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가라

이종후 작, 봉기[蜂起] 



기쁨도 잠시, 우리는 불안에 사로잡혔다. 온 식구가 예배당에 나온 그날 밤 늦게까지 잠 못 이루던 아주머니가 ‘쾅’하고 울어대는, 마치 천장이 무너지는 듯한 괴상한 소릴 들은 것이다. 


놀래 온 집안 식구를 깨우고, 플래시를 들고 온 집안을 둘러보는 등 수선을 피웠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불안한 마음을 이기지 못해 잠을 설쳐야 했다. 


듣는 사람들 마음속엔 개종을 허락지 않으려는 역사로 다가왔다.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낮에 예배를 드렸지만 밤중 괴상한 소리는 여전히 났다.


이번엔 남편도 그 소리를 들었다. ‘쾅’하는 소리에 온 집안이 울릴 정도였다. 또 다시 온 식구가 밤잠을 설쳐야 했다.

괴상한 소리의 이유는 다음날 밝혀졌다. 한 모임에 나갔던 남편이 그 얘기를 조심스레 했고, 그 얘기를 들은 사람으로부터 슬래브 집은 날이 추우면 으레 그런 소리가 나는 법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몇 군데 알아보니 다들 그렇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미심쩍어 하는 아주머니를 이번엔 남편이 단호하게 타이른다. 그제야 남편은 간밤 일을 웃음으로 얘기한다.


맘이 불안해 성경을 읽고 있던 중 부인이 들었다는 그 쾅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 소리가 보통소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일이 그 지경에 이르자 남편은 마당으로 뛰어 나가 고래고래 고함을 쳤다는 것이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탄아 물러가라.”


얘기를 들은 서울 사는 동생이 전화로 가르쳐 준 대로였다. 앞집 할머니가 잠자다 말고 놀랬을 거라는 말에 우리는 배를 잡고 웃었다. 남아있던 불안한 마음의 기운을 모두 털어내기라도 하려는 듯.


뜻밖의 하찮은 일도 때로는 결정적인 걸림돌이 되는 법, 하마터면 걸려 넘어질 뻔했던 장애물을 잘 넘게 되어 다행이었다. 이젠 더 큰 걸림돌이 가로 막아도 능히 건너 뛸 수 있으리라. 한 새벽, 어둠을 향해 “물러가라!” 외칠 그 믿음이 있는 한.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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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의 기와 단장





그 옛날에는 지게로 등짐을 지고 올랐다 한다
나무 사다리를 장대처럼 높다랗게 하늘가로 세워서

붉은 흙을 체에 쳐서 곱게 갠 찱흙 반죽
기왓장 사이 사이 떨어지지 말으라며 단단히 두었던

50년 동안 지붕 위에서 하늘을 머리에 이고 살다가
도로 땅으로 내려온 흙덩이가 힘이 풀려 바스러진다

이 귀한 흙을 두 손으로 추스려 슬어 모아
로즈마리와 민트를 심기로 한 화단으로 옮겼다

깨어진 기와 조각은 물빠짐이 좋도록 맨 바닥에 깔았다
그림 그리기에 좋겠다는 떡집에서 골라가도록 두었다

기와를 다루는 일은 서둘러서도 아니 되고
중간에 지체 되어서도 아니 되는 느림과 호흡하는 일

일일이 사람의 손길을 기다리는 암막새와 수막새
더러는 소나무가 어른 키만큼 자란 기와 지붕도 보았다

기와를 다루는 일은 일 년 중에서도 시월이 참 좋다
덥지도 춥지도 않으며 비바람도 잠잠한 하늘 품에서

칠순의 고개를 넘긴 두 어른이 민살풀이 장단에 맞춰
정중동 동중정 넘실넘실 기와 고개를 잘도 넘나드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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