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1/0634

멀리 사는 자식들 “월급은 12만원 받는데, 엄마, 저녁이면 코피가 나와.” 얼마 전 순림이한테서 전화가 왔다고 한다. 중학교를 마치곤 곧바로 언니가 있는 서울에 올라가 낮엔 방적공장에서 일하고 밤엔 야간 고등학교에 다니는 순림이. “돈 벌기 그렇게 어려운 거란다.” 엄마 김 집사님은 그렇게 말했다지만, 마른침 삼키며 그렇게 말 할 수밖에 없었다지만. 그래 순림아, 삶이란 때론 터무니없이 힘겨운 것일 수도 있나 보다. 천근만근 저녁마다 두 눈이 무거워도, 선생님 뭔가를 쓰는 칠판에 낮에 일한 실올이 바둑판처럼 아릿하게 깔려도 두 눈을 크게 뜨렴. 네가 마주한 것, 배우는 것, 단순한 공부가 아닌 엄연한 삶이기에. 연신 눈물을 닦으셨다. 얼마 전 자식을 떠나보내고 남은 텅 빈 집에서 심방예배를 드리며 할머니는 그렇게 눈물을.. 2021. 6. 7.
교우들의 새벽기도 오늘 새벽에도 교회로 들어서는 현관문 앞에는 작은 막대기 하나가 벽에 기대 서 있었다. ‘오늘도 오셨구나.’ 김천복 할머니, 75세 되신 허리가 굽은 할머니시다. 현관에 서 있는 막대기는 할머니가 짚고 다니시는 지팡이인 것이다. 며칠 전부터 할머니가 새벽예배에 참석하신다. 할머니 사는 아랫 작실까지 재게 걸어도 내 걸음으로 10여분, 할머니는 훨씬 더 걸리리라. 머리 곱게 빗고 맨 앞에 앉으신 할머니, 오늘은 또 무얼 기도하실까. 얼마 전 서울로 떠난 철없는 막내아들 위해 기도하실까. 우리 전도사 좋은 목사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실까. 이는 할머니의 기도 제목 중 하나다. 당신 눈에 흙 들어가기 전까지는 이곳 떠날 생각 아예 말라는 분이다. 교회 출석한지 얼마 안 되는 변정림 성도도 작실에서 내려온다. .. 2021. 6. 6.
똥줄 타는 전도사 비가 안 와 걱정입니다. 땅 갈고 씨 뿌렸지만 비가 안 와 걱정입니다. 아직은 갈 땅이 많아 우선 갈고 씨 뿌릴 뿐입니다. 전경환인가, 대통령 동생이 어제 잡혀 갔답니다. 몇 해 전 소 때문에 빚진 사람 이곳에도 많은데 그걸로 입은 피해 크고 깊은데 어제 잡혀 갔답니다. 거기다가 누군가에게 뺨을 맞았다죠. 그동안 말 못했던 백성들의 손이요, 어쩜 하나님 손이었다 생각하지만 꼭 남의 일 같습니다. 오늘도 강가 밭에선 사람들이 일 합니다. 당근 씨를 뿌립니다. 땅거미를 밟고 돌아오는 경운기, 오늘도 저녁놀이 붉습니다. 이번 주일이 부활절 생명은 어디로부터 오는지 무얼 딛고 오는지 설교거리 찾는 전도사 똥줄이 탑니다. 시간을 잊고 책상에 앉아서. 1988년 2021. 6. 4.
충실한 삶을 위하여 “좋으신 주님, 제 인생의 배를 저어 아늑한 당신 항구로 이끄소서. 거기라면 죄와 갈등의 풍랑을 피하여 안전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취해야 할 항로를 보여주소서. 제 안의 분별력을 새롭게 하시어, 저로 하여금 가야할 방향을 바로 찾게 하소서. 비록 바다가 거칠고 물결이 높다 하여도, 당신 이름으로 수고와 위험을 뚫고 나가면 마침내 위로와 평안을 얻게 될 줄 아오니, 저에게 바른 항로를 선택할 힘과 용기를 주소서.”(카에사리아의 바실리우스, 이현주가 옮기고 엮은 중에서)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가내에 넘치시기를 빕니다. 벌써 6월입니다. 망종(芒種) 절기가 다가옵니다. 왠지 햇보리밥이라도 먹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요즘은 빨갛게 익은 앵두를 보는 즐거움이 큽니다. 이른 아침 공원에서 주변 눈치를 살피며 앵두를.. 2021. 6. 3.
눈물로 얼싸안기 “제가 잘못했습니다.” 편히 앉으라는 말에도 무릎을 꿇고 앉은 집사님은 낮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고, 그렇게 말하는 집사님의 눈가엔 눈물이 맺혔다. 작은 일로 다른 교우와 감정이 얽혀 두 주간 교회에 나오지 않았던 집사님이 속회예배 드리러 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찾아온 것이다. 사이다 두 병을 비닐봉지에 담아 가지고. 전에도 몇 번 서로 감정이 얽힌 일이 있었고, 그때마다 찾아가 권면하고 했었지만 이번엔 된 맘먹고 모른 채 있었다. 잘못 버릇 드는 것 같아서였다. 빈자리 볼 때마다 마음은 아팠지만 스스로 뉘우치고 나올 때까지 참기로 했다. 그만큼 기도할 땐 집사님을 생각해야 했다. “내가 나오지 않는데도 심방해 주지 않는 전도사님이 처음에는 꽤나 원망스러웠지만 나중엔 왜 그러셨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 2021. 6. 3.
골마다 언덕마다 이곳 단강엔 4개의 마을이 있다. 끽경자라고도 하는 단정, 흔히들 조부랭이라 부르는 조귀농, 사면에 물이어서 생긴 섬뜰, 그리고 병풍처럼 산에 둘러싸인 작실이다. 작실 마을엔 다음과 같은 여러 이름이 있다. 골마다 언덕마다 이름이 있다. 들은 대로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마지막골, 자작나무골, 느티나무뒷골, 배나무골, 바우봉골, 넓적골, 안골, 움북골, 절너메, 절골, 옻나무고개, 아래턱골, 작은논골, 큰논골, 섬바우골, 터골, 서낭댕이골, 춤춘골, 장방터골, 작은고개, 큰죽마골, 작은죽마골, 구라골, 작은 능골, 큰능골, 댕댕이골… 골마다 언덕마다 이름을 붙인 조상들이 좋다. 그 이름 아직도 기억하는 마을 사람들 또한 좋다. 모두가 참 좋다. 1988년 2021. 6. 2.
한국은 섬나라가 아닌, 대륙과 하늘의 나라다 해외 여행이라 하면 비행기가 먼저 떠오른다. 지금은 코로나 비상시기로 출입국이 엄격한 시절을 보내고 있지만, 생각해 보면 비행기를 타고 가는 하늘길이 아니고선, 지구상의 그 어느 다른 나라든 갈 수 없는, 땅의 길이 막힌 처지가 현재 한국의 입장인 셈이다. 세삼스레 이런 현실을 떠올리다 보면 가슴 한 구석이 갑갑해진다. 마치 지구촌의 대륙으로부터 한국이라는 나라가 뚝 떨어져 섬처럼 고립된 것 같아서 스스로의 입지를 돌아보게 된다. 마치 일본처럼 섬나라가 된 한국은 아닌지. 그래서 국민들의 정서까지도 섬나라의 폐쇄성을 은연중에 닮아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염려를 내려놓지 못할 때가 있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구한말 한국이 일제강점기의 수탈을 겪으며, 광복 직후 열강들이 이 땅에서 일으킨 6.. 2021. 6.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