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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40

밤과 낮의 구별법 “누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자매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보이는 자기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자매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계명을 주님에게서 받았습니다.”(요일 4:20-21) 주님의 은총과 평화를 빕니다. 하루하루 기쁘게 살고 계시는지요? 전도서 기자는 “하나님은 이처럼, 사람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시니, 덧없는 인생살이에 크게 마음 쓸 일이 없다”(전 5:20)고 말하지만, 우리는 마치 근심 걱정이 우리 소명인 것처럼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일상의 모든 순간은 메시야가 우리에게 틈입(闖入)하는 문이라지요? 자잘하기 이를 데 없는 일들도 잘 살펴보면 그 속에 아름다움이 .. 2021. 10. 14.
등 뒤의 햇살 그대 등 뒤로 내리는 햇살이 따스함으로 머물도록 한 올 한 올 품안에서 머물도록 잠깐 잠깐만이라도 그대 고요하라.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비늘 같은 햇살 햇살은 거리에 널리고 바쁜 걸음에 밟히니 표정 잃은 등마다 낯선 슬픔 제 집처럼 찾아드니 그대 등 뒤로 내리는 햇살이 새근새근 고른 숨결로 머물도록 잠깐 잠깐이라도 그대 침묵하라. - 1989년 2021. 10. 14.
배 하나를 돌려 깎아서 네 식구가 좋게 나누느라 누나 접시에 세 쪽 동생 접시에 다섯 쪽 아빠 접시에 세 쪽 엄마는 입에 한 쪽 저녁 준비를 하느라 잠시 고개를 돌렸다 돌아 보니 아빠 접시에 두 쪽 누나 접시에 두 쪽 이상하다 누가 먹었지 했더니 저는 안 먹었어요 아들이 거짓말을 합니다 그러면서 시치미를 뚝 땐 얼굴빛으로 증거 있어요? CCTV 있어요? 엄마가 가만히 보면서 CCTV는 니 가슴에 있잖아 가슴에 손을 얹으면 CCTV가 켜지니까 지금 바로 작동시켜봐 합니다 자기가 자기를 보고 있고 자기가 자기를 알고 있는데 그랬더니 순순히 제가 먹었어요 바른말을 합니다 2021. 10. 14.
발아 기다려온 씨앗처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태복음 11:28-30) 박민하 성도님 네 심방을 하며 위의 성경을 읽었다. 무거운 짐, 걱정일랑 주께 맡기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다. 말씀 중 ‘멍에’도 그랬고, ‘두 마리 소가 나란히 밭을 간다’는 농사법에 대한 얘기도 그랬다. 함께 모인 교우들이 그 말을 쉽게 이해했다. 박민하 성도님은 ‘두 마리 소’를 ‘겨릿소’로 받으셨다. ‘소나 나귀는 주인을 알아보는데 내 백성은 나를 모른다’(이사야 1:3)는 속회공과를 배울 때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알아보나요?” 여쭸더니 “그럼요, 주인보다 먼저 알아보고 좋아하는데요.” 허석분 할머니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렇다. 하늘 바라 땅 일구며, 씨 뿌리고 거두며 살아가.. 2021. 10. 13.
사막으로 가는 길 그리운 이들 마주하면 그들 마음마다엔 끝 모를 사막 펼쳐 있음을 봅니다. 선인장 가시 자라는 따가움과 별빛 쏟는 어둠, 고향 지키듯 적적한 침묵 홀로 지키는 저마다의 사막이 저마다에게 있습니다. 저마다의 사막으로 가는 길은 무엇인지요? 그리운 이들 마주하면 그걸 묻고 싶습니다. 바람 자는 언덕에 말(言)을 묻곤 사막으로 가는 길, 그걸 묻고 싶습니다. - 1989년 2021. 10. 11.
바치다 쌀이며 담배며 콩이며, 그동안 지은 농작물에 대한 수매가 있었다. 늘 그래왔던 대로 원하던 양도 아니었고 기대했던 가격에도 미치지 못했다. 잠깐뿐이긴 하지만 그래도 농촌에선 유일하게 만져볼 수 있는 목돈의 기회이기도 하다. 쌀 미(米)자는 원래 八과 八을 합쳐 놓은 글자, 88세를 米壽라 한다. 쌀 한 톨 먹으려면 농부의 손 여든여덟 번이 가야 한다. 농사 중 가장 많이 손 가는 게 잎담배농사라 하니, 담배는 여든여덟 번 손 가는 쌀보다도 더 손이 가는 셈이다. 재처럼 작은 씨를 모판에 심을 때부터, 몇 번이고 같은 빛깔, 같은 상태의 잎을 추리는 조리에 이르기까지 여간한 많은 품이 드는 게 아니다. 이곳에선 수매하는 일을 ‘바친다’고 한다. 잎담배 수매에 응하는 걸 ‘담배 바친다’고 한다. ‘바친다’라.. 2021. 10. 10.
고향 당신의 바라봄 속에 펼쳐지는 세계를 난 사랑합니다. 끝 간 데 없는 당신. 당신 안에 있다 해도 그게 구속 아님은 내 아직 당신의 끝 모르기 때문입니다. 봄소식 언제인가 싶게 얼음 같은 고독 흰 눈 같은 푸근함 아울러 지닌 돌아가야 할 이 있는 곳 그게 고향이라면 당신은 내 고향입니다. - 1989년 2021. 10. 9.
아릿한 기도 “우린 부족한 게 많습니다. 성미도 즉고, 헌금도 즉고, 사람도 즉고, 성도도 즉고, 믿음도 즉습니다. 불쌍히 보시고 채워 주옵소서.” 지 집사님은 늘 그렇게 기도하신다. “높고 높은 보좌에서 낮고 천한 저희들을”이라든지 “지금은 처음 시작이오니 마치는 시간까지 주님 홀로 영광 받으소서.”라든지 사람마다의 기도엔 습관처럼 반복되는 구절이 있는데, 지집사님의 경우엔 위와 같다. 말과 마음이 하나라면 언제나 집사님은 빈말로써가 아니라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모든 넉넉한 은혜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렇게 기도할 수 있을까. 그동안 익숙해졌을 법도 한데 집사님의 기도를 들을 때마다 순간적으로 지나는 아릿함을 난 아직도 어쩌지 못한다. - 1989년 2021. 10. 8.
하늘은 애쓰지 아니하며 놀이터에서 흙구슬을 빚던 손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 흙구슬이 부서져 울상이 되던 날 물기가 너무 없어도 아니되고 너무 많아도 아니되는 흙반죽을 떠올리며 새벽마다 이슬을 빚으시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면 이슬은 터져서 볼 수 없었겠지요 하늘은 애쓰지 아니하며 이 땅을 빚으시는지 물로 이 땅을 쓰다듬으시듯 바람으로 숨을 불어넣으시듯 오늘도 그렇게 새벽 이슬을 빚으시는 손길을 해처럼 떠올리며 저도 따라서 제게 주신 이 하루를 살아가는 동안 애쓰지 아니하기로 한 마음을 먹으며 이 아침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빛이 있으라 밤새 어두웠을 제 마음을 향하여 둥글게 2021. 10.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