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꾼 국회의원

 

“원성 – 횡성 농민 만세!”

새벽, 의외의 결과를 대하며 내가 이긴 듯 괜히 신이 났다. 아무도 생각지 못했으리라. 누구 말대로 계란으로 바윌 내려치는, 보나마나 결과가 뻔한 일이라고 밖엔 달리 생각할 수 없었으리라.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그는 당선되었다. 민주당의 박경수 후보. 내게는 집사로, 속장으로서의 호칭이 더 자연스러운 사람이다. 바로 옆 정산교회의 충성속(담안지역) 속장이기 때문이다.

 

촌티가 흐르는 사람. 기관장들 쭉 대동하고 나타났던 민정당 후보에 비해, 조용히 초라하게 인사차 다녀가며 ‘모든 걸 하나님의 뜻에 맡긴다.’고 했을 때만 해도 한편 안쓰러웠던 사람. 놀랍게도 그가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정당 후보를 이백 몇 십 표 간발의 차로 누르고 당선된 것이다. 원래 강원도가 여당 밭인데다 이곳 마을만 해도 기관장들의 영향 아래 거의 선택의 여지가 없는 곳이다. 그러나 선거 전날, 작실까지 버스가 들어온다 하여 진입로 공사를 하기에 일손 도우며 이야길 들으니 생각들이 많이 바뀌어 있었다. 잠시 일손 놓고 땀을 식히며 사람들은 말했다. “민정당 그 사람. 새마을 사건과 관련됐다며?” “재산 엄청나게 불었다지?” 


“국회의원 되고나선 코빼기 한번 안 보이더니, 얼굴 내미는 것 보니 때가 되긴 됐나보지?” 반면 성실한 농사꾼인 박경수 후보에 대해선 동정과 기대가 모아졌다. “그 바쁜 운동기간 중에도 담배농사를 위해 꼭두새벽 일어나 거름을 져 날랐다지.” “키우던 소 몇 마리 팔아가지고 나왔대.” ’지난번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운동을 할 때도 혼자 많이 뛰어 다녔지.‘ “문막 유세장에 가보니 말하는 게 보통이 아니더군.”

 

민심의 흐름이랄까,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이 그렇게 하나로 모이게 됐고 당당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당선자들의 신상을 알리는 TV 자막. 다른 이들에 비해 흐리고 어둡게 나온 그의 사진 밑 경력 란에는 농사라고만 짤막하게 쓰여 있었다. 화려한 학력과 경력을 가진 이도 많았지만 그저 ’농사‘라고만 적힌 단순한 한마디가 더욱 가슴을 찡하게 했다. 그래, 시커먼 얼굴 거친 손마디 농사꾼이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렇게 시커먼 얼굴, 거친 손마디로 살아가는 이 땅 농사꾼들이 농사꾼을 뽑았다. 그게 자랑스럽다.


-<얘기마을> 198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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