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받아들이는 용기



“‘이만하면 됐다’라고 말하는 날, 이날 당신은 죽음에 이를 것입니다. 이에 항상 더 많이 행하고, 항상 앞을 향해 나아가며, 항상 길 위에 있으십시오. 결코 되돌아가지 말고, 결코, 길에서 벗어나지 마십시오.”(안셀름 그린,<길 위에서>, 김영룡 옮김, 분도출판사, p.41에 인용된 아우구스티누스의 말)

주님의 은총과 평화를 빕니다.

명절 잘 보내셨는지요? 명절 풍경이 사뭇 달라졌다고 하더군요. 고속도로를 가득 채운 차량의 행렬도 보이지 않고, 기차도 창가쪽 좌석에만 승객을 앉혔다 합니다. 가족들조차 8명 이상 모일 수 없으니, 옛날처럼 시끌벅적한 명절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저희도 아들과 딸네 식구들을 따로 따로 맞아야 했습니다. 모처럼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 온 아이들은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벽에 붙여놓은 키를 재는 판에 서서 자란 키를 자랑했습니다. 거의 넉달만에 만났는데 각각 약 4cm쯤 자라 있었습니다. 무럭무럭 자란다는 말이 실감이 났습니다. 그 놀라운 성장력이 희망이겠지요?

저희는 추석에 음식을 많이 하지 않습니다. 올해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간단한 먹을거리를 장만한 아내가 ‘그래도 전(煎)은 좀 준비해야 하지 않나?’ 하고 말했습니다. 웬일로 집에서 전을 부치려나보다 생각했더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공덕역 근처에 있는 유명한 전 가게에 가서 구입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짐꾼으로 발탁되어 따라나섰습니다. 그러다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전을 구입하려는 이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각자 커다란 바구니를 하나씩 들고, 얇은 비닐장갑을 낀 채 그들은 무드럭지게 쌓여있는 전 가운데 먹고 싶은 것을 골라 담았습니다. 가게 바깥 대로변에는 차들이 즐비하게 서서 임무를 마치고 돌아올 가족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그 줄을 따라 천천히 이동하는 동안 저는 바깥 도로변에 서서 아주 무료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가족들이 수다를 떨며 전을 부치고 음식을 장만하는 시대가 지나가고 있구나’, ‘아니, 그런데 명절에는 왜 꼭 전을 먹어야 하는 거야?’, ‘번철에 기름을 두르고 각종 재료를 튀겨내는 것이 번거롭긴 하지만 잔치 기분은 나겠구나’, ‘왜 이리 오래 걸리는 거야?’.

뜬금 없이 서홍관 시인의 ‘어머니 알통’도 떠올랐습니다. 시인은 아홉 살 적 기억을 떠올립니다. 뒤주에서 쌀 한 됫박을 꺼내시던 어머니가 문득 아이를 보고 웃음 띤 얼굴로 말합니다. “내 알통 봐라.” 시인에게 그 때의 일이 인상 깊었던 모양입니다. 그때로부터 수십 년이 흘렀습니다. 모처럼 어머니 집에 들른 시인의 밥상을 차리느라 어머니가 냉장고를 열고 게장을 꺼내시다가 그만 왈칵 엎지르고 말았습니다. 주방은 온통 간장으로 넘쳐 흘렀고, 그 상황이 민망했던 팔십 세 어머니는 혼잣말처럼 말씀하십니다. ‘손목에 힘이 없다’, ‘이제는 병신 다 됐다’. 짤막한 시 속에 어머니의 한 평생이 담겨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시간은 이 두 사건 사이의 갈피에 묻혀 있었지만요. 시인의 안쓰러운 마음이 절로 느껴집니다.

그늘이 있어 서 있던 자리에 해가 들어올 정도로 긴 시간이 흐른 후 아내가 나타났습니다. 피곤한 기색이 나타날 거라 예상했지만, 득의의 표정을 짓고 있어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전을 장만했으니 추석 준비는 거의 끝난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아이들이 오고 가는 짬짬이 청소와 설거지를 반복하다가도, 조금 한가해지면 서재에 앉아 가벼운 읽을거리에 눈길을 주었습니다. 언론인인 임재경 선생님의 회고록 <펜으로 길을 찾다>, 문학평론가 염무웅 선생님의 대담집 <문학과의 동행>, 국문학자 겸 민속학자인 김열규 선생님의 <이젠 없는 것들>을 두서없이 설렁설렁 읽었습니다. 어쩌다보니 다 옛 기억들을 더듬는 책들이었네요. 이건 순전히 명절 탓입니다. 김열규 선생님의 책은 제목만 봐도 갖가지 추억을 떠올리게 만들었습니다. 예컨대 사라진 소리와 냄새들, 삼삼한 정경들을 돌아본 셋째 마당의 제목은 ‘귀에 사무치고 코에 서린 것들’입니다. 제목 속에 모든 게 담겨 있습니다. 낙숫물 소리, 타작 소리, 다듬이 소리, 아낙네들 떨이하는 소리, 방아 소리, 풀피리, 버들피리 소리, 닭 울음, 황소 울음, 할아버지 담뱃대 터는 소리, 할머니 군소리, 깨, 콩 볶는 냄새, 술 익는 냄새, 누룽지, 숭늉, 처마 끝 고드름, 처마 밑 제비집. 이런 소리와 냄새, 그리고 그런 정경에서 멀어진 삶이 과연 행복한 것인가,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제게는 그리운 시절입니다. ‘얼굴’이라는 노래 기억하시는지요? 우리가 젊은 시절부터 불렀던 이 노래가 중학교 음악 교과서에 실려 있다 하여 놀랐습니다.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내 마음 따라 피어나던 하얀 그 때 얼굴
풀잎에 연 이슬처럼 빛나던 눈동자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다 가는 얼굴”

이 가사의 핵심은 ‘무심코’라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움이라는 것은 우리 속에 각인된 어떤 기억이 예기치 않은 순간 의식의 표면으로 떠올라 우리를 확고하게 사로잡는 정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소월도 같은 경험을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이상하지요? 그리움이라는 말 그 자체 속에 어떤 마술이라도 걸려 있는 것일까요? 코로나19 시대여서인지 ‘그립다’는 단어가 더 자주 떠오릅니다. 심심풀이로 성경에서 ‘그리워하다’라는 단어가 사용된 구절을 찾아보았습니다. 꽤 많지만 몇 구절만 들어보겠습니다.

“하나님, 주님은 나의 하나님입니다. 내가 주님을 애타게 찾습니다. 물기 없는 땅, 메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님을 찾아 목이 마르고, 이 몸도 주님을 애타게 그리워합니다.”(시 63:1)


“내 영혼이 주님의 궁전 뜰을 그리워하고 사모합니다. 내 마음도 이 몸도, 살아 계신 하나님께 기쁨의 노래 부릅니다.”(시 84:2)


“내가 주님을 바라보며, 내 두 손을 펴 들고 기도합니다. 메마른 땅처럼 목마른 내 영혼이 주님을 그리워합니다.”(시 143:6)


“나는 임의 것, 임이 그리워하는 사람은 나.”(아 7:10)


“그가 돌아온 것으로만이 아니라, 그가 여러분에게서 받은 위로로 우리는 위로를 받았습니다. 여러분이 나를 그리워하고, 내게 잘못한 일을 뉘우치고, 또 나를 열렬히 변호한다는 소식을 그가 전해 줄 때에, 나는 더욱더 기뻐하였습니다.”(고후 7:7)


“내가 그리스도 예수의 심정으로, 여러분 모두를 얼마나 그리워하고 있는지는, 하나님께서 증언하여 주십니다.”(빌 1:8)


“갓난 아기들처럼 순수하고 신령한 젖을 그리워하십시오. 여러분은 그것을 먹고 자라서 구원에 이르러야 합니다.”(벧전 2:2)

어느 구절 할 것 없이 그리움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감정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그리움, 동료들에 대한 그리움은 우리 속에 있는 거칠고 날선 것들을 부드럽게 만들어 줍니다. 아무 것도 그리워할 것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위험한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리움은 ‘나’는 ‘너’를 통해서만 나일 수 있다는 사실을 넌지시 드러냅니다. 인간은 신 앞에 선 단독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옳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홀로 인간일 수 없음도 또한 사실입니다. 그리움의 대상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바로 삶입니다. 바울 사도는 성도의 삶을 이런 말로 요약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목표점을 바라보고 달려가고 있습니다.“(빌 3:14)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들을 가리켜 세상 곳곳에 “흩어져서 사는 나그네들인, 택하심을 입은 이들”(벧전 1:1)이라 칭했습니다. 히브리서는 길손과 나그네로 살던 믿음의 사람들을 소개하면서 그들은 더 나은 곳 곧 “하늘의 고향”(히 11:16)을 찾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리움이 우리를 밀고 갈 때도 있고, 우리를 앞으로 잡아당기기도 합니다.

며칠 전에 방탄소년단(BTS)이 유엔 총회 특별 행사 가운데 하나인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SDG) 개회 세션에서 청년세대와 미래세대를 대표해서 한 연설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이 멈춘 줄 알았는데, 분명히 조금씩 앞으로 나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인간의 위대함은 그런 데 있습니다. 느닷없는 운명의 타격을 받으면 잠시 동안 당황스러워하지만 다음 순간 정신을 가다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합니다. 미래 세대에 대한 음울한 전망이 도처에서 터져나옵니다. 그렇지만 BTS는 “우리의 미래에 대해 너무 어둡게만 생각하진 않으셨으면 좋겠다. 앞으로의 세상을 위해 직접 고민하고, 노력하고, 길을 찾고 있는 분들도 계실 테니까요. 우리가 주인공인 이야기의 페이지가 한참 남았는데, 벌써부터 엔딩이 정해진 것처럼 말하진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변화에 겁먹기보다는 ‘웰컴’이라고 말하면서 앞으로 걸어나가자는 것입니다. 존재의 용기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요?

사하라 사막 인근에서 은수자로 살다가 순교한 샤를 드 푸꼬의 ‘의탁의 기도’를 저는 늘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몸을 당신께 맡겨 드리오니 당신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저를 어떻게 하시든지 감사드릴 뿐, 저는 무엇이나 준비되어 있고 무엇이나 받아들이겠습니다”. 그가 이렇게 자신을 의탁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선의를 믿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러한 궁극적 신뢰입니다. 그 신뢰 속에 있을 때 우리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제 계절은 추분에 접어들었습니다. 진정한 가을의 시작입니다. 허장성세를 거두고 내적으로 깊어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과 동행이 되어 참 기쁩니다. 주님의 빛을 받아 흔들리지 않는 발걸음으로 우리 앞에 당도한 시간 속을 걸어가십시오. 평화를 빕니다.

2021년 9월 23일
담임목사 김기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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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편지



숙제장을 한 장 뜯었을까. 칸이 넓은 누런빛 종이에 연필로 쓴 글씨였다. 서너 줄, 맞춤법이 틀린 글이었지만 그 짧은 편지가 우리에게 전해준 기쁨과 위로는 너무나 컸다.


잘 있노라는, 주민등록증을 보내 달라는 내용이었다. 아마 초등학교에 다니는 주인 아들이 썼음직한 편지였다.


서울로 갔다가 소식 끊긴지 꼭 한 달, 박남철 청년이 잘 있다는 편지가 온 것이다. 그가 있는 곳은 경기도 파주였다.


그동안 낙심치 말고 기도하자 했지만 모두의 마음속엔 어두운 예감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라고 입을 모으는 것을 보면 어두운 예감이 어디까지 미쳤는지를 알 수 있다.


서둘러 답장을 썼다. 이번 주엔 아버지 박종구 씨가 파주를 다녀오기로 했다. 아버지를 따라 남철 씨가 돌아왔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불행한 삶이라면 그나마 고향에서 아는 이웃들과 나누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싶다.


엄마만 살았어도 그렇게 아들을 내보내진 않았을 거라며 누구보다 안타까워했던 허석분 할머니는 편지가 왔다는 말을 들으시고 역시 누구보다 기뻐하셨다.


“고맙네유. 새벽마다 할 줄두 모르는 기도를 하면서, 그래두 하나님이 지켜 달라구 기도했는데. 그 기도를 들어주셨나 봐유.”


사회가, 사람이 아주 악하지만은 않다는 신뢰감이, 팔자걸음, 히죽 웃음 남철 씨 모습과 함께 마음에 담긴다.

-<얘기마을> 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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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정 툇마루



경주 구미산 용담정 툇마루에 앉으며
먼지처럼 떠돌던 한 점 숨을 모신다

청청 구월의 짙은 산빛으로 
초가을 저녁으로 넘어가는 구름으로

숲이 우거진 좁다란 골짝 샘물 소리로
이곳에서 나고 자란 수운 최제우님의 숨결로

용담정에 깃든 
이 푸른 마음들을 헤아리다가

장독대 위에 정한수 한 그릇 떠놓고
달을 보며 빌던 정성과 만난다

시천주(侍天主) 
가슴에 하느님을 모시는 마음이란

몸종이던 두 명의 여인을
한 사람은 큰며느리 삼으시고

또 한 사람은 수양딸로 삼으신 
하늘처럼 공평한 마음을 헤아리다가

용담정 산골짜기도 운수 같은 손님이 싫지 않은지
무료한 마음이 적적히 스며들어 자리를 뜨기 싫은데

흙마당에 홀로 선 백일홍 한 그루
아직 저 혼자서 붉은 빛을 띄어도

마땅히 채울 것 없는 
마음 그릇에 모실 만한 것이란

초가을 저녁 
없는 하늘 한 줌 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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