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오버 더 스카이




밤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동지를 하루 지나서
비로소 해의 길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첫날

문득 한낮의 볕이 좋아서 
모처럼 따뜻한 볕이 아까워서

칠순을 넘기신 엄마랑 
통도사의 무풍한송로를 걸었습니다

뿌리를 내린 한 폭의 땅이 
평생 살아갈 집이 되는 소나무가

춤을 추는 듯 줄줄이 선 산책길을 따라서
겨우내 움추렸던 마음이 구불구불 걸어갑니다

사찰 내 서점에서 마주선 백팔 염주알을 보니
딸아이의 공깃돌을 옮겨가며 숫자를 헤아리던 기억에

책 외에 모처럼 갖고 싶은 물건이 생겼습니다
옆에 계신 친정 엄마한테 이십여 년만에 사달라는 말을 꺼내었습니다

엄마는 손수 몇 가지 염주알을 굴려보시더니 
이게 제일 좋다 하시는데, 그러면 그렇지

제가 첫눈에 마음이 간 밝은 빛깔의 백팔 염주알입니다
엄마가 한 말씀 하십니다, "평생 동안 쓰면 되겠네"

당장 오늘 저녁부터 백발 배를 다시 시작합니다
음악을 들으면서 천천히 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2005년 5월 15일 길상사 음악회 때 하늘을 울리던
법정 스님과 김수환 추기경님이 함께 하신 신청곡

임형주의 목소리로 아베마리아를 듣으며
이어서 12월의 노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들으며

나도 참
숨을 되뇌이면서

백팔 번의 엎드림으로 숨을 내쉬고
백팔 번의 일어섬으로 숨을 들이쉬며

땅으로 몸을 굽혀 엎드리지 않고서야
하늘로 머리가 뚫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돌처럼 단단해진 심장과
굳어진 몸을 조율합니다

백팔 번의 번뇌가
백팔 번의 감사함이 되고

부처의 손가락이
예수의 손가락이 되어서

내 손가락 끝에 걸터 앉은 염주알이 
천천히 숨을 고르듯 노래를 부르듯 굴러갑니다

하늘이 땅이 되던 예수의 무릎과
땅이 하늘이 되는 성령의 바람과

백팔 염주알과 사이 좋은 벗이 되는
이태석 신부님의 묵주알을 나란히 놓으며

크로스오버 더 스카이
진리 안에서

오늘밤에도 달과 별이
2021년에서 2022년으로 굴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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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얹은 손

사진/김승범

 

한해가 바뀌는 시간, 어둠속 촛불 하나씩 밝히고 예배당에 앉았습니다. 경건한 마음들. 늘 그만한 간격으로 흘러가는 시간일터이면서도 해 바뀜의 시간은 엄숙하고 무겁습니다.


더듬더듬, 기도도 빈말을 삼가게 됩니다. 돌이켜 보는 한해가 회한으로 차올라 눈물로 흐르고, 마주하는 한해가 마음을 여미게 합니다.


머리 숙인 교우들 머리 위에 손을 얹습니다. 그리곤 간절히 기도합니다. 내가 전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인 양, 시간 위에 손 얹은 양, 손도 마음도 떨립니다.


전에 없던 일, 스스로에게도 낯선 일 그 일이 그 순간 절실했던 건 내 자신 때문입니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기도 받고 싶은, 문득 그런 마음이 온통 나를 눌렀습니다.

 

낮게 엎드려, 가장 가난한 마음 되어 단 한 번의 손길을 온통 축복으로 받고 싶은 배고픔, 문득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한해를 보내고 맞는 심정 누군 다를까. 내 자신에게 손을 얹듯 손을 얹습니다. 전에 없던 일, 그러나 축복은 그렇게 올겁니다.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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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엔 또 불고 있으리니

<꽃자리> 출간 책 서평 2021. 12. 31. 07:10
  • '길잃은 양일수록 상처는 많아
    끌지않고 업고와야하는..'
    업으려면 다리를 접고 허리를 굽히고 들어메야 하고..
    무엇보다, 양에 묻은 진흙, 지푸라기, 덤불, 그리고 퀴퀴한 냄새까지 등에 밀착해서 함께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교회. 끌고가려고하지 업고가려고는 안하는.. 목회자..

    2022.01.01 10:56

 

 

 

오래 전, 관옥 이현주 목사님이 보내주신 연하장에는 ‘오늘 하루’라는 붓글씨가 쓰여 있었습니다. 그 글씨는 나를 침묵 속으로 데려가 잠시 시간을 멈추게 했습니다. ‘오늘’이라는 말과 ‘하루’라는 말이 무척 새롭게 그리고 퍽 무겁게 와 닿았습니다. 이후로 이런 하루, 저런 하루, 어떤 하루, 그때 하 루, 내일 하루… 그 하루마다 ‘오늘’이고 그 오늘마다 ‘하루’ 였습니다.

 

한희철 목사님은 이 책 제목을 ‘하루 한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걸음과 길’이란 글에 이렇게 썼습니다.

 

“그럭저럭 별일 없이 지내는 하루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런 하루가 모여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길은 걸음과 걸음이 모여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나의 행동이 나의 유언이다.’ 규암 김약연 선생께서 말씀하신 유언입니다. 이 말씀을 만나면서 무덤가의 정직으로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졌습니다. 한 목사님은 자신이 붙인 이 책 제목처럼 오늘 길어 올린 ‘생각’을 스스로 걸어갈, 걸어야 할 ‘길(행동)’이라고 여깁니다. 문장마다 또한, 그 행간에서 울리는 숨과 같은 고백이 마음에 새겨지는 까닭입니다.

 

이 책에서 한 목사님은 한국, 중국, 미국, 유럽 등 동서고금 에서 오늘날 전해져 오는 철학자들과 시인, 예술가와 지식 인들의 이야기를 오래 음미하고 ‘제 것’을 만들어 ‘그 생각’ 을 내놓았습니다. 마치 어미 새가 사냥도 서툴고 위도 약한 새끼들을 위해 잘 소화할 수 있도록 충분히 씹고 씹어 모이를 주는 것과 같이 말이지요. 사람을 아끼는 사랑 없이는 힘든 작업입니다.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없이는 나오기 힘든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목회자이자 동화작가인 그는 ‘맘곱’(눈가에 찌끼를 말하는 눈곱 처럼 손톱 밑에 끼는 때를 손곱, 발톱 밑에 끼는 때를 발곱이라 한다. 그렇 다면 ’맘곱‘은 없을까,라고 말하는 언어 조크)이란 말을 지어내 사용 하고 싶을 만큼 언어에 대한 애정이 깊습니다. ‘우리말’을 아끼는 마음은 그가 지닌 품성에서 나오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마음에 낀 때’는 없을까?라는 반성과 겸손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까닭입니다.

 

우리말에 대한 남다른 관심으로 고고학자가 유적지를 캐내 듯 여기저기 묻혀 있는 숨겨진 단어들을 정성스레 찾아냅니다. 곡괭이나 호미로 서둘러 파는 것이 아니라, 혹시 깨지 고 상할까봐 여린 붓으로 쓸어가며 호기심 어린 마음으로 찾아냅니다. 그리하여 마음속 깊이 묻어 두었던 말들이나, 시골집에 놔둔 말이나, 창고에 처박아 두었던 말들, 다락에 숨겨뒀다 잊어버린 말들을 우리 앞에 꺼내놓습니다.

 

그 말들에서는 쿰쿰한 냄새가 아닌, 잠시 잊었던 익숙함처럼 정답고 포근한 냄새가 납니다. 그렇게 찾아낸 보물 같은 단어들은 목회 현장으로 나서기도 하며, 진솔한 고백으로 터져 나오기도 하며, 때론 역사와 사회에 대한 외침으로 이어집니다. 또한 그 말들이 지닌 언어의 힘으로 ‘말하고자’ 하는 ‘말’의 적절하고도 품위 있는 표현이 됩니다. 그것은 한 목사님이 ‘하루하루’마다 모든 사물과 현상 앞에서, ‘만들어진 언어’ 이전의 ‘선험적 언어’를 묵상함과 같으며 언어 자체보다 ‘사람’을 향한 연민이 있어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주위에서 일어나는 소소하고 시시한 일상을 주워서 주머니에 넣은 채 좀처럼 버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꺼이 공부하는 방으로 몰래 가지고 들어가 화분에 난을 키우듯 고요하게 이야기들을 키워냅니다. 그리하여 어느 날 누구도 모르는 사이, 꽃이 열리고 향기가 피어오르면 슬며시 ‘이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 만나는 문장들은 이렇듯 작고 낮은 것들을 향해 있는 그의 천성이 빚어낸 뜰에서 피어난 나무와 풀과 꽃들입니다. 이내, 이 뜰은 그 분을 닮은 ‘신의 정원’이 됩니다.

 

우리는 아는 만큼이 아니라 모르는 만큼 말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모르는 만큼 씁니다. 말이나 글로 담아내지 못한 더 깊은 세계는 늘 침묵 속으로 침잠합니다. 얼마나 조심스럽고 고요한 마음으로 이 책을 내놓는지 헤아릴 수 있는 글입니다. 사실 저는 한 목사님이 쓰신 글은 낯선 것이 없을 만큼 정답고 많이 익숙합니다. 그가 쓴 동화 ‘소리새’로 92년에 만나 지금까지 한결같이 마음을 주고 받았으니 말입니다. 물론, 단강에서 목자로 살며 기록했던 ‘얘기마을’은 읽을 때마다 눈물을 감추느라 힘이 들곤 합니다. 그래도 이번엔 태연하고 무심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만 이 문장 앞에서 울컥하고 맙니다.

 

“길 잃은 양일수록 상처는 많아

끌지 말고 업고 와야 하는 것은”

 

‘목자’라는 글입니다. 교회를 잃은 이 기막힌 시대를 향한 ‘목자로서’ 다짐하는 그 심정이 뭉클하게 묻어납니다. 목회자이니 홀로 삼킨 말도, 꺼낼 수 없는 말도 얼마나 많았을 까요. 그리하여 제법 오래 삭인 말들이 이렇게 책이 되었습 니다. 기억에서 사라진 언어들이 바람처럼 흩어져 뵈지 않으면 어떻겠습니까. 어딘가엔 또 불고 있을 테니까요. 그가 ‘오늘 쓰려다’ 잊어버린 말이 있다 해도 그리 큰일은 아닙니다. 어딘가엔 그 뜻이 전해지고 있을 테니까요.

 

가수 홍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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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희의 아픔은 펄펄

사진/김승범

 

한해가 저무는 마지막 날. 상희 아버지는 한참 어둠이 내린 버스정류장을 늦도록 서성였다.


안산으로 취직을 나간 고등학교 졸업반인 딸 상희가, 신정휴가를 맞아 고향에 오겠다고 뒷집을 통해 연락을 해 왔던 것이다.


피붙이 하나 없는 객지에 어린 것이 나가 얼마나 고생이 됐을까. 먹을 것 제대로 먹기나 했는지, 딸이 눈에 선했다.


그러나 제법 붐빈 막차에도 상희는 내리지 않았다. 막차 지나 한참까지 기다렸지만 상희는 오지 않았다. 밤늦게 다시 걸려온 전화, 야근 나간 상희였다. 상희 아버진 된 술로 한해를 보내고, 상희의 아픔은 펄펄 흰 눈으로 내리고.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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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리는 전화


반갑기도 하고 아프기도 한 전화가 있다. 단강에서 이사 나간 최일용 성도님과 신동희 집사님의 전화다.


최일용 성도님은 아직 배움의 길에 있는 두 형제를 데리고 부론으로 나갔다가 다시 문막으로 이사를 갔다. 막내 갑수가 고등학교 기숙사로 떠나 이젠 백수와 둘이서 지낸다. 문막 농공단지 내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쉽지만은 않은 듯하다.


신동희 집사님 또한 마찬가지다. 어린 병관이와 둘이서 살다가 지난해 만종으로 나갔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집사님은 청주 근교로 멀리 떠났다. 단칸방을 얻어 살며 어느 회사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냥 전화했어요,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서..."


무슨 용건이 있는 전화는 아니다. 그저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서 하는 전화인 것이다. 뽑아도 뽑아도 밟아도 밟아도 돋아나오는 잡초처럼 어쩜 그렇게 모질게도 살아가는 두 분. 모두 잘 지낸다고 밝게 웃지만 웃음 뒤에 묻어나오는, 아득히 깔리는 힘겨움, 몇 마디 인사말에 목소리가 젖기도 한다.

이따금씩 걸려오는 전화, 그저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 거는, 떨리는 전화.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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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보다 더 위험한 '코바나19금'('썩은 밥에 빠진 누런 코')

 




한 사람이 있다. 그 옛날 친구를 따라서 뭣 모르고 찾아간 해인사의 백련암. 그리고 성철 스님께 한 말씀을 청하던 젊은이다. 그러면 부처님 앞에 삼 천 배를 올리라는 성철 스님의 한 마디에 괜히 투덜댔다가 "그라믄 니는 마, 만 배 해라!"라는 성철 스님의 엄호에 오기가 발동해서 정말로 백련암 초행길에 만 배를 올렸던 젊은이다. 그가 바로 성철 스님의 상좌인 원택 스님이다. 

다리가 끊어지고 온몸이 부숴지는 듯한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만 배를 겨우 마친 젊은이는 기어가다시피하며 성철 스님께 한 말씀을 청하였다고 한다. 청년이 기대했던 한 말씀이란 다름 아닌 청년 인생의 지침이 될 만한 한 말씀이었으리라. 

성철 스님은 "지킬 수 있나?" 물으신 후 딱 한 말씀만 하시곤 내려가라 하셨다며 상좌인 원택 스님은 회상에 젖은 얼굴빛으로 평생의 은사이신 성철 스님과의 첫 일화를 들려주신다. "속이지 마라.", "거짓말 하지 마라."

젊은이는 앞날의 인생을 위한 특별한 한 말씀을 기대했으리라. 하지만 겨우 "거짓말 하지 마라."라는 성철 스님의 그 평범한 한 말씀에 갑자기 허탈해진 젊은이는 기껏 어린 아이들도 다 아는 그 쉬운 말을 들으려고 이렇게 고생하며 만 배를 올렸던가. 후회를 하면서 그만 집으로 돌아오셨다고 한다. 그리고 곰곰이 일주일이 흘렀다.

"거짓말 하지 마라.", "속이지 마라", 참 쉬운 말이다. "남을 속이지 마라.", 그래, 젊은이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돌아보아도 크게 남을 속이지 않았으며 그런데로 정직하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스스로 들었다. 그런데 "자기를 속이지 마라."는 말씀에서 그만 가슴을 쳤다고 한다. 그 길로 젊은이는 다시 성철 스님을 찾아가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

한 사람을, 하나의 조직을, 하나의 국가를 무너뜨리는 방법은 딱 한 가지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건 바로 '정의'를 무너뜨리는 방법이다. 미국의 하버드 대학 강단에서부터 시작해 한국 사회에 지금까지도 커다란 울림을 주고 있는, '정의'에 대한 강의가 생각난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내가 동경하는 나라는 아니지만, 자본과 경제 논리로 이룩한 탐진치의 미국조차도, 미국의 부모들이 자녀에게 물려주는 최고의 유산은 다름 아닌 '정직'이다. 그런 미국에서 160여년 전에 태어난 소로우와 뒤늦게나마 그를 알아본 미국이 지닌 또 하나의 얼굴에 그래도 희망을 둔다.

모든 인간 관계에서 '정직과 정의'와 '신뢰'는 첫 단추가 된다. 하지만 탐진치와 허욕에 눈이 먼 자들에게 '정의'란 분리수거라는 유예기간의 여지도 없이 곧바로 폐기처분 가능한 가치일 뿐이란 말인가? 나에겐 '진리'의 길로 이어주는 더없이 소중한 가치가 '정의'인데,

이 추운 겨울날, '법과 정의' 앞에 이미 자정 능력을 상실한 검찰 조직과 야당과 그들을 추종하는 눈먼 언론이 밥상을 차려서 국민들 앞에 내놓았다. 나는 예수님이 차려주신 밥처럼 새하얀 밥알을 그래도 한 톨은 기대하면서, 그들이 내놓은 밥을 두루 살펴보았다. 장차 내가 선택한 밥은 나와 더불어 이웃과 자녀들과 널리 나누어 먹을 밥이기에 선택에 있어서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을 하면서.

그 밥이 된 한 사람이 있다. 밥이 속까지 검게 탔는지 썩은 밥이다. 우리네 선조들의 속담에도 나온다. '다 된 밥에 코 빠뜨렸다.' 다 된 밥에 콧물이 떨어졌는지 모른다면 맛있게 먹을 수도 있겠지만, 바로 내 눈 앞에서 밥 속으로 떨어지는 그 콧물을 보았다면, 누군들 그 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더구나 그들이 차려준 밥은 잘된 밥도 아니고, 법과 정의를 상실한 썩은 밥이다. 공평과 정의를 생명으로 하는 법의 저울추가 사람에 따라서 이권에 따라서 저울질을 달리 한다면 그건 이미 고장난 법과 썩은 밥에 해당된다. 

단풍이 아름답던 지난 시월의 가을날 '위드 코로나'로 잠시 맑은 숨을 쉴 수 있는가 싶었다. 하지만 잠시 느슨해진 틈을 탄 코로나19 바이러스와 변종 오미크론까지 가세해 우리는 다시금 사회적 거리두기의 안전망 안으로 들어가 조심스레 이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코로나 19 바이러스와 백신 부작용으로 사람들의 생명이 위협을 받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하지만 몸을 해치는 바이러스보다 더 위험한 바이러스란, 정의를 무너뜨려가면서 무릇 정신과 마음과 영혼을 해치는 거짓의 바이러스가 몸을 해치는 바이러스보다 만 배나 더 위험한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우리의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썩은 밥을 어떻게 더불어 먹자고 하며 또 먹일 수 있을까? 한 가정 안에서도 앞선 부모 세대는 후대의 자녀를 위하여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를 비추어 본다. 늘 부끄럽지만 자연의 거울을 피할 수는 없다. 숨쉬는 매 순간마다 내 몸속으로 속속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이 하늘처럼 숨줄이 붙어 있는 한 정의는 하늘처럼 무너지지 않는 법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있다. 누런 콧물과 같은 사람이다. 동종동색의 부부처럼. 썩은 밥에 떨어진 거짓과 허위의 누런 콧물이다. 주가 조작이라는 사기죄로 조사를 받다가 자기를 조사하던 검찰 총장의 아내가 된 사기범(참 신기한 일이다.)인, 코바나 콘텐츠의 대표가 학창시절부터 50세가 넘도록 지금껏 초지일관된 거짓 삶을 살아왔다는 증거가 15건에 달한다. 이어서 터져 나오는 뉴욕대 허위 학력와 숙대 논문 표절 증거까지 파고 또 파도 온통 거짓과 거짓된 삶의 증거들 뿐이다. 

막장 드라마와 영화를 안 보는 나로선 어쩔 수 없이 보이는 대한민국의 역사에 빨간줄을 긋는 희대의 사기극 앞에서 찝찝하고 괴롭고, 더럽혀진 눈을 어디서 씻어야 할지 사실은 눈 씻을 곳을 찾느라 혼자서는 더 바쁘다. 그를 직접 만났다며 스스로 나선 증인의 증거처럼 라마다 르네상스 호텔의 쥴리 경력만 빼고는 눈물 한 방울까지도 거짓일 수 있다니.

그동안 그가 몸 담았던 곳은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이다. 그는 졸업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때 모 대학의 교수였고, 겸손히 시간강사라 자신을 소개하며 이미 자기를 속였던 그 이름은 쥴리다. 라마다 르네상스 조남욱 회장에게 소개받은 쥴리를 만났다며 스스로 증인으로 나선 안해욱 초등학교태권도연맹회장의 인터뷰 영상을 살펴보았다. 쥴리를 두고 "첫인상이 남자상이고 신기가 있어 보였다.", 사실 여부 확인에 혈안이 된 인터뷰 기자의 거듭되는 질문 공세에 안해욱 태권도 회장의 느긋한 한 마디가 크게 공감이 된다. "우리는 그냥 느껴요."

적어도 정상적인 인지력과 감지력을 가진 동물이 아닌 사람이라면 느낄 수 있는 것이 있다. 거울에 비추듯 바로 비추어 보이는 것이 있다. 적어도 한 사람의 인상과 표정과 말투에서 엿볼 수 있는 그만의 인생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그걸로 불충분하다면 이미 대한민국은 증거 법치주의국가이다. 문서 증거가 수두룩하고 증인이 스스로 나서고 있는 상황인데도 증거 채택과 구속 기소를 도둑이 뒷걸음 치듯이 미루고 있는 검찰 조직을 국민들은 과연 어디까지 기다려줄 수 있을까? 곧 구속 기소라는 그 거짓에 합당한 소식이 들려오기를 기대한다.

코바나 콘텐츠 대표 김건희(개명 전 김명신)는 자신의 학력과 경력 위조를 두고 결혼 전 단지 돋보이고 싶어한 마음에 범한 자신의 실수라며 거듭 자기를 속이고 있다. 하지만 이건 엄연한 사기죄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도 알고 있다. 그 허위·사기죄에 대한 피해는 고스란히 교육계와 밀접 접촉자인 다른 교사들과 학부모와 학생들이다. 

다 된 밥에 빠진 콧물을 아무도 먹지 않는다. 더군다나 썩은 밥에 빠진 이 콧물은 맑은 콧물이 아닌, 허위와 거짓의 고름이 코로 터져 나온 누런 콧물이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보다 더 위험한 코바나19금 바이러스다. 우리 아이들아 조심하자. 그래도 곳곳에서 촛불처럼 번지는 눈 밝은 2030 젊은이들이 있어서 숨을 쉴 수가 있다. 

한 사람을, 한 국가를 바로 세우는 길은 딱 하나만 올바로 세우면 된다. 그건 바로 성철 스님의 세상을 향한 첫 법문, "자기를 속이지 마라", '정의'를 바로 세우면 되는 것이다. 

이 추운 겨울날 허위와 사기와 거짓이 터져 나와서 푼 누런 콧물이 떨어진 썩은 밥을 내놓으며, 국민들에게 먹으라고 하는 야당과 거기다가 거짓 포장지로 포장하느라 애쓰는 언론의 뒷힘이 나는 늘 궁금하다. 일제강점기 이후 지금까지 그 괴물은 살아서 그들만의 잔치 밥상을 위하여 거듭 꼭두각시를 세워오고 있으면서 그들만의 탐진치를 채우고 있는 중이다. 그러다가 이제는 급기야 썩은 밥에 누런 코가 빠진 폐기해야 될 밥을 국민들에게 먹으라며 내놓기에 이르렀다니. 국민들의 눈을 가리려 참 애쓰는 일부 언론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꼴처럼 우스운 광대꼴이다. 

국민들에게 먹으라고 내놓은 '누런 코가 떨어진 썩은 밥'을 대하는 태도는 제각각 다양하겠지만, 나의 선택은 그냥 안 먹으면 된다. 욕을 하면서 내 입을 더럽히고 싶지도 않다. 사실 이 글을 쓰려고 단어를 선정하면서도 참 찝찝하다. 하지만 달리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하였다. (고) 김수환 추기경님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글을 남기는 이유는 자라나는 젊은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정의의 맑은 하늘이 늘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 마음이 가리키는 정의와 진리의 세상을 보여준 모범생 석가모니 부처님과 진리의 몸과 우리들의 밥이 되신 예수의 아름다운 밥이 엄연히 어둔 세상 밤하늘에 별처럼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함이다.

이 모진 겨울 바람이 국민들의 맑은 눈을 더 맑게 씻겨주고 있는 듯하다. 투명하도록 푸른 겨울 하늘이 나의 눈을 더 푸르게 지켜주는 듯하다. 제 아무리 검은 손바닥들이 우리들의 눈을 가리려고 해도 곳곳에서 별처럼 반짝이는 젊은이들의 육성이 터져나와 곳곳에서 빛난다.

그리고 참 기쁜 소식이다. 예수의 밥을 뿌리치고, 썩은 밥과 손을 잡은 탐진치의 전당이 된 대형 교회당과 함께 침몰하고 있는 일부 개신교 소식으로 암울한 이때에 그래도 얼어죽지 않고, 대한민국의 고대로부터 유유히 내려오는 태권도 정신이 살아 있었다. 증인으로 스스로 나서 준 안해욱 초등태권도연맹회장님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인상이 참 믿음직스럽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나에게 물으면, "우리는 그냥 느껴요." 

사실 이런 글을 적고 있다는 현실 앞에, 스스로 공부가 덜 되었음을 나 스스로 돌아보게 된다. 여전히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바라볼 곳이 있어서 마음은 느긋하다. 그리고 언제나 한 사람이 있다. 그건 정의와 진리의 몸으로 이 세상에 몸을 낮추신 예수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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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나무

 



가난한 이들의 벗으로
이 땅에 오신 십자가 나무

그러나 이 땅에 머리둘 곳 없다 하시던
마음이 가난한 나무

보이지 않는 마음을 비로소
손가락으로 가리키시며
마음으로 살으라 하신

홀로 산을 오르시어
기도하시던 나무

진리에 뿌리를 내리고
진리의 몸이 되신

온몸으로 시를 쓰는
마음이 따뜻한 사랑 나무

다시 하늘로 오르시어
우리에게 성령을 주고 가시며

배운 자나 못 배운 자나
함께 살아가든 홀로 외따로 살지라도

우리 모두의 마음에는 저마다
태양을 닮은 양심이 공평하게 나를 비추어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진리 안에서

하늘과 땅을 잇는 
한 그루의 평화 나무로 선 
십자가 나무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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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기억

 

 

성탄절 이른 아침 승학이 할아버지가 찾아오셨습니다.


“오늘이 성탄절 맞제?” 


그러면서 무언가를 손에 쥐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만 원짜리 지폐였습니다.


“얘들 과자락두 사줘.” 


할아버지는 이내 걸음을 돌렸습니다. 고마운 손길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해마다 그랬습니다. 당신은 교회에 나오지 않지만 해마다 성탄절이 되면 그렇게 정성어린 손길을 전해주시는 것입니다.


넉넉지 못한 용돈을 아꼈다 전하시는 지폐도 지폐였지만, 해마다 어김없는 따뜻한 기억이 더욱더욱 고마웠습니다.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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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도 총총한 은총의 첫 새벽!, 새벽송

 

 

꿈결인 듯싶게 노래 소리가 들렸다. 자다 말고 한참을 생각했다. 꿈인가? 생시라면 누굴까? 분명 새벽 송은 안 돌기로 했는데 누구란 말인가.


한 곡이 끝나자 또 다음 곡,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문을 열었을 때 문 앞엔 빙 둘러선 젊은이들, 잠이 확 달아났다.


“메리 크리스마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머쓱한 표정을 짓는 내게 커다랗게 인사를 건넸다. 만종교회 학생들이었다. 새벽송을 돌만한 사람이 없어 올해부턴 못 돌겠다는 아쉬운 소리를 귀담아 들었던 친구 최 목사가, 먼 새벽길을 달려왔던 것이다. 그제야 보니 친구는 방앗간 앞에 차를 세워두고 있었다.


그렇게 듣는 성탄의 새벽노래는 그야말로 은총이었다. 첫 새벽 알렸던 천사들의 노래. 별빛도 총총한 은총의 첫 새벽!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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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의 참된 의미

고진하의 마이스터 엑카르트와 함께하는 ‘안으로의 여행’(39)

 

 

그리스도가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그리스도가 몸소 내 안에서 육신이 되지 않고,

그래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지 못한다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을 위해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한들

그것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성탄절은 기쁜 날이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신 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분의 이름을 그리스도라 부른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이 아들의 몸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셨다는 것을 알기만 한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몸을 통해 당신이 태어나시기를 바란다. 우리의 영혼은 생래적으로 그런 놀라운 ‘생식력’을 품고 있다고 한다. 엑카르트는 단언한다.

 

 

“피조물 중에서 영혼만이 그런 생식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탄의 의미는 단지 하나님이 인간 예수의 몸을 입고 오신 그리스도의 생일을 축하하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12월 25일, 그 한 날만을 기억하고 축하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낳는 출산의 기쁨을 맛보지 못한다면,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지 않는다면, 성탄의 깊은 뜻을 제대로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는 본래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우리 또한 은혜를 통해서 된 하나님의 아들이다.

 

 

“아버지께서 얼마나 큰 은혜를 우리에게 베푸셨는지 보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으니, 과연 그분의 자녀들입니다.”(요한일서 3:1)

 

고진하/시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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