시린 이에게 다가 선 한 줌의 볕’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표현이 적합할지 모르겠지만, 글이 참 맛있어 쉬이 책장을 넘기기 아쉬워 자연히 저자의 바람이 내게서 이루어진 독서의 시간이었다. 꽤나 지쳤던 내게 닿았던 ‘바람 한 줄기’가 바로 여기에 담겨 있고, 꽤나 마음 시린 일상을 이어가던 내게 다가 선 ‘한 줌의 볕’같은 맛있었던 시간, 책을 덮는 순간 그 시간을 떠나보내는 것 같은 아쉬움이 느껴진다. 어떤 책에선가, ‘삶은 관계’라는 것을 본 일이 있다. 꽤 공감했던 이유는 그간 내가 가진 고민과 고통은 ‘인간관계’이자, ‘소통’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 때문이었는지, 열한 번째 챕터, ‘길’이라는 제목의.. 2022. 1. 9.
형광등을 갈다 어둠이 다 내린 저녁, 오토바이를 타고 작실로 올랐다. 패인 길을 고친다고 얼마 전 자갈을 곳곳에 부려 쿵덕 쿵덕 작은 오토바이가 춤을 춘다. 게다가 한손엔 기다란 형광등 전구를 잡았으니, 어둠속 한 손으로 달리는 작실 길은 쉽지 않았다. 전날 우영기 속장님 집에서 속회예배를 드렸는데 보니 형광등 전구가 고장 나 그야말로 캄캄 동굴인지라 온통 더듬거려야 했다. 전날 형광등이 고장 났으면서도 농사일에 바빠 전구 사러 나갈 틈이 없었던 것이다. 다행히 교회에 형광등 여유분이 있었다. 그토록 덜컹거렸으면서도 용케 전구는 괜찮았다. 전구를 바꿔 끼자 캄캄한 방안이 대낮처럼 밝혀졌다. 막 일마치고 돌아온 속장님이 밝아진 방이 신기한 듯 반가워한다. 어둔 곳에 불 하나 밝히는 당연함. 필요한 곳에 불 하나 켜는 소.. 2022. 1. 8.
우리의 소원은 통일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정성 다해서 통일, 통일이여 오라“ 작실서 섬뜰로 내려오는 산모퉁이 길, 아침 일찍 커다란 노랫소리가 들립니다. 책가방 등에 메고 준비물 손에 든 5학년 병직이입니다. 하루 첫 햇살 깨끗하게 내리고, 참나무 많은 산 꾀꼬리 소리 명랑한 이른 아침. 씩씩하게 노래를 부르며 병직이가 학교를 갑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 1991년 2022. 1.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