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벽



돌아가는 손님을 배웅키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나갔더니 동네 아이들이 거의 다 나와 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도시로 일하러 나갔던 마을 언니가, 글쎄 학교에 계속 다녔으면 고등학생쯤일까, 모처럼 집에 들렀다가 가는 길, 언니를 배웅하러 나온 것이다.


한 사람이 다녀가는데 동네 많은 아이들이 나와서 배웅하는 것도 그러했지만 아이들의 시선이 온통 그 언니에게 쏠려있는 것이 참 신기했다.


그러나 안다. 아이들은 모처럼 돌아온 그 언니의 모습 속에서 곧 다가올 자신들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이다. 옷차림에서 말투까지 그리고 표정까지도 모두 도시에서 묻어 온 것이며 얼마 후 자신들도 배울 것이기에 눈여겨 두는 것이다. 


초등학교 혹은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부분 도시의 공장으로 나가는 단강의 아이들, 그렇게 농촌은 등져야 하는 땅이 되어가고 있고, 젊은이들은 고향으로부터 멀어져 간다.


이 큰 벽, 그 앞에 난 너무도 작고 약할 뿐이다.

-<얘기마을> 19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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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잎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네

 



철대문으로 
드나들 적마다

박잎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네

미소를 머금은 입가에 
말이 없으시던

커다란 아버지 손처럼
순하게

내가 뭘 잘한 게 있나
무심코 묻기보다

몇 날 며칠을 두고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 여름 내내 혼자 있을 적에
아무리 땀이 흘러도 에어컨을 틀지 않은 일 하나

그거 말곤 별로 없는데 
그 때문인지 그 불볕 더위도 어느새 물러나

어제 처서를 지나며
이렇게 시원한 바람을 부쳐주신다

그래서 나도 화답으로
양어깨에 맨 보따리가 아무리 버거워도

박줄기처럼 대문 위로 팔을 뻗어서
순하디 순한 박잎과 손끝으로 악수를 나누었지

내 머리꼭지 위에서 
둥근 보름달이 내려다보며

순한 달무리로
가슴속까지 쓰다듬어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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