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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012

도리어 애틋한 시작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 도리어 애틋한 시작 시간이 빈틈을 보이는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어김없는 순서로 계절은 우리에게 육박해 들어오고, 우리는 때때로 그것을 마치 기습이나 당한 것처럼 여기기조차 합니다. “어느 새”라는 말은 우리의 무방비한 자세를 폭로하는 것이지 시간의 냉혹함을 일깨우는 말은 아닙니다. 활을 한 번도 쏘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마저도 한해의 마지막 달력을 응시하는 순간, “세월이 쏜 살 같다”는 표현이 전혀 낯설거나 또는 자주 들었다고 해서 구태의연하지 않음을 느끼게 됩니다. 나이만큼 그 속도는 비례한다고 하는 이야기는 그리 헛되지 않습니다. 남은 시간에 대한 자세의 차이가 가져오는 속도감의 격차입니다. 그러나 꼭 그렇게만 볼 수는 또 없을 지도 모릅니다. 나이보다는 지금 서 있는 자리.. 2021. 12. 1.
끌개 벌써 며칠 째인지 모른다. 소를 끌고, 아스팔트 위를 왔다 갔다 한다. 소등엔 멍에가 얹혔고, 멍에엔 커다란 돌멩이가 얹힌 나무토막이 연결되어 있다. ‘끌개’를 끌며 소가 일을 배우는 중이다. 등 뒤 벅찬 무게를 견디며 소는 묵묵히 걸어간다. 일소가 되기 위해선 배워야 할 게 많다. 곧 돌아올 일철을 앞두고 열심히 일을 배운다. 일소가 되기 위해 등 뒤의 무게를 견디며 천천히 걷는 연습을 하는 소, 등짝이 까지도록 끌개를 끄는 소를 보는 마음이 숙연하다. 주어진 밭을 갈기 위해 끌어야 할 끌개가 내게도 있다. 쉽지 않은 무게를 견디며 많은 시간 끌개를 끌어야 한다. 이 밭에서 저 밭으로 제 멋대로 소가 뛰는 건 제대로 일을 배우지 않은 탓이다. 쉽게 마치려 하고 쉽게 벗으려 하는 내 끌개를 몇 날 며칠 .. 2021. 1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