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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053

까마귀 반가운 손님 부른다는 뒷동산 까치의 울음은 언제부턴가 효력을 잃어 빈 울음 되고 빈 들판 느긋한 날갯짓 까마귀 울음만 가슴으로 찾아들어 가뜩이나 흐린 생각 어지럽힌다. 수원 어딘가에서 기계를 돌린다는 부천 어디선가 차를 운전한다는 자식, 자식들. 내 여기 흙이 된다 한들 너덜만은 성해야 하는데. 빈 들판 지나 빈 가슴으로 까오까오 오늘도 까마귀 지난다. - 1989년 2021. 10. 5.
영이가 죽었다 장례식장에 들어서니 영정 사진 속 예쁜 19살 영이가 비통에 빠진 조문객들을 환한 미소로 마주하고 있었다. 영이는 내년이면 20살이 되었을 것이고, 개나리가 필 쯤이면 풋풋한 대학 새내기가 되었을 것이다. 눈이 크고 예쁜 영이는 분명히 많은 남학생들에게 데이트 신청도 받았을 것이다. 어쩌면 새침한 영이가 너무 좋아서 영이가 오가는 길을 서성이는 남학생도 있었을지 모른다. 내년이면 그랬을 영이가 19살을 다 살지 못한 채 죽었다. 열흘 전 영이는 집 앞 공원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었다. 응급실에 도착한 후 의사들은 가까스로 영이의 심장을 살려 냈지만 영이의 뇌를 살려내진 못했다. 영이는 뇌사상태로 일주일을 더 살았다. 영이의 간, 신장, 각막, 심장은 살고자 하는 누군가에게 기증되었고 영이는 그렇게 그녀를 .. 2021. 10. 5.
찬물에 담그면 찬물에 담그면 한결 순해집니다. 말린 찻잎이든 줄기 끝에서 막 딴 식물의 열매든 찬물에 담그면 그 색과 맛이 순하게 우러납니다. 그러면서도 식물이 지닌 본래의 성품인 그 향은 더욱 살아나는 자연의 뜻을 헤아려 보는 저녁답입니다. 언젠가부터 차 한 잔을 마시기 위하여 애써 물을 끓일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찬물에 담근 찻잎은 시간 맞춰 건질 필요 없이 찬물에 담근 후 그저 시간을 잊고서 얼마든지 기다림과 느림의 여유를 누릴 수가 있으니 마음도 따라서 물처럼 유유자적 흐르고 찬물에 담근 녹찻잎을 그대로 대여섯 시간을 둔 후에도 그 맛이 별로 쓰지 않고 향이 좋아 거듭 찾게 되는 맛입니다. 선조 대대로 우리가 살아오고 있는 이 땅의 한국은 산이 많고 물이 좋아 한반도 이 땅에선 예로부터 산골이든 마을이든 물.. 2021. 10.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