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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 된 자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 하였는데 이상옥 성도님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믿기로 작정하고선 성경책을 어디서부터 읽으면 좋겠느냐고 며느리에게 물었답니다. 아버님의 신앙을 위해 오랜 시간 눈물로 기도하던 며느리는 잠언부터 읽으시라 권했다고 합니다. 유교정신에 투철한 분임을 알기에 잠언이 친숙하리라 여겼던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며느리와 통화한 그날 아침 잠깐의 실수로 안경테를 부러뜨렸는데, 이상옥 성도님은 테 부러진 안경을 한쪽 손으로 붙잡고 잠언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도 귀한 말씀에 ‘취한 듯’ 잠언을 다 읽고 나니 시간이 새벽 두시 반, 잠이 오지 않아 내친 김에 사도신경까지 다 외우고 나니 한밤이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믿음이 귀하고, 조금 더딘 출발을 주님.. 2021. 10. 31.
얘기마을 운전하던 형이 몇 가지 물건을 사느라 봉고차가 문막에 섰을 때, 버스를 기다리던 몇 사람이 다가와 같은 방향이면 같이 갈 수 있겠느냐 물었단다. 초행길이라 잘 모른다 하자 사람들은 어디까지 가느냐고 다시 물었다. 그때 할아버지는 “얘기마을까지 갑니다.” 대답했다. 얘기마을이 어디에 있는지 사람들은 몰랐다. “그런 마을 없는 데요.” 갸우뚱 고갤 돌렸다. 지난번 할아버지 목사님께서 단강을 찾아오실 때 있었던 일이다. 그 얘기를 들으며 우린 배를 잡고 웃었다. 주보 을 받아보고 계신 할아버지께선 얘기마을이 마을 이름인 줄로 알고 계셨던 것이다. 몇몇 사람들의 가난한 마음 한구석 자리뿐, 지도 위엔 그 어디에도 얘기마을 없답니다. 할아버지. - 1989년 2021. 10. 30.
그리운 춘향 마당놀이 춘향전을 보며 배를 잡고 웃습니다. 번뜩이는 재치와 기지가 웃음을 쉬지 않게 합니다. 그러나 끝내 눈물지고 말았습니다. 변사또의 회유와 강압에도 그 어떤 변절 없이 사랑하는 이 사랑하는, 사랑하는 이가 자기의 기대를 저버린다 하여도 사랑 버리지 않는 예의 익숙한 춘향이의 모습이, 오늘 우리 믿는 자들에게 필요한 참모습 아닐까. 춘향이가 외워대는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새겨지듯 가슴에 와 닿았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의 춘향이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었습니다. - 1991년 2021. 10. 29.
하나님으로 불붙은 사람 “그는 천사들의 노래를 듣고 황홀해하고, 하나님의 노여움에 아찔하도록 현기를 느끼며, 창조의 오묘함을 보고 말을 잃고, 하늘의 자비를 두고 노랫가락을 읊은, 하나님으로 불붙은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에게는, 하나님 앞에서 내 모습이 어떤가 하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없다.”(롤런드 베인턴, , 이종태 옮김, 생명의 말씀사, p.301) 주님의 은총과 평화를 기원합니다. 늦가을의 정취가 가득한 나날입니다. 분주한 일상 속에서도 가끔은 먼 산도 바라보고, 하늘도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땅만 바라보며 살면 시야가 협소해지고 감정이 메말라가기 쉽습니다. 먼 데 눈길을 줄 때 중력처럼 우리를 잡아당기는 잡다한 일들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앞으로 나아감과 뒤로 물러남의 통일이었.. 2021. 10. 28.
돼지 값 그동안 외상으로 먹인 사료 값이 삼십만 원이 넘었는데, 그렇게 키운 돼지를 사료 값인 삼십만 원에도 안 사간단다. 윤제숙 성도님. 열 마리도 넘게 난 새끼를 하루 다르게 크는 재미에 키우긴 모두 키웠는데, 결국은 헛고생했다며 차라리 웃고 만다. 빨리 명절이나 돌아와야 동네에서라도 잡아먹을 텐데 명절은 멀고, 게다가 혼자만 돼지를 키우는 것도 아니다. 주인 속도 모르고 때 되어 배고프면 우리에서 뛰쳐나올 듯 시끄러운 돼지들이라니. - 1989년 2021. 10. 28.
올라갈 거예유 “올라갈 거예유. 이것 다 때문 올라갈 거예유.” 허름한 광이며 부엌 빼곡했던 나무 단이 제법 허술해졌습니다. 연이은 매운 추위 수은주 내려가듯 키가 줄었습니다. 겨울이 언제 다 갈지 아직 모르는데 나무 모자라지나 않을까 할머니께 물었더니, 답을 준비해 놓은 듯 대답이 쉬웠습니다. “올라 가다뇨?” “나무 다 때문 서울 자식 네로 올라가든지, 산으로 올라가든지 할 거예유.” 유난히 춥고 유난히 눈 많은 이번 겨울, 홀로 살며 일일이 불 지펴 추위를 쫓아야 하는 할머니의 아픔과 외로움이, 자식 네든 산으로든 장작 떨어지면 어디든 올라 갈 거라는 할머니는 말씀에 아릿하게 배어 전해져왔습니다. - 1991년 2021. 10. 27.
물러가라 기쁨도 잠시, 우리는 불안에 사로잡혔다. 온 식구가 예배당에 나온 그날 밤 늦게까지 잠 못 이루던 아주머니가 ‘쾅’하고 울어대는, 마치 천장이 무너지는 듯한 괴상한 소릴 들은 것이다. 놀래 온 집안 식구를 깨우고, 플래시를 들고 온 집안을 둘러보는 등 수선을 피웠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불안한 마음을 이기지 못해 잠을 설쳐야 했다. 듣는 사람들 마음속엔 개종을 허락지 않으려는 역사로 다가왔다.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낮에 예배를 드렸지만 밤중 괴상한 소리는 여전히 났다. 이번엔 남편도 그 소리를 들었다. ‘쾅’하는 소리에 온 집안이 울릴 정도였다. 또 다시 온 식구가 밤잠을 설쳐야 했다. 괴상한 소리의 이유는 다음날 밝혀졌다. 한 모임에 나갔던 남편이 그 얘기를 조심스레 했고, 그 얘기를 들은 사람으로부.. 2021. 10. 26.
시월의 기와 단장 그 옛날에는 지게로 등짐을 지고 올랐다 한다 나무 사다리를 장대처럼 높다랗게 하늘가로 세워서 붉은 흙을 체에 쳐서 곱게 갠 찱흙 반죽 기왓장 사이 사이 떨어지지 말으라며 단단히 두었던 50년 동안 지붕 위에서 하늘을 머리에 이고 살다가 도로 땅으로 내려온 흙덩이가 힘이 풀려 바스러진다 이 귀한 흙을 두 손으로 추스려 슬어 모아 로즈마리와 민트를 심기로 한 화단으로 옮겼다 깨어진 기와 조각은 물빠짐이 좋도록 맨 바닥에 깔았다 그림 그리기에 좋겠다는 떡집에서 골라가도록 두었다 기와를 다루는 일은 서둘러서도 아니 되고 중간에 지체 되어서도 아니 되는 느림과 호흡하는 일 일일이 사람의 손길을 기다리는 암막새와 수막새 더러는 소나무가 어른 키만큼 자란 기와 지붕도 보았다 기와를 다루는 일은 일 년 중에서도 시월이.. 2021. 10. 26.
조롱하듯 모든 게 올랐다. 정말 모든 게 겁나게 올랐다. ‘제사상 차리기도 어려워졌다’는 말이 빈 탄식이 아니다. 단하나, 농산물만이 멀뚱멀뚱 한다. 바보처럼. 무엇 그리 억센 놈에게 발목 잡혔는지 땀 벅벅 한숨 벅벅 농산물만 남겨두고, 비웃듯 조롱하듯 모든 게 올랐다. - 1991년 2021. 10.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